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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SF]두 갈래 길

니그라토(61.109) 2008.03.28 12: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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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길


 



나는 3만 6천여 발의 100메가톤 급 수소폭탄을 소유했다. 목성의 풍부한 중수소로 인해 수소폭탄은 싼 맛에 만드는 물건이 되었다. 남들 다 하는 일은 나도 따라가고, 이왕 따라가는 것 앞서가겠다는 생각으로 노력한 결과 이 정도의 수소폭탄들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사는 목성 궤도 도시의 주민들은 평균 2만여 발의 수소폭탄을 가졌으니 난 중상 정도가 되는 셈이다. 도시가 지닌 수소폭탄 가운데 절반을 지구로 쏠 예정이다. 지구를 수소폭탄으로 기습하기 위한 준비가 행해지고 있다. 비밀을 지키고, 지구를 기습할지 안할지 여부를 놓고 하는 투표를 준비하는 등 도시는 물밑에서 분주하다. 지구인들도 나처럼 대세에 따르다 보니 목성에게 공격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일 터이다. 지구인들이 공격을 당해야만 하는 상황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무리도 있을 것이다. 지구인들이 공격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나를 설득시키게 될까.


난 지구를 치느냐 마느냐를 투표하기 위해 단말기를 켜놓고 대기 중이다. 격렬한 토론이 도시 내부 네트워크에서 오가고 있다. 나는 이를 지그시 관찰했다.


우리 목성 도시민들은 태양계 밖으로 나가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인류는 좁은 태양계 안에서만 지낼 수는 없다. 인류의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태양계는 비좁고, 인류의 권력이 늘어나지 않고서는 태양계는 위험하다. 이런 개척정신에 지구는 찬물을 끼얹고 있다. 지구는 표준화 전략을 통해 목성의 도시민에게, 지구와 동일하면서 낡은 과학기술 표준을 강요 중이다. 처음엔 순종했지만 지금은 목성인이 많아지고 힘도 쌓였다.


우리 목성인은 결코 냉혹한 사람들도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사람들도 아니다. 표준화 전략을 강요하는 것만으로 이토록 분노가 치밀지는 않는다. 표준화는 지구와의 시장 경제를 유지하는 데에 꼭 필요하기에 이를 태양계도 못 벗어난 지금 거부할 이유는 없다. 물론 표준화가 목성인의 정치적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만으로 이토록 원한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몇 달 전에 우리 목성인은 화성 궤도에서 한 지구인을 비밀리에 나포했다. 지구를 침공하자고 선동하는 무리가 한 짓이었다. 지구인은 목성인에게 공개되었다.


그 지구인의 뇌에는 전자두뇌가 부착되어 있었다. 전자두뇌야 생각만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오래된 기계이니 그것은 상관없다. 문제는 행동이었다. 하얀 방에 가둬져 아무런 전자기 자극을 받을 수 없는 지구인은 구석에 박혀 떨기만 했다. 오래 놔두니 그 자리에서 배설을 했다. 식사를 제공해도 먹지 않았다. 그저 구석에서 떨기만 할 뿐이었다. 뇌도 정상이었고, 유전적 이상도 없었다. 매우 작은 기계와도 세포 수준에서 일정 부분 결합되어 있어, 나이가 많은데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컨대 전자두뇌에서 오는 명령이 없이는 간단한 행동조차 할 수 없었다.


 한 선동 정치가가 말했다.


“저것이 지구의 독재가 지구인에게 한 짓입니다. 지구인들은 한줌의 지배자들을 빼고는 모두 저런 백치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첩보 위성들을 통해 관측해서 알아낸 바에 따르면, 지구는 독재 아래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유주의자들의 선배들은 지구적 독재의 거대한 위험성을 경고했었습니다. 오늘날 지구 전체에 독재는 펼쳐져 있습니다. 독재자는 마음만 먹으면 지구의 모든 힘으로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입니다. 또한 지구인 가운데엔 우리의 가족도 많습니다. 가족들을 더 이상 독재 아래 방치해둘 수는 없습니다. 삶 전체가 고통에 휩싸이느니 차라리 죽음이 낫습니다. 독재자가 스스로 물러나지는 않을 테니 무력 응징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선동 정치가는 대의명분을 주장했다.


나포된 지구인의 상태는 자세하게 보도되어 목성인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고, 그렇게 선동 정치가 또한 끼어들었다. 하지만 나는 내 여동생 유미희가 여전히 지구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평소부터 지구에 관심이 많았다. 독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지구인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광장에서 훈련된 동물들에게 공개 성교 당했다. 공포에 질린 채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공개 처형을 당했다. 나는 그저 최악의 독재가 지구상에 펼쳐진 것으로만 생각했다. 미희는 똑똑하니까 잘 사바사바해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위안해왔다.


그런데 화성 궤도에서 붙잡은 지구인의 상태는 그 이상이었다. 만나보지 못 해 잘 모르지만, 미희 또한 독재자의 전자두뇌를 통한 명령 없이는 죽 한 숟갈 떠먹지 못 하는 백치가 되어 있을 것이다.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독재가 왜 펼쳐졌는지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를 했다.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뜻대로 시장을 왜곡시키기 위한 권력을 찾아 탐욕을 부리면서 경쟁한 결과 저리 된 겁니다.”


 “빈민들이 자신들을 보다 잘 살게 해줄 거라고 착각해서 밀어준 혁명가가, 숨겨져 있던 야욕을 드러낸 결과일 것입니다.”


“박애주의자들과 인본주의자들이, 모든 계층을 융합하고 사회를 안전한 곳으로 만들겠다는 취지 아래, 서로를 사랑하게 만들기 위해 인간성을 개조하는 것을 용인한 결과가 저리 나타난 것입니다.”


 어느 것이든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아마도 서로 섞여 발생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왜 독재로 변질되었는지가 중요했다. 지구는 빛이 1초에 일곱 바퀴 반을 돌 수 있을 정도로 작다. 그런 작은 곳에선 빛을 이용한 통신이 매우 효과적이다. 인간의 뇌는 물질과 정보의 입출력에 따라 재편되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그런 뇌에서 나오는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기계가 비밀리에 발명되었다.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기계 가운데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을 손아귀에 넣은 자가 지금의 독재자가 되었다. 고성능의 전자두뇌를 통해 독재자는 인류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나는 영상을 통해 선동 정치가의 탐욕스런 입술을 바라보았다. 정의를 빙자해 살육을 자행하고, 그 와중에 태양계의 권력을 잡으려는 의도가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았다. 이를 다른 목성인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속아주는 것이리라 짐작된다.


상대가 내 마음을 조종할 수 없게 만드는 마음의 방벽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21세기 초반 기준으로는 미소년의 모습인 나지만 실은 수백 년을 살아 왔고 아주 작은 기계들이 세포를 계속 젊은 상태로 만들어 주고 있다. 나를 이렇게 높여준 과학기술이 언제든 내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걸 상기해본다.


선동 정치가는 지구를 끝장내 지구의 사슬에서 벗어나 목성이 새로이 우주를 정복하자고 말하고 있었다. 우주로 나가면 나갈수록 만나기 어려워질 것이므로 법은 사라지고 끝없는 해적질과 무한경쟁만이 남을 터였다. 영원히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예전 내 동생 미희가 정을 담아 만들어주던 비빔밥은 영원히 먹을 수 없을 것이다. 홀로된 자들의 끝없는 투쟁. 사랑스런 미희를 영원히 내 곁에 놓고 지키고 싶었지만 이제 그 꿈은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이 결정을 해야 했다. 나는 투표했다.


-반대.


다수결로 결정되고, 다른 목성인과 아직 더불어 살아가야 하므로 지구를 공격하자고 투표 결과가 나오면 다른 이들처럼 수소폭탄을 날려야 한다.


하지만 난 나름대로 반대를 했다.


백치여도 동생은 동생이다.


이것이 오빠로서 해줄 수 있는 전부다.


참았던 눈물이 흘러내렸다.


 


 


<Fin>


 


20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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