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201401~202109 러브라이브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201401~202109 러브라이브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우크라이나 vs 대만 ㅇㅇ
- 싱글벙글 한문철TV 시청자들이 5:5 주장하는 사고.gif 전국민면허몰수
- 싱글벙글 스텔라 블레이드 외국 밈 근황..jpg ㅇㅇ
- 관광객 800만원 찾아준 버스기사.jpg ㅇㅇ
- 충격! 무리지어 일하던 태국놈들... 기숙사를 뒤져보니 경악 난징대파티
- 미국의 횡포가 시작된 틱톡 근황... 맛갤러
- ㄹㅇ 흥미로운 두끼 떡볶이의 시작 (ft. 수지) ㅇㅇ
- 일본 방송에서 다룬 한국 부동산 위기 ㄷㄷ 부갤러
- 아이 목숨과 바꿔먹는 포켓몬 굿즈 되팔이에 비판이 쇄도 키리야아오이
- 대학 한녀들의 가치관 객관적고찰
- 특전사의 최신근황을 알고싶어 귀성부대 설한지훈련을 봄 2편 ㅇㅇ
- 수록곡이 1위 찍어서 너무 신기했던 전소연.jpg ㅇㅇ
- "왜 항상 막히나" 했더니 "이유 있었네"‥고속도로 구조 바꾼다 ㅇㅇ
- 일본인이 묘사한 한국에서 트위터 인식 ㅇㅇ
- 장애인 주차구역 좁아서 민원 넣었는데 사라짐 사갤러
서구권에서는 귀하고 한국에서는 못 보내는 음식
유럽 북중미 사람들이 해산물 특히 생으로 먹는 해산물을 굉장히 싫어하는 걸 익히 들어 본 사람이 있다면 다들 알 것이다.살아 있는 해산물을 특히 오징어, 문어와 같은 두족류 먹는 건 질색하고그 유명한 올드보이의 생낙지 먹방은 서구권 기준 혐짤 일 정도그런 그들도(북유럽 일부 제외) 생으로 먹는 음식이 있었으니굴200년 전, 산업화 이전 유럽과 미국에서 굴은 한국과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처럼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었다주로 강에서 채집 하거나 아이들을 시켜서 굴을 따오게 했고이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었지만쉽게 구할 수 있는 것과 별개로 옛날에는 관리 방법은 미흡했던 터라 고급 음식이었다이게 술 안주에 좋은 건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라 술 안주로써도 인기가 많았고 그런 만큼 역사도 깊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매주 1200개의 굴을 먹었고섹스왕, 카사노바는 여자와 관계를 가지기 전 반드시 굴 50개 정도는 먹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특히 프랑스 같은 경우에는 나폴레옹, 앙리 4세 같은 프랑스 역사 중요 인물들도 일상적으로 굴을 많이 먹었다그 문화는 현대까지 이어져 프랑스에서 굴은 크리스마스 때 먹는 음식으로 유명하다 ( 특식이란 개념은 아니다 )이렇게 유럽 각지에서 굴은 높은 수요를 가지고 있었고 이는 미국도 다르지 않았다미국의 유명한 장군인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은 진급 때마다 굴 한박스 받았을 정도로 굴을 굉장히 좋아했고미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며 이와 관련 된 요리로차그릴드 오이스터란 미국의 굴 요리를 대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이토록 굉장히 쉽게 구하고 많이 먹었던 굴은 원래부터 고급 음식은 아니었다굴 희소성이 서구권에서 높아졌던 건 산업화와 아동 노동 금지 조항이 시작 되면서 시작했다산업화로 인한 강물 오염과 아동 노동 금지 등으로 인해 굴 수확량이 급격히 감소, 이로 인해 이전에 일상적으로 즐겨 먹던 굴이 더 이상 흔하지 않아서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됐어 특히 강물 오염은 굴 양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고, 굴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사업들은 "이대로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 고급화로 간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굴이 서구권에서 고급 음식으로 인식되게 됐지그러나 깨끗한 물에서 얻어지는 굴이 드물어짐에도 불구하고, 답을 찾기 어려웠던 가운데 "어? 수돗물도 깨끗하게 먹을 수 있는 동아시아 국가 두 곳이 있네?" 이 두 국가는 일본과 한국 각자 2014년에 일본의 굴 생산량은 18만 4,100톤이었으며 한국의 2015년 굴 생산량은 34만 2,480톤으로, 높은 품질의 굴을 생산하고 있고 이는 굴을 가장 많이 소비하고 생산하는 프랑스의 2017년 생산량인 6만 4,910톤보다 높은 수준이었지물론 중국은 394만 9천톤을 생산하는 등 특이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는 환경 오염과 지들이 다 쳐 먹어서 이유로 예외다 니들 중에서 질려서 혹은 식감이 싫어서 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로 흔히 먹는 음식이지.한국에서는 김치가 흔하고 자주 접할 수 있는 음식으로 인식 되고 있고그 만큼 수확량이 높다는 뜻인데 남아 도는 걸 버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짓이니까 당연히 수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한국의 굴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니야,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노로 바이러스 때문이지, 정확히는 위생 문제 말이야한국의 굴은 김치처럼 대중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어한국의 작업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화장실 문제가 제대로 개선 되지 못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수확한 굴을 수출하기는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고지금도 이 문제가 지속 되고 있고 때문에 한국의 굴을 수출 받는 나라는 많지 않다..영국만 하더라도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수출을 받는 중이고세계화장실협회가 또 다른 위기의 직면하고 있는 중인 셈앞으로도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굴 수출은 날이 갈 수록 적어질 것으로 예상 돼
작성자 : ㅇㅇ고정닉
훌쩍훌쩍 조선영조가 짱개어선 단속을 주장하기 위한 예산요구를 묵살...
https://youtu.be/V4lDpvTEcv4우리에게 익숙한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오늘날 행정고시인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공직생활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어영대장(종2품)으로 승진되고 함경도진휼사로 임명되었다.당시 함경도에는 기근이 들어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어서,박문수는 경상도의 곡식 1만 석을 실어다가 함경도의 백성들을 구제하였다.이로 인해 송덕비도 세워지는 등 칭송을 받았는데, 문제는...사실 이건 불법이었다.사전 보고 없이 멋대로 다른 고을의 곡식을 옮겼기 때문이다...박문수가 자신의 죄는 잘 알고 있어서 중앙정부의 징계를 기다리고 있었고,이때 유명한 말이..."내가 처벌 받는 것은 작은 일이나 백성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큰 일에 속한다."라고 하였는데, 이후 병조판서(정2품 국방부장관)를 지내고 경기도관찰사(정2품 경기도지사)로 임명되었는데이후 황해도수군절도사(정3품)로 좌천되었다.이후 황해수영(황해도수군기지 본청) 집무실에 있던 박문수는 업무보고를 받았는데,당시 상황은 가관이었다.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당선(중국 배)이 우리 해역에 자주 침범하여 고기 잡고 아주 개판이노? 느그들 뭐했노."당시 조선에서는 명나라, 청나라 시대 중국인의 어선을 '황당선' 또는 '당선'이라고 불렸는데,이 짱깨 어민들은 조선의 해역에 자주 침입하여 골칫거리가 되었다.특히 조선 어민들의 조업권과 생계권을 위협하거나아예 서해 무인도에 해적기지를 차려 웅거하기도 하여조선 중기에는 수군을 황해로 출동시켜 중국 해랑적을 토벌하기도 하였다.황해수영 조선군 관할지역에서도 청나라에서 넘어온 중국어민의 불법 조업이 계속됐는데,당시 박문수는 영조에게 예산을 요구한 모양이다.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전하... 중국 배가 여름이 되면 오지 않는 해가 없는데,그들이 우리 법을 무시하고 멋대로 하는 습관이 더욱 조장되고 있습니다.지금 최상의 계책은 배를 많이 만들어 밤낮으로 띄워 중국 배의 이익을 빼앗는 것이 제일이기에비선 20척을 만들려고 하는데 본영(황해수영)에 돈이 없습니다...따라서 유고전과 별비전(별도로 비축한 돈, 즉 예비비) 각 200냥을 내어주시면 배를 만들어 쓸 수 있겠습니다."좌의정(정1품 재상) 송인명"전하, 황해도수군절도사 박문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옆에 있던 고위관료 송인명도 박문수의 의견에 동조했으나,아들 뒤주 삶아먹은 영조의 말이 걸작이다.영조"충무공 이순신은 전쟁통에도 능히 배를 만들었는데,지금 같은 (평화로운) 때에 돈 400냥을 마련하지 못해 이런 청을 한단 말이냐?스스로 마련하여 배를 만들라."이때 형조 참판 이주진이 박문수를 동조했으나...형조 참판(종2품) 이주진"박문수가 황해도수군절도사로 새로 부임했기에 이런 요청이 있는 것입니다만,세금이 잘 걷히지 않아서 전라도의 풍요로움에 비하면 부족한 겁니다."영조"싸가지 없게 어떻게 임금 앞에서 각 고을의 재정에 대해 비교할 수 있느냐. 추고(반성)해라."결국 박문수는 예산을 배정받지 못했고,뭐 어떻게 자력했는지는 의문이다.조선왕조실록에 별 기록이 다 있노...- The end -<출처>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 59권, 영조 20년 2월 27일 을해 2번째기사 1744년 청 건륭(乾隆) 9년황해 수사 박문수는 황당선의 어로와 밀무역을 근절시키기 위한 계책 등을 아뢰다
작성자 : 조센왕조실록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