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주역’을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운영자 2009.01.28 18:18:45
조회 2601 추천 5 댓글 7


 예로부터 역학자(易學者)들 사이에서는 “주역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점을 치지 않는다”라는 말이 통용되어왔다. 점을 친다는 것은 결국 역경에 처한 이가 미래에 대한 한가닥 헛된 희망이라도 임시방편으로 붙잡기 위해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결국 현재요, 과거를 다스리는 것 역시 현재다. 현재의 마음가짐만이 모든 역경에서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고, 순경(順境) 역시 오래 지속시켜줄 수 있다.


 한밤중에 잠을 깨어 “왜 이리 어두울까”하며 고민하는 것보다는, 수면제라도 한 알 먹고 한잠 푹 자두고 나면 어느새 밝은 아침이 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역(易)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제1원리(弟一原理)다. 그럴 때 방안이 완전히 캄캄해야만 잠이 더 잘 오게 되는데, 당장은 무섭고 두려울지 몰라도 방안을 더욱더 캄캄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역(易)의 제2원리(弟二原理)요, 그것이 곧 ‘역설적 의도’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주역’에 관심을 가져 지금까지 책장이 닳도록 주역을 들여다보았고, 천 번도 넘게 역점(易占)을 쳐보았다. 그렇지만 요즘엔 거의 점을 치지 않는다. 점보다는 스스로의 판단이 더욱 중요하다는 사실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역점을 쳐본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일반인들이 ‘주역’을 점술서로서 응용할 수 있는 길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우선 먼 미래에 대한 막연한 의문이나 우려에 대해서는 역(易)은 딱부러진 해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예컨대 “내가 과연 이 방면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저 여자와 결혼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같은 따위가 그것이다. 자신의 의지나 사고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것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정도로 눈앞에 닥친 문제에 대해서만 역(易)은 대답해준다.


 최근에 나는 오랜만에 역점(易占)을 쳐보았다. 모친의 병환 때문이었다. 녹내장과 백내장이 겸하여 모친을 괴롭히고 있어서, 그동안 치료를 받던 동네 개업의가 큰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도록 권했다. 그래서 그 의사의 소개로 모 종합병원 안과에 다니며 결국 수술날짜까지 잡았는데, 모친은 어쩐지 담당의사의 불친절이 마음에 꺼림칙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다른 종합병원의 안과 의사를 추천해주었다.


 나는 의사가 친절하다고 해서 병을 잘 고치는 것도 아니고, 불친절하다고 해서 병을 못 고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여 초지일관으로 먼저 다니던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는 게 낫다고 일단 주장했다. 그런데 모친의 말을 더 자세히 듣고 보니 아무래도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드디어 역점을 쳐서 결정짓기로 했다.


 점을 쳐보니 나온 괘가 ‘둔(遯)’괘였다. ‘둔(遯)’괘는 돼지가 뛰어서 도망가는 형상이라 돼지띠인 모친과도 부합되므로,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는 점단(占斷)이 나왔다. 그래서 나는 현재 치료받고 있는 병원에서 도망하여 새 병원으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모친에게 새 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권했다. 새 병원의 의사는 먼저 의사처럼 수술을 서두르지 않고 우선 약물치료만 계속하고 있는데, 노인의 수술은 아무래도 위험부담이 많으므로 어쨌든 의사를 바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역점(易占)은 결국 자신의 마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어떤 일에 대한 강한 의욕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다시 점에 물어봤자 올바른 점괘가 나오지 않는다. 이를테면 어떤 여자에게 빠져 있을 때 “이 여자와 결혼하면 어떨까” 따위를 묻는다면 십중팔구 결혼에 좋은 괘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경우 혹 나쁜 괘가 나온다면 공연히 기대불안(期待不安) 심리가 생겨 잘 나가던 두 사람이 어이없이 갈라질 우려조차 있다. 요컨대 웬만한 일은 점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스스로 판단하여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

추천 비추천

5

고정닉 0

2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107 <붙이는 글> 마광수의 ‘시대를 앞서간 죄’ [68] 운영자 09.04.03 14756 55
106 운명은 야하다 [14] 운영자 09.04.02 12398 17
105 창조적 놀이정신은 운명극복의 지름길 [3] 운영자 09.04.01 4576 7
104 시대상황에 맞는 가치관은 따로 있다 [7] 운영자 09.03.30 3906 8
103 패륜범죄, 대형참사 빈발의 원인은 따로 있다 [9] 운영자 09.03.27 4926 8
101 ‘위대한 설교자’보다 ‘위대한 놀이꾼’이 필요하다 [5] 운영자 09.03.26 3879 6
100 ‘투쟁’에 의한 역사발전의 시대는 가다 [4] 운영자 09.03.25 2996 3
99 진정한 속마음이 왜곡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4] 운영자 09.03.23 3681 4
98 민심을 바로 읽어내는 것이 급하다 [2] 운영자 09.03.20 2484 1
97 상투적 도덕은 필요없다 [2] 운영자 09.03.19 3031 1
96 왜 이렇게 비명횡사가 많은가 [2] 운영자 09.03.18 3150 5
95 이중적 도덕관 탈피해야 개인과 사회가 건강해진다 [22] 운영자 09.03.17 3055 8
94 그릇된 관념에서 비롯되는 ‘집단의 병’ [4] 운영자 09.03.16 3146 2
93 현대병의 원인은 권태감과 책임감 [5] 운영자 09.03.13 3868 5
92 ‘인격 수양’ 안해야 마음의 병에 안 걸린다 [11] 운영자 09.03.12 5741 18
91 억눌린 욕구가 병이 된다 [7] 운영자 09.03.11 5591 6
90 ‘무병장수’의 현실적 한계 [5] 박유진 09.03.10 3488 3
89 인간 있는 곳에 병 있다 [4] 박유진 09.03.09 2553 3
88 이중적 의식구조를 벗어버리면 병은 더 이상 운명이 아니다 [3] 박유진 09.03.06 2771 2
87 자유만이 유일한 해결책 [4] 운영자 09.03.05 3118 3
86 참된 지성은 ‘지조’가 아니라 ‘변덕’에서 나온다 [3] 운영자 09.03.04 2715 3
85 ‘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2] 운영자 09.03.03 2784 4
84 ‘편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운영자 09.03.02 2377 2
83 개방적 사고에 따른 문명과 원시의 ‘편의적 결합’ [4] 운영자 09.02.26 2590 1
82 문명이냐 반문명이냐 [3] 운영자 09.02.25 2778 1
81 진리로 포장되는 ‘권위’의 허구 [3] 운영자 09.02.23 2625 3
80 원시와 문명의 ‘편의주의적 결합’은 우리를 참된 자유로 이끈다 [2] 운영자 09.02.20 2022 1
79 솔직한 성애의 추구는 운명극복의 지름길 [2] 운영자 09.02.19 2472 5
78 ‘타락’도 ‘병’도 아닌 동성애 [3] 운영자 09.02.18 3984 10
77 선정적 인공미 가꾸는 나르시스트들 늘어나 [5] 운영자 09.02.17 3019 5
76 개방사회가 만든 자연스런 관음자들과 페티시스트들 [3] 운영자 09.02.16 1619 1
75 삽입성교에서 오랄 섹스로 [9] 운영자 09.02.13 6339 1
74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인정하자 [2] 운영자 09.02.12 1350 1
73 생식적 섹스에서 비생식적 섹스로 [4] 운영자 09.02.11 2020 4
72 ‘성욕의 합법적 충족’을 위해서 결혼하면 실패율 높다 [3] 운영자 09.02.10 1841 7
71 결혼은 환상이다 [2] 운영자 09.02.09 2057 6
70 작위성 성억압은 개성과 창의력을 질식시킨다 [2] 운영자 09.02.05 1073 3
69 전체주의적 파시즘은 집단적 성억압의 산물 [3] 운영자 09.02.04 1600 2
68 쾌락으로서의 성을 부끄럼없이 향유하라 [5] 운영자 09.02.03 2123 3
67 변화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발전을 이룬다 [2] 운영자 09.02.02 1175 1
66 결국 현재의 욕구에 솔직하라는 역의 가르침 [2] 운영자 09.01.30 1469 1
‘주역’을 아는 사람은 점을 치지 않는다. [7] 운영자 09.01.28 2601 5
64 회한도 희망도 없이 현재를 버텨 나가라 [2] 운영자 09.01.23 1734 1
61 ‘역설적 의도’로 막힌 세상 뚫어보자 [3] 운영자 09.01.15 1584 4
63 쾌락주의에 따른 동물적 생존욕구가 중요하다 [3] 운영자 09.01.19 1537 2
62 음양의 교화(交和)가 만물생성의 법칙 [2] 운영자 09.01.16 1206 1
60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 지닌 동양의 민중철학 [2] 운영자 09.01.14 1157 1
58 궁하면 변하고, 변하다 보면 통한다 [2] 운영자 09.01.09 1725 3
57 햇볕이 뜨거울 때 우산을 쓰면, 신기하게도 비가 내린다 [2] 운영자 09.01.08 1171 1
56 잠재의식과 표면의식의 일치로 얻어지는 생명력 [4] 운영자 09.01.02 1570 2
123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