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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운영자 2009.03.02 15:59:53
조회 2371 추천 2 댓글 2

 히브리의 민족신화에는 ‘에덴동산’ 얘기와 함께 ‘노아의 홍수’ 얘기가 나온다. 인류는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어 타락해가다가, 결국 신의 분노를 사 홍수로 멸망하게 됐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리스 신화에도 역시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인류가 처음 생겼을 때는 삶이 곧 낙원 그 자체인 ‘금(金)의 시대’였다. 그런데 인간이 차츰 타락해가면서 은(銀)의 시대로 떨어졌다가 결국 제우스의 분노로 대홍수가 일어났다. 그리고 히브리 신화에서 노아가 새 인류의 조상이 되는 것처럼 데우칼리온이라는 의인(義人)이 새 인류의 조상이 된다.


 말하자면 인간은 지금까지 누구나 “옛날이 좋았다”는 생각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었고, 어두운 현실에 대한 짜증 때문에 말세의 심판과 새로운 천지개벽을 꿈꾸고 있었다는 얘기다.


 루소가 반문명적 계몽주의를 외쳤던 것도 결국 이러한 신화적 향수와 소망에서 나온 원시동경사상(심층심리학적으로 보면 자궁회귀욕구)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산주의의 시초가 된 것이 원시공산주의라면 그것 역시 원시동경사상에 기인한 것이었다. 중국의 공자 역시 지성의 계발에 의한 엘리트 독재의 복지국가를 꿈꾸면서도 태고의 요순시대를 그리워했다. 노자도 백성의 무지(無知)에 바탕한 부족국가 형태를 그리워하여, “옛날이 좋았다"는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별차이가 없었다.


 관습적 사고나 폐쇄적 사고가 개방적 사고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관습적 사고는 원시동경사상에 다름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이컨이나 볼테르식의 지성적 미래지향주의가 완벽한 해결책은 못되는 것이, 지성만 강조하다 보면 자칫 인간의 감성과 본능적 욕구를 소홀히 여기게 되어 개개인의 실질적 쾌락을 외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쾌락만이 유일한 선이요, 고통만이 유일한 악이다”라고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학설은, 아주 오래된 설인데도 불구하고 지성과 본능을 두루 꿰는 가장 적절한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정신적 쾌락의 범주 안에 종교적, 도덕적 쾌락 같은 것은 넣지 않았다. 또한 신을 부정했을 뿐 아니라 미신을 극력 배척하였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거나 신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정신적 쾌락의 범주 안에 종교적, 도덕적 쾌락 같은 것은 넣지 않았다. 또한 신을 부정했을 뿐 아니라 미신을 극력 배척하였다. 그는 신을 두려워하거나 신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 정신적 쾌락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쾌락을 ‘고통이 없는 상태에서 오는 마음의 평정감(平靜感)’이라고 했다.


 에피쿠로스는 또한 국가를 개인 상호간의 이해타산적 계약에 기초하여 성립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그는 결혼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아 “국가와 가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참된 쾌락을 얻을 수 없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므로 노자가 어떤 형태로든 국가를 인정하고 자연질서를 운행하는 천(天)의 역할을 인정한 것에 비추어볼 때, 에피쿠로스의 주장은 한결 자유로운 면이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루소가 ‘감정에 바탕한 신앙’이라고 토를 달긴 했지만 어쨌든 종교를 인정하고 신을 긍정한 것에 견주어볼 때, 유사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윤리나 도덕 역시 일종의 처세술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그의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철저한 자유주의에 바탕한 편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듣기에 ‘편의주의’는 이기주의나 기회주의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비겁한 도피주의나 치사한 타협주의로 간주될 가능성조차 있는데, 편의주의는 실제로 이기주의나 기회주의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고, 타협주의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편의주의는 경직된 가치관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곧바로 ‘유연성 있는 사고’와 통한다. 원시와 과학, 지성과 본능이 합리성의 토대 위에서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편의주의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편의주의는 ‘융통성에 바탕을 둔 적극적 개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에피쿠로스는 국가나 법의 절대성을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야만의 상태에서 평정의 상태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잠정적으로 계약적 국가 형태가 필요하긴 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럴 경우 법은 그 자체로서는 정의(正義), 부정의(不正義)의 의미가 없고, 다만 ‘공공의 쾌락에 일치할 때’만 성립되는 유연한 계약성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는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국가관, 법률관과 유사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상당히 다른 것이다. 루소는 기독교 사상을 인정하고 신의 절대성에 기초하여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했고, 참된 자유는 어쨌거나 법을 따를 때 가능해진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비해 에피쿠로스는 한결 더 자유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루소는 원시적 감성을 동경하고 위선적 이성의 불합리에 도전하긴 했지만, 결국 ‘국가권력’과 ‘종교’에서 해답을 찾으려 했던 단지 조금 색다른 계몽주의자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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