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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적 윤리’에서 ‘개인적 쾌락주의’로

운영자 2009.03.03 15:04:55
조회 2785 추천 4 댓글 2

 그러므로 지성의 진보에만 지나치게 기대는 계몽주의적 가치관보다는, ‘문명상태와 원시상태의 편의적 결합’을 인정하는 편의주의적 가치관이 한 개인 또는 사회를 한결 더 복지적, 쾌락적 운명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 말하자면 도덕과 본능, 지성과 반지성이 합쳐져 그때그때 효용에 따라 각각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돼야 한다는 뜻이다. 이럴 경우 ‘절대적 가치’나 ‘절대적 윤리’는 부정되고 ‘상황적 가치’나 ‘상황적 윤리’가 개인적 필요에 따라 선택된다.


 예컨대 결혼제도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독신생활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또는 한번 결혼했다가 권태감에 못 이겨 이혼한 후 독신생활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독신생활을 하다가 늦은 나이에 결혼생활로 들어가는 사람도 나올 수 있다. 요컨대 ‘독신주의’냐 ‘가족주의’냐의 이분법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윤리나 도덕 역시 남에게 구체적으로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불륜 또는 부도덕은 있을 수 없다. 말하자면 ‘종교적 죄악’ 또는 ‘마음의 죄악’의 개념이 없어져버리는 것인데, 이런 상태가되면 갖가지 관습적 사고나 편견들이 사라지게 되어 인간의 불행한 운명을 한결 예방할 수 있게 된다. 불행한 운명이란 쓸데없는 고정관념에 따른 자기통제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미의식 역시 도덕의식 못지않게 인간의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그런데 최근 서구나 한국에서 ‘보디 피어싱(body piercing)'이 유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원시와 문명이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하나의 근거가 된다. 보디 피어싱이란 몸의 한 부분을 뚫고 거기에다가 금속으로 된 둥그런 링을 끼우는 것인데, 귓불을 뚫고 매다는 귀걸이를 연상하면 된다. 보디 피어싱을 하는 곳은 코, 입술, 젖꼭지, 음순, 페니스, 배꼽 심지어 혓바닥에까지 미친다.


 사실 보디 피어싱의 습속은 새삼스레 해괴한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나 남태평양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보디 피어싱의 습속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보디 피어싱의 습속과 더불어 살갗에 상처자국을 내거나 문신을 하는 습속도 아울러 지니고 있는데, 이제는 그러한 풍속이 문명이 발달한 선진국에까지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보더라도 인간은 과학문명을 발달시켜갈수록 거꾸로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면에 대해서 향수를 느끼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하드록(Hrd rock) 음악의 시끄러운 리듬은 아프리카 오지의 원시음악과 닮아 있게 마련이고, 위선적인 현대문명을 싫어하는 히피족이나 펑크족 그리고 나체주의자들이 계속해서 출현하게 된다.


 한국의 보수적 사람들 눈에는 보디 피어싱의 풍습이 배부른자들이나 하는 해괴망칙한 말세적 사치풍조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 여성들 대부분이, 그리고 일부 젊은 남성들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귓불을 뚫고 귀걸이를 한다는 사실을 감안해보면 진지한 이해가 가능할 수도 있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우리나라에서 귓불을 뚫고서 귀걸이를 한 여성은 드물었던 것이다. 아니 귀걸이 자체도 귀했고 사치로 여겨져서, 내가 1978년에 시간강사로 나갔던 서울의 어느 대학에서는, 교수와 학생회 임원들이 교문에 지키고 서서 여학생의 귀걸이를 압수했을 정도였다.


 물론 아직도 우리나라엔 밥을 굶는 어린아이들도 있고 빈곤에 허덕이는 저소득층도 많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미국 같은 부자나라에서는 국민의 3분의 1에 가까운 숫자가 비만증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가뭄과 내전 끝에 비참하게 굶어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각자 처해진 상황에 바탕한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에 따라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분배정의(分配正義)의 실현과 더불어 정신적 가치나 명분을 위해 쓸데없이 낭비되는 돈(전쟁에 들어가는 돈이나 종교활동에 쓰여지는 돈 따위)을 줄여 국민복지비로 전용해나가되, 일부러 다같이 배고픈 상태로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개인주의와 이타주의가 사이좋게 공존할 때, 진짜로 이타적인 행위가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배가 고팠던 시절에 적용되었던 관습적 윤리가 정신지향의 집단적 금욕주의라면, 절대빈곤을 벗어난 시절에 적용되는 새로운 관습적 윤리는 육체지향의 개인적 쾌락주의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관습적 사고나 관습적 윤리 그 자체가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과거의 관습적 윤리만 옳고 현재의 관습적 윤리는 무조건 그른 것이라고 보는 편견이나 아집인 것이다.


 한국에서 아직도 답습되고 있는 이광수식 계몽주의의 문제점은, 그것이 구체적 행복(즉 쾌락)에 바탕한 보다 나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나 통용됐던 정신지향일변도의 가치관을 현재나 미래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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