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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에세이] 유기정학과 사글세 연탄방

운영자갤로그로 이동합니다.(202.136) 2007.03.30 11:44:13
조회 2271 추천 1 댓글 4

  제1장 스타트 라인에 서서


  2. 도서관을 나오다 - 유기정학과 사글세 연탄방


  이듬해 5월, 전경들의 여학생 추행사건이 있었다. 서울대 구내에서 사복경찰에 의해 벌어진 일이었다. 이 사건은 나를 포함한 모든 서울대생들을 분노케 했다. 곳곳에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앞장선 여학생들이 마구잡이로 경찰에 연행돼 갔다. 나와 친구들에게 전경들의 곤봉세례가 이어졌다. 나는 유인물을 주머니에 넣고 있다가 발견되어 관악경찰서로 연행되었다. 바로 그 날 밤 훈방조치 되긴 했지만 학교 측에서는 가혹한 징계를 내렸다. 유기정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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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의 '유기정학'사건은 내 인생의 국면을 순식간에 바꿔 놓은 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제주도의 아들인 내가, 학력고사 전국수석인 내가 대학에 와서 정학 처분을 받으리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눈 앞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학생운동에 전념하기 위해 과외를 그만 두고 노량진 달동네로 이사 갔을 때 당연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 곳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광주의 진상을 알게 되고 폭압적 정치 현실에 눈 뜬 나에게 이미 캠퍼스의 낭만은 꿈 같은 현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팽팽한 시대적 긴장을 피해갈 수 없었다. 법학도로서 나는 내가 배운 법전 속의 진리에 대해 부끄럽지 않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사명이고 부름이었다. 실로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불의에 분노해서도 안 되고, 침묵해서도 안 되는 상황. 나는 단연코 분노 쪽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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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비와 생활비를 위해 사용하라고 아버지가 돈을 보내 오셨다. 자갈밭을 팔아 주신 눈물겨운 돈이었다. 나는 은행에서 그 돈을 찾아 노량진 달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본격적인 운동권 학생의 길로 접어들었다. 내 스스로 이념서클을 찾았고 그 곳에서 선배를 만났다. 처음 본 그의 얼굴은 무척 선량해 보이는 학구파의 인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비단 나뿐이 아니었다. 선배 쪽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는 내가 수석에 소문난 모범생인 줄만 알고 처음엔 상당히조심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우리는 금세 마음이 통했고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다. 선배는 나에게 서클에서 같이 활동할 생각이 없냐고 넌지시 물어 왔다. 나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기왕 하는 것 좀더 확실히 하고 싶습니다"


  침묵 속의 평화가 아닌 분노의 전장을 택한 순간, 나의 청춘은 시작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대학시절 옮겨 다니며 살았던 집만 삼십 군데가 넘는 것 같다. 모두 서울 시내 산동네의 사글세 연탄방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오래된 벽지와 묵은 장판 냄새가 훅 덮쳐오고, 달랑 비키니 옷장 하나와 다리를 접을 수 있는 밥상 하나 그리고 쌀과 반찬그릇을 담아 둔 사과 상자가 살림의 전부인 그런 방이었다. 하지만 구색이 갖춰지지 않았을 뿐이지 결코 생활하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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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나는 가구라는 개념을 몰랐다. 빈민의 벗이었던 故제정구는 '가구가 들어오면 사람이 있을 자리가 좁아진다'고 집에 가구를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가구라는 것의 용도조차 잘 알지 못했다. 어린시절 제주도에서의 생활 덕분이었다. 방 벽에 공간을 내어 만든 벽장과 다락, 혹은 사과상자 정도만 있으면 가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방을 전전하며 나는 계속 이사를 다녔다. 반포, 봉천, 흑석, 상도, 노량진, 대림, 신길, 독산, 원효로, 철거 전의 도곡동, 구로공단 닭장집까지 산동네와 판잣집, 공동화장실이 있는 곳이면 가보지 않은 곳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서울 도심을 에워 싼 변두리 산동네의 능선 위에 있는 주택가란 주택가는 모두 나의 거주지이자 청춘의 고향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의 시간들을 잊을 수 없다. 돈이 없어서 광화문에서 노량진까지 걸어다닌 적도 많았던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열정과 희망으로 가득 찬 생명의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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