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리스도교를 단죄했지만,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교와 같은 하나의 종교, 신도의 수가 훨씬 많은 불교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스도교와 불교는 모두 허무주의적인 종교다. 즉, 어느 것이든 데카당스의 종교다.그러나 이 두 종교는 아주 현저한 차이점을 지닌다. 

오늘날 이 두 종교를 비교하는 데에 그리스도교를 비판하는 사람은 인도의 한 학자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불교는 그리스도교보다 몇백배나 현실주의적이다. 불교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문제를 제출하는 유산을 체내에 지니고 있으며,

이는 몇백년이나 계속된 철학적 운동의 결과로 나타났다. 불교가 나타났을 당시에는 이미 신이란 개념이 제거된 상태였던 것이다. 

불교는 역사가 우리에게 제시해준 유일하고도 본래적인 실증주의 종교다. 하나의 엄밀한 현상주의인 인식론에 있어서도 역시 동일하다. 

불교에서는 '죄악에 대한 투쟁'이란 말을 쓰지 않는 동시에, 현실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인정하면서 '고통에 대한 투쟁'을 주장한다. 

그리스도교와 현저히 구별되는 불교의 이러한 도덕 개념은 자기 기만을 이미 넘어섰다. 

불교를 나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선악의 피안에 서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과 동시에 '무엇'이 끝났는지를 알 것이다. 

즉, 하나의 불교적인 평화 운동, 약속만이 아닌 실천, 지상의 행복 등에 관한 

하나의 새롭고도 철저한 근원적인 바탕이 끝장나 버렸다. 

데카당스적인 두 종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살펴보면,불교는 약속 없이 실천하고, 

그리스도교는 무엇이든 약속은 하지만 아무것도 실천하지 않는다.

철학이란 결국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사고하는 주지화적 방어기제임을 인정하고, 신기루가 아닌 현실을 직시했다는 것. 여기에 불교의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