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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캡콤의 P.N.03 게임에 영향을 받았다
https://youtu.be/AJIXk_sHR5M?si=fD4tmjXa1tPQKsDm P.N.03 Trailer (Hi Res)This is one of the 3 official trailers launched by capcom.youtu.be바하의 아버지 미카미 신지의 게임큐브 독점게임 ㄷㄷㄷㄷㄷ- 레딧) 김형태에 대한 여론21년도 인터뷰 - 니케의 탄생에 대해 김형태 : "저걸 보자마자, 저 각도에서는 엉덩이가 보이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레딧반응 환호하는 캉 짤 무릎꿇어버리고 위대한 사람 저게 아름다운 철학이 아니면 뭐냐 형태 못잃어 고트
작성자 : ㅇㅇ고정닉
후쿠오카~오사카 자전거 여행기 6.비와호, 교토-오사카
[시리즈] 후쿠오카부터 오사카까지 맥주마시러 · 이번 일본 여행기 모아보기용 게시물 및 Q&A ~이전 이야기~족목충맥모 갤럼과의 시끄러운(코 존나 골았다는소리...죄송..) 하룻밤이 지나가고원래는 같이 탈 계획이였으나 일이 생겼다고 하셔서.. 아침에 근처 괜찮은 업힐코스가 있다고 해서 앞까지만 안내해주시기로 하였다이미 몸도 다리도 다 털렸지만 풍경 좋다니까 가야지가는길에 갤럼이 뒤로가서 먼가 왔다갔다하더니사진포인트를 찾았다고 돌아갔다와보라고 해서 몇번 왔다갔다하면서 사진을 찍었다한국에서도 못받아본 영전을 여기서 받아보네그렇게 갤럼은 급한 일을 보러 가고 난 혼자 올라가기 시작풍경이 죽여준다시마나미해도와 비교해도 그렇게 꿀리지 않는 느낌표지판 사진을 찍은줄 알았는데 안찍어서 구글지도 캡처로 대체이름부터가 엔젤라인이다 한국의 북악스카이웨이와 비슷한느낌이 아닐까?아님말고 출발전에 헤어져서 어디가 정상이에요??? / 아 주차장 보이면 멈추시면 돼요~ 하길래 ㅇㅋ하고 출발타다가 표지판이 있어서 사진찍으려고 멈췄다먼가 감성샷을 찍고싶었으나자전거를 풍경안에 박아야한다는 열망으로 인해 망해버린 모습그래도 내가 본 풍경만 쥑이면됐지머 어쩌피 난 똥손이라 제대로 몬찍어ㅎ주차장 비스무리한게 있고 대충 봤을때 앞에 살짝 내리막이여서 여기가 정상인줄 알고 찍고 돌아갔는데.... 여기가 정상이 아니였다고한다아니 악!!! 악!!!마트를 들르지 않아 먹을게 없어 아침 조식세트젠장 두번이나 규동체인을 가버리다니...이거 옆에 맥도날드가 있긴했는데맥모닝시간이라 어쩔수없이 그냥 스키야옴시가현(첨들어봄)타카시마시(첨들어봄)이마즈(첨들어봄)또 튀어나온 그지같은 터널.. 인도 크기 이정도면 합격..터널에 신호등이 박혀있는게 신기했다한 2분정도 보고있었는데 딱히 신호가 바뀌진 않는거같아서 그냥 들어감다음에 나온 편의점에 마실거 보급하러 들어갔다가 일본까지 왔는데 당고를 안먹어봤다는 생각에 샀는데사고나서 먹어보니까 닭 분쇄육 꼬치였다..중간중간에 연골도 씹히더라ㅋㅋㅋㅋㅋㅋ 술안주..그렇게 역풍억까를 이겨내고 달리고 달려 비와호에 도착이게 바다가 아니라 호수다...여기도 일주하는 자전거 코스가 있어서 자전거도로로 갔는데가다보니까 차도에도 자전거파란선으로 구분지어놓은게 저속코스차도에 있는게 고속코스란다ㅋㅋㅋㅋ비와호 입장하자마자 토리가 보이길래 바로 자전거 집어넣고 한컷자전거 중앙정렬했어야되는데 불편.....벚꽃이 아직 만개해있었다이 다음날부터 벚꽃이 슬슬 지고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자전거 가라고 저렇게 나눠주긴 했는데 차도 옆에 공간을 추가로 주도록 선을 그린게 아니라 아니라 그냥 기존 차도에 선만 그린거라 경차만 지나가도 저 차 라인 꽉 차더라 ㅋㅋㅋ;; 자라니가미안해중간중간 이렇게 자전거 스테이션이 있길래 몇개는 지나쳤는데가다가 슬슬 카페가 있을것만 같은 풍경에 멈춰섰으나그냥 회사원들 단합대회하고있는 호텔?같은게 있었다..앞에 멍때리고있으니까 가게 직원이 튀어나오길래아 저 일본어못해요 가까이오지마요하고 바로 돌아나옴일본 애니같은데 보면 가끔 보는 해수욕장 바다의집 그런느낌이라 하나찍음그러고보니 일본에서 해수욕장을 한번도 안가봤네(어쩌피 여름에가면 더워뒤짐)호수임에도 불구하고 파도가 친다해수욕장에서 멍때리다가 다시 출발바다 위에 토리가 있어서 멈춰서 사진좀 찍을라고했는데차 계속 왔다갔다하는데 중앙선에 서있는게 아닌이상 뭐 제대로 찍히지가 않더라이게 그나마 이쁘게찍힌듯.. 내 자전거는 없지만 자전거를 넣고자 하는 욕망이 불러낸 망한사진2아까 말한 저속코스와 고속코스고속코스는 그냥 공도에 줄그어놓고 던지는거고저속코스는 인도에 줄그어놓고 던지는것... 루트가 똑같다..슬슬 배가 고파져서 카레우동에 치쿠와(어제 히나비타봐서 생각나서 시킴ㅎ)튀김한국이랑 별 차이 없더라 이건ㅋㅋㅋㅋㅋ중간에 자전거샵 발견해서 찍음들를 이유는 없다 난 오늘 오사카에 떨어질거야사진은 안찍었지만 나오기 전 비와호 나오기 전에 휴게소에 들렀음거기서 발견한 메가당고사진으로 찍어서 감이 안잡힐수 있는데알 하나 지름이 신용카드 세로크기정도는 되더라...ㅋㅋㅋㅋ먹으면 탄수화물 보충 개오질거같긴하지만저 당고먹으면 저녁까지 배부를거같아서 떡이나 하나 샀다완전 쫀득한 떡은 아니고 죽과 떡사이의 무언가.... 팥이 맛있었다다 먹고 난뒤에 슬슬 교토 떨어져서 어딜 찍고갈까.. 하다그래도 교토하면 후시미이나리신사지하고 신사로감교토시까지 20키로밖에 안남았다오늘 교토를 가로질러 오사카까지 도착해야한다한 10분 가니까 네비가 나를 죽이려고 작정을 했다아니 진짜 나한테 왜그러냐고원하는게 뭔데 말을 하세요이 시벌 임도는 아니잔아엥간하면 들어갔을텐데 저기 앞으로 클라임 시뻘건거 가득있어서 지도보면서 돌아돌아감그렇게 도착한 후시미이나리신사...전에 오사카 두번 왔었는데 두번 다 해지고 도착해서 야밤중에 산행일정으로 와서해뜬 이나리신사는 처음이였다사람 많아서 뭐 제대로 사진도 못찍고그냥 옆에서 사진이나 한장..난 저기 여우 동상이 있는것도 지금 처음봤다마트가서 음료수 하나 빨고 바로 출발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한 시점에 오사카부 도착.슬슬 숙소를 찾아야해서 그냥 오사카 중심 찍고 제일 싼 숙소를 잡고갔다한 40km 가드라사진찍을새도 없이 오사카시 도착여기는 그래도 시내까지 가까워서 다행... 교토부는 무슨 100키로가 넘었는데시내까지 오니까 진짜 신호 지옥이여서 가는데 예상시간보다 2배는 걸렸다진짜 운이 안좋은건지 3번연속 신호걸려서 혼자 짜증냄구스토?가스토? 스카이락 보여서 반가워서 한컷스카이락 알지? 난 아는데 주변에선 다 모름 ㅡㅡ; 아는사람 있으면 안다고 댓글좀 달아줘지나가면서 갑자기 한글이 보이길래 오 한류~~~~하면서 찍었다호식이였나 뭐 한국 프차도 있어서 뭐여이건 싶었음알고보니 한인타운이였다이쯤 찍었으면 나 일잘알이요 하는사람들은 목적지 대충 눈치깠을텐데이대로 쭉가서 숙소 가니까 니시나리더라?ㅋㅋㅋ오사카 최고의 슬럼가 ㅇㅇ;;ㅋㅋㅋㅋㅋㅋ시발 왠지 중심에있는데 1박 2700엔에 개인실이더라 하2박이나 예약해서 아이 뭐 시벌 칼빵 맞지~ 하는 마음으로 들어감아침에 찍은거라 뭐 없어보이는데저 양쪽으로 가라오케(여자점원에게 백엔내고 노래부름, 그 점원은 손님없으면 나와서 호객행위함)가 가득한곳이였다여기 치안 진짜 안좋다는걸 좀 느낀게뜬금없이 카에데 나오길래 오 카에데ㅋㅋ하고 찍고있는데뒤에서 존나 큰소리나오길래 오 시발 저건 보면 시비털리겠다ㅋㅋ하고 마트로 피신함마트가서 술안주 몇개 사오니까 경찰와있고 아재둘이 싸우고있는데바닥에 쓰러져있는아저씨 눈두덩이를 보니까 죽빵 한대 맞은거같더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무서웠음뭐 죽빵만 치고 칼빵은 안놓네 ㅇㅇ;;ㅋㅋ 나도 맞으면 맞는거지 머ㅋㅋ하고역 한두개 거리에 있는 0초 레몬사와집에 왔다여기를 왜 왔냐하면자리에 레몬사와 머신이 있고걍레버 땡기면 나온다 ㅇㅇ;가격이 90분에 500엔임ㅋㅋㅋㅋㅋ나도 유투브같은데 보고 간거라 아는사람 좀 있을듯순전히 이거때문에 왔다한국식? 냉면도 반개 시켜 먹었는데 달달허니 맛있었다무려 식초도 줌(같이 준건 안뿌려서 모름)고민좀 하다 시그니처 메뉴인 레몬구이 우설을 시켰다통째로 올려서 사진하나 찍어주고대충 자르라는대로 잘라주고레몬 얹어서 살짝 구워서 먹으면 개맛있었음일본 타래소스가 진짜 맛있던데 한국에서 파는것들은 다 그맛이 안난대서 슬퍼졌다그대의 눈동자에 건배기억상으로 10잔까지는 마신게 기억나는데일어나니 숙소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까까지 슬럼가존나무섭네ㄷㄷ;; 하면서 다니던놈이 뭔....담날 정신차린후에 돈이고 지갑이고 여권이고 다 잘 있길래 안심함 츄리닝에 낡은 반팔입고 돌아다니니까 동료인줄알고 안건든건가봄...이날의 로그무릎이 슬슬 못버틸정도로 아파오는데다가+미친 역풍이라 평속이 개 난리가 난 모습이다
작성자 : 비엠씨스프린트고정닉
'당신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우리가 왔습니다'
미국이 1차대전 참전을 결정한 1917년 6월 26일, 미군 해외 원정군(AEF)의 선봉대인 제16 보병대대(16th Infantry)가 프랑스 서부 항구도시 생 나제르(Saint Nazaire)에 상륙했다. 고작 한줌 밖에 되지 않는 병력이었지만 미군의 존재는 큰 뉴스거리였다. '땅덩어리만 컸지 역사가 없는 나라', '유럽의 문화를 따라하기 바쁜 졸부들, 교양없고 무식한 신대륙 양아치들', 당대 미국에 대한 유럽인들의 인식은 대략 위와 같았다.AEF의 총사령관인 퍼싱 장군(John j. Pershing)은 파리에서 시가행진을 계획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원정군을 이끌게 된 그는 유럽사람들에게 미국이 더 이상 '근본없는 국가'가 아닌 '구원자'로 보이길 원했다. 그러기 위해선 최대한 임팩트 있는 연출이 필요했다. 선봉대였던 제16 보병대대는 파리 시가행진에 차출됐다. 이 부대 인원의 2/3은 전부 징집된지 몇달이 되지 않은 햇병아리 병사들이었다. 퍼싱 장군은 병사들에게 '문명의 수도'를 방문하는 이들 다운 절도를 보여달라고 주문했다.퍼레이드는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에 치뤄졌다. 프랑스 정부는 이 날을 공휴일로 선포했다. 거리에는 빨간색, 흰색, 파란색의 깃발들이 내걸렸고 가게들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시민들은 모두들 좋은 옷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 전쟁으로 심신이 피폐해져있던 프랑스인들은 대서양을 건너 온 이방인들을 보기 위해 모두 밖으로 나왔다.퍼레이드 첫 대열은 영국군과 프랑스군들이 앞장 섰다. 그리고 수많은 흑인 노동자로 이뤄진 부대가 지나갔다. YMCA에서 파견한 구급차와 트럭들이 지나가고, 마침내 제16 보병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병사들이 빽빽하게 붐비는 거리를 통과하자 프랑스인들은 너도나도 대열에 다가가서 미국인들에게 꽃을 걸어주었다. 파리에서 요양중이던 프랑스군 병사들도 다가와 붕대 감은 얼굴과 깁스한 팔로 악수를 건넸다. 아이들은 미군들의 벨트와 버클, 총구에 꽃을 꽃아주었는데 나중에 퍼싱 장군은 '꽃밭이 행군하는 줄 알았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프랑스인들은 이 수백명 밖에 되지 않는 이방인들을 구원자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퍼레이드 행렬은 위대한 나폴레옹이 잠들어 있는 앵발리드(Invalides)에서 잠시 먼췄다가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를 향해 우회전 했다. 보통 다른나라 군대였다면 앵발리드를 방문하여 나폴레옹을 참배했겠지만, 미군들이 경의를 표하려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과거 바스티유 감옥이 있었던 나시옹 광장(Place de la Nation)을 지난 미군 행렬은 마침내 픽푸스 공동묘지(Picpus Cemetery) 멈춰섰다. 이 곳에는 프랑스 혁명기에 희생 당한 사람들이 주로 묻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눈에 띄는 묘지가 하나 있었다. 바로 혈혈단신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뛰어들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질베르 뒤 모티에, 즉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fayette)의 무덤이었다. 미국인들은 조국을 위해 싸워준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작은 공동묘지를 퍼레이드의 마지막 목적지로 정했던 것이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라파예트는 고향인 프랑스에서는 혁명기의 실책으로 인하여 권력싸움에서 밀려났고 남은 일생을 조용히 보내다 이 초라한 공동묘지 한켠에 묻혔다. 그래도 그의 묘역은 묘지 내부에서도 꽤 큰편에 속했다. 게다가 미국 혁명의 아들들(behalf of the Sons of the American Revolution) 프랑스 지부 사람들이 매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줬기 때문에 보존상태는 괜찮았다. 픽푸스 공동묘지는 부지가 턱없이 좁았다. 라파예트가 묻힌 묘역도 사람이 많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서 미군 행렬은 공동묘지 입구에 있는 수-녀원 정원에서 대기했고 퍼싱과 미군 참모진, 프랑스 정부 관계자들만 입장이 허가됐다. 퍼싱 장군은 라파예트의 묘에 커다란 화환을 바친 뒤 경례를 올렸다. 참배가 끝난 뒤 묘지 뒤편에 마련된 작은 연단에서 기념 연설이 행해질 예정이었다. 이곳 역시 좁긴 마찬가지라서 청중들은 고작 수백명 정도에 불과했다. 주프랑스 미 대사, 프랑스 총리, 전쟁부 장관등이 이 행사에 참가했다. 연단 앞에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은 근처 담벼락이나 비석 위에 올라가기도 했다.특이하게도 퍼싱은 자신이 연설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 역할을 병참장교인 찰스 E. 스탠튼(Charles E. Stanton) 대령에게 맡겼다. 연설문은 전날 휘하 참모들이 작성하고 퍼싱이 최종승인한 원고를 사용했다.스탠튼 대령은 프랑스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그는 영어로 연설을 했는데, 첫 운을 이렇게 뗐다.'나는 여러분에게 그대들의 아름다운 언어로 말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연설문의 내용은 대략 미국이 프랑스를 지키기 위해 싸우러 왔다는 상투적인 내용들이었다. 연설문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프랑스인들의 희생에 경의를 표하며 미국과 프랑스가 똑같은 공화국임을 강조했다. 한마디로 뭐 그냥저냥 평범한 연설문이었다. 이윽고 연설 막바지에 이르러, 스탠튼 대령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이렇게 외쳤다."미국과 연합국이 힘을 합쳤습니다. 1억의 미국인들이 이 전쟁의 대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1천만명의 미국의 아들들이 영원한 명예를 위해 바다를 건너 이곳으로 올 것입니다. 우리의 피는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우리는 당신이 세운 위대한 국가의 후손으로, 당신의 공화국과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당신이 만든 이 깃발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마음과 명예에 다짐합니다.""라파예트여, 우리가 여기 왔습니다!(Lafayette, We Are Here!)"모국어에 대한 언어적 에고가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인들은 자신들 앞에 선 양키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대놓고 지루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프랑스인들은 스탠튼 대령의 마지막 한마디만큼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청중들은 잠시 몇초간 침묵을 유지했다. 그리고 서서히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영어를 할줄 아는 프랑스인들은 못 알아들은 사람들에게 방금 그 말의 뜻을 통역해줬다. 전쟁에 지친 군인들은 마음 속에서 사그라들었던 불꽃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노인들은 숨기지 않고 눈물을 흘렸다.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만세(Vive La France), 미국 만세(Vive L'Amerique)를 연달아 외쳤다. 퍼싱 장군을 취재하기 위해 따라왔던 미국인 기자들은 미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수한 악수의 요청을 받았다. 스탠튼 대령의 10분간의 연설은 장황했지만 마지막 한마디는 생명력이 살아 넘쳤다. 프랑스인들은 바다를 건너 올 1천만명의 미군 병력에 대한 소식보다 브랜디와인에서 부상 당하고 밸리포지에서 추위에 떨며 미국을 위해 싸웠던 한 명의 프랑스인에게 표한 경의에 더 감동했다. 그 날 프랑스인들이 느낀 감정은 136년 전 미국인들이 요크타운에서 드 그라스 제독의 함대를 보고 느꼈던 환호와 다를게 없었다. 스탠튼의 마지막 연설문구는 다음날부터 미국과 프랑스 전역에 퍼져나갔다. 미군은 아직 제대로 된 병력편제도 마치지 못했고 물자도 충분하지 않았으나 끝도 없는 소모전에 지친 프랑스군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는 충분했다. '1세기 전에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왔다'는 한마디는 아주 훌륭한 프로파간다이자 명분으로 쓰였다. 본래 프랑스 언론들은 미군들의 행실에 대해 비꼬거나 미군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기사를 실었지만, 이 날 이후로 기사의 제목은 '명예를 아는 용사들'로 바뀌었다.당시 포병장교로 현장에 있었던 윌리엄 브리건스(William N. Brigance)는 훗날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하였다.'이 짧은 문장 하나로 미국과 프랑스는 한 세기를 넘어선 혈맹으로 재탄생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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