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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 북적하니 좋다. 계림의 연인 팬픽 투척

햄햄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8.05.23 23:05:56
조회 1013 추천 15 댓글 2


한참 전에 써놓은건데 한번 올려봐

카포달님 계림의 연인 뮤비에 치여서 쓴거야ㅎ 역시 비덕은 해피가 좋아


요즘 혐생에 치여서 주기적으로 올릴 수 있을지는 의문; 그래도 일주일에 한편은 올리도록 노력해볼게




<1>


형님 망 좀 봐주쇼.”

이거 또 시작이다. 매일 지겹지도 않냐

아니 그냥 잔말 말고 좀. 빨리빨리빨리빨리

  

황궁 안의 덕화궁 앞. 궁 안에서 나라의 녹을 먹는 자들이라면 어김없이 지나가야 하는 분주한 길목. 숨을 곳이라고는 띄엄띄엄 놓여 있는 무릎 높이의 돌기둥밖에 없는 곳에서 덕만은 기어코 투덜거리는 죽방에게 망을 보게 한 다음 몸을 잔뜩 수그리고 그 뒤에 숨어 조심스레 앞을 내다보았다.

낭도들은 연무장이나 각 화랑도의 산채에서 무술연마를 하고 있어야 하는 시각. 누군가의 심부름이 아닌 이상 이러고 있는 것을 화랑들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경을 칠 것이다. 특히 둘이 입고 있는 파란색의 화랑복은 용화향도의 것으로, 그곳의 수장으로 있는 유신에게 이 소식이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연무장을 마르고 닳도록 돌아야 하는 것이 자명한 일. 그럼에도 그 고된 육체노동을 불사하고 덕만이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 숨어있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갑자기 적당히 보초를 서고 있던 문지기들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며 이동하던 관리들도 무서운 것을 본 마냥 화들짝 놀라며 길옆으로 비켜서 고개를 숙였다. 누가 뒤에서 다가오나 투덜거리며 망을 보던 죽방의 입도 일자로 앙다물어졌다. 드디어 오는 구나, 덕만은 행여나 들킬까 몸을 더 숙이면서도 기대에 가득 찬 눈으로 전방을 응시했다.

검정 일색의 사내가 그의 일을 수행하는 무리들을 데리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의 관리들은 눈에 보일 정도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훤한 대낮인데도 지독한 어둠을 품고 있는 그의 눈이 그곳의 사람들을 훑었고, 자신의 발 앞에 조아린 사람들을 보는 그의 얼굴에 잠시잠깐 조소가 어린 듯 했지만 이내 평소의 공허한 표정으로 되돌아갔다.

   

황제의 직속기관. 고구려, 백제, 신라 더 나아가 당나라에까지 첩보를 두고 있는 거대한 조직. 각종 첩보로 얻은 정보들로 상대등을 포함한 모든 귀족들을 감시하고 구속하며 잘못을 행한 자는 가차 없이 베어내는 검과 같은 부서, 사량부. 그 사량부를 창설하고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조직의 모든 것을 통솔하며 그 정점에 서있는 사내. 동시에 폐주 진지제와 모든 귀족들의 수장인 미실의 아들. 사량부령 비담.

그가 검은 잔상을 남기고 시야에서 사라진지 한참이 되어서야 그 자리의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죽방도 비담이 사라진 곳을 계속 흘깃거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야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냐. 아우~ 심장 떨려 죽겠네. 난 이제 새주랑 사량부령이랑 누가 더 무서운지 알 수가 없다.”

오한이 든 사람마냥 죽방이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덕만에게 한 말이건만 정작 그 말을 들을 덕만은 비담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 달째 뭐 하는 거냐.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참 나…….”

죽방이 중얼거리며 산채로 돌아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라진 비담의 뒷모습이라도 눈에 새기려는 양 가만히 앉아 비담이 사라진 방향을 멍하니 바라보는 덕만의 기억은 비담을 처음 만났을 때로 빨려 들어갔다.

  

.

.

 

에이 씨-”

투덜투덜, 제 분에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며 밤의 궁궐을 걸어 다니고 있는 이는 덕만이었다. 어찌하다 보니 낭도가 되었건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식하고 단순한 화랑이요, 그보다 더 무식한 훈련과 뺑뺑이였다. 거기에 한술 더 떠 궁에 들어가니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존 서라벌 화랑들과 낭도들의 텃세였다.

 

화랑은 무슨 빌어먹을 귀족자식들. 에잇!”

  

누가 듣건 말건 덕만이 빽 소리 질렀다. 수시로 시비를 걸고,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약 올리는 것은 지네들인데 왜 얼차려는 항상 우리들이 받아야 하는 거냐고. 유신이 절대로 벗지 말라고 명했던 모래주머니를 바닥에 내팽개친 덕만은 분이 풀리지 않는지 제 앞에 있는 제법 큰 돌맹이를 그것이 앞뒤 꽉 막힌 제 화랑의 머리통이라도 되는 양 전심전력으로 뻥 차버렸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곧장 날아간 돌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던 자의 가슴팍에 맞고 데굴데굴 바닥에서 힘없이 굴렀다.

궁이다. 수많은 진골 귀족들이 오가는 곳이다. 맞은 자가 문지기나 덕만과 같은 낭도가 아니고서야 제대로 경을 치룰 것이지만 잔뜩 부아가 난 덕만에게 그런 것 따위 안중에 없는 것이다. 쫓아내려면 쫓아내라지. 그대로 흙바닥에 주저앉아 아픈 다리를 쉬고 있으려니 덕만의 공격 아닌 공격을 받은 사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덕만과 돌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하나로 높게 질끈 묶어 허리 위까지 늘어트린 흑단 같은 머리가 밤의 미풍에 살짝 흔들렸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밤보다 더 어두운 눈이 덕만을 바라보았다. 남자다운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여인의 것 못지않은 고운 선을 가진 얼굴이었다. 높아도 한참 높은 귀족일 듯 했지만 그 분위기와는 반대로 6척은 족히 넘을 듯 한 장신의 호리호리한 몸에 두른 것은 검은색과 탁한 보라색의 무명이었고,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칼도 황궁의 것이 아닌 단촐한 것이었다. 하긴, 자존심 높으신 귀족 나으리라면 호통을 내려도 벌써 내렸을 것이 아닌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덕만은 그를 어딘가의 수행원이나, 귀족에게 고용된 무사쯤으로 생각했다. 상대가 고위 귀족도 아닌 듯 보였고, 화를 막 내는 것도 아닌데 되레 본인이 쩔쩔매며 사과하는 것도 이상했고. 바닥에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고 아픈 다리를 주무르며 볼이 퉁퉁 부어 대충 사과의 말을 전하자니 피식- 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생각하던 반응이 아닌데? 덕만이 어리둥절하여 남자를 쳐다보자 그의 눈과 입이 고운 호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

  

뭔가 머릿속에 이런 저런 생각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 미소를 보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멍 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자였다면 필히 혼쭐이 났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조심하거라.”

말을 남긴 그는 바람과 같이 덕만을 지나쳐 사라졌다. 그의 미소와 목소리, 분위기에 취해 잠시 멍하게 있던 덕만은 허둥허둥 그의 뒤를 쫓아갔지만 밤 같았던 사내는 땅으로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미친 듯이 뛰었다. 얼굴에 오르는 열을 보아하니 아마 홍시처럼 빨개졌을 것이다. 말도 안 돼, 덕만아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고개를 도리질 하고 뺨도 몇 번 때려보았다. 미친 짓이다. 남장을 하고, 낭도복을 입고 사내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내한테 홀랑 넘어가다니. 심지어 귀족일지도 모르는 사내에게. 하지만 여전히 널을 뛰는 그녀의 가슴이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반한거구나…….”

  

 

그 사건이 있고 일주일이 조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신은 멍 때리는 덕만을 더욱 갈궜고, 평소라면 악에 받쳐 바득바득 대들어야 할 놈이 아무 말 않고 멍 때리는 상태 그대로 연무장을 돌고. 저놈이 어디 아프거나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싶을 때에 잠시 뜸했던 서라벌 화랑들의 텃세가 또다시 시작되었다.

유신이라고 해서 다 뒤집어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낭도들이 원하는 것처럼 난리 깽판을 쳐 놓으면 용화향도를 궁 안에 들인 왕과 공주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이요, 가뜩이나 좁은 가아계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밖에 낳지 않겠는가. 유신이 특유의 우직한 성격으로 제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길길이 날뛰는 낭도들을 진정시키고 있을 때였다.

  

무슨 소란이냐.”

그날 밤과 같은 목소리. 덕만이 홱 고개를 돌리자 검은색 비단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옷을 입은 이가 열댓명의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그의 등장에 용화향도를 괴롭히던 석품, 보종, 덕충 등의 화랑들과 낭도들이 갑자기 순한 양처럼 돌변해 그에게 부복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덕만도 유신에 의해 강제로 고개를 숙였다.

 

사량부령, 예까지는 어인 일이십니까.”

   

보종이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다. 그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은 두려움일까. 하나로 깔끔하게 틀어 올린 머리. 채도가 낮은 색으로 만들어졌을 뿐이지 화려하고 한 눈에 봐도 고급진 비단으로 만들어진 옷. 그의 뒤를 따른 수많은 수행원들. 설마 싶었는데 정말로 높은 귀족일 줄이야. 게다가 어머니인 미실 새주를 믿고 의기양양한 보종을 저 정도로 짜부라뜨릴 정도면 말도 못하게 높은 사람일 것이다. 덕만이 고개를 힐끗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밤에 보여줬던 미소가 환상인 듯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있었다. 공허를 모르는 사람에게 그의 얼굴을 보여준다면 대번에 이해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무표정. 차라리 경멸의 시선이 낫다고 생각하기는 덕만도, 그를 처음 본 용화향도 사람들도 처음이었다.

 

아직도 텃세질이냐. 그만 할 때도 되었다.”

  

툭 던지듯 짧은 말만 내놓고 사라진 그였지만 그 존재감은 한참을 화랑과 낭도들 사이를 휘감았다.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 한 후에 그곳의 모든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고 목덜미에 흐른 식은땀을 닦았다. 좀 전의 난장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고, 화랑들과 낭도들은 제 산채로 돌아가기 바빴다.

  

사량부령…….”

 

덕만만이 홀린 듯 중얼거리며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볼 뿐이었다.

 

.

.

   

그 이후 덕만은 살인적이고 무식한 유신의 훈련 일정 중에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행여나 볼 수 있을까 궁 안을 돌아다녔다. 정보통 죽방을 닦달하여 사랑부령에 대한 이야기도 모았다. 그로 인해 죽방에게 나간 술값과 밥값이 꽤 되건만 죽방이 가져온 이야기들은 터무니없이 과장된 소문들이 대다수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덕만은 자신이 왜 이리 행동하고 있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소문들을 듣고, 그가 궁 안에서 자주 다니는 곳을 안다 한들 어찌할 것이냐. 그는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사량부령이고, 자신은 일개 낭도에 남장까지 하고 다니지 않는가.

하지만 처음 겪는 설레임이라는 감정은 덕만에게서 이성적인 판단을 앗아갔다. 그냥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났다. 멀리서만 바라봐도 좋았다. 갖은 산전수전을 같이 겪어 친해질 대로 친해진 유신랑이나 용화향도의 낭도에게서도 그런 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간질이는 듯 비식비식 웃음이 비집고 나오려는 것을 꾹꾹 참으며 훈련을 하고 있노라면 옆에서 지켜보던 죽방, 고도, 대풍, 곡사흔이 동시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게 드디어 미쳤구나.

20여년 만에 처음 겪는 연모라는 감정은 1년 동안 비담을 쫓아만 다니는 와중에도 식을 줄을 몰랐고, 연모라는 선홍빛 감정에 휩싸인 덕만의 행보는 점점 대담해져, 낭도들의 수련 시간에 슬쩍 산채를 빠져나가 비담이 자주 지나다니는 길목에서 그를 기다리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 서라벌 화랑들이 텃세를 부리는 일은 없었지. 단순히 말 한마디였을 뿐인데. 과거에 상념에 빠져 있던 덕만이 문득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괴리가 더 크게 느껴져 한숨을 쉬고 있으려니 누군가 뒤에서 가차 없이 귀를 쭉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아씨 누구! , 유신랑.”

덕만이 네 이 녀석 수련시간에 산채에 있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냐!”

  

이 인간은 망을 보려면 끝까지 볼 것이지 어딜 간 거야. 투덜거리는 덕만이였지만 유신에게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은 또 연무장 몇 바퀴를 돌아야 하나, 귀를 잡힌 채 산채로 질질 끌려가는 덕만의 등이 축 쳐진 것도 잠시, 덕만은 그래도 사량부령을 볼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되었노라고 위안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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