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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천&윤강] 비익련리_002

소이(110.14) 2018.08.09 17:29:36
조회 546 추천 11 댓글 4

네가 내 딸이라서 침전 호위로 삼았다 생각하느냐? 아니! 너의 무예가 이 미실을 지킬만 하기에 너를 곁에 둔 것이다. 너보다 실력이 뛰어난 이를 부릴 수 있다면 아비도 없는 너를 곁에 둘 이유가 없느니라. 말해보거라. 비담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느냐?”


오로지 쓸모만을 중시하는, 그래서 사람을 한없이 상처받게 하는, 참으로 미실다운 언사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붙어있는 모녀의 관계는 그 누구보다 가까워 보이나 윤강은 모르지 않았다. 미실과 자신의 관계는 혈육의 정에 기초한 가족 관계라기보다 오로지 신뢰와 능력에 바탕한 주종 관계에 가깝다는 것을.


비담을 이길 것이라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허나, 만일 그가 어머니의 목을 노리고 온다면, 해서 제가 지게 된다면, 죽어가면서도 그 자의 몸에 칼을 꽂아 넣고 죽을 것입니다. 이기진 못하더라도 결코 그 자가 어머니를 쉽게 해하게 하진 않을 것입니다.”


그래... 제법 비장하구나.”


미실이 비꼬듯 말했다. 하지만 윤강은 익숙한 듯 기분 나쁜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하여 제가 죽고 비담 그 자도 죽고 나면, 그 후에 새로운 실력자를 찾아 호위를 두셔도 늦지 않습니다. 어차피 저는 어머니의 다른 자식들처럼 혼인을 한 몸도 아니고, 더욱이 아비도 없으니 저의 죽음을 슬퍼할 이는 딱히 없을 것입니다.”


윤강의 말은 진심이었다. 미실의 수많은 자식들 중 아비의 얼굴을 모르는 유일한 사생아. 미실이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어줄 위인은 절대 아니었으니 윤강이 죽더라도 슬퍼할 이는 없다. 심지어 윤강 그녀 자신조차도.


미실을 지키는 검이 된 이후부터, 윤강은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했다. 미실의 목을 노리는 이들은 수도 없이 많았다. 황궁 안이든 밖이든, 미실이 가진 것을 노리는 미실의 정적은 단순히 황실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루가 멀다 하고 들이닥치는 살수들을 목숨 걸고 상대하다보면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도 예삿일이 되어버린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불명확해졌다. 당장 오늘 밤에 살수를 상대하다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묻힐지 알 길이 없다. 다음 기회, 언제 한번, 조만간. 윤강은 이런 단어들이 낯설었다. 미래를 계획할 수 없는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윤강 너는, 죽음이 두렵진 않으냐?”


글쎄요, 저에게 죽음은 일상의 한 부분이고 너무도 익숙한 것입니다. 별다른 감흥이 없습니다.”


익숙해진다라... 익숙해지면 무감각해지는 것이냐?”


저는 그렇습니다.”


다 그럴까. 죽음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버린 죄책감과 미련도. 미실은 차마 뒷말을 꺼내지 못하고 삼켜야했다. 제 키를 훌쩍 뛰어넘을 만큼 자란 아들이, 냉정하게 버린 그 아들이, 자신의 곁을 기웃거리는 것을 봐도 미실은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깊은 심해 같이 까만 눈동자가, 장난스레 지어보이는 미소가. 그녀를 너무 닮았다.


그런 감정의 파도 하나 제어하지 못하다니. 이 미실이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건가. 미실이 돌연 고개를 돌려 윤강의 얼굴을 응시했다. 아니, 아니다. 이건 나이의 탓이 아니겠구나.


다들 그러더구나. 뭐든지 처음이 힘들지 두 번째부터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고.”


“...?”


"나는, 아니였다. 두 번째도 익숙해지지 못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으니.”


뜬구름 잡는 미실의 말에 윤강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구체적인 하명을 기다렸다. 미실이 마치 꿈에서 깨어난 표정을 하며 윤강에게 일렀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다들 많이 기다리겠구나.”


, 어머니.”


***


달빛이 유난히 시린 밤이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눅눅한 습기도 느껴졌다. 달빛과 안개가 섞이자 마치 달빛에 몸이 젖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윤강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실로 오래간만의 휴식이다.


때때로 설원이 미실궁에서 밤을 보내는 날은 윤강에게 드물게 찾아오는 자유시간이다. 열에 들뜬 얼굴로 이제부터 새주는 자신이 모시겠다며 윤강을 내보낸 설원이 떠올랐다. 하기사 병부령이 밤새 침상에서 새주와 꼭 붙어있을텐데 그보다 더한 호위가 어디 있겠는가.


부족한 잠을 채우려고 누웠으나 모처럼 찾아온 휴식이 무색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윤강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훌쩍 창문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경사진 기와지붕 위에 나름 편한 자세로 드러눕고선 깊은 잠에 빠져든 서라벌을 내려 보았다.


조용하다.’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윤강은 곤두선 신경을 이완시키고자 했다. 어느 샌가부터 윤강은 술이나 약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상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는 호위무사의 특성상, 극심한 불면증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아도 잠 못 이루는 밤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술은 이제 웬만큼 마셔도 마신 것 같지도 않고, 약은 이 시간에 얻으러 가기도 성가신데...’


그래 오늘은 술이랑 약 없이 잠들어보자. 여기서 조금만, 조금만 누워있으면 긴장이 풀리겠지.하지만 윤강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갑자기 어둠 속에서 파문이 이는 것이 윤강의 눈에 포착되었다. 윤강은 곧바로 일어나 검 자루에 손을 대었다. 다소 먼 거리라서 확실하게 보이진 않지만 분명 지붕을 건너 다급하게 이동하는 검은 형체가 있었다.


뭐지.. 정탐꾼? 아니야, 그것치곤 지나치게 동선의 노출이 심한데..’


윤강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인형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그보다 뒤쪽에서 불길이 어른거리는 것을 보아하니 추격조가 이미 따라붙은 모양이다.


그냥 두면 군관들이 알아서 처리하려나..’


아무리 설원이 같이 있다한들, 미실궁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 좋다. 굳이 나서서 일을 벌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윤강이 관심을 거두고 다시 누우려던 찰나, 갑자기 검은 형체가 동선을 꺾었다. 급격하게 틀은 동선의 방향은...


미실궁이다!’


윤강은 지체 없이 지붕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현 위치에서 미실의 처소까지는 단 건물 두 채 거리. 침입자의 위치에서는 대략 일곱 채 거리. 침입자의 동선을 차단하고 공격을 준비하기엔 충분하지만, 다른 무사들에게 신호를 보내기는 부족한 시간차였다.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이쪽에서 명시적으로 길을 차단해버리면 저자가 동선을 바꿀 수도 있을터.’


판단을 끝낸 윤강은 일부러 동작을 키우고 소리를 내어 자신의 움직임을 노출시켰다. 침입자가 윤강의 존재를 눈치 챈 순간, 윤강은 침입자의 정면 위치를 점하고 망설임 없이 칼을 뽑았다. 윤강에게 길이 막힌 침입자가 순간 멈칫했다.


이쪽이 어디로 통하는 길인지 모르지는 않겠지? 무슨 목적으로 궁에 잠입한 자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이라도 다른 길로 돌아서 나간다면 쫓지 않겠다. 허나, 이 방향으로 한 발자국만 더 온다면 그 즉시 네 놈 목이 뚫릴 것이다


서슬 퍼런 윤강의 경고에는 아무 감정도 실려 있지 않아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단지 간단하게 경우의 수를 나누어 자신이 취할 행동을 알리는 설명이었으나 그 어떤 저주보다 섬뜩하게 들렸다. 저 멀리서 추격조가 침입자의 위치를 파악했는지, 어지럽게 흔들거리는 불빛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침입자는 일순간 망설이는 듯 했으나 곧바로 앞으로 달려 나왔다. 윤강도 즉시 공격 태세를 취했다. 그러나 이 자는 싸울 생각이 없는지 검조차 뽑지 않고 빠르게 다가올 뿐이었다. 윤강의 칼이 순식간에 복면을 찢어냄과 동시에 침입자의 목을 겨누었다. 침입자가 순순히 두 손을 들고 윤강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입을 연 침입자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 낭주. 윤강낭주 아니십니까.”


웬 놈이냐. 이쪽으로 일 보만 더 오면 분명 목을 베어버린다 했을 것인데?”


낭주님, 잠시만 소인의 얘기를 들어주십시오.”


추격조의 불빛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침입자의 말에 의아해진 윤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무엇이냐.”


소인, 하종 공의 명을 수행하던 중이었사옵니다.”


“...뭐라?”


소인의 손가락에 끼워진 이 반지가 증표이옵니다. 하종 공께서 직접 착용하시던 것을 빼서 제게 하사하셨사옵니다. 도움이 필요해지면 미실 가 사람에게 이 증표를 보이라 하셨사옵니다.”


침입자가 한 손을 가까이 들어 윤강에게 반지를 보였다. 미실 가 일원의 증표와 비슷해보였으나 조금은 다르게 변형된 문양. 윤강은 그 문양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윤강이 잠시 복잡한 표정을 지어보이다가 검을 거두었다.


“....어리석긴..”


예에...?”


그래, 하종 공에게 무슨 명을 받았느냐.”


저어.. 그것이...”


말하거라. 추격조가 거의 다 와간다.”


일전에 벌어진 연쇄살인사건들... 모두 하종 공께서 이 놈을 시켜 한 일이었사옵니다. 소인이 그들을 전부 처리했습니다.”


“....!!”


-------------------------------------------


안녕 갤러들! 

윤강은 화랑세기엔 문노의 딸로 기록되어있지만 여기선 미실의 사생아로 설정되어 있어.

미실의 딸인 윤강이 '왜' 공식적으론 문노의 딸로 남게 되는지도 이 장편에서 풀어갈

중요한 이야기의 축이니까 떡밥 회수될 때까지 기다려줘!ㅋㅋㅋ


횽들이 써주는 댓글도 하나하나 정말 소중하게 읽고 있어ㅠㅠㅠ

부족한 글 재밌게 봐줘서 항상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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