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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a closed door 3

^^(115.140) 2014.02.08 23:36:16
조회 9917 추천 167 댓글 21

 

  -여왕님! 엘사!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요? 궁전에서 특별히 신경써서 길러진 말은 바람과도 같은 속도로 달렸다. 순식간에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에 잔뜩 신이 난 울라프가 자신의 팔을 휘저으며 발랄한 목소리로 엘사에게 물었다. -조심해, 울라프. 말에서 떨어지면 안되잖니. 때마침 말이 앞에 있던 나무 뿌리를 훌쩍 뛰어넘자 울라프는 하마터면 밑으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짧은 비명과 함께 순식간에 군기가 바짝 들어선 그는 자신의 짧은 팔로 최대한 엘사에게 달라붙었다.

 

  넓은 초원을 지나고 얕은 강을 건너, 무성한 녹음이 우거진 숲에 들어섰다.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나무들 틈에서 전해지는 축축한 습기와 고요한 정적,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느껴지는 작은 생명들의 숨소리. 그 모든 것들을 스쳐 지나갈 때 한동안 잠자코 있던 울라프가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을 주는 이 곳은 울라프로 하여금 자신이 전에 이곳에 한 번 온 적이 있음을 일깨워 주었다. -엘사? 울라프가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어느새 여기저기 이끼가 껴있는 음습한 황야에 도착한 엘사는 묵묵히 말의 안장에서 내려와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울라프도 황급히 자리에서 내려와 부지런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그는 이제 이 곳이 어디인지 분명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무거운 침묵 속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요동쳤다.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 하나 둘씩 모습을 드러낸 바위들은 순식간에 그 수를 불려 엘사와 울라프를 둘러싸기에 이르렀다. -와우, 다들 하나도 안 변했구만! 울라프가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를 시발점으로 바위들에겐 점차 눈이 생기고 코가 생겼다. 팔과 다리까지 끄집어내 그들은 마침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숲의 수호자 트롤. 빼곡히 들어찬 그들의 시선은 여왕과 눈사람에게로 쏠려있었다.

 


  "오랜만이군요, 엘사. 아니, 이제는 여왕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문득 무리를 가르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트롤 한 마리가 앞으로 나왔다. -정말 그렇네요, 파비. 엘사도 살풋 미소지으며 그에게 답했다. 울라프는 그녀의 뒤에서 자신의 팔을 붕붕 흔들며 격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런 울라프에게 만면 가득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인 그는 이내 다시 시선을 엘사에게로 돌렸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엘사의 입가에 걸려있던 미소가 서서히 녹아갔다. -안나 공주님께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셨다구요. 엘사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는 입술을 움직였다.
 

 

  "난 그 아이를 다시 살리고 싶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위협적일 정도로 단호했다.

 


  "당신이 말했듯이 안나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죽었어요.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독을 먹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엘사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늙은 트롤은 참을성있게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있었다.

 


  "안나는 무척 건강한 아이였어요. 그런 죽음을 맞이할 이유따윈 전혀 없었다구요. 난 이것에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렌델의 여왕이시여…, 죽음은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깊은 자연의 섭리랍니다."

 


  그가 묵직한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그저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인 것 아닌가요? 너무나도 덤덤히 말해오는 늙은 트롤의 말에 엘사는 입을 다물었다. 다시금 황야는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그녀는 손 끝을 잘게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울라프는 울상지었다. -맞아요. 문득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스쳐지나갈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녀가 속삭였다. -당신 말이 맞아요, 파비. 하지만 난 이 어리석은 믿음을 버릴 수가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미소짓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포기한 눈을 가진 여인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슬픈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트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긋이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의 미간 사이에 잡힌 깊은 주름은 그간 그가 짊어온 세월의 무게를 알려주고 있었다.

 


  "엘사… 당신은 이 길이 자신을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을겁니다. 안나 공주께서도 그걸 바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대체 어째서죠?"

 


  떨려오는 입술로 애써 미소지으며 천천히 말을 내뱉는 그녀는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내가… 그 아이의 언니니까요."

 


  -그걸로 충분해요.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지만, 분명 울고 있었다.

 


            

 


  매서운 눈보라가 사정없이 휘몰아쳤다. 말을 타는 것조차 불가능해 엘사는 간신히 말 고삐만을 쥐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갔다. 이미 몇 번이나 날아갈 뻔한 울라프는 안장 위에 짐처럼 묶여있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소중한 코를 자비없는 눈보라로부터 지키느라 나름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엘사는 자신이 똑바로 앞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갑작스레 몰아치기 시작한 이 눈은 그녀로부터 한 치 앞을 바라보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다행히 체질상 별다른 추위를 느끼지는 않았으나 체력이 받쳐주질 못했다. -이 년 전에 왔었을 땐 이러지 않았는데. 북쪽산이 이렇게나 험한 곳인지 미처 몰랐던 그녀로선 의외였다. 너무나 거센 바람에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지만 절대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현재 머릿 속에서 쟁쟁하게 울리는 피비의 목소리가 그녀로 하여금 계속해서 다리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북쪽 끝에는 천 년이 넘게 살고 있는 마녀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지요. 엘사의 대답 후 오랜 침묵 끝에 마침내 입을 연 그는 더없이 무거운 목소리로 운을 뗐다. 미간에 지긋한 주름을 품은 늙은 트롤은 더없이 신중하고 엄격한 모습을 내비치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뭐든지 알고 있다고 하더군요. 되살리는 것 까진 못해도 최소한 안나 공주님의 사망 원인은 알 수 있을겁니다. 엘사는 몇 번이나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눈에 띄게 밝아진 그녀가 말의 안장에 올라서는 모습을 지켜보던 트롤은 다시 한 번 그녀를 불러왔다. -마녀에게 무엇을 부탁하던 간에, 당신은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뤄야 할 것입니다. 여왕이시여, 부디 명심하시길. 엘사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옅은 미소만을 남긴 채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건 평소처럼 바로 바위로 돌아가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트롤들의 모습이었다.

 


  "여왕님! 여왕님!"


   

  문득 울라프가 안장 위에서 엘사를 불렀다. -왜 그러니, 울라프? 그 목소리에 퍼득 현실로 돌아온 그녀는 대답했다. -저기 저 성, 이 년 전 여왕님이 만드셨던 성 아닌가요? 엘사는 울라프가 가르키는 곳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눈보라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희끗하게 보여오는 건물의 형태는 분명 자신이 만들었던 얼음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된 것과 동시에 오늘 밤 묵을 수 있는 숙소를 얻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아직 저녁이라 하기엔 모자른 시간이었으나, 변덕스러운 산은 조금만 지나면 금세 깜깜한 어둠에 파묻힐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오늘은 저 성에서 하룻밤 자고 가자꾸나, 울라프. 엘사의 말에 울라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에 들리게 됐다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월이 지났음에도 자신이 세운 얼음 궁전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다. 조심스레 내부로 발을 내딛은 엘사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바깥의 휘몰아치는 눈보라가 거짓말인 것처럼 고요하고 잔잔한 성의 모습을 보자 여러가지 감정이 솟아났다.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풍경이 이렇게 눈 앞에 다시 펼쳐지니 마치 이 년 전 그 날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든 것이다. 엘사는 그 순간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때 솟구치던 서러움과 동시에 느껴졌던 해방감까지. -나는 자유야. 당시 현실로부터 도망쳐 나온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들을 위해 사라져 준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틀렸었다. 안나가 직접 여기까지 쫓아와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가.

 

  엘사는 말없이 이 층으로 향하는 투명한 얼음 계단을 올랐다. 발 끝에서 전해지는 서늘한 감촉이 익숙하면서도 서글펐다. -제발 날 밀쳐내지마. 바로 등 너머로 들려오는 것처럼 생생한 음성이 엘사의 머릿속에 울려퍼졌다. 잠깐 자리에서 멈춰 섰던 그녀는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래, 그때 안나는 그렇게 말했었다. 엘사는 기억할 수 있었다. -언니는 더 이상 내게 거리를 둘 필요가 없어. 그 날의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그리운 목소리도 계속해서 들려왔다. 엘사는 계단을 올라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느새 계단의 끝에 다다른 그녀는 이 층 입구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녀는 소리없이 그 곳에 들어섰다. 멈추지 않는 목소리 또한 그녀의 뒤를 뒤따라 왔다. -왜냐하면 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언니를 이해하게 됐는 걸! 사실 엘사는 안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십 년 동안 보여준 것이라곤 있던 정도 다 떨어질 모습뿐이었는데, 어째서 그녀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린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게 됐어. 엘사는 안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엘사는 단 한 번도 자신과  안나 사이의 '우리'를 바란 적은 없었다.  그녀는 그저 '너', 안나만이 안전한 곳에서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랬을 뿐이었다. -우리 같이 이 산을 내려가자. 언니는 더 이상 혼자 두려움 속에 살 필요가 없어! 엘사는 안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안나에게 더없는 사랑과 고마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안나의 행동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의 감정이었다. -왜냐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텅 빈 홀의 가운데에 서서 엘사는 눈을 감았다. -내가 언니 곁에 있을거니까. 눈을 떴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황망히 비어있을 뿐인 계단 끝을 보며, 엘사는 터져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붙들었다.

 

  그녀는 안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고, 끝없이 거절의 말만을 내뱉는 자신에게 끝없는 애정과 관심을 내보이는 안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동생이 너무나도 착해서, 바보처럼 착해서 자신같이 못난 언니도 차마 포기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을 뿐.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엘사는 안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을지, 그 모든 것들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네 곁에 있어주어야 했어…."

 


  -네가 내 곁에 있어주는게 아닌, 내가 네 곁에 있어주어야 했어…. 문득 엘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괴로움으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애써 진정시키며 마음을 달랬다. 이제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다. 엘사는 생각했다. 더 이상 슬픔에 젖어 눈물을 흘릴 여유따윈 없었다. 반드시 이 두 손으로 원하는 미래를 얻어 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그녀는 굳게 다짐했다. 더 이상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물기 어린 그녀의 시선이 말랐다. 엘사는 이내 아래 층에 있을 울라프를 찾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아, 엘사 여왕님!"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울라프가 먼저 황급히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 울라프는 총총총 경쾌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엘사의 앞에 섰다.  

 


  "오늘 하루 동지가 생겼어요! 저희처럼 산을 헤매다 잘 곳을 찾던 도중 이 성을 발견했대요."

 


  -제가 문을 열어줬는데, 잘했죠? 울라프는 보는 사람이 당황스러울 정도로 매우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는 기쁨과 좋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이 이루어낸 결과였다. 반면 엘사는 갑작스레 맞이하게 된 밤손님에 당혹스런 기색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레 계단을 마저 내려왔다. 문 앞에 서서 눈을 털어내고 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엘사가 조심스레 말을 걸자 낯선 인영은 느긋하게 뒤돌아 망토를 벗어내었다.

 


  "오, 밤 중에 죄송합니다. 하지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이곳에서 하룻밤만 재워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렇게 말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인자한 인상의 주인은 백발의 늙은 할머니였다.

 


 

+++

 

 

 

그 트롤 족장 이름이 파비가 맞냐??

기억이 안나네...

 

모두들 굿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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