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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재벌 경영에 국가가 개입하기

◇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전까진 경영참여 어려워

들끓는 여론을 접한 국민연금은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현행 규정상 투자 기업의 경영 상황에 섣불리 개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상 5% 이상 보유 주주는 지분 변동시 5영업일 이내에 보고해야 한다. 다만 지분 보유 목적이 ‘경영 참여’가 아닌 ‘단순 투자’면 약식보고를 해도 된다. 

지금까지 국민연금은 약식보고 특례를 인정받기 위해 기업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만약 국민연금이 여론을 수용해 대한항공에 주주제안을 하면 지분 보유 목적이 경영 참여로 변경돼 특례 대상에서 제외된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약식보고 혜택이 없어지면 공단의 투자 전략이 노출되고 이는 자본시장 안정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기 전까지는 국민이 원하는 수준의 주주활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들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지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 국민연금에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방침이다.

또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연기금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주주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더라도 이를 경영 참여로 보지 않기로 했다. 즉 국민연금 입장에선 약식보고 특례를 누리는 동시에 민간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 연금 사회주의 우려도

그러나 “재벌개혁·적폐청산을 들고 나온 문재인 정부가 국민연금을 활용해 기업 경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며 이른바 ‘연금 사회주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시장에만 130조원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자본시장의 공룡이다. 전체 기금 규모는 620조원을 넘어섰다. 일본 공적연금펀드(GPIF), 노르웨이 국부펀드(GPF)와 함께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275개, 지분율 10% 이상 기업은 84개에 이른다.

문제는 무시무시한 덩치를 자랑하는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산하 기관이라는 사실이다. 공단을 이끌고 있는 김성주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 출신이자 더불어민주당 전(前) 의원이다.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청와대 입김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이재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국가가 민간기업에 개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건 사실”이라며 “의결권 행사 기구의 독립성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