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 타는 걸로 다시 만난 걸로 해요, 우리”

첫 만남,
그 순간부터 ‘설렘’이,
함께 마음 속에 찾아 왔다는 걸,
모를 리 없었어.

하지만,
현실에서 다시 마주한 두 사람에게는,
시간이 필요했지.

그 시간 속에서,
먼저,
현실의 벽을 깨고,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깨달은 건 진혁이었어.

하지만,
수현이는 지금 흐르는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기기에는,
수현이의 발목을 잡는 것들이 너무 많았지.

우리,
조금 더 어릴 때 만났더라면.

지금의 감정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며,
이 감정을 흐르는 대로 두어도 될 지,
생각하는 것마저 사치인,
그런 순수한 시절에 만났다면.

수현이는,
자신의 마음에,
진혁이 어느 순간 흘러 넘친다는 걸 알면서도,
진혁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기가 어려워.

자기 때문에,
진혁이가 다칠까 봐.

자기 인생에,
때때로 파고드는 칼날을 피할 길이 없어,
그저 그 칼날에 베이는 대로,
견디며,
버티며 사는 인생인데.

이런 인생에,
당신도 뛰어 들 수 있겠냐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흐르는 감정을,
애써 모르는 척도 해 봤어.

하지만,
진혁이를 보고 있으면 웃게 되고,
그래서 자꾸 보고 싶어진 다는 것마저,
누를 수는 없었지.

그 감정이,
사랑 어느 쯔음에 닿아 있다는 걸,
분명 알지만,
그 감정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마음에,
결국은 현실에 찢겨져,
한 발자국도 나갈 수도 없을 거라는 그 때.

진혁은,
수현이에게 손 내밀어.

처음부터,
함께 한 ‘우리’는 행복했잖아.

마주 서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이든 견딜만한 우리잖아.

하지만,
‘사랑’한다며,
이 감정에 손 잡아 달라고 하면,
수현이 지금 사는 세상에 갇혀서,
꼼짝도 못 움직일 거라는 걸 알기에.

우리 관계에,
‘썸’이라는 이름을 붙여.

어렵게 잡을 손이 아니라고,
그저 가볍게 잡아도 되는 손이라고.

하지만,
진혁이 말한 ‘썸’이,
우리가 말하는 ‘가벼움’을 말하는 게 아니야.

자신의 앞서가는 감정에,
따라오라는 재촉 대신에,
확신이 들 때까지,
같은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는 의미.

지금 흐르는 감정이,
빠르게 흘러도,
느리게 흘러도,
괜찮다며,
그저 설레어 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마음.

뜨겁게 타올랐다가,
쿨하게 돌아서도 괜찮다는 썸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닿음으로,
서로의 온기로,
함께 하는 순간순간을 따뜻하게 채우겠다는 마음.


수현이는,
그 마음의 의미를 알고 있어.

마음이 가벼운 게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에,
가벼운 마음으로 건너 오라는 의미인 걸.

그래서,
수현이는 진혁이가 내민 손을,
잡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거야.


그렇게 완전히 다르게 살아 온 두 사람의 세상.

완벽히 분리되어 있다고 믿어 온,
두 사람의 세상의 경계선이 무뎌지고,

수현이는 진혁이의 세상에 한 발자국,
진혁이는 수현이의 세상에 한 발자국 들어가게 돼.

그로 인해,
진혁이의 온기로,
수현이의 세상은 따뜻한 빛으로 물들기 시작해.

그리고 진혁이는,
수현이의 세상에 얼마나 차가웠는지,
느끼게 되지.

한 때 가족이었다는 이유로,
수현이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는 사람들.

그 속에 어떠한 애정도 없이,
오직 욕망으로 얼룩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내뱉는 차가운 말들 속에,
그동안 얼마나 숨 막히게 살아 왔을지.

수현이의 힘겨웠던 순간이,
자신에게 닿아.

수현이가 다치는 게,
자신이 다치는 것보다,
아프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 그 날.


사람들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아.

그저,
마음과 마음이 만나,
서로의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이고 있을 뿐인데.

우리의 관계에,
정답을 원하는 사람들.

수현이가 진혁이를,
권력을 이용해 가지고 논 게 아니라면,

진혁이가 수현이를,
스토킹한 걸로 몰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

순수한 관계를,
더럽혀야만
수현이를 놓아주겠다는 듯한,
수많은 시선들이 수현을 향하던 그 때.

진혁이는,
당신이 다치는 것보다는,
내가 다치는 게 괜찮다는 듯이.

그래도,
다 괜찮다는 듯이.

당신의 눈을 보며,
나는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눈빛으로 그렇게 다독여.

그 순간,
수현이는 대답해.

“썸타는 사이예요.”

우리 둘만의 은밀한 언어로,
우리의 관계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결코 부끄럽지 않은 관계라고.


우리 관계에는,
어떠한 욕망이나,
어떠한 목적이 투영되지 않은.

그저,
서로를 좋아하는 걸로 행복한,
그런 사이라고.

어떤 더러운 말로,
우리 사이를 더럽히려고 해도,
더렵혀지지 않을,
그런 사이라고.




진혁이가 살던 세상,
수현이가 살던 세상,
그 경계선에 맞잡은 손.

그 세상이,
완벽히 하나의 세상으로 합쳐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도,

두 사람은,
그렇게 이미 시작한 사이가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