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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국에 일본산 음식 빵빵하게 먹은 후기

Nitr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9.10.21 17:00:02
조회 5540 추천 81 댓글 49



셰프가 추천해줘서 알게 된 일본 요리 및 레스토랑 박람회, 줄여서 JFRE(Japanese Food & Restaurant Expo).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한창 일고 있지만, 요리 공부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열리는 일본 음식 박람회를 단지 일본 단체가 주관한다고 해서 보이콧 할 만한 입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관해서 일식이 어떤 식으로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야 보고 들은 것을 바탕으로 한식 세계화에 조금이라도 기여하지 않겠나 싶어 휴일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시내까지 나갔습니다.



입구 지나자 마자 솔솔 풍겨오는 고소한 냄새. 


오코노미야키 소스와 믹스 가루를 파는 부스입니다. 냄새가 좋아서 한 조각 먹고 싶었는데 만들어 놓은 게 없어서 잠시 구경만 하고 다음 부스로 이동했습니다.


재패니즈 팬케이크라는 이름으로 팔고는 있는데, 실제 미국 사람 중에서 몇이나 이걸 해먹을런지는 솔직히 좀 의문이긴 합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 외국에 진출하는 건 보통 해외 동포 시장을 노리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한인마트에 가 보면 한국사람 말고는 손도 안 댈 것 같은 도토리묵 가루가 made in USA 찍혀서 진열되어 있는 것도 종종 볼 수 있지요.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는 그래도 오코노미야키에 비하면 활용성이 꽤 좋은 편입니다. 


쌀밥이나 일본식 인스턴트 된장국은 물론이고 아무리 조그만 가게라도 꼭 팔고 있는 컵라면에 얹어 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얇게 썰기 전의 가쓰오부시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단단한 나무토막같은 모습에 다들 놀라더군요. 



오늘 본 것 중에서 가장 신기했던 김밥/초밥 기계.


김밥을 자동으로 말아주거나 초밥을 쥐어 주는 기계들입니다.


한국 사람 입장에서는 이까이꺼 뭐 그리 어렵다고 비싼 돈 주고 기계까지 사나 싶은데, 막상 학교에서 일본 음식 배울 때 다른 학생들이 터쳐놓은 김밥 옆구리의 갯수만 생각해봐도 이게 꽤나 경쟁력 있는 투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더군요.


물론 누구라도 배우면 할 수 있고, 조금만 재료 버려가며 반복 연습하면 숙달되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숙련도를 쌓을 때 까지의 비용을 고려하면, 혹은 그런 기술을 가진 숙련자의 고용 비용을 감안하면 어설픈 중저가 일식 레스토랑에서는 시도할 법 합니다. 



나름 신선했던 두부 종이. 여러가지 색깔의 채소 분말과 섞은 두부를 얇게 펴고 가공해서 만들었습니다.


밥을 싸서 먹거나 샐러드 말아 먹거나 다진 고기나 새우를 올려 먹는 등 다양하게 활용 가능하겠더군요.


게다가 미국 사람들 좋아하는 글루텐 프리, 비건 옵션까지 붙어있으니 말이지요. 



아예 원재료를 파는 수입상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진짜 게살이라고 하면 블루 크랩을 쪄 먹거나 게살 통조림을 사서 크랩 케이크를 만들어 먹거나 하는 정도인지라 오래간만에 이렇게 집게만 모아서 파는 걸 보니 옛날에 오사카 여행 가서 게다리 구이 먹던 것도 생각나고 감회가 새롭네요.



일차적으로 가공된 재료들을 판매하는 곳도 있습니다. 왠지 우리나라 반찬 가게 보는 느낌도 좀 드네요.


게맛살은 미국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양이 꽤나 많은지라 일본 제품이 뚫고 들어오긴 힘들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고급 식당에서는 게맛살이 아니라 진짜 게살을 사용할테고, 대중 식당이나 일반 가정집에서는 이미 미국산 게맛살이 널리 사용되고 있으니까요. 



튀김옷이나 각종 음식의 토핑 용도로 사용하라고 만든 쌀과자.


그냥 집어먹어도 바삭바삭 하면서 고소하니 맛있는데, 아이스크림에 얹어 먹으니 더 좋네요.


보통은 켈로그 콘푸로스트같은 설탕 바른 씨리얼을 토핑으로 사용하는데 유기농 건강식 아이스크림 파는 곳이나 고급 레스토랑 디저트 용도로는 꽤나 먹힐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 종류의 샐러드 드레싱을 파는 기업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보기 힘든 (하지만 의외로 만들기는 쉬운) 프랑스식 소스를 만든다고 하면 "오오~ 요리 잘하시네요"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미국에서는 이와 비슷한 게 일본식 소스인 듯 합니다. 한국식은 잘 안 알려져있고, 중국식은 아무래도 좀 저가형 음식의 이미지가 있는 반면에 일식이라고 하면 왠지 고급스럽게 들리는 모양이니까요.


그래서 홈파티 등에서 "일본풍 와사비 드레싱을 곁들인 샐러드입니다"라며 음식을 내놓곤 한다는 거죠.  



참으로 탐났던 죽순.


미국에서는 죽순 구하기가 쉽지 않고 기껏해야 동양 식재료 파는 커다란 상점에 가야 통조림으로 된 녀석을 겨우 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죽순을 뱀부 루트(Bamboo root)라며 파는 걸 한 번 보긴 했는데 품질이 영 좋지 않더군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나름 싱싱하게 들여 온 죽순을 보니 입에 침이 절로 고이네요.



미국에서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극동 아시아 식재료라고 하면 간장과 두부 아닐까 싶습니다.


어딜 가도 기꼬만(Kikkoman) 간장과 다양한 굳기의 두부를 구할 수 있지요.


이렇게 이미 사람들에게 친숙한 재료다보니 일단 소개만 제대로 되면 인구가 많은 곳 중심으로 유통 경로만 뚫어놓고 인터넷 주문 받아서 배송 해 주는 식으로 파는 것도 가능합니다. 


특히 개인 판매보다는 식당 차원에서 구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계약 건수에 비해 판매량은 꽤나 높게 나오는 듯 하더군요.



단지 여러 회사들이 부스 차려놓고 제품 홍보만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세미나 비슷한 형태로 식재료에 대한 강연도 하고


해당 재료를 사용해서 요리를 만드는 시연회도 벌이곤 합니다.


예전에 비구니 스님들이 미국 와서 사찰음식 강연 했던 것도 생각나네요.



주먹밥이 메인 메뉴가 아니라 쌀이 메인 메뉴인 부스.


여러 종류의 쌀로 밥을 지어 밥 맛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줍니다. 


사사니시키와 고시히카리의 차이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지역마다 맛도 꽤나 다르게 나오는 것 같더군요.


다만 한국이나 일본식으로 찰기가 도는 밥은 미국 사람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식감이라 호불호는 꽤나 갈립니다.


서양에서 주로 먹는 밥이라고 하면 샐러드에 콩 넣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먹거나, 리조토처럼 겉은 죽인데 속은 심이 남아있는 요상한 형태거나, 파에야처럼 아예 볶음밥 식으로 먹는게 대다수니까요. 흰 쌀밥을 하더라도 초를 쳐서 초밥을 만들어 버리니 찰진 쌀밥은 꽤나 생소한 경험일 겁니다.


밥도 이정도인데 떡은 "껌을 씹어 삼키라는 것 같다"며 싫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도 이해가 되네요.



제 2 전시관에서는 일본술을 대량으로 전시해서 시음회를 하고 있습니다.


입구 바로 옆에는 보리로 만든 소주로 유명한 이이치코 부스가 있네요. 희석식 소주와는 같은 것 같으면서도 확실히 다른 맛입니다.



고구마 소주로 유명한 니시 주조. 


토미노 호우잔, 깃초 호우잔, 텐시노 유와쿠 등 주력 제품군이 다 나와 있네요. 


근데 뚜껑 딴 건 하나 뿐이라 시음은 한 잔밖에 못 마셨습니다 ㅠ_ㅠ



후지니시키 주조. 일본식 나무 술통인 고모다루(맞나?)까지 모셔와서 진열 해 놨길래 한 장 찍어봤습니다.



아카기산 (붉은 산) 청주. 


청주인데도 서양식으로 와인을 분류하고 묘사할 때 쓰는 표현들을 주로 사용해서 설명하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후쿠시마산 주류 특설무대 (-_-;;). 거의 다른 부스 서 너개 합친 만큼의 공간을 할애해서 다양한 후쿠시마산 사케를 홍보하고 있더군요.


저거 다 방사능 측정은 하고 들어 온걸까 싶기도 합니다. 


혹자는 너무 과잉 반응하는 거 아니냐는 말도 합니다만, 음식에 실제로 방사능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음식의 이미지와 관련된 사안이라 문제지요.


개인적으로 사회문화적 경험이 주관적인 맛의 평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예 그런 사실을 모르는 미국 사람들이야 원효대사 해골물 마냥 맛있다고 하지만, 멜트다운 일어난 원전 주변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실제론 아무 문제 없는 술이라도 술맛 뚝 떨어진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마지막 전시장은 여러 주방 도구나 그릇, 포장 용품 등을 진열 해 놓은 장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메인은 역시 식칼. 특히 회 뜨거나 초밥 만들 때는 날 길이가 중요한데 서양에서는 그렇게 긴 칼을 사용하는 경우가 별로 없거든요.


그나마 가장 긴 슬라이서 (고급 뷔페 같은 곳에서 요리된 고기를 통채로 갖다놓고 손님이 요청하면 얇게 썰어줄 때 사용하는 칼)도 사시미칼에 비하면 꽤나 짧습니다.


여기에 일본칼의 좋은 품질과 닛뽄도에 환상을 가진 사람들의 구매 수요가 겹치면서 전문적으로 요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제 식칼이 꽤나 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오죽하면 어떤 미국인 친구는 졸업하면 바로 일본으로 날아가서 대장간에 커스텀 주문을 넣을거라고 돈을 모으고 있을 정도니까요.


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는 말이 실감됩니다.


하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음식의 세계화라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개발한다쳐도, 그 음식을 사람들이 직접 맛을 보게 만드는 건 문화 전반에 걸친 힘이라는 거니까요.


일본 문화는 오래 전부터 신비로운 오리엔탈의 대명사였고, 자포니즘(Japonism: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은 서양 문화 사조)의 역사는 무려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버블 경제 시기에는 첨단 전자기기, 최근에는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영향력을 확대 해 왔지요.


중국 역시 마찬가지. 제너럴 조 치킨(General Tso chicken: 좌종당계)이나 그랜마 토푸(Grandma Tofu: 마파두부) 처럼 서양화된 중국 음식이 많다고는 하지만 그 뿌리는 미대륙 횡단 철도를 건설하며 전국에 차이나 타운을 세웠던 중국인 노동자들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과거로 넘어가면 중국 도자기, 비단, 차에 미친듯이 돈을 뿌려댔던 유럽 귀족들의 시누아즈리까지 튀어나오지요.


결국 한식의 세계화는 음식 혼자서 이루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 사회에서의 비중, 문화 전반의 수출, 해외 교민들의 사회적 지위가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인지 한식의 세계화라고 하면 김치만 주구장창 들입다 파는 것도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됩니다. 


아무리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퓨전 한식 메뉴를 개발한다 하더라도 일반 가정집은 커녕 어지간한 식당에서도 재료를 구할 수가 없습니다. 불고기? 불고기용으로 얇게 썬 소고기나 불고기 양념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잡채? 당면이 없어요. 비빔밥? 그 수많은 나물들을 하나씩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한국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김치를 달고 살기 때문에 한인 교포가 많은 서부를 시작으로 김치는 좀 대중화 되었고, 


동부에서도 굳이 동양 식재료 상점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월마트나 타겟 등 어지간히 큰 마트의 식료품 코너라면 김치와 한국식 라면을 구입하는 게 가능합니다.


그러다보니 서양인 입맛에 맞는 코리안 킴치 팬케이크(김치전) 같은 게 오히려 먹힐 확률이 높아 보일 수도 있겠네요. 


학교에서도 김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셰프-심지어는 동양 요리 가르치는 것도 아닌데-도 몇 명 있을 정도니까요.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발음도 잘 안되는 거춰좡(고추장)을 메뉴 개발에 사용하는 장면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기도 합니다.


여기에 덧붙여, 몇몇 선구자들의 노력 덕에 대도시를 중심으로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받을 정도로 인정받는 한식당도 그 수를 점차 늘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 사회 전반에 뿌리깊게 박혀서 퓨전 메뉴를 뽑아내는 일식이나 중식에 비하면 아직까지 갈 길이 멀긴 합니다. 


아무리 조그만 동네라도 하나씩은 있는 차이니즈 레스토랑이나 "와규! 스시!"라는 소리만 들어도 "오오! 럭셔리!"라는 반응이 자동적으로 나오는 일식에 비하면 한국 주방장들은 명백한 매출 차이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코리안 레스토랑 대신 재패니즈 레스토랑 간판을 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미국에서 좀 허름한 재패니즈 레스토랑을 가면 종종 뜬금없이 김치찌개나 제육볶음, 설렁탕, 이동갈비 등이 메뉴에서 튀어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출처: 기타음식 갤러리 [원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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