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일반] [프갤문학] 시간놀음꾼

앙졸라이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0.02.18 10:00:01
조회 932 추천 48 댓글 39

자연은혹은 자연법칙은스스로를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습성이 있다.


그렇기에 그 법칙이 영원히 불변하는 것이다그렇기에 에너지는 다른 형태로 바뀌지 않고 소멸될 수 없는 것이고그렇기에 공중의 사과는 땅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맡기고 우리의 머릿속으로만 과거를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어찌보면회상도 일종의 시간여행이다내가 최근에 읽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타임머신에 등장하는 시간여행자는 과거를 회상하는 것 또한 일종의 시간여행이라 말하며 아무런 기구 없이 공중에 놓인 원시인의 예시를 든다기구 없는 원시인이 오랫동안 중력을 거스를 수 없듯우리는 회상을 하더라도 오랫동안 과거에 머무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간여행자는 그것을 단순히 기술의 문제로 치부하며 기술의 발전이 시간여행 또한 가능케 했다고 말한다허나 내가 아는 바에 의하면그는 틀렸다비행기를 타는 순간에조차 인간은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이 아니듯자연은 시간의 균형을 어지럽힐 것이 뻔한 자에게 그것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허락하지 않는다허나 그것을 거스르는 일이 종종 생긴다사람이 시간을 거스르고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아주 가끔씩 벌어진다.


그것은 자연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비롯된 기적이다시간을 거스른 이가 그 기회를 결코 과거의 일을 뒤바꾸는데 사용하지 않으리란 신뢰무언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생각 없이단순히 그 경험을 누리기만 할 거라는 신뢰그리고 무엇보다도지금껏 자연의 질서를 단 한 번도 일그러뜨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인증.


그 모든 조건이 갖춰진 이들은 가끔씩 시간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다평생 동안 자연의 은총으로 열역학 법칙을 거슬러온 나에게 그런 행운이 주어졌던 것을 정말로 과분하게 생각한다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경험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으로 남아있다.


무언가 많은 일을 한 것도 아니다단순히 보고만 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나는 너무나도 기뻤다.


내가 젊었던 시절하루는 바다를 가르는 말 녹이 아토할란에서 아렌델로 나를 데려다주었다그날 나는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았고아무런 욕심도 품지 않은 상태였다허나 아렌델에 내리는 순간나는 봄철에 벌써 눈이 수두룩하게 쌓인 아렌델을 발견했다천천히 땅에 발을 내딛은 나는 곳 이곳이 내가 아는 아렌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성의 지붕이 내가 만든 하늘색 덮개로 덮여있지가 않았다성의 모양은 내가 정확히 알던 그 아렌델 성이었지만내가 약간의 장식을 추가하기 전이라는 것은 곧 내가 다른 시간대의 아렌델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나는 성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눈이 수북하게 쌓여서인지 혹은 자연의 조화가 내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을 막게 하려던 것이었는지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서 휴일을 즐길 뿐아무도 밖으로 나와있지 않았다덕분에 나는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황급히 성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내가 어느 시간대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성 마당을 보는 순간 나는 이 시간대의 내가 정확히 어떤 상태일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나는 마당에서 한 붉은 머리의 소녀를 보았다홀로 자기 몸집만한 눈덩이를 굴리고 있는붉은 머리 소녀를 보았다.


소녀의 땋은 머리에는 흰색 줄이 한 가닥 나 있었고소녀는 끊임없이 뭔가를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즐겁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나는 몸을 숨겼다이유는 모르지만정말로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난 그 날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몸을 숨겼던 것이다.


나는 이 날을 기억했다내가 이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내가 이 날 안나를 직접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비록 내 방 창문에서난간을 얼려 버릴까봐 아무데도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며 지켜보았던 것이긴 하지만그래도 나는 그 날 안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나는 어린 시절의 내 자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깊고 깊은 어둠 속에서 홀로 놀고 있는 안나를 지켜보는 건쓴 진통제를 억지로 삼키는 것과 같았다몸은 조금 편하게 해주었지만혀는 너무나도 쓰라렸다하지만 내가 삼킬 수 밖에 없는 진통제를 삼키는 것을나 스스로가 어떻게 방해할 수 있을까?


나는 지켜보았다소녀가 눈사람을 다 만들고내가 미쳐 보지 못한 순간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기다렸다.


소녀가 눈사람에 말을 거는 순간까지 기다렸다.


안녕올라프?”


안나가 입을 열었다나는 왈칵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나는 뒤돌아서서 달렸다소녀가 나를 발견한 것 같았지만신경 쓰지 않고 달렸다그리고 식료품점에 도착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 옛날 동전 하나를 꺼냈다마치 하늘이 내린 계시처럼나는 그 순간까지 어린 시절의 주화 하나를 주머니에 꼭 넣고 다녔다나름대로는 부적으로 여겼던 것 같지만사실은 그 날 그 순간을 위한 본능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근 하나를 집어 들고 가게에 동전을 내려놓은 채다시 성을 향해 달렸다.


나는 소녀의 앞에 섰다.


누구세요?”


갑자기 어딘가를 헐레벌떡 뛰어갔다 돌아온 나를소녀는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 바라보았다나는 햇빛을 등진 채 소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눈사람 구경하러 온 사람이야잘 만들었구나.”


혹시 요정이에요성 밖에 나가본 적은 없지만이곳 사람이 아닌 건 알 것 같아요다른 세계에서 오신 요정인가요?”


지나치게 새하얀 옷을 입은 내 모습을 보고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나는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자연이 나를 믿고 이 시간대에 보내줬기 때문에그 신뢰에 보답해야 했다나는 당근을 꺼내 소녀에게 건네주었다.


아니그냥 당근 주러 온 사람이야어디에 쓸지는 잘 생각해보렴.”


그 말을 마치고 나는 뒤돌아서 성문 밖으로 나섰다.


소녀를 말고는 그날 아무도 나를 보지 못했다그렇게 점지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나가 이상한 표정으로 나와 당근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내가 떠나는 것을 보며 눈사람의 코에 당근을 쑤셔 박는 걸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때나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차마 삼킬 수가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내 동생에게 그렇게나 그 당근 하나를 쥐어주고 싶었다내 과거에 묻혀 있는 수도 없이 많은 후회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날의 일이 역사를 조금이라도 바꿔놓았을까?


아니면 그날 이후로도 모든 일은 그저 흘러가야하는 대로 흘러갔을 뿐일까?


아니면 혹은 그날 모든 일이 내가 상상한 꿈에 불과하진 않을까자연이 내게 선사한 환영에 불과하진 않을까?


내가 태양을 등지고 높은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소녀는 내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날 이후로 왠지 올라프의 코에 박혀있는 당근을 이전과는 똑같이 볼 수 없었고,


내가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이후 나를 처음 바라보던 안나의 표정이 단순히 재회의 반가움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치워낼 수가 없었다.


언젠가죽기 전에는 내 동생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어린 시절혼자 눈사람을 만들 때나를 본 적이 있느냐고.


그리고 그 일이너에게도 지옥같았을 하루하루를 버텨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느냐고



출처: 겨울왕국 갤러리 [원본 보기]

추천 비추천

48

고정닉 34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말머리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2853 설문 연인과 헤어지고 뒤끝 작렬할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2 - -
246728 일반 [A갤] [ㅇㅎ] 청순 스미레 그라비아 [424] ㅇ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87085 309
246727 엔터 [브갤] 용감한 형제가 5년전부터 하던일 [484] o.o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52770 1153
246726 엔터 [히갤] 브리라슨이 호감이고 크리스햄스워스는 개새끼인 이유 [356] ㅇㅇ(121.173) 21.04.13 113524 873
246724 일반 [연갤] [ㅇㅎ] 간지럼에 가장 약한 그라비아 아이돌 [185] ㅇㅇ(118.130) 21.04.13 154688 210
246723 일반 [파갤] 한국여자들이 근육을 싫어하는것에 대한 기저 [901] ㅇㅇ(210.217) 21.04.13 159742 786
246722 시사 [야갤] 오세훈 업적 2. jpg [808] ㅇㅇㅇ(220.71) 21.04.13 177978 3671
246721 게임 [중갤] 몇몇 게임회사 이름의 유래 [220] 글레이시아뷰지똥꼬야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2246 360
246720 일반 [주갤] 마신거 [93] 정인오락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81275 61
246719 시사 [야갤] 깜짝... 갈데까지 가버린 서울시 시민단체 근황 .jpg [786] 블핑지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53402 2369
246718 엔터 [야갤] 김딱딱 논란 어이없는 점 (feat. 페미민국) [772] ㅇㅇ(203.229) 21.04.13 154126 2952
246717 일반 [겨갤] [ㅇㅎ] ㄹㅇ 역대급 [144] dd(118.235) 21.04.13 148606 184
246716 일반 [자갤] M235i산 게이다..1개월탄 후기 써봄(3줄요약 있음) [166] 깡촌빌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3052 174
246715 일반 [중갤] 3살 체스 신동... 인생 최대 난관....jpg [410]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0038 863
246714 일반 [중갤] 17금) 의외로 겜잘알인 누나... jpg [330] 케넨천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90236 589
246713 일반 [여갤] (전) 세러데이.. 초희.. ㄹ황.. [84] ㅇㅇ(223.62) 21.04.13 99876 155
246712 시사 [주갤] 해운대 9.5억 뛴 신고가에 부산이 화들짝…매수자는 중국인 [208] ㅇㅇ(119.204) 21.04.13 79397 654
246711 스포츠 [해갤] 해버지 현역시절 슈팅스페셜.gif [233] 곰보왕박지성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1832 295
246710 일반 [일갤] [ㅇㅎ] 타츠야 마키호 그라비아 발매 [37] ㅇㅇ(223.38) 21.04.13 79436 75
246709 시사 [야갤] 진중권...레전드 ㄹㅇ...JPG [984] 아츄아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6959 1598
246707 FUN [중갤] 여초 사이트에서 말하는 포지션별 롤하는 남자.jpg [562]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7223 611
246706 일반 [중갤] 여왕벌 소신발언 레전드.jpg [315]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30402 1277
246705 일반 [야갤] 야붕이 pc방 사장님이랑 싸웠다 .jpg [1492] 블핑지츄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88742 3075
246704 시사 [싱갤] 안싱글벙글 핵융합 기술 [370] 건전여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70652 543
246703 일반 [싱갤] 싱글벙글 휠체어 전도.gif [152] ㅇㅇ(39.7) 21.04.13 73606 359
246702 일반 [싱갤] 싱글벙글 한남 고등학교 [128] 에이크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92821 390
246701 일반 [싱갤] 싱글벙글 리얼돌카페 [179] ㅇㅇ(59.20) 21.04.13 102480 282
246700 FUN [싱갤] 싱글벙글 람보르기니.gif [182] ㅇㅇ(39.7) 21.04.13 82998 261
246699 일반 [코갤] 슈카월드 라이브... 2030세대의 분노.jpg [398] ㅇㅇ(223.62) 21.04.13 80823 708
246698 일반 [야갤] 삭재업)여경 기동대 폭로 신작.blind [1243] ㅇㅇ(175.125) 21.04.13 115391 2252
246697 일반 [싱갤] 꼴릿꼴릿 가능촌 [109] 으규으으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6198 693
246696 일반 [야갤] 경희대.. 에타근황ㄹㅇ....jpg [443] ㅇㅇ(58.140) 21.04.13 128810 2153
246695 시사 [야갤] 30000vs1...잡히면 따먹힌다...추격전...JPG [960] ㅇㅇ(220.116) 21.04.13 167979 999
246694 일반 [주갤] 행동하는 주붕이 정의구현 하고 왔다 [91] 버번위스키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46742 461
246693 일반 [새갤] 하태경 페북떴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147] ㅇㅇ(121.171) 21.04.13 53406 448
246692 일반 [토갤] 플레이스토어 110만원 해킹당한거 후기.jpg [155] K보스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65755 285
246691 스포츠 [해갤] 진짜 개미친새끼...gif [115] KB(112.148) 21.04.13 71866 218
246690 일반 [야갤] 운빨..만렙..1조..잭팟..동남아..누나..JPG [848] 튤립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1082 1129
246688 일반 [야갤] 공무원갤 논란....jpg [337] ㅇㅇ(210.178) 21.04.13 71559 272
246686 일반 [L갤] 네이트판 캡쳐 [98] ㅇㅇ(118.32) 21.04.13 59138 222
246685 일반 [육갤] 군대와 이 세계의 공통점 [137] ㅇㅇ(223.62) 21.04.13 74724 643
246684 일반 [식갤] 무화과 나무 잎으로 차 만들었습니다. [104] 식둥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39476 191
246683 일반 [기갤] 유노윤호랑 서예지 방송에서도 티냈었네ㅋㅋ [115] ㅇㅇ(211.36) 21.04.13 75434 139
246681 일반 [과빵] 시작하는 빵린이를 위하여(1. 무엇을 사야하나) [50] ㅇㅇ(223.38) 21.04.13 41472 86
246680 일반 [카연] (스압) 단편 비주류 사람 [272] 잇선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45216 467
246679 일반 [야갤] 깜짝.. 윾승사자.. 또 떳다....JPG [341] 사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123299 1506
246678 일반 [한화] [ㅇㅎ]큰 가슴 [72] 거유(175.223) 21.04.13 97556 262
246677 스포츠 [한화] 코구부장 안경현 저격.jpg [52] oksusu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1.04.13 39248 102
246676 일반 [야갤] 조련누나..자해 후.. 김정현 태도 변화...gif [149] ㅇㅇ(39.123) 21.04.13 75667 297
246675 FUN [유갤] 저번 주말...차박 성지들 근황...jpg [133] ㅇㅇ(1.230) 21.04.13 130073 174
246674 일반 [야갤] 여성만 혜택주는 서울시에 항의전화 함 [508] ㅇㅇ(211.33) 21.04.13 53343 1236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