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망상 하나 쪄와봄.

저녁때가 되면 여지없이 집집마다 아이들은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반찬거리를 나눠주고 받아온다.

그것은 비록 반지하에 살더라도 마음만은 풍족한 덕선이네도 마찬가지다.

엄마의 부름에 노랗게 계란옷 입은 부들부들한 두부부침 한 접시를 들고 윗층으로 간다.

두부냄새가 고소해서 인지 행국이가 꼬리를 살랑 쳐대며 목줄에 걸려 두발로 일어난 행색으로 나를 반긴다.

"행국아 미안~이거는 안돼. 이따가 너 밥 주실거야"

현관문을 열면 따뜻한 온기와 함께 군침도는 밥냄새와 덕선이 좋아하는 소세지냄새도 난다.
정환과는 다르게 유쾌한 아버지 개그에 맞장구 한번 쳐드리고 식탁 위 소세지 하나 집어들면 그것에 따라오는 시선이 배고파보이는 정봉이오빠 뿐이다.

"덕선아 이거 좀 엄마 갖다드려.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

네-하고 받아들고 나서는데 괜시리 뭔가 허전한 듯도 하다.
날 기다린건지, 밥을 기다린건지 알수는 없지만 대문을 바라보던 행국이가 내가 나서자마자 아까처럼 또 반긴다.
계단 끝에 잠깐 접시를 내려놓고 행국이에게 다가가면 꼬리는 더 바빠지고 얼굴은 마치 웃는것 같다.

"행국아~ 좋아? 너 밥주는 개정팔은 어디갔냐? 너 밥 안주고."

"여깄다."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놀란 덕선이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면 가만히 서서 정환이 그냥 그대로 쳐다보다 현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아, 놀랬잖아!"

"내가 더 놀랬거든. 행국이 괴롭히지 마라."

"너나 행국이 밥 좀 챙기지?"

"...아직 밥시간 아니거든. 니가 키우냐? 내가 키우지."

맨날 싸워도 어찌 한번을 이겨먹지 못하는 덕선이 귀여워 웃음이 나지만, 또 그렇다고 웃질 못하니 정환은 그냥 답답하고 또 명치께가 퍽퍽하다.

"행국아- 개정팔이 괴롭히면 누나한테 말해애-!알았지?"

쪼그리고 앉아 행국이를 슬쩍 안아 눈까지 맞추려 애쓰며 말하는 모습이 여간 귀엽지 않을 수가 없어 정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띈다.
그러다 행국이에게 쪽-하고 뽀뽀하는 모습에 미소는 온데간데 없이 정환의 얼굴이 복잡해진다.
덕선은 일어나 정환을 스치며 계단끝에 놓았던 접시를 들고 집쪽으로 가고 정환은 그저 자신을 보고 꼬리 흔드는 행국이를 보고 있을 뿐이다.

"밥 많~~이 쳐먹어라"
"너만 하겠냐. 빙신아"

덕선이 집으로 들어가자 한순간에 마당이 고요하다.
타닥타닥 거리는 행국이 발소리만 들린다.
정환이 가만히 행국이에게로 걸음을 옮겨 앞에 서면
그런 정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꼬리가 떨어질듯 흔드는 행국이다.

"하아..." 허리춤에 두 손을 척 올리고는 바닥을 향해 한숨 한번 쉬고 덕선 처럼 쪼그리고 앉아 행국이를 슬쩍 안아든다.

"김행국. 너 반칙이야. 옐로카드야.어?"

그저 웃는것만 같은 행국을 가만히 보다 피식 웃음이 나는 정환이다. 그러다 또 행국이를 보면 이제 까만 눈보다 까만 코만 보인다.

"........"

뭔가에 홀린듯 점점 행국에게로 다가가는 정환이 이제 막 눈을 감으려는 찰나에

"동ㅅ..ㅐ.....어...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밥상은 온 가족이 모여야..한다고..어서 들어오지 않겠니?"

"아..아!!!배가 고프네!!!형 빨리 들어와!!"

당황한 정환이 급한 발걸음으로 계단을 두개씩 오르다 발을 삐끗해도 개의치않고 정봉을 스치고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정봉이 현관앞에 남아 행국이를 잠시 보다 덕선의 집 쪽도 한번 보다 정환이 들어간 현관도 바라보면 소리치는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듯 집으로 들어간다.
모두가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고 마당에 홀로남은 행국이는 여느때와 다르게 뭔가 많은 사랑을 받는단 기분에 신이 날 뿐이다.


국문학을 전공했어야 했는데ㅜ 비루한 똥손이라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