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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스압)근무 9개월차 앞둔 고갤 바텐더 썰.txt모바일에서 작성

ㅇㅇ(211.246) 2016.01.31 17:00:02
조회 10646 추천 85 댓글 70


어느새 내게도 후배가 생겼다
서비스업계는 인력 회전이 진짜 빠르다
나와 직간접적으로 같이 일하던 사람이
벌써 여럿 나가고 새로 들어와 바뀌었다

내 업무능력에 관해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불과 3개월 쯤 전이랑 비교하면 아주 발전했다고 느낀다

손님이 고개만 살짝 움직여도
저 새끼가 메뉴가 필요한지 얼음잔이 필요한지
화장실을 찾는지 대리를 불러달라고 할 건지
먼저 알고 이미 그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바 안에선 존나 제다이 뺨따구 후려갈기는
포스 능력자가 된 것이다

어떤 칵테일들은 내가 제일 맛있게 만들고
위스키는 이제 캡틴 제외 나보다 잘 아는 직원이 없다

매일 근무 루틴 중에서 처리가 안 된 빈 부분을 채우려다 보니 어떤 일들은 나만 신경쓰고 나만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좋은 신호인 것 같다
군대에서 존나게 갈굼먹다가 선임들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한 일병 말 때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일을 시작하고서 좀 이상한 성격이 되었는데
유독 다른 서비스직종에 있는 사람들의
불친절을 견디지 못 하겠다

일하다 보면 대한민국 워낙 좁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아서
내가 그들에게 지랄하는 경우야 거의 없지만
나 같으면 돌려서 좋게 말하고, 굽신거리고,
어떻게든 방법 찾아서 원하는대로 해줄 상황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그냥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거 보면
복장이 뒤집어진다

난 했는데 넌 뭔데 안 하냐??
하고 병역의무기간 줄어들 때마다 빼애액거리는
예비역 아재들이랑 비슷한 심리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엔 빚이 참 많다
정확히는 엄마가 1억 정도 지고 있다

딸기가 나오기 시작한 12월 중순 쯤부터
내가 퇴근하면 매일 냉장고 안에 딸기가 들어있었다
엄마가 넣어둔 거다
한 팩에 6~8천원은 할 거다
진짜 맛있어서 맨날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

얼마 전에 내가 엄마한테 보낸 연말결산 참조내역을
보려고 엄마 카톡, 문자를 보게 됐는데
여기저기서 "사장님 입금 부탁드린다"
"이자 좀 신경써달라"하는 메시지들이 있었다
그 중 한 사람 거를 봤더니
\'미안하다\', \'다음 주까지 처리하겠다\',
\'일단은 이만큼만 송금하겠다\'
하고 꾸준히 대답하던 엄마는
11월부터 말이 없었다

엄마의 무능함과 무책임에 화도 났지만
대체 매일같이 이런 독촉 안에 사는 압박감이
얼마만큼인지 상상이 안 갔다

그동안 처먹은 딸기가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나?
난 내 방 컴퓨터 앞에서 진짜 엄청난 시간을 썼다
어리다고 할 수 있는 시절은 끝나 버렸다

무력함에 작은 물뿌리개로 운동장을 전부 적시고 있는 기분이 든다



출처: 고전게임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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