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장편과 단편의 법칙을 비교하는 수필을 읽었는데, 운빨 생각이 남.

"장편과 단편은 둘다 '부재'에 관한 경우가 많다. 단편은 말한다. '나는 x를 찾고 있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어요.' 또는 '더 이상 찾고 있지 않았더니, x를 발견했어요.' 반면에 장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x를 찾고 있었는데, a, b, c, g, q, r, 그리고 w를 발견했어요.'"

단편형 전개는 의외성, 우연성, 신비함에 의존함(어, x를 포기했더니 x가 나타났네?!!). 반대로 장편형 전개는 예측가능성, 필연성, 아이러니에 기반함(x를 찾았더니 나타난건 a, b, c, g, q, r 이더라 ...). 

흥미롭게도 이는 여주와 남주가 각각 표방하는 세계관과도 일맥 상통하는 것처럼 보임. 물론 궁극적으로 운빨은 각각 여주와 남주로 대표되는 미신과 이성이 화해할 수 있는 지점이 사랑이고, 건강한 사랑에는 미신의 믿음도 이성의 명료함도 절대 빠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려 하겠지만.  

운빨에서 일종의 뚝심이 느껴진다면 작품을 관통하는 사랑의 철학에 있어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함. 그런데 이런 견고한 철학을 그려내는 호흡은 그동안 대체로 짤막짤막한 '시리즈' 또는 '나열 형식'이었음. 이는 교차 편집이라는 기법을 통해서도 꾸준히 실현되고, 에필로그라는 장치를 통해서도 반복적으로 각인되며(에필로그는 그 정의 자체가 짧게 덧붙이는 것이므로), 항상 예측을 빗겨가는 본체들의 연기의 '연속'을 통해서도 크게 탄력을 받음. 

그래서인지 방영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운빨은 큰 그림이 정말 분명한 것 같다가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구성인 것 같기도 함. 위에서 말한 단편과 장편의 공식 어느쪽에 더 가까운지 계속 가늠이 안 되고 그래서 운빨을 둘러싼 돌팔이는 뭔가 색다른 느낌임. 매번 틀리는데(...) 틀렸다는 게 전혀 수치스럽거나 억울하지가 않고 더 제대로 틀리고 싶은(?) 약간은 변태적인 의욕마저 심어주는 굉장히 신기한 드라마인 것 같음. 틀려도 괜찮고 오히려 틀리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더 큰 경험의 법칙을 견지한 작품인 것 같고, 이것이 결국에는 운빨이 말하려고 하는 로맨스, 사랑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됨.

가끔씩 운빨이 단편이나 장편, 어느 한 쪽 공식에 보다 확실하게 정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서 끄적여봄.  어디까지나 취존이지만 그 경우에는 지금과는 매우 다른 느낌의 작품이 될 것 같음. 정해진 스크립트에 배우들이 편승하는 게 아니라 배우도 시청자도 서사 구조를 함께 개척해나가는 느낌마저 들어서 나는 지금이 좋음(글이 어째 매우 유치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아무튼 그렇다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