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허무와 인세人世의 비정함이라는 두 마리 승냥이에게 쫓기고 쫓긴 나는 그날 밤에 도 술에 취해 나 자신과 세상을 잊고 모든 것을 저주하며 대로변에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가 한 명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말을 걸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내 얼굴에 드러나 있는 숭고한 고뇌의 표정을 읽어내고는, 내 눈을 빤 히 바라보며,
'당신은 예사 주정뱅이에게는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 속에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로군 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당신 영혼의 주인은 동물적인 육체적 욕구일 뿐이에요, 당신이 그 포악한 군주에게서 놓여나거든 다시 만나요'
라고 예상치 못한 대사를 또박또박 읊고 난 후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 여자가 적어 준 쪽지를 손에 들고 그녀의 사라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주신酒神 바커스여, 그대가 나를 위해 빚어 놓은 운명의 밀주密酒가 바로 이것인가? 그대 는 우연의 손길을 빌어 이제 나로 하여금 그 밀주의 봉인을 풀게 하려느뇨?'
정신을 차리고 쪽지를 보았더니 이름이 우리 어머니랑 똑같은 것이었다.
'수희秀希... 으뜸 가는 소망이라...'
그래서 그날은 안마도 대딸방도 안 가고 그냥 집으로 들어와 얌전히 잤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이 되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온 나는 무심코 티비를 틀었다.
티비에서는 어떤 서양 남자가 바에서 만난 여성에게 작업을 걸고 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 다.
그런데 이 남자가 여자한테 이름을 물어보았고, 여자는 자기의 이름을 말해 주었는데,
아, 이 무슨 우연의 연속인가?
남자의 대사는 바로,
'흠? 우리 어머니의 이름과 똑같군요'
이것이었던 것이다.
전율과 함께 왈칵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그 어떤 알 수 없는 존재, 초자연적인 미지의 인격이 나 자신을 지켜보고 있 다는 생각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우주법칙의 어떠한 경로를 따라 우리는 이 삶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일까?
내게 찾아온 이 부정하기 힘든 확신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그 뜻을 찾아라
그것이 네가 태어난 이유일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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