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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 군 Esercito Nazionale Repubblicano -RSI 4편-

기우(121.130) 2007.03.07 07:34:13
조회 1109 추천 0 댓글 5

공화국 군 Esercito Nazionale Repubblicano

                                                   (National Republican Army)

 

이 무렵 공화국의 군사력은 검은셔츠 여단(Black (Shirts) Brigades)과 온갑 잡동사니로 뒤섞인 부대 의용군들이 전부였고 이들은 독일군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줘 독일군을 실망시킨다. 그들에겐 변변한 파르티잔 토벌조차 기대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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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여단 지원 포스터 이때부터 슬슬 광기가.....

 

1943년 10월 독일은 유일하게 제대로 돌아간던 카나비니에리(Carabinieri : 헌병과 경찰의 기능을 하는 부대)의 해체를 요구했다. 이러한 독일의 명령은 이탈리아 국민들의 감정을 악화시킬 것을 알고 있던 그라찌아니는 독일의 명령서를 보여주는 대신 카라비니에리의 존재자체를 없앨 음모를 꾸몄다. 그라찌아니는, 10월 4일 카리비니에리의 지휘관 카시미로 델피니(Casimiro Delfini)중령을 불러들여 한 마디 명령을 내렸다. “9000명의 카라비니에리를 자라(Zara)로 보내시오. 그들에게 러시아군을 방어하는 임무를 맡길것이오.” 하지만, 델피니는 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카나비리에리들은 전투요원이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경찰임무만 수행할 수 있을 뿐이었다. 델피니의 반응은 이 하나뿐이란걸 알고 있던 그라찌아니는 카라비니에리를 MVSN(Milizia Volontaria per la Sicurezza Nazionale or National Security Volunteer Militia)나 PAI처럼 GNR(Guardia Nazionale Repubblicana)에 흡수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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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년의 카라비니에리. 이들은 경찰임무를 하는 헌병이었지 전투요원은 아니었다. 사진을 보면 알듯이 

 

국민군 사령관 레나토 리치(Renato Ricci)는 독일의 SS를 모델로 한 군사조직을 만들어 불온요소와 파르티잔을 제압하는데 사용하자고 당에 제안했다. 또한 작지만 효율적인 해군과 공군도 요구했다. 이러한 제안들은 독일 국방군에 의해 허용되어 이탈리아 반도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다. 그라찌아니는 25개 사단의 창설을 제안하였지만 독일에 의해 거부당했다. 이 제안은 심지어 리찌와 파볼리니도 비밀스럽게 반대를 했다. 25개 사단을 가진 그라찌아니는 정치적으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게 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라찌아니는 독일을 배반한 건 이탈리아 정부였지, 군인들이 아니었다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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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포함된 파르티잔들. 공화국의 주적은 연합군보다 이들에 더 가까웠다

 

RSI가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가면서 무솔리니는 그라찌아니의 조언으로 히틀러에게 공화국군 건설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는다. 그 이전부터 뭇솔리니는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있는 포로들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이 요구는 언제나 히틀러에 의해 거절되었으며 더 나은 대우만 보장 받았을 뿐이었다.

 

이 후 양국의 실무자간 수많은 회담이 오간 뒤인 1943년 10월 16일 라스텐부르그(the Rastenburg Protocol) 의정서가 독일과 공화국사이에 체결되어 사단급의 군사력 보유가 허용되어 로돌포 그라찌아니(Rodolfo Graziani)원수는 4개 RSI 사단 총 5,2000명의 병력을 조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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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STRIKE>대갈 </STRIKE>장군에게 장세동이 있다면 무솔리니에겐 그라찌아니가 있었다

 

10월 16일 라스텐부르그에서 서명된 조약의 초안에 따른 독일의 지원내용은 아래와 같다.

 

a) OKW는 4개의 이탈리아사단(1개사단은 알피니 사단, 3개 사단은 보병사단) 총 5,2000명을 장비시키고, 무장시키고 훈련시킨다. 병력의 대부분은 독일 포로수용소의 자원자로 충당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독일의 이탈리아군 재건 임무는 한결 쉬워졌다. 조회해 본 결과 자원자(?)들은 최소한 3년 이상의 전장 경험으로 훈련된 자들이었던 것이다. 4개월 후인 1944년 초 첫 번째 사단이 전선으로 향하였다. 다른 사단들은 훈련을 시작했으며 연말까지는 전선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b) 제 9기갑사단이 독일 기갑학교가 위치한 분스도르프(Wunsdorf)에서 창설되며 완전한 독일제 전차들로 장비된다. 제 9기갑사단의 병력은 포로수용소의 이탈리아 기갑사단과 기계화 사단 출신들로 구성한다.

 

c) 공화국 최고 사령부는 30,000명 규모로 알피니 포병, 공병대와 대공포 중대들을 조직하며 이탈리아에 전개된 독일군 사단들에 양도한다. 이 부대들은 주로 해안방어와 대공방어를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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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동안(?)의 공화국 정규군 맨 오른쪽이 해병대

 

 

1943년 10월 27일 드디어 공화국군(Esercito Nazionale Repubblicano )이 창설되기에 이른다.

 

또한 이와 별도로, 의용군은 검은 여단 (Brigate Nere or Black Brigades)과 공화국 경찰 그리고 GNR(or  Republic National Guard)로 구성되었으며 총 병력은 200,000에 이르고 1943년 말에 완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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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의 개런드 G41M으로 무장한 <STRIKE>Gun & Roses</STRIKE> GNR 병사들

 

 의용군은 40개의 여단에 더하여 3개의 차량화 부대와 1개의 독립부대로 구성되었다. 주니요 보르헤세(Junio Borghese)는 1,300명의 Xa Mas 부대원들을 휘하에 두고 여전히 라 스페찌아(La Sfezia)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되니츠(Dönitz)의 승인하에 8,000명 두 개의 연대로 구성된 해군 보병(Naval Infantry)을 보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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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 SS의 포스터

 

히믈러의 명령으로 독일 장군 볼프(Wolff)는 9,000명의 이탈리아 귀환 포로들로 구성된 이탈리아 무장-SS(Waffen-SS : 제 29무장SS사단)를 창설해 대 파르티잔 임무에 투입하였다. 이들은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독일의 직접명령에 따랐다.

 

 

바도글리오의 군대    Badoglio Truffen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독일측의 이러한 약속들은 이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명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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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목이 좋았던 카이텔은 끝까지 이탈리아군을 믿지 않았다

 

OKW의 사령관, 카이텔 원수와 다른 독일 장군들은 이 이탈리아군 포로들로 구성될 이탈리아군을 믿지 못했고 이들을 신뢰할 수 없고 영 내키지 않는 바도글리오의 군대(badogliotruppen)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오직 13,100(사단 당 3,275명)의 포로만이 이탈리아로 보내졌으며 공화국은 나머지 4개 사단의 정수를 채우기 위해 징병제를 도입해야만 했다.

 

 

4개의 사단    The four Divisions

 

징병 첫 주, 공화국은 젊은 층의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에게 지원은 단지 공화국을 벗어나기 위한 핑계였을 뿐이었으며 훈련을 위해 독일로 이동할 때 파르티잔에 가담하기 위한 거짓 지원이었다.

 

훈련장소는 OKW에 의해 강요되었고, 사단별로 분리되어 공식적으로는 잘 짜여진 훈련 시설과 대규모의 기동과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실 카이텔은 잘 훈련되고 장비된 4개의 이탈리아 사단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케셀링 라인을 지키고 있는 독일군들 바로 뒤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믿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1944년 초, 무장한 경비병들의 경비를 맡으며 군용열차는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 열차는 공화국의 4개의 사단을 구성하기 위한 자원들을 독일도 이동시키고 여름에 다시 이들을 데리고 올것이었다.

 

뭇솔리니는, 1944년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이 사단들의 훈련을 두 번씩 참관하며 격려했다.

 

 제 1 알피니 사단 몬테로사 (Monterosa) : 후에 제 4알피니

 제 2 보병사단 리토리오 (Littorio)

 제 3 해병사단 산 마르코 (San Marco)

 제 4 베르살리에리 사단 이탈리아 (Italia) : 후에 제 1베르살리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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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매우 아주 심각하게 정말로<STRIKE> 질투날 정도로 </STRIKE>이질적이었다

 

사단의 인적구성은 매우 이질적이었다. 강경파 파시스트주의자, 구 이탈리아군의 고참병, 단지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위해 자원한 포로 아니면 단지 19살이라는 이유로 징병된 이들, 징병을 거부하고 탈출하다 잡힌 자, 심지어는 사면 받은 파르티잔 등등 서로 섞이기 힘든 이들이 모여 있었다.

 

훈련소의 삶은 비참할 정도로 힘들었다. 믿기지 않는 육체적인 한계의 도전과 전술 훈련들, 그러나 4개 사단의 1기생들이 퇴소할 쯤엔 이들은 높은 사기와 작전능력 그리고 연합군에 맞서 능히 싸울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이 때 독일은 더 이상 이탈리아를 믿지 않았으며 이탈리아로 돌아가 리구리아군 (Liguria Army)에 편입되었지만 연합군과의 본격적인 전투보다 대부분 대 파르티잔 작전이나 해안 방어에 배치되었다.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하게 꺽였으며 작전능력은 감소되었고 곧 탈영율은 높아졌다. 50일 동안 몬테로사는 1,105명이 산 마르코는 1,400명이 탈영했다.

 

공화국군은 공화국의 수비와 대 파르티잔 토벌임무외에도 RSI군은 트리에스테, 우디네(Udine), 베니스를 목표로 침공해 들어오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1944년 이미 정규군으로 조직된)에 대항해 북동부 전선에서 전투를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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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상 내전을 벌여야 했던 고딕 라인

 

1944년-1945년 겨울동안. 무장한 이탈리아인들은 고딕라인(Gothic Line)의 양면으로 전개되어 배치되었다. 연합국은 구 이탈리아군 자원자들로 구성된 4개의 이탈리아 부대가 있었으며 추축군엔 4개의 RSI사단이 있었다. 그 중 3개의 사단 리토리오(Littorio) 보병사단, 산 마르코(San Marco)해병 사단과 몬테 로사(Monte Rosa)알피니 사단은 LXXXXVII 리구리아군에 속해 고딕라인의 프랑스 방면 측면방어를 위해 전개되었으며 나머지 1개의 사단 이탈리아(Italia)는 독일 14군에 편입되어 아펜니네(Apennine)산맥으로 배치되어 예상되는 연합군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 기간 RSI군의 연합군에 대한 대규모 공세는 1944년 아펜니네 산맥에서 연대규모로 이루어졌던 브라질군에 대한 공세뿐이었다. 작전은 완벽히 성공하였으며 이 성공으로 공화국군은 자신들은 능숙한 기량과 호전성을 입증했지만 이 후 별 다른 공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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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말기 슬슬 마실왔다가 갑자기 차가운 냉동 파스타를 맛봐야만 했던 브라질 제 1원정사단

 

1944년 12월 26일, 수개의 사단급 RSI 부대들이 몬테로사 사단과 산 마르코 사단에 증원되어 겨울 폭풍 작전(Operation Winter Storm)에 참가하였다. 이 작전은 미 제 92보병사단에 대한 독일군과 공화국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전투는 아펜니네산맥에서 벌어졌으며 제한된 규모의 이 작전은 성공적이었으며 RSI부대들은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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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풍이 휘몰아 친다. 산악전문부대 알피니의 행군

 

1945년 2월 미 제 92보병사단과 RSI는 다시 한번 전투를 치르게 된다. 베르살리에리 이탈리아 보병사단은 다시한번 성공적으로 미군의 진격을 저지해 내었다. 이 결과 RSI 국방장관 로돌프 그라찌아니는 자신이 리구리아(Liguria 이탈리아와 독일이 연합한) 군을 지휘한다고 말할정도가 되었다.

 

* 1945년 4월 30일 LXXXXVII 리구리아 군의 전투 편성

 

LXXV Corps 군단

제 5 독일 알피네(Alpine) 사단

제 3 이탈리아 리토리오 보병사단

제 34 독일 보병 사단

롬바르디아 군단

제 3 이탈리아 산마르코 해병 사단

제 134 독일 보병 여단

제 4 이탈리아 몬테 로사 알피니 사단

제 1 이탈리아 이탈리아 포병사단 (독일 14군에 편입됨)

 

1944년 7월 4일, 연합군은 로마를 해방시켰다. 구스타프(Gustav)라인은 곳곳에 구멍이 뚫린채로 허물어졌다. RSI 국민들은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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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셀링이 설계한 구스타프 라인 (1944년 5월)

 

파르티잔에 자원하려는 자들은 급격히 늘어났으며 공화국은 더 많은 군대와 의용대를 대 파르티잔 임무에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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