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갤러리

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갤러리 본문 영역

노몬한 항공전의 양측 전투기 손실규모와 그 원인분석 -ㅅ-;

B군(125.137) 2007.06.29 23:39:46
조회 2448 추천 0 댓글 16




마침 민혁님이 노몬한 지상전에 관해 좋은 글을 올리셨길래 전 마침 관련 책이 좀 있으니 항공전이라도...-ㅅ-; 아래 보니 일본군이 소련기를 1600기나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기에 저도 좀 황당해서 대충 올립니다. -_-;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양군합쳐 2000대가 넘는 항공기가 몽골의 초원(...)에 전개해있단 말인데, 이거 BOB와 같은 스케일이군요(뽀핫)




< 전과와 손해 >

전쟁사나 전사에 관심을 가지고 공간사, 아니 최소한 알기쉬운(...) 뭐뭐뭐 전쟁사 시리즈만 봐도 대개「 자군의 손해 보고는 줄어들지만 전과 보고는 줄어들지 않는다」- 라는 케이스를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번은 노몬한 사건을 그 사례로 삼아 피아의 손해 보고와 전과 보고의 엇갈림을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ㅅ-;

노몬한 사건은 1939년 5월 11일에 발발해 동년 9월 15일에 정전한 소일 양군의 국경 분쟁입니다. 뭐, 고작 국경 분쟁 레벨로 피아 전과보고나 손해보고의 엇갈림을 논하기엔 사례가 너무 사소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하실수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노몬한 사건은 일본 육군항공대에게 있어서 터무니없는데서 끌려들어간 대전투였거든요 -ㅅ-;

일본 육군항공대 전투기 탑승원을 조사할 때의 바이블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본의 항공정보지 별책「일본 육군 전투기대」의 자료를 근거로 한다면 (참고로 이 책에는 일본 육군항공대 에이스 대부분의 일람과 경력이 있음) 대략 15년 전쟁기를 통틀어 20기 이상 격추한 탑승원은 23명, 그리고 그 스코어를 합계하면 630기입니다. (에이스 파일럿의 격추수 총계)

그런데, 그중 416기가 무려 노몬한 사건에서의 격추수이므로 뒤집어 생각해보면 태평양 전쟁에서의 일본 육군 에이스 파일럿 23인의 격추수 합계는 고작 214기란 충격적인(...) 결과도 잘 알 수 있씁니다.

41년 12월부터 45년 8월 15일까지 장장 44개월이나 지속된 태평양 전쟁을 통틀어 에이스 파일럿들의 총 격추수를 더해보면 214기인데, 단 4개월( 태평양 전쟁에 비하면 불과 1/11의 기간!)에 불과한 노몬한 사건에서 416기?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ㅅ-;

그럼 태평양 전쟁에서는 해군항공대의 화려한 전투에 가려져 육군항공대는 공중전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당연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개전 직후의 필리핀 항공전이나 말레이 항공전, 란인항공전, 이어 계속되는 버마 항공전이나 솔로몬 - 뉴기니아의 항공전, 플라잉 타이거스와 상대한 지나 항공전, 말기에 또한번 사투를 펼친 제 2차 필리핀 항공전이나 대만, 오키나와 항공전 및 일본 본토 방공전.....딱 봐도 육군의 항공전도 규모나 스케일 면에서 해군에 못지 않았죠.

그런데, 육군항공대의 톱 에이스 23명에 의한 1개월당 격추기수로 따져보면 태평양전쟁은 평균 1개월에 5기꼴이었는데 노몬한 사건에선 1개월 평균 104기로 무려 20배가 넘습니다. -ㅅ-;

자, 그럼.......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 소련 공군기는 독소개전 초반의 대 루프트바페전 전과를 보아도 알듯 미국과 영국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저급한 집단이었다.」


........라고 -ㅅ-; . 맞아요 맞는 얘깁니다. 저도 어느정도는 수긍합니다만 그 전에 우선「 (대영미 개전 이후와 비교해)노몬한의 터무니없는 전과 보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자, 다시 앞의 이야기로 돌아와볼작시면 일본 육군항공대에게 있어서 노몬한 사건은「 터무니없는데서 대량의 소모를 낸 상정 외의 전투」- 인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 노몬한 사건 발발 당시, 일본 육군의 전투기 부대는 10개 전대(*주 1) 외 1개 독립중대 편성으로 그 구성은 23개 전투기 중대(97식 전투기 15개 중대, 95식 전투기 8개중대, 참고로 당시 일본 육군항공대는 1 개 전투기중대가 약 9기 편성이었으므로 탑승원의 숫자는 대략 200명)였지만 이중 85%가 넘는 20개중대(97식 전투기 14개 중대, 95식 전투기 6개중대)가 노몬한에 투입되어 절반 가까운 100여명의 전투기 탑승원을 상실했거든요. 즉 이 손실율은 노몬한전 개전 전과 비교해 가동 가능한 탑승원의 절반을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나 지휘관 클래스의 손실이 특히 심해 지휘관급 전사자만으로도 소좌 1명, 대위 8명, 중위 10명에 이릅니다. -ㅅ-;

(* 주 1)

자료에 따라선 노몬한 사건시 육군항공대의 비행전대는 8개전대라는 설도 있음, 참고로 이번에 제가 10개 전대라고 소개한 것은 제 5 전대나 제 13 전대등의 연습 부대도 포함한 숫자라서 그런겁니다. 그러나 이러한 연습부대나 제 4 전대의 경우 전대가 단 1 개 중대밖에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으며 제 1 전대나 제 24 전대, 제 59 전대는 2 개중대 편성이었지요. -ㅅ-;



.........근데, 보기보다 지휘관급(영관) 전사자가 적다고요? 근데 꼭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초기 투입된 7개 비행전대(1, 9, 11, 24, 33, 59, 64전대)중 제 33 전대가 전장에 투입된 날은 16일, 59 전대는 6일, 9 전대는 3일 뿐이므로 사실 계속 노몬한에서 싸운 4개 전대만으로 한정하면 11 전대를 제외한 3개 전대 모두의 전대장이 격추, 또는 부상당하고 있었거든요. -ㅅ-;

특히 제 1 전대에서는 7월 12일의 공중전에서 전대장인 가토 중좌가 부상, 후임의 하라다 소좌가 전대장직을 승계했지만 그 하라다 소좌도 첫 출진에서 전사-_-, 최종적으로는 전 중대장과 전 장교가 전사하거나 부상당했다는게 실상이었습니다. 또 이렇게 손해가 극심한 것은 제 1 전대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4개 전대(합계 11 개 전투기중대) 통틀어 보면 중대장 11 명중 9명이 사상, 그 후임 중대장이나 중대장 대리들도 계속 전사하거나 부상당했거든요. 즉 노몬한 사건에서의 지휘관급 항공장교 대량 상실이 그 후의 전쟁에서 일본 육군 전투기부대에 큰 영향을 미친 점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ㅅ-;




< 노몬한 항공전의 개략 >



그러면 간단히 노몬한 사건의 추이에 대해 설명합니다.

1939년 5월 11일, 소일 어느 쪽인가가 월경해 국경분쟁( 제 1 차 노몬한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일단 여기선 그 월경한 쪽이「 어느 쪽인지」- 는 뒤로 재쳐둡시다. -ㅅ-; 요점은 어느쪽이나 「 물러날 생각은 없다는 것 」- 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뭐, 이렇게 해서 사건은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육전에 대해서까지 쓰면 길어지므로 이후는 항공전, 특히 전투기 부대에 관해서만 설명하겠습니다. -ㅅ-; 최초 노몬한에 전개중이던 소련군 항공부대는 자바르예프 소령이 지휘하던 적군 제 70 전투기 연대로써 그 구성은 전투기 38기, 그리고 적군 제 150 폭격기연대의 폭격기 29기로 그 외에는 15기가 예비기로 있던 제 100 혼성 비행단이 전개중이었습니다.

이 정보를 파악한 관동군 참모부는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13일부터 육군비행 제 24 전대(97식 전투기 2개중대)를 투입했습니다. 이 제 24 전대는 18일부터 정찰을 개시해 20일에는 첫 격추(정찰기)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소련측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22일에는 적군 제 22 전투기 연대의 63기와 제 33 폭격기 연대 59기를 추가로 100 혼성 비행단에 합류시켰습니다. 하지만 이 증강에 맟춰 일본군도 24일에는 제 11 전대의 절반(97식 전투기 2개중대)를 추가로 진출시켰지요.

일단 초기의 공중전은 일본군이 확실히 승리했습니다. 왜냐? 일본이 주장하는 전과보고와 소련측이 발표하는 손실기의 차이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죠. 실제로도 5월 중에 일본기가 격추된 것은 28일에 1기 격추된 것 뿐으로 소련측도 자신들의 전과가 1기뿐이고 항공전에선 진 사실을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29일부터는 위기감을 안은 소련군 총참모부의 지시에 의해 무려 공군 부본부장(...)이 48명의 베테랑 전투기 파일럿을 인솔해 수송기 3기로 몽골의 전선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30일부터는 일본군도 제 11 전대의 나머지 전력(97식 전투기 2개중대)을 모두 투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오........-ㅅ-; 이대로 사태의 추이가 진행되면 노몬한에서 아시아 최대의 항공전이 벌어질 것은 자명......orz 제법 살벌한 시추에이션이 되었겠지만 현실은 여기서 일단 반전됩니다. 6월 2일에는 제 1 차 노몬한 사건이 종결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종결로 보기엔 좀 뭐한 것이, 종결이라고 말하면 「 아, 정전교섭이 시작되거나 외교적 액션이 사작된 건가」- 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실은 이와는 좀 달라 일본육군이 지상부대를 조금 후방으로 물린 것 뿐으로, 문제는 그때까지도 소련측은 이렇게 분쟁을 끝낼 생각이 없었단거죠. -ㅅ-;

때문에 소강상태로 접어든 이후에도 변함없이 소련군은 병력을 증강시켰고 결국 6월 17일부턴 당연하다면 당연합니다만 제 2 차 노몬한 사건이 발발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번은 일본군도 병력을 축차 투입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6월 19일에는 노몬한 지역의 전대를 모두 모아 새로 제 2 비행집단(편성된 전투비행대의 총계는 3개전대로 제 1, 11, 24 전대 합계 97식 전투기 8개 중대)을 편성했고 이 부대가 소련군과 다시한번 싸우게 되었던것이됴.  이렇게 해서 소일 양군은 다시 격렬한 항공전을 펼치게 되는데 22일에는 소련군의 그라즈이킨 소령, 24일에는 자바르에프 소령이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이 여세를 몰아 발동된 것이 6월 27일에 벌어진 일본군의 제 1 차 탐스크 공습입니다.

소련군의 항공시설을 격멸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된 이 작전에 일본 육군항공대는 정찰기 12기, 전투기 74기, 경폭 6기, 중폭 21기 합계 113기를 투입했고 98기 격추의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수치는 앞서 언급한 일본 육군전투기대에 의한 수치, 참고로 츠지 참모에 의하면 지상격파를 포함 114기, 마루 제 648호에서는 지상격파를 포함 110기, 세계의 전투기대에서는 140기)

그리고......이후 양군은 더욱 더 항공전력을 증강시키기 시작했습니다. -ㅅ-;  7월 21일, 소련은 적군 제 56 전투기연대를 진출시켜 이에 맞섰고 일본도 8월 15일부로 비행 제 64 전대(97식 전투기 3개중대)를 투입해 8월 21일에는 제 2 차 탐스크 공습을, 22일에는 제 3 차 탐스크 공습을 연이어 발동시켰지만 이러한 잇단 공세덕분에 탑승원의 소모도 점점 상승곡선을 달리기 시작했지요. 참고로 이 기간동안 7월 12일에는 가토 중좌( 제 1 전대장, 부상), 7월 29일에 하라다 소좌( 제 1 전대장 대리, 전사), 8월 4일에는 마츠무라 중좌( 제 1 전대장, 역시 부상)를 위시로 각 전대장 이하 탑승원의 사상이 잇따랐습니다.

.........자. 보시다시피 이미 노몬한 전선의 일본 육군항공대는 삐걱대기 시작했던거죠. -ㅅ-; 하여간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 8월 30일부로 비행 제 33 전대(95식 전투기 3개중대), 9월 9일에는 비행 제 59 전대(97식 전투기 2개중대), 9월 12일에는 비행 제 9 전대(95식 전투기 3개중대)등 증원은 계속 보내졌지만 이미 97식 전투기부대는 결핍 상태....orz 괄호로 소개했다시피 증원의 주력은 복엽기인 95식 전투기부대로 전락해버렸지요. -ㅅ-; 

이 항공전의 최종 시점, 소련공군 또한 제 19, 22, 23, 56, 70의 5개 전투기 연대라는 상당한 병력이었습니다. 그리고 9월 15일의 제 4 차 탐스크 공습을 마지막으로 노몬한에서의 항공전은 마지막이 되었고 동일 성립된 정전교섭에 의해 노몬한 사건은 그 막을 닫았던 것이었습니다.


< 양군의 전과보고 비교 >


그러면, 노몬한 항공전을 전후로 양군은 각각 어떻게 전과보고를 올렸을까요? 일본측 발표와 소련측 발표의 쌍방을 기술하고 있는 자료라면 앞서 소개한 이번 글의 주요 리퍼런스인 항공정보 별책「세계의 전투기대」와 마루 제 648호가 있지만 양쪽 모두 소련측 전과는 격추 660기, 손상 207기..... 일본측의 전과는 격추 1340기, 손상 171기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의 2차대전 공간전사인 전사총서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쓰고 있을까요? 거기선 소련기 격추 1389기, 일본측의 격추는 192기(이중 97식 전투기 119기)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자료는 공간전사 답게 일본측의 손해와 보충량을 기종과 기간별로 집계하고 있어 훌륭한 자료입니다만 5월 28일에 97식 전투기 1기가 최초로 격추되었는데고 불구하고 6월 20일 이전의 손해가 제로인 등 약간의 의문점도 볼 수 있습니다. -ㅅ-;

뭐, 이와같이 일본측 수치에선 전과는 1340~1389기, 손해는 166~192기로 만약 일본측 발표가 맞다고 가정하면 일본의 기록적 대승리(전사총서를 예를 들면 1:7)이고 소련측 발표가 맞다면 소련의 대승리(1:3)인겁니다.




과연 일본측 발표와 소련측 발표.........-ㅅ-;  어느 쪽이 올바른 것일까요?




그런데, 진짜 문제는 양군 모두「상대가 전장에 진출시킨 총 항공기수 이상의 항공기를 격추했다고 주장」- 하고 있으니까 -ㅅ-;  양군 모두 통틀어 믿기 어렵다는게 진실입니다. orz

자.......그럼 여기서 만일 양군이 주장하고 있는 전과가 맞다고 생각해 봅시다. 노몬한의 초원에 소일 양국의 항공기가 대소 합쳐 2000기 이상이나 전개하고 있다는 계산이 되는데....-ㅅ-; 진짜라면 이건 BOB와 맟먹는(...)굉장한 광경이죠. 일본측 주장이 맞다고 해도 약 1500기, 소련측 주장이 맞다고 해도 약 800기..........orz

역시 답을 구해낼려면 일단 양군의 손해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수치로 보는 것이 좋을겁니다. 그렇다면 전장에 전개된 항공기는 일본측이 발표한 자군 손실기수 최대치인 197기에 소련측이 발표한 자군 손실기수 207를 더해 대략 최대 약 400여기 정도라고 봐야겠죠. -ㅅ-;

아마, 이런 정도일 겁니다 -ㅅ-;

흔히 노몬한 항공전은 일본군의 압도적 승리라고 전해집니다. 위에도 서술했듯 최소한 양군이 발표한 자군의 손실수를 대조해도 일본측의 손해가 적은게 사실이거든요, 하지만 결코 압도적 승리는 아니었던겁니다. -_-;

참고로 제 11 전대에 소속되어 노몬한에서 5기를 격추시킨 타카야마 중위는 한 잡지와의 대담에서(군사사학) 전반부는 승리, 중반부는 5대 5의 백중세, 후반부는 패배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군의 압도적 승리를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것은「전반부는 승리」와「후반부는 패배」라는 두가지 팩터가 공존한다는 것이 하나의 열쇠가 됩니다. 노몬한 항공전에서 일본군의 전과로 1340기 격추, 40기 지상 격파를 주장하는 마츠무라 코지로(松村黄次郎)중좌의 경우 제 24 전대 전대장으로 승전한 전반전에서 싸우다가 중반전이 한창이던 8월 4일에 격추되어 부상으로 후송되었습니다.

즉, 마츠무라 중좌는 분명 그의 저서「격추 노몬한 공중실전기 / 撃墜 ノモンハン空中実戦記) 」에서 밝힌데로 노몬한전의 용사였지만「패전한 후반부」는 모른다는 얘깁니다. -ㅅ-; 참고로 마츠무라 중좌는 그의 저서에서 「 9 월 상순부터 적 공군의 병력은 압도적으로 우세해졌다. 적어도 전선에 있는 소형기는 1500기, 대형기도 300기를 넘는것으로 판단된다」- 라고 언급했지만 아무리 소련군의 배치상황을 재검토해봐도 최종적으로 노몬한 항공전에 투입된 소련군 전투기는 5개 연대(1개 연대는 약 60여기)를 약간 웃돌 뿐 손해가 재빨리 보충되었다고 해도 전장에 1500기가 집결되었다곤 생각할 수 없습니다.

즉..........적의 소재 병력에 대한 과대 평가가 전과의 과대 평가로 연결된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말할 수 있는거죠. -ㅅ-;

앞서 전기는 승리, 후기는 패전이라고 기술했지만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를 일단 여기선  탑승원의 손실을 주요 팩터로 역산해봅시다. 일단 노몬한 항공전에서 일본육군의 전투기 탑승원이 어느정도 상실되었는지는 제시하는 자료가 여럿 있습니다. 우선 항공정보 별책「일본 육군 전투기대」를 근거로 노몬한전에서의 각 전대 전사자를 합산하면 제 1 전대가 16명, 제 11 전대가 19명, 제 24 전대가 12명, 제 33 전대가 3명, 제 59 전대가 5명, 제 64 전대가 8명으로 합계 63명입니다.

(참고로 361p의 전사자 일람표에는 합계 66명 -ㅅ-; )

어쨌건 이 66 명 중, 무려 반수인 33명이 4개월에 걸친 노몬한 항공전의 마지막 1개월에 집중(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전사자는 18명, 이것이 중기에 해당합니다. 그 이전 2개월간의 공중전 전사자는 불과 15명)되어 있기에 후기의 고전은 굳이 다른 1차사료(증언록 등)을 뒤져보지 않아도 교차검증이 가능합니다.

소련측이 인정하는 자군 손해 207기의 경우 역시 항공정보 별책인 「세계의 전투기대」를 근거로 하면 8월 20일 이후의 손해(정전이 9월 15일이므로 교전기간은 26일간, 여기선 귀찮으니 그냥 한달로 잡겠습니다.)는 34기라고 나와있습니다. 즉 후기는 일본측이 전사자 33명으로 소련기 34기를 격추했으므로 대략 손실교환비는 1:1이 됩니다만 전기, 중기의 평균은 33명의 손해로 173기를 격추하고 있었으므로 1:5.2가 됩니다.

참고로 전기, 중기는 약 3개월간에 걸친 전투였으므로 월 단위로 보면 후기는 33명의 전사로 34기를 격추하고 있는데 비해 전기, 중기는 평균 11명의 전사로 57기(소련군 항공기 손실도 일본측처럼 전기와 중기로 세분화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기까진 자료가 없습니다. -ㅅ-; 따라서 이 계산은 173 ÷ 3 = 57로 계산해 1달 평균으로 계산하겠습니다)를 격추하고 있었거든요.

자, 이제 아시겠습니까? 타카야마 중위가「전기는 승리, 중기는 5대 5 , 후기는 패배」- 라고 말했던 사실을 납득할 수 있으실겝니다 . 마지막으로 여기서 한번 더 일본 육군항공대의 전투기 탑승원의 손실에 관심을 돌려 「 노몬한 항공전이 일본 육군 전투기대에 준 영향 」- 을 생각해봅시다.

사실 탑승원의 손실은 전사자 뿐만이 아닙니다. 물론 전투기의 손실 = 탑승원의 손실도 아니지만 부상(마츠무라 코지로 중령 등) 으로 탑승원으로 복귀할 수 없었던 부상자를 포함하면 손실수는 더 증가하거든요. 일단 8월 말까지의 육군항공대 전투기대의 인원 손실은 당시 전장에 있던 전투기 조종사의 거의 3/4에 해당하는 76명으로, 노몬한 항공전 전 기간동안 항공부대의 손실은 전사 141명, 부상 89명, 중대장 이상의 전상자가 17명이었습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ㅅ-;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노몬한 항공전 발발시 일본 육군의 전투기 부대는 총계 23 개 중대(1 개중대 9기)로 탑승원 숫자가 약 200명이었거든요. 그중 약 절반이 불과 4개월동안의 항공전으로 사라져 버렸던 것입니다. 특히 중대장 클래스의 지휘관 손실는 엄청났는데 이것이 당시 확장기에 있던 일본 육군 항공대에게 준 영향은 결과적으로 다대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부턴 사견입니다만 만약 노몬한 항공전이 없었다면 태평양전쟁에 즈음해 육군항공대도 해군만큼 상당한 페이스로 탑승원을 양성할 수 있었다고는 생각되는데 뭐 영향은 굳이 이런 마이너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 항공기의 보충은 할 수 있어도 탑승원의 보충은 곤란하다」- 라는 사실을 먼저 눈치챈 일본 육군은 해군보다도 빨리 전투기의 방어력 강화에 착수했거든요 (뽀핫)

..............이렇게 탄생한 것이 이후 육군기에 장비된 6.5㎜장갑판이었다며 마무리. -ㅅ-;


p.s 위의 책그림은 그냥 대충 찾아올린 사진이고 -ㅅ-;  참고로 제가 참고한 일본 육군항공대에 관한 서적은 모두 일본 서적입니다. 개인적으론 이편이 읽기 편해서 말이죠...-ㅅ-;  요점은 일본측 서적도 요즘은 나름의 치밀한 교차검증으로 소련측 보고를 함께 수록해 요즘엔 「 노몬한 항공전은 대승 」- 이란  헛소리까진 안한단겁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리타분한 50년전 학설인 1600기 격추설은 도데체 무슨 근거로 말하는지 궁금해서 이번 글을 작성했습니다. 

난늘궁금해님에겐 예전부터 여러번 드린 말씀인거같은데, 일본에 대한 관심과(참고로 저도 일본군 전사에 관심 많습니다 -ㅅ-; ) 사랑은 좋은데 마냥 호의적으로만 보면 뇌내망상으로 빠지기 쉽습니다. 구 일본군에 관해선 이미 책이라던가 웹에도 여러곳에서 공개된 충분한 자료가 있습니다. 뭐 그게 없다면 유추하면서 놀 수도 있겠는데 충분한 자료가 있으니까 단지 "상상" 만으로 결과를 만들지 말고 뭔갈 말씀하시기 전에 다시한번 더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네요. -ㅅ-;

추천 비추천

0

고정닉 0

0

댓글 영역

전체 댓글 0
등록순정렬 기준선택
본문 보기

하단 갤러리 리스트 영역

왼쪽 컨텐츠 영역

갤러리 리스트 영역

갤러리 리스트
번호 제목 글쓴이 작성일 조회 추천
설문 주위 눈치 안 보고(어쩌면 눈치 없이) MZ식 '직설 화법' 날릴 것 같은 스타는? 운영자 24/04/29 - -
115407 나큐 갑자기 아침부터 발광 ㅋㅋ [3] 00(119.199) 14.07.21 226 0
115377 현실의 나Q팔 [12] 00(211.44) 14.07.20 231 4
115376 자! 블라디미르 벨로프(211.140) 14.07.19 163 0
115375 일본이 프러시아보다 공업력이 좋았다? 블라디미르 벨로프(211.140) 14.07.19 266 0
115374 일본이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했다고? [2] 블라디미르 벨로프(211.140) 14.07.19 272 0
115373 야 광팔이가 방금 무다구치 렌야에 대해서 뭐라했는지아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61.247) 14.07.19 281 2
115341 광팔아 혹시 너말이야 [4]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61.247) 14.07.19 179 0
115340 독일의 티거 2000m 저격따위 들고오는 사람들아 [3]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9 288 0
115312 독도 일본 영토설. 블라디미르 벨로프(111.140) 14.07.17 154 0
115311 밑에서 블라디미르 벨로프(111.140) 14.07.17 167 0
115310 일뽕들 지림류.甲 [4] 블라디미르 벨로프(111.140) 14.07.17 291 0
115309 꽤 오랫만에 온거같은데 블라디미르 벨로프(111.140) 14.07.17 70 0
115308 나치 찬양송임 이거?? [2] 맥스4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6 249 0
115307 배 속도에서 1노트라는게 큰 차이인가요? ㅇㅇ(223.62) 14.07.16 1602 0
115306 나치에 충성했던 유대인들 [2]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6 343 0
115305 정말 몰라서 묻는데... [2] 맥스4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5 116 0
115303 내가볼땐 [1] 블라디미르 세르게이 벨로프(125.112) 14.07.15 130 0
115302 근데 독소전쟁에서 소련은 몇%의 전력 사용함? [2] 맥스4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5 310 0
115257 슬라브가 미천하다고? 블라디미르 벨로프(111.140) 14.07.14 95 0
115256 쓰레기라면서 쓸건쓰는 [3]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13 239 0
115255 고르기 어렵다 ㅜㅜ [1] (115.22) 14.07.13 87 0
115249 방학동안 프라모델 디오라마 만들건데 [3] (211.179) 14.07.13 235 0
115247 야 게이들아 '붉은마녀' 웹툰이라고 들어는봤냐? [2]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61.247) 14.07.12 158 0
115245 데프트 가스라 협약 머르냐 [2] 다카키 마사오(121.181) 14.07.12 288 0
115208 어! 예! [2]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9 213 0
115207 제로센 이야기가 나와서 한번 제로기 부관참시 들어간다. [3]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ㅜ(61.247) 14.07.09 423 0
115206 끔찍한 날이었어. [4] 아돌프 히틀러(111.140) 14.07.09 137 1
115205 그러면 빌헬름 카이텔 vs 헤르만 괴링 vs 세몬 부됸늬 [3] 맥스4세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9 309 0
115198 역사는 조작되었다! [1] 역사는 거짓이다!(125.251) 14.07.09 477 0
115197 난 태평양 전선이 좋다 1721(175.126) 14.07.09 299 0
115195 세계대전 최고조넘 [7]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8 288 2
115194 여기가 바로 일뽕 망갤이네요 [6] 필리아보어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8 212 1
115191 야, 하늘이 쪽빠리를 버렸다는 증거가 여기있는데 말야. [6]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121.154) 14.07.07 448 0
115190 독일이 원자폭탄 계발했다는 증거.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121.154) 14.07.07 298 0
115158 이갤러리에서철수합니다. [4] 에리히 슐츠(122.242) 14.07.07 188 3
115155 만일 한국외교대사가 건방지다면.jpg. 에리히 슐츠(122.242) 14.07.06 155 0
115154 일본인은 정말 뻔뻔하다. 에리히 슐츠(122.242) 14.07.06 82 0
115152 로켓의 아버지 로버트 고다드 스펀지송(119.75) 14.07.06 196 0
115151 카더라통신은 오타쿠다.jpg [4] ㅇㅇ(110.47) 14.07.06 199 1
115150 나치 독일이 원폭을 먼저 발명했다? [1] 스펀지송(119.75) 14.07.06 270 0
115148 연합군 골수빠 카더라통신 [1] herr.hans(223.63) 14.07.06 157 1
115147 독일 제일의 과학력을 찬양하지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알려줄께 [3] 한스 요하임 마르세이유(61.247) 14.07.06 260 3
115146 독일이 소련만 밀었으면 세계를 밀어? [6] 赤座あかり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6 329 0
115145 청일전쟁의 군함 정원과 진원 스펀지송(119.75) 14.07.06 168 0
115144 일본 항공군의 사상자 수 좀 물어 봅시다. [2] 스펀지송(119.75) 14.07.06 194 0
115142 오랫만에 왔는데 이대갤 왜망함? [1] 세페연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4.07.05 96 0
115141 임병장 기다리고있을께 1(175.121) 14.07.05 88 0
115140 이런 사소한 사진 한장을 보더라도 .. [2] ㅇㅇ(223.33) 14.07.05 301 4
115139 일본은 가망이 없다. 에리히 슐츠(125.112) 14.07.05 89 0
115138 하늘은 이미 일본을 버렸다. 에리히 슐츠(125.112) 14.07.05 107 0
갤러리 내부 검색
제목+내용게시물 정렬 옵션

오른쪽 컨텐츠 영역

실시간 베스트

1/8

뉴스

디시미디어

디시이슈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