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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카제 2/2

후앙후앙(211.211) 2007.08.29 20:50:54
조회 1642 추천 0 댓글 14












연료

 일반적으로 특공을 시도할때는 편도분량의 연료만을 넣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레이더를 피하기 위한 저공비행과 폭탄탑재 때문에 연료를 만재한 상태라도 부족한 경우가 있었을 정도로 가능한 한 많은 연료를 실어야 했다. 미쓰비시 A6M, 통칭 제로전투기의 설계주임이었던 호리코시 기사는 전후에 자신의 저서에서 "영전을 폭격용(52형 이후)으로 운용할때는 동체 하부에 폭탄을 장비하고 양쪽 날개 아래에 증가연료탱크를 부착했지만 연료탱크 투하 장치의 불편 때문에 특공작전을 중지하고 귀환하거나 미귀하는 예가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미군에서도 연료가 남아있으면 충돌시에 화재를 더욱 크게 번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는 평가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장에서 정비원들이 편도 연료만 주라는 명령에 반발해서 가능한한 연료를 충분히 넣었다는 말도 들리고 있으나, 실제로는 일본 본토에서 오키나와 주변 해역까지의 거리는 약 650km에 달하며 CAP(전장 공중초계)를 피하기 위해서 우회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선행해서 정찰하거나 목표의 위치 통보를 실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기체도 자주 요격, 격추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표물을 탐색해서 공격을 실시해야 하는 경우도 많았으므로, 연료는 일단 "적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게 되었다. 게다가 승조원의 기량 저하가 극심해서 항법을 잘못하면 일순간에 대량의 연료를 소비해버리게 된다던지 하는 점이라던지 여러가지 면에서 과연 실제로도 연료는 편도분만 제공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특공대원들이 적어도 전과도 올리지 못하고 죽지는 않을 수 있도록 출격기에는 가능한한 정비를 우선시 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시 일본의 공업생산력은 한계에 도달해 있었으므로 항공기의 품질관리는 매우 부족했고 대체 부품 부족으로 인한 정비 문제 등으로 비행중에 이상이 생겨서 특공기가 작전을 중지하고 귀환하는 것은 드문일은 아니었다고도 한다.



전과

 

 특공기에 의해서 침몰된 연합군 함선중 최대의 목표물이라면 카사블랑카 급 호위항모 2척으로 St. Lo(CVE-63)는 필리핀 상륙작전에서, Bismarck Sea(CV-95)는 이오지마 상륙작전에서 격침되었다. 함재기의 공격이 일본 수비부대에게 최대의 위협이었기 때문에 항공모함군은 언제나 자살공격에서 최대 중요 목표물로 선정되었으며 호위항모들은 공략 목표 근처에서 CAP(전장 공중초계)망을 형성해서 공략부대를 이끌었기 때문에 특공기에게는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방공능력과 특공전술에 대한 대처능력이 향상되면서 호위항모의 격침도 어려워 졌다.

 미 해군은 오키나와 전에서 구축한 12척을 포함하여 격침 26척 손상 164척이라는 상당한 손해를 보았으며 인적 손실도 1945년 4월 부터 6월 까지 사망 4,907명, 부상 4,824명에 달하고 있다. 특공의 주력함에 대한 전과는 2월 21일, 해군 제 2공격대가 이오지마의 정규항모 사라토가에 자폭공격을 감행하여 이를 대파시켜 종전시까지 작전 불능 상태로 만들었으며 벙커힐은 5월 11일에 특공기 2기의 공격을 받고 손실을 입어 진주만을 거쳐 브렘튼으로 귀환해야 했고, 엔터프라이즈도 5월 14일, 특공기에 의한 손실로 퓨젯 사운드의 해군 기지에 귀환해서 종전시까지 수리를 계속해야 했다.


 이렇게 피해를 입은 정규 항모는 적지는 않지만, 침몰된 함이 1척도 없는 것은 미해군 정규항모의 비행갑판의 장갑 방어나 함내 구조물 배치 등에 데미지 컨트롤의 노하우가 비약적으로 향상되어 있었던 것이 크지만, 어찌되었건 특공기의 공격으로 데미지 컨트롤이 불가능하거나 예항(다른 배가 끌고 가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단념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일시적이라도 내려질 정도의 손해를 입혔던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특공기에 의한 공격 시에는 돌입기가 특공대 1개 부대에 있어서 2~6기, 많아야 10기 정도 수준이라서 1일의 출격기를 다 합친다고 해도 미 해군 기준으로는 항공모함 1척 분의 공격대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의 것이며 지속적으로 인원이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경험누적에 의한 새로운 전과 확대를 바랄 수는 없었으므로 공격력은 계속 하락되어 나중에는 주요 함정의 격침을 위한 공격을 실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1945년 4월 6일의 기쿠스의 1호 작전 시에는 그 다음날까지 육, 해군 합쳐서 300기 가까운 특공기가 투입되었지만 편대 편성 능력등의 부족으로 일시에 기습을 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산발적인 공격을 하다가 축차 소모되어서 돌입에 성공한 기체는 비교적 많았지만 격침한 것은 불과 소해정 1척 뿐이었다.




특공과 유사한 공격

 지금까지 언급한 항공기를 사용한 수상 함정에 대한 공격 외에도 적에 대하여 생환을 기하는 일 없이 공격을 실시하는 전법을 통틀어서 "특공"이라고 부르는데, 항공기 뿐 아니라 소형 함선(진양), 유인 조종 어뢰(카이텐), 유인 유도 폭탄(사쿠라바나), 소형 잠항정 등이 개발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진주만 공격때 사용되어 유명해진 특수 잠항정 "갑표적"의 개조함인 교룡도 건조되었다. 또, 실전에는 투입되지 않았지만 본토결전에 대비하여 잠수한 다음 막대기의 끝부분에 붙인 폭약으로 상륙하려는 소형선박을 공격하기 위한 잠수도구(후쿠류)도 있었다.

 이 외에도 점령된 비행장에 강행 착륙한 다음 탑승한 병사들이 활주로의 적기를 공격해 파괴하려는 "이열 낙하산대"라던지, 필리핀 전투 말기에 행해진 대만 원주민들로 편성한 "훈낙하산대"를 사용한 "의호작전", 타카치호 강하 부대를 사용한 "테호작전" 등, 낙하산 특공도 있었다.




수상함에 의한 특공


 제 2함대의 야마토 이하 수척의 함정에 의한 오키나와 수상특공에서, 출격부대는 편도 연료만을 탑재한채로 출격했으며 구체적으로 군령부에서 2,000톤의 중유를 할당했고 연합함대 사령부도 이를 승낙하였다.
 군령부 제1부장인 토미오카 소장은 연함함대 참모부장 다카다 소장에게 이것을 엄수하도록 명하고 있으며 45년 4월에 일본 해군의 중요재고는 5만톤에 못미치는 실정으로, 이미 남방 항로가 두절되어 각종 자원과 식료품을 일본에 공급하는 최후의 목숨줄인 조선, 만주등과의 항로를 호위하려고 한다면 한달에 최저 7,000톤의 중유가 필요한 상황에서 마지막 남은 연료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실 2,000톤이라도 그 분량만으로 편도라는 것이 아니라 전투 행동에 실시하면서도 어떻게든 운이 좋다면 1회 왕복은 가능한 분량으로 연합함대 측에서는 보급부서와 연료창을 갈궈서 "죽으러 가는데 어떻게든 먹여서 보내라"고 닥달을 하여 나중에 책임추궁을 당한다면 "명령 전달이 확실하지 않고 과적 분량은 후일 회수할 예정이었지만 완수할 수 없었다"는 식으로 입을 맞춰두면서 까지 연료를 보급했다.

 아무튼, 이로써 특공에 동원된 부대는 가능한한 연료를 적재하여 야마토의 경우는 4천톤을 적재하여 약 63%, 야하기의 경우는 약 93%, 구축함 이하는 가득히 연료를 탑재하여 당초 예정보다는 5배 정도로 연료를 탑재했다. 이리하여 기준속력 16노트로 이동할 경우 4~5회를 왕복할 수 있으며 연료 소비가 5배에 달하는 전속 항해를 계속하더라도 왕복은 가능한 분량의 연료를 탑재했지만 이로써 일본의 항로 호위용 연료도, 조직적인 수상함 공격력도 파탄나 버렸다.




항공전

 태평양 전쟁 말기에 B-29에 의한 일본 본토 폭격이 개시되면서 이를 요격하기 위해 일본은 사력을 다했으며 일본 본토 방공전에서 활약한 대표적인 전투기로는 해군의 라이덴, 겟코, 시덴 카이, 육군의 쇼키, 토류, 히엔, 하야테, 5식 전투기 등이 있지만 터보차저를 비롯한 고공 기동 기술이 일본에는 실용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기로는 B-29가 비행하는 고고도에는 도달하는 것조차 어렵고 설령 그 고도에 오른다 하여도 충분한 기체 성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B-29의 높은 방탄성과 두터운 방어탄막, 고속 때문에 요격은 대단히 난황을 거듭했으며 기초 공업력 부족으로 인한 기술력 부족때문에 결국 종전까지 B-29에 완전히 대응할 수 있는 요격기는 완성되지 못했다. 이에, 차선책으로 육, 해군은 100식 정찰기나 사이운 같은 비교적 성능좋은 정찰기나 긴카, 스이세이와 같은 폭격기에 경사 기관총을 부착한 야간전투기로 요격을 하거나 4식 중폭격기 히류의 개조기체에 고사포를 쌓아 날리는 등의 갖은 방법을 동원해보았지만 대부분 ㅣ효과는 없었다.

 본토 방공전에서 특공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은 가미카제 특공대 조직 2개월 전에 B-29의 기타 큐슈 폭격에서 통상 요격에 나온 육군 제 19비행 사단 비행4전대 소속으로 토큐에 탑승한 시게오 병조가 "돌격하여 전력투구하겠다!"라고 무선으로 결별선언을 한다음 B-29에 돌격해서 2기를 격추한 것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관해서 2차대전에서 유명세를 떨친 쉬발라 햏=굽시니스트 햏의 표현을 참고해보자.


...1944년 8월 20일 밤에 B29편대가 야와타 제철소에 대한 두번째 공습을 감행했는데, 이날 하루동안 일본 방공 방위군은 졎빠지게 노력해서 14대의 B29를 떨구는 대성과를 거두었사옵니다.
이날 2대의 B29가 노베 시게오라는 하사관한테 잡혔사옵니다. 이 친구가 용 사냥꾼 ki-45 토류를 몰고 B29를 맞출라고 존내 기관포를 쏴갈겼는데 다 빗나갔더이다.
이 똘빡이 열받아서 외치는 소리가 무전기로 들려왔습니다.

" 씨빠빠라바라바라밥바디바라바!!!!!!!!!!!!! 저 쒝 뒤통수 꼴아박는다!!!!!!!!!!!!!!!!!"(*`д ´)

노베는 거대한 용을 향해 자신의 뱅기를 꼴아 박았사옵니다. (뒤에 타고 있던 놈이 불쌍하네.....)  
이 두대의 뱅기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공중분해되었는데- 이 때 B29에서 떨어져나간 큼지막한 엔진이 오른편 기미쪽에 있던 다른 B29랑 충돌했사옵니다. 그 B29는 날개가 떨어져서 빙글빙글 지상으로 추락해버렸사옵니다.
저 똘추가 자살공격으로 두대의 B29를 잡은 데에 대해 장군 나으리들은 존내 구국의 화신이라고 칭찬해버렸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자살 돌격 전술이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주요한 전술로 인식되게 되었사옵니다.
나름대로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전투기가 목표물에 충돌하기 직전에 조종사가 잽싸게 탈출하는 방법에 대한 실험도 신중하게 행해졌으나 뻘짓으로 판명되었습니다.( ´ Д`)

군 고위층들은 1945년 1월18일자 작전명령으로 그러한 전법을 정식으로 재가하였사옵니다. 그 거대하고 값비싼 B29와 그 11명의 승무원들을 단 한대의 작은 전투기와 1명의 조종사의 희생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이는 꽤나 경제적인 전략이라는 주장이었사옵니다.

" 이 방법이 무익하다는 견해를 갖는다면, 큰 잘못이 될 것이다."   (아놔 젖같은 새퀴들...)( ノ` 皿´)ノ

실제로는 그 자살 전법이 틀별히 유리한 것도 없었사옵니다. 기동력을 요하는 이 전술은 겉보기보다 훨씬 복잡하고 어려움이었으니, 일단 B29 가까이 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B29의 수많은 총포앞에 노출되어야하고 특히 정면에서 접근시 그 양자의 접근속력이 시속800km 이상이 되기 때문에 초 숙달된 뱅기 운전 기술이 필요한 것이옵니다. 이는 저 장군 나으리들이 주장하듯 미숙한 신참들을 그 작전에 사용한다는 주장이 개의 음성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요.


https://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6706&page=1&search_pos=-9150&k_type=1000&keyword=%EC%89%AC%EB%B0%9C%EB%9D%BC)



 당시 육군은 본토 방어에 필요한 능력이 충분한 요격기가 당시 일본에 없었기 때문에 육탄돌격을 해서라도 무장, 방탄장비, 통신 안테나까지 철거한 "무저항기"라고 칭한 기체를 만들어 이것으로 B-29에 자살돌격을 하겠다는 작전을 세웠으며 최초로 이런 부대가 조직된 것은 11월 7일에 수도 방공부대인 육군 제10비행 사단 예하 부대에 대하여 사단장 요시다 키하치로 소장의 명령으로 1 부대당 각 4기씩 자폭기의 편성 명령이 발령되었으며 이후, 대도시권의 방공 임무 부대를 중심으로 공대공 특공부대가 조직되었다.

 이 들이 최초 출격한 것은 같은해 11월 24일, 사이판 섬에서 도쿄를 최초로 공습한 B-29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으며 제 47전대 소속의 미타 요시오 하사가 토류로 자폭공격을 감행하여 B-29 1기를 격추하고 전사했으며 같은 53전대의 이리야마 하사는 충돌 직전에 탑승기체가 공중분해되었다.

 한편 비행기 자폭공격에서는 탑승원이 낙하산 강하나 손상된 기체로 어떻게든 생환할 가능성이 적게나마 있었기 때문에  2번이나 자폭공격을 하고도 2번 다 살아남아서 마침내 오키나와에서 함선 특공으로 전사한 비행 제 244전대의 시노미야 도오루 중위나 같은 B-29에 2회 자폭공격을 감행하고 생환한 나카노 마츠미 하사와같은 진기한 예도 있었으며 대 함선특공처럼 거의 100% 사망을 각오해야 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결국은 살아올 가능성이 별로 없는 특공이라는 점에는 변화가 없엇다. 또, 이런 형태의 특공은 일본 본토에서 사람들이 목격하는 중에 행해진 것 때문인지 다음날이면 사진이 첨부되어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것이 적지 않았다.

 해군의 경우에는 공대공 특공대를 조직으로 결성하지는 않았지만 특공이은 상당히 있었으며 육군의 자폭공격 부대의 최초 출격에서 선도한 것도 해군이었으며 사카모토 중위는 제로 전투기로 요격 전투중, 기타 큐슈 상공에서 B-29에 자폭공격을 해서 격추한뒤 전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1기로 2기를 격추했다던지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방어력이 강한 B-29가 일본기 2대의 동체충돌공격을 받고도 생환한 것처럼 실제의 전과는 좋지 않았다. B-29의 일본 폭격에서 1회 공격시에 입은 최대의 손실율은 15.9%로 평균적으로는 1.38% 수준으로 33,000기 출격에서 전투에 의한 상실기체는 450기 정도다. 이 수치는 특공만이 아니라 주, 야간 전투기 고사포의 전과도 포함한 수치로 특공의 전과는 더욱 낮아지며 B-29에 의하여 일본에 투하된 폭탄은 14만 7천톤에 달하는 양이다.

 결국 이러한 고육지책도 이오지마가 점령되어 B-29가 무스탕을 비롯한 우수한 호위기의 방어를 받게 되자 통하지 않게 되었으며 항공모함 함재기 부대가 본토공습에 참가하기 시작하여 일본군 항공기지를 습격하게 되자 무저항기나 야간 전투기 등은 절호의 표적이 되어 차례대로 격추, 지상격파 되었다. 결과적으로 특공이 성공하는 최종 비율은  20~30% 정도라는 것이 미국측의 계산이다.



독일 공군의 경우


 연합군의 중폭격기에 직접충돌공격을 가한다는 유사한 개념의 공격은 독일에서도 시행되었으며 엘베 특공대라고 불렸다. Bf 109나 FW 190등을 사용해서 기관총을 난사하면서 적기를 일직선으로 돌격하는 전법으로 1945년 4월 7일에 약 189기에 출격했으나 이때는 반드시 직접 동체 충돌공격을 하라는 것은 아니고, "적 중폭격기를 정면으로 사격해서 각자 1기는 격추하도록 하고, 필요하다면 충돌하라"라고 명령하였으며 조종사들은 무선으로 흘러가는 독일 국가를 들으면서 돌격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합군의 호위전투기군에게 공격을 당하여 출격기의 대부분과 파일럿의 절반 가량을 잃은데 반해 전과는 겨우 8기의 폭격기를 격추하는 것에 머물러서 전과가 적었기 때문에 곧바로 중지되었다.

 이 외에 \'미스텔\'(영어의 미슬토, 겨우살이에 해당)라고 불리는 기체가 있었으며 모기와 자기로 구성되어 자기는 융커스 Ju88기를 개조하여 폭약과 무선조종장치를 달아 기체의 상부에 연결된 자기 Bf 109와 세트로 비행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목표의 상공에서 분리하여 자기가 모기를 유도해서 직접충돌공격을 시키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때 충돌공격을 시행하는 기체는 무인조종상태로, 말하자면 현대의 미사일을 대형화 시킨 개념에 가깝다.

 미스텔은 약간이지만 전과를 들어 이를 좀 더 개량해서 자기에 FW190을 사용하는 형태로 생산되었으나 속도가 늦은 미스텔은 통상의 폭격기 이상으로 적 전투기의 좋은 표적이 되었기 때문에 결국 적 목표물에 대한 공격은 중지되고 교량이나 도로를 폭파하는데 사용되었다.




육상전

 중일전쟁 이후, 일본 육군에서는 97식 전차에 대전차 지뢰를 부착하여 적전차에 직접충돌공격을 하거나 폭탄을 사람이 안아들고 적전차에 육탄 돌격하는 전법을 다수 수앻했다. 이런 행동을 하게된 배경은, 당시 일본육군에는 정상적인 대전차 병기가 존재하지 않는(개발하지도 않았다) 것이 이유였으며 특히 대전 후기에는 무기가 부족해서 민간인을 징용한 "철혈근황대" 등에 이 전법을 강요해서 오키나와전에도 대량으로 시도했다.

 만주의 관동군에서는 소련의 침공에 대비하여 특공반을 편성했고 국경 근처에 구덩이를 파서(일명 낙지단지) 그 안에 숨은 2인 1조의 명사가 야포의 15cm 유탄을 안아들고 신관을 소련군 전차에 부딪혀서 폭파하려는 전법이었으며 전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평가

 

 전쟁에서 정신적인 측면보다 합리적인 물질과 물량을 중시하는 미국에서는 특공대의 공격법을 광기로 평가하고 있었으나 스프루언스 제독은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평가했다고도 한다. 이러한 자폭공격의 발상은 독이르이 프릿츠 X를 참고했다고 할 수 있지만 기술적으로 유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이 탑승해서 유도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이러한 자폭공격의 보도가 미군 병사의 전의 상실을 불러 후방의 가족에게 불안을 준다고 해서 규제되었고 나중에 일괄적으로 보도되었으나 FDR의 죽음과 겹쳐서 발표되었기 때문에 미국내에서의 충격이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장에서는 동양 문화를 잘 모르는 미국이나 영국인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공격에 대한 공포 내지 노이로제가 생겨났다고 하며, 어느 미 해군 항모 승무원은 "우리는 카미카제를 두려워 했고 10사람 중 7명은 눈물로 그 상황을 맞이하고 3명은 증오심으로 적을 격추했다."라고 증언한다.

 프랑스 기자인 베르나르 미로의 경우, 저서 "카미카제"에서 \'산화한 젊은이들의 생명은 무익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순수성의 위대함에 대한 교휸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편, "서양 문명에서는 미리 심사숙고한 계획적인 자살공격이라는 것은 그다지 생각해본적이 없는 것으로 우리의 생활 신조, 도덕,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되며 서구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결국 이런 이해불능성, 공포나 불안으로 인하여 미국이 일본에 원폭을 투하하게된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라고도 한다.

 전후, 일본의 특별 공격부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미친 작전" "전법이라고 할 수 없는 전법"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로, 무엇보다 장기간에 걸쳐서 육성한 귀중한 인명을 무익하게 소모시키는 데다가, 한정되고 귀중한 자원과 병기를 무리하게 소모시키는 데다가 작저느이 지도층들이 앞의 전망등은 생각하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명령을 내리고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는 것이 평가의 근저에 있다.

 게다가 후일로 가면 망상에 가까운 실현 불가능한 목적을 내걸어 승산도 없고 딱히 궁리를 하지도 않은채 임기응변만으로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헛되이 희생시키고 있었다.

 일본에서도 특공작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의견이 강했으나 극우단체, 폭력단, 폭주족을 중심으로 야마토 정신의 진수, 일본인의 귀감이라는 등의 높은 평가를 내리기도 하여 특공대를 본뜬 단체 명칭을 좋아하거나 복장을 특공복으로 정하기도 했으나 일반적으로는 부정적인 평가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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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36 이것이 일제 36년이다! 날조편/진실편 사쿠라 하네(211.61) 16.04.28 171 0
120934 오늘자 토막상식 - 더럽고 비열한 축귀영국놈들의 추태. [13] ㅇㅇㅇㅇ(121.154) 16.04.28 282 2
120933 쫌있으면 배를린공방전의 꽃 5월이네. ㅇㅇㅇㅇ(121.154) 16.04.27 179 0
120931 이런 기관총으로 대체 어떻게 전투를 하는거임? [4] [니]밀알갤로그로 이동합니다. 16.04.27 298 0
120930 좆센징들은 하와이가 대일본의 영토였다는거 알고 계십니까? [15] 카가미 아오이(211.61) 16.04.27 2783 34
120929 일제감점기, 을사조약의 강제는 맞는 표현일까 아오야기 마도카(211.61) 16.04.27 161 0
120928 천벌드립치던 한국인들 한국에 지진났으면 ㅋㅋ 아오야기 시온(211.61) 16.04.27 181 0
120927 조센징들 치맥,치느님거리는거 웃기고 처량하다 [1] 이치노세 리카(211.61) 16.04.27 256 1
120926 일제가 2천년 최고의 지배층이었던 이유 ㅂㅂㅂㄱ 아리사카 마시로(211.61) 16.04.27 220 0
120925 역갤이 하는 한국비판은 수용하면서 왜 반일국뽕 까는건 일뽕이라고 할까 쿠라시나 아스카(211.61) 16.04.27 670 0
120924 중국 은 일제 침략 받지 않았다.- 위키 백과 (출저) 히나타 마사야(211.61) 16.04.27 214 0
120923 난 좆센이 너무 좋다 니시토리 메구미(211.61) 16.04.27 102 0
120922 개센진 그렇군 너무 불쌍하네. [2] 코모리 슈리(211.61) 16.04.27 145 0
120921 좆센여자는 서양남자와 결합하여 피와 살을 섞어 혼혈해 인종개량을 해야한다 우스이 토야(211.61) 16.04.27 255 0
120920 한국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조롱받는건 한국인의 잘못된 역사관 (+반일) 때문 사루카와 킨지로(211.61) 16.04.27 181 0
120919 좆센징 조상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면 지금 현대인 좆센징들을 보면됨 이카리 마사토(211.61) 16.04.27 165 0
120918 조센이 무슨 도검만드는 명인이 있었겠냐? 젠부 고철녹슨칼. 사토 코타로(211.61) 16.04.27 208 0
120917 열등하고 미개하고 천박하고 이 더럽고 추한 좆센징들이 국뽕이 국뽕인 원인 이와쿠마 유카리(211.61) 16.04.27 117 0
120916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한양의 똥치우는데 예산81% 소요... 타카츠카 치토세(211.61) 16.04.27 219 0
120915 중국은 원래 일본과 대립이지만. 한국은 통수 치는 야비한 국가라 중일인이 와타누키 카렌(211.61) 16.04.27 142 0
120914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지원을 달갑게 여기지않는건 그 의도가 불순하기때문 미야세 미히로(211.61) 16.04.27 110 0
120913 역갤이 헬조센 전파안했으면 지금도 국뽕에 쩔어서 개소리하고잇을듯 나루미 토아(211.61) 16.04.27 142 0
120912 좆센이 전쟁나면 20대 남자는 여권 못 쓰게 되니, 탈출 못 한다. 로쿠온지 카오루코(211.61) 16.04.27 252 0
120911 반일인 이유는 한국이 임시정부 계승이라그래 나루미 코우키(211.61) 16.04.27 157 0
120910 인류역사에서 제일 웃긴게(笑) 좌빨 좆센징들이 친일파 운운하는거다 요네타니 미사키(211.61) 16.04.27 123 0
120909 약간 긴 글) 한국인은 정말 짐승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야마사키 하루나(211.61) 16.04.27 202 0
120908 조센 내에서 괴담으로 치부하는 일제시대 조선인의 일본인 살해 츠치다 메이(211.61) 16.04.27 96 0
120907 한반도를 암흑으로 만든 악랄한 일제. 마치코 아키라(211.61) 16.04.27 124 0
120906 한국남자들은 대일본이 처들어오면 자국여자 강간하고 임신할꺼라고 난리더라 우치키 유키(211.61) 16.04.27 67 0
120905 독도에 대한 일본의 수작은 조센 위정자들이 원인제공을 했지 모리노 키린(211.61) 16.04.27 46 0
뉴스 가수 소유, 성형설 루머에 직접 해명...10kg 감량에 앞트임은 메이크업 디시트렌드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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