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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글)대만 함 건조사례 보다 찾아본 1970년대 한국 함 건조 에피소드

인천간다(175.208) 2017-09-16 04:03:45
조회 8946 추천 59 댓글 27
							

밀덕짓하다가 본 다른 개도국 해군들은 그냥 돈없으면 없는 대로, 여유가 있으면 있는대로 형편에 맞게 함 자체를 사오든가 


정 안되면 공여를 받아오는 게 일반적인 거 같거든. 


가끔 형편 괜찮은 나라는 이미 존재하는 외국함의 설계를 사와서 그대로 국내 건조하거나



근데 한국해군은 돈도 전투함 건조기술도 없고 미국 배를 공여받아쓰던 70년대에도 가능하면 독자함형(백구급 제외), 국내 건조를 좋아하는 상남자, 근성가이들이었음. 


40년이 지난 지금도 썩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음.  


1차 출처 : 1999년 대한조선학회지 '1970년대 해군의 조함', 엄도제 제독

2차 출처 : http://doorstep10.egloos.com/3787245, 직접 타이핑


에피소드1-조함 그런 거 없다(학생호 건조 제안)


나는 3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70년 9월 5일 귀국하자마자 해군본부 함정과 조함 담당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해군의 조함계획은 전무하였고, 조함예산이란 항목 자체가 없었다. 부임한지 두 달이 지난 1970년 11월 청와대에서 방위성금을 가지고 고속청 한 척을 구입할 계획을 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보고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고 나는 구매계획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때 나는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이제부터 해군 조함분야의 일익을 맡아 해군이 나에게 베푼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고 결심하며 태평양을 건넜는데 기껏 외국 함정을 구입하는 업무가 주어졌으니 그 실망감은 쉽게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이튿날 출근하마자 함정감께 나의 이견을 피력하였다. 주어진 돈 3억 8천만원으로 70톤 40노트 고속정 2척을 국내 건조하겠다는 게 요지였다. 함정감과 함께 군수부장(양득봉 소장, 해사 3기)은 나의 의견에 대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군수부장 : (부드러운 음성으로) 누가 어떻게 만들어.

옆에 있던 함정감 : 엄소령이 만들 수 있답니다

군수부장 : (약간 격앙되어) 임마 네가 어떻게 그런 고속정을 만들어  

나(엄도제 제독) : 왜 제가 못 만든다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해군사관학교 나와서 한국에서 제일가는 서울공대 나왔고,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명 대학원 나왔는데 왜 못 만듭니까?  

군수부장 : ........... (담배 한개피 뽑아 불을 붙이고) 참으로 자신 있나?


나는 아무런 다른 생각 없이 미국 유학시절 콜라 한 잔을 참고 'High Speed Boat'라는 제목이 붙은 문헌은 무조건 복사했으며 기술자료도 많이 있다고 조금 과장되게 설명했다. 그 당시 미국에서 16절지 한 장을 복사하는데 미국 돈 10센트로 콜라 한 병 값이었다.


그러자 군수부장은 "그럼 총장실에 가보자"라며 일어섰다. 총장(장지주 대장, 해사1기)는 원래 말수가 적은 분이라서인지 군수부장의 설명을 듣고 "그럼 청와대에 가서 설명해보지" 한마디뿐이었다. 다음날 오전까지 군수부장이 청와대에 가서 설명할 자료를 준비해드리고 나니 왠지 반분이나마 풀리는 기분이었다. 며칠 후 군수부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 안을 각하께 보고할 수 있도록 좀 더 보강한 후 병풍을 만들어라"하면서 청와대 방문시 가지고 갔던 고속정 국내건조 계획서를 돌려주었다. 


-중략- 


문제는 사업 계획서 작성에 필요한 자료가 전무했다. 함정 건조가 아니더라도 참고할만한 다른 사업계획서조차 없었다. 그 당시 국가 재정으로 군비증강사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계획서에 포함될 내용은? 얼마나 상세하게? 그 양식은? 얼마나 큰 배를? 필요한 재료비는? 인건비는? 건조기간은?' 애매한 상황이 너무 많고 이 사업이 실패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한국 유일의 조선소인 대한조선공사를 방문해 문의해보아도 고속정을 설계 건조해본적이 없어 모르겠다는 대답뿐이었다. 결국 문제를 거꾸로 풀어 예산은 한 척 당 1억 9천만원짜리 고속정을 만드는데 재료비, 인건비, 기타 경비 등을 대별하여 조정하고 제원 및 성능은 톤수와 속력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장이었는데 어느 나라에서도 소형 고속정용 해상포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었고 있더라도 한정된 건조비로 구매가 불가능했기에 6.25때 미 해군으로부터 인수받은 기존 함정에서 철거한 해상포 2문과 로켓포 2문을 설치키로 계획하였다. 1971년 1월 대통령의 국내 건조 재가가 났다. 


에피소드2-꾸역꾸역(해군 조함과의 탄생)


학생호의 국내 건조가 결정되면서 해군본부 함정감실에 조함과가 탄생했다. 해군 창설 15년 만에 1971년 1월 22일 조함과가 간판을 걸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은 일이지만 처음 간판을 건 장소가 해군본부 본관 옥상에 있는 청소 도구 저장소였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당시 우리 해군 고위층은 영원토록 미국이 퇴역함정을 공급할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해군이 자력으로 함정을 설계 건조한다는 건 너무 벅찬 과제라고 생각했던 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청소 도구 저장소에 조명설비, 난방설비도 제대로 안된 곳에서 함정을 설계하라고 했을까 겨울에는 추워서 입김으로 손을 녹이고 여름이면 통풍이 안되어 한증을 하고 비가 오면 도면의 축척이 변하여 도면을 그리지 못하는 곳이었다.


에피소드3-된다! 돼!(학생호 시운전)


밤낮을 가리지 않은 설계, 건조, 진수 후 12월 18일에 해상 시운전을 위해 송도 앞 바다로 출항했다 현장에 도착해 저속, 중속, 고속으로 속력 시험이 끝나고 마지막 최고 속력 시험을 하는데 시운전 요원 전원이 긴장했다. 육상 단거리 선수가 100m를 뛴 것 같이 순간적으로 최고 속력시험은 끝났다. 순간 조타실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만세 부르는 사람, 껴안고 껑충껑충 뛰는 사람, 체면도 예의도 없이 나를 껴안으려고 달려드는 사람들. 모두들 흥분한 나머지 역코스로 다시 체크해봐야 하는 것도 잊고 조선소로 돌아와버렸다. 절름발이 시운전을 한 것이다. 돌아오자마자 함정감께 장거리 전화를 걸었다. 그때만 해도 장거리 전화가 꽤 비쌌는데도 '41노트가 났다는 보고를 믿지 못하고' 그게 사실이냐를 되풀이하면서 10여분이 넘도록 전화를 끊을 줄 몰랐다.->편집자 : 기억해야되는 게 지금까지 70톤짜리 고속정 만드는 이야기임ㅋㅋㅋ  


이외에도 고속정 관련 골때리는 에피소드가 많음. 


에피소드4

국방부가 인천항으로 침투하는 북한 고속정을 막으려고 일본에서 FRP 선체의 레저용 보트를 사려고함

->대간첩 일본산 레저용 보트는 아닌 거 같지만 국방부 장관 지시니까 대놓고 반대할 수 없음 -> 미해군 참모장을 이용해 장관을 설득, 결국 국내 건조로 결정

->근데 막상 FRP에 대해서도 모르고 FRP 선체를 건조해본 적도 없으니 300페이지짜리 미국 FRP 설계편람을 실무자와 돌려가며 읽고는 실무자에게 설계를 명령

->PROFIT!!  


에피소드5

30톤짜리 알미늄 고속정 FB(B) 건조 시도->만들어 놓고보니 설계 실수로 인해 복원력에 문제가 생김. 심지어 침몰할 뻔함.->문제점 일부분 수정 후 함대사령관이 "인수하라 우리가 언제 배 만들어본 적이 있냐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실력이 붙는 것 아닌가"라고 커버쳐주고 인수함.->이 일로 함의 안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참수리 포항급 울산급 설계 건조에 큰 도움이 됨???!!!!



에피소드6-부들부들(1971년 처음으로 고속정 건조 이후 1977년 울산급 기본설계에 지원을 받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임. 즉 해군이 전투함 설계한지 7년째..)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일은 미 해군성 OP-63을 방문했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워싱턴 체류 마지막날로 기억하는데 해군성 OP-63을 찾아 P.G BOYD 해군소장과 인사를 나눈 후 실무진과 회의를 가졌었는데 미국 측 책임자 격인 ANDERSON 대령 외 2명이 참석했었다. 회의가 증반쯤 진행되는데 ANDERSON 대령 이 친구가 구두를 신은 채로 양다리를 책상 위에 얹어놓고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고는 하는 소리가 "당신들 꿈을 꾸느냐? 한국 해군이 아무런 기술도 없으면서 어떻게 군함을 만든다는 거냐?" 질문 반, 비아냥 반, 우리 일행의 기를 죽이는 정확히 예의에 어긋나는 경멸조의 말을 서슴없이 내 뱉었다. 나는 그런 꼴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격투를 벌릴 수도 없고, 회의를 끝내자고 건의하여 더 이상의 아무런 결과 없이 회의를 끝내고 PENTAGON의 그 긴 통로를 걸어 나오면서 다시는 미 해군에게 설계 문제로 아쉬운 소리를 안 하기로 결심했었다.



에피소드7-유구무언(꺼라위키에 있는 그 울산급 레전드 에피소드, 울산급 기본설계 중 무장배치와 관련된 일)


1978년 2월 22일 무장배치에 대한 총장 보고가 있었다. 나의 브리핑을 듣고 있던 총장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이, 주포가 0-1 deck에 설치된 전투함이 어디 있느냐?"하고 이번에도 거절할 태세였다. 나는 "구축함이 간첩선을 잡아야 하는 경우는 어디 있습니까?" 하고 총장 질문을 반박(?)했었다. 총장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알았다"하고 품의 서류를 승인했다. 군수부장 및 참모차장 브리핑 횟수까지 합쳐 총 9번만에 무장배치에 대한 승인을 받았다.



에피소드8-장발장(울산급 국내건조가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


1976년 나 혼자서 기본 설계를 국내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해군이 사용하고 있는 함정 건조사양서(함정 설계 건조 시에 필요한 함정, 장비 및 자재 등의 기술적인 요구 사항을 명시한 문서)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었다. 이 사양서 입수는 우리의 해군 조함사에 큰 공헌을 한 대목이라 생각되어 그 입수 과정을 설명하면, 1974년 해군이 미국의 타코마 조선소에 발주한 200여톤급 알미늄 고속정 건조 감독관으로 임명된 김국호 대위는 해군본부 조함과에 근무할 때 많은 종류의 고속정을 설계하면서 건조 사양서 작성의 고충을 체험한지라 타코마 조선소의 도서관에서 미 해군함정 건조 사양서를 발견하고 670여 페이지나 되는 미 해군의 함정 건조 사양서를 슬쩍(?)하기 위하여 몇달간 도서관을 관리하는 할머니께 아양(?)을 떨면서 각별히 친해진 다음 어느 날 그 크고 무거운 사양서를 잠바 속 겨드랑이에 끼고 도서관 문을 통과 그 소중한 자료를 입수해 가지고 귀국했다. 이 사양서는 1976년 이 설계 사업을 외국에 의뢰하지 못하게 하는데 큰 힘이 되었으며 약 20권을 복사하여 현재(당시 1999년)도 긴요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런저런 당시 전투함 건조 이야기 찾아보면 왜 울산급, 포항급이 그 모양이었는지 이해가 됨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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