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법쩐 (드라마)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타 갤러리 법쩐 (드라마)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개념글 리스트
1/3
- (약스압) 고전 닌텐도 게임기들은 어떻게 TV에 연결했을까? 블루레이빌런
- 개업 취소된 것 같다는 임성근 짜글이 식당 근황 ㅇㅇ
- 청와대, 특활비 국고반납... 2848
- 김민석 '신천지가 나를 좌표 찍었다' 2848
- 트황 트래버노아 고소 입갤 ㅋㅋㅋㅋㅋ 빡빡
- 한국에서 유난히 빵값이 비쌌던 이유 Fila
- 어떤 게임의 유저들이 11년 동안 찾고 있는 것 후편(完) 폴리쉬드
- "김일성광장 휘젓자"·"아무도 못막아" 집요했던 무인기침투 ㅇㅇ
- 다카이치 총리 대승 전망…여당 ‘3분의 2’로 헌법 개정 힘 받나 ㅇㅇ
- ■호날두 소속팀 알나스르 상대로 보이콧 알나스르광팬
- 탈주한 직원들 회유하는 백종원 선생님 ㅋㅋㅋ ㅇㅇ
- 사진 한 장에 긁힌 대만성 네티즌들 (比 한국, 규슈) 난징대파티
- 싱글벙글 손종원 셰프의 냉장고 공개 ㅇㅇ
- AI 때문에 빠르게 나락 중인 번역가들...news ㅇㅇ
- 지디도 성공한 공 맞추기 실패한 야구선수 ㅇㅇ
"중국인 댓글 공작 잡겠다"는데…IT업계 고개 젓는 이유
댓글 국적 표기제, 실효성 논란 속 IT 업계만 곤혹• 보수 진영에서 포털 뉴스 댓글 작성자의 국적을 표기하도록 하는 법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IT 업계에서는 기술적 실효성이 떨어지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들은 VPN을 이용한 우회 접속으로 인해 댓글 작성자의 실제 국적을 파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며, 이는 오히려 일반 이용자들에게 불편만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터넷 실명제 없이는 댓글 작성자의 국적 확인이 불가능하며, 외국 IP 차단 역시 VPN 때문에 어렵다고 설명하며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국적 표기 기준이 모호하고 해외 출장이나 거주 중인 한국인들의 댓글 작성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헌법상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하여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통신의 비밀과 자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에도 유사한 법안 발의가 있었으나 통과되지 못했으며, IT 업계는 매크로를 통한 여론조작이 문제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없는 댓글 국적 표기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상황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표하고 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5/0005245819
작성자 : ㅇㅇ고정닉
보수의 심장에 파란색 깃발을 꽂다 (3편 - 김부겸)
[시리즈] 한국 정치에서 험지 출마에 도전한 정 · 한국 정치에서 험지 출마에 도전한 정치인 (1편 - 노무현) · 호남 출신 뜨내기에서 보수 정당 대표까지 (2편 - 이정현) · 보수의 심장에 파란색 깃발을 꽂다 (3편 - 김부겸) 민주화 이후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험지에 출마하는 일은 종종 있어왔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어서 정치 신인으로서 거물을 이기고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서 등등 이 시리즈는 험지 출마의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가는 요즘 한국 정치판에서 험지 출마에 도전한 정치인들의 선거 이력을 돌아보고, 그 가치를 되새겨 보는 시리즈이다 김부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난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자세히 들어가면 박정희 유신 정권 시절부터 학생 운동을 시작한, 586보다 선배 세대의 운동권이다 학생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여러 전과가 생긴 김부겸은 여타 운동권 출신들처럼 서점 등을 운영하며 민청련, 민통련 등의 단체에서 운동을 이어나갔다 재야 생활의 한계를 느끼던 중 김부겸은 3김에 반대하여 설립된 제3당이었던 한겨레민주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하였고 제13대 총선에 동작 갑에 출마했지만 3.25%의 득표율로 낙선하며 큰 주목을 받진 못하였다 총선 패배로 한겨레민주당은 해산되었고 김부겸은 김영삼의 3당합당에 반대하며 탄생한 '꼬마민주당'에 입당하였고 당시 노무현 당 대변인 밑에서 부대변인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 4년 전 총선에서 김부겸이 이웃집에 살던 '할머니 간첩' 리선실에게 5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로 입건되는 일이 발생한다 다행히 간첩인 황인오와 이선실의 대화록에서 "부겸이 이놈, 키워서 혁명 전사를 만들려 했더니 도무지 협조를 안 해. 돈도 좀 주려 했더니 받지도 않고"라는 기록이 나왔다 김부겸은 그 결과 국가보안법 위반(불고지죄) 혐의로 집행유예가 나왔고 피선거권은 이후 사면으로 회복되었다 김부겸이 명백히 간첩의 타겟이 된 사건이었다 이때 김부겸의 재판을 챙겨 준 사람이 김대중이었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해 새정치국민회의를 차리며 정계개편을 꾀하자 김부겸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그러나 김부겸은 또다른 지역주의 정당이 탄생할 것을 우려해 김대중을 따라가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였다 그러면서 노무현 등과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일명 통추)를 결성하였다 1996년 총선에서 과천시•의왕시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보온병 포탄' 신한국당 안상수에게 밀려 낙선했다 이후 민주당은 여당 신한국당과 합당하며 한나라당이 되었고, 김부겸은 자연스레 한나라당 소속이 되었다 보수 정당 소속이었음에도 김부겸은 당내에서 중도좌파로 분류되었고 주류였던 민정계에 반대하는 소장파의 역할을 하였다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본인의 첫 정치적 기반이 될 군포시에 출마하였고 당선되어 초선 타이틀을 달았다 한나라당이 1997년, 2002년 대선에서 연이어 패함에도 소장파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회창이 당의 고삐를 쥐고 있던 때에는 이회창이 소수였던 민주계에 힘을 실어주며 민주계와 민정계가 어느 정도 조화를 이루었으나 이회창이 두 번의 대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민정계인 최병렬이 당을 장악하자 민주계들은 한나라당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러자 2003년 김부겸은 김영춘, 이부영, 안영근, 이우재와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노무현의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다 이들 5명은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렸다 이후 2004년 , 2008년 제17대, 제18대 총선에서 군포시에서 연이어 당선되며 3선 의원의 고지에 오른다 그리고 2012년 제19대 총선.. 김부겸은 돌연 고향인 TK의 대구 수성 갑에 출마 선언을 한다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다 사실 아예 예상되지 않던 건 아니었다 김부겸은 2011년부터 일찍이 대구에 내려가 각종 지역행사부터 마을 잔치까지 참여하며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민주당계 정치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이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역이었던 새누리당 이한구 후보에게 패하였다 그래도 40.42%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김부겸은 2년 후 2014년 대구광역시장 선거에도 도전하였다 상대는 권영진 권영진과는 과거 한나라당에 있을 때부터 소장파 모임이었던 '미래연대'를 함께하며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결과는 40.33%로 낙선 표차는 16%p차였고, 보수의 심장 대구 전체를 대상으로도 소구력이 있는 후보임이 증명되는 결과였다 그리고 2년 후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도 역시 대구 수성갑에 도전했다 상대는 유능한 경기도지사 출신인 '도지삽니다' 김문수 '도지삽니다'로 부정적 이미지가 있긴 했지만 유능한 행정가이고, 보수 대권 잠룡으로 평가받던 김문수였지만 김부겸에게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그 이유는 1. 대구 정통성에서 밀리던 김문수 김부겸은 해당 선거까지 대구에서만 2연패를 하던 중이었으며 지역기반을 꾸준히 다지던 중이었다. 그러나 김문수는 경기도에 지역 기반이 있었지 대구의 사정은 잘 몰랐다2. 새누리당 공천 파동 해당 선거에서 대구 정가가 매우 뒤숭숭하였다 일명 '진박 감별'로 일컬어지던 박근혜 정부의 공천 개입으로 비박 당대표 김무성과의 갈등을 겪고 있었고 대구 지역에서는 기시다 후미오, 류성걸, 유승민 등의 현역 의원들이 비박이라는 이유러 컷오프되었고 급기야 기시다 후미오, 유승민은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무성은 '옥새런'을 단행했다 선거 유세를 지원하는 김부겸의 딸 배우 윤세인 씨 그 결과 김부겸은 마침내 보수의 심장에 파란색 깃발을 꽂았다 그것도 62.3%라는, 누가 보면 민주당 텃밭으로 보일 정도의 압도적인 스코어로. 순식간의 민주당의 대권 잠룡이 되었다 이 선거는 이정현의 순천, 정운천의 전주 을, 김영춘의 부산진 갑 당선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의 상징이 된 선거가 되었다 김부겸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이후 치러질 대선에 출마 선언을 하였다 험지 지역구 정치인답게 새누리당도 포용하는 공동정부론, 개헌론 등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가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의 심기를 거스렀고, 적폐 천산을 내건 문재인 대세론을 꺾지는 못 하였고 일찍이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다 이후 김부겸은 문재인 정부의 첫 행안부 장관이 되었다 행안부 장관으로서 증세에 대한 발언, 경찰 조직을 질책하면서도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힘을 실어주는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을 보좌하는 모습을 보이며 실세 정치인 장관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 2018년 지선에서 대구광역시장 출마론이 나왔으나 불출마 선언을 하였다 2019년 장관에서 퇴임하고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 갑에 출마한다 상대는 기시다 후미오 기시다를 꺾는 여론조사가 발표되기도 하였으나 대체로 기시다에게 주도권을 내주며 39.29%로 낙선하였다 장관직을 수행하며 지역구 관리에 신경쓰지 못했고 문재인 정부와 여당 더불어민주당의 독선적인 모습, 비리 등이 보수 지지층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킨 점이 온건하게 평가되던 김부겸에게도 불통이 튀었다 그 중 압권은 홍익표 당 대변인의 '대구 봉쇄' 발언이었다 당시 2월에 발생한 코로나19가 초기에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되던 상황이었는데 홍익표가 '당정청 회의 결과 대구 지역에 최대한의 봉쇄 조치를 검토'한다는 발언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TK지역에서는 엄청난 역풍이 일었다 낙선한 김부겸은 '농부는 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며 패배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듯하였으나 불과 4개월 후에 영님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며 빈축을 사기도 했다 간혹 김부겸이 '대구 봉쇄' 발언을 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김부겸은 오히려 해당 발언을 한 당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이후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총리로서 코로나 정국을 마무리하고 차기 윤석열 정부에게 국정을 인수인계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무총리 퇴임 후에는 민주당에서 선대위에 참여하는 등 중도적인 이미지로 소소하게 역할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은퇴한 상태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민주화 이후 보수계열 정당에서 광주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민주계열 정당에서 대구에 당선된 이는 김부겸이 유일하다 물론 두 지역이 양당의 텃밭이어도 역사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에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그만큼 민주계열 정당에서 김부겸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하지만 지역구 특성상 당내에서 온건파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고, 정치적 상징성에 비해 당내 선거에서는 다소 약한 한계를 보였다 안타까운 우리 정치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작성자 : 귀귀또또고정닉
차단 설정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전체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차단 등록은 20자 이내, 최대 10개까지 가능합니다.
설정된 갤러리
갤러리 선택
설정할 갤러리를 선택하세요.
[갤러리]
차단 기능을 사용합니다. 전체 설정과는 별개 적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