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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쿠짓 100% 연말 도쿄 여행 - 2일차 (코미케 1일차)
[시리즈] 오타쿠짓 100% 연말 도쿄 여행 · 오타쿠짓 100% 연말 도쿄 여행 - 1일차 (성지순례, 아키바) 푹 자고 일어나 맞이한 결전의 날 코미케... 코믹마켓 씹덕들의 대축제 이번으로 50주년을 맞이한 세계 최대의 서브컬쳐 행사 진짜 씹덕 중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 이름을 어릴 때부터 들어왔었기에 드디어 도쿄 빅사이트로 떠난다는 것이 존나게 흥분되었다 긴시초에서 버스 타고 도착한 아리아케 저 멀리 서남관 줄을 서고 있는 대기열이 보인다... 코미케를 입장하기 위해서는 티켓이 필요한데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외국인용 이플러스 QR로 샀음 왜냐면 안일하게 손 놓고 있다가 리스트밴드 오전 티켓이 매진되어버렸거든 시발 이플러스껀 8시에 리스트밴드로 교환해야하는 과정이 필수라 시간면에서 좀 손해가 있다 그래서 1일차는 그냥 오전조 입장 시작 시간인 11시에 맞춰서 도착했음 근데 개씹대참사가 일어난게 난 계획을 동관 -> 서관 -> 남관으로 잡았는데 11시가 되니까 동관 입장 대기줄이 막힌거임... 2일차에 동관에서 대기해보니까 알게 된건데 동관 대기열 자체가 정원이 있더라고 그래서 결국 짜둔 계획이 죄다 박살이 나버렸음... 진짜 노션이랑 코미케 필독서 보고 조사 존나 했었는데 코미케는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었다 뭐 일단은 리스트밴드 교환하고 근데 외국인용인데 여권검사도 안 하고 그냥 주더라 참고로 리스트밴드는 다 색이 다름 얼리는 무슨 초록색 카드처럼 생겼던데 근처가 하네다공항이다보니 비행기가 존나 보이는데 건물이랑 어우러져서 이게 또 제법 그림이 된다 크 아래 다리는 유리카모메선 지나는 다리라 전철도 지나감 철덕 항덕도 포용하는 빅사이트 서남관 입장줄 입갤 근데 12월 말인데도 최고기온이 11도를 넘어가는 역대급 훈훈한 날씨라 대기타는건 괴롭지 않았음 매번 후유코미 때마다 날씨 씹지랄나게 추웠다는데 나츠코미 불볕더위라던가 생각하면 이번 날씨는 ㄹㅇ ㅆㅅㅌㅊ였다 50주년이라고 하늘도 도와주나봄 대기타면서 후다닥 아침 먹음 이 시간 이후로 저녁 먹을 때까지 포도당캔디로 버팀... 빅사이트 안에 식당이 없는건 아닌데 구경하느라 뭘 먹을 생각이 안 들더라 그리고 마침내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그 건물" 캬... 그동안 창작물에서나 잔뜩 보았던 저 사다리꼴 2개를 눈앞에서 보게 되니까 이미 여기서 감동이 좀 오더라 근데 정작 저 위로 올라갈 일은 딱히 없었음... 그냥 함 올라가볼걸 싶기도 하네 그리고 그렇게 드디어 입장한 빅사이트 우효~~~~~~ 계획을 반대로 뒤집어 서관부터 돌기로 함 와다여사랑 레드롭 센세는 솔직히 뭐 살 수 있을거라 크게 기대 안 했는데 역시나 줄 개길더라... 특히 와다여사는 내게 셔터부스란 어떤 것인지 잘 알려주었다 대신 옆에 있는 ponzoom 작가님 부스는 살만했음 옛날에 (구)달갤에서 핫산 많이 봤어서 뵙고 싶었는데 뭔가 여성이실거 같은 느낌은 들었는데 진짜 여성분 맞으시더라 (R-18은 모자이크함) 그러고나서 다른 -버- 부스들 구경하다가 아오무시 작가님 부스에서 하나 샀음 상당히 과격한 H씬의 작가님답게 꽤나 상남자처럼 생기셨다 그렇게 볼거 대충 보고 동관으로 넘어감 근데 씹 동관 -> 서관은 실내통로로 갈 수 있는데 서관 -> 동관은 외부로 나가서 빙빙 돌아가야하더라 30분 걸린다는거 안 믿었는데 진짜 30분 걸림... 그렇게 입갤한 동관 사실상 코미케의 꽃 같은 곳 1일차의 동관은 블아가 접수하고 있었는데 진짜 블아부스 ㄹㅇ 많더라 익숙한 작가들 다 나오고 hitotose rin 작가님 부스 갔는데 노리던 카에데 동인지는 이미 매진이었는데다 작가님도 안 계셔서 아쉬웠다... 아쉬운대로 일러집이라도 샀음 블아 다 둘러보고 다른 장르 보러 감 무려 Ib 굿즈 부스가 있더라... 어릴 때 진짜 재미있게 본 게임이었는데 벌써 13년 전 게임이지만 아직 굿즈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꽤나 감동이었다 그외에는 프롬겜 부스가 한 8개 정도 있었는데 판매원 코스프레 퀄리티가 씹ㅋㅋ 게임에서 갓 튀어나온 추적자랑 아스토라 상급기사가가 서있더라 던전밥 부스라길래 갔는데 라인업을 보니 그냥 악마가 좋은 사람이었음 날개사자 코스터 좀 땡겼는데 하필 아크릴 코스터라... 동관 1 2 3이랑 동관 4 5 6이랑 동관 7 8은 각각 건물이 분리되어있는데 1일차 동관7 8은 말딸로 잠식되어있었다 이게 코미케인지 핫산탭인지wwww 다 존나게 익숙한www 조선의 만신 부스도 뵙고 복개맘으로 유명한 りょちゃぷ 작가님 부스 가서 하나 삼 Q:포켓쨩은 역시 귀엽네요 A:역시 귀엽죠... 그 외에 다른 익숙한 말딸 작가분들 부스들 구경하다가 나옴 아니 근데 진짜 다들 코미케 갈 때 각오를 해야한다고 겁주던 이유가 있더라 진짜 인파가 좆됨... 코미케 주최측에서 잘 통제하긴하는데 순수하게 인파가 많은건 어찌할 수가 없었음 전쟁임... 코미케는 전쟁이다 근데 씹 동관은 그냥 서막에 불과했었음 진짜는 남관 기업부스 및 코스프레 구역이었다 여기는 ㄹㅇ 자유의지로 이동이 불가능함 하나의 거대한 하이브 마인드가 되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코스프레 구역은 실내랑 실외로 나뉘어있음 날씨가 12월치고 굉장히 따뜻해서 여캐든 남캐든 노출도가 상당한www 생각해보면 원래대로라면 나츠코미는 존나게 덥고 후유코미는 존나게 추운데 코스어들도 참 고생이겠다... 싶음 야생의 두트리오 등장 무쮸킹 댄스 「영역전개」 「밥먹어주자」 엘든링의 악몽 철가시햄 카사장이랑 AIBO 메즈머라이저 근육이 탄탄한 빔 사실 보카로를 제일 좋아하다보니 보카로 코스프레만 계속 찾아다님ㅋㅋ 사람이 뒤지게 많다보니 발견해도 흐름에 휩쓸려서 못 찍고 지나가는 것도 많아서 슬펐음... 기업부스는 간략하게 봤음 아니 진짜 사람이 너무 많아 슬슬 기빨려서 힘들더라... 유키미쿠 스카이타운 대 황 밐 몰?루는 부스 타입문 그 외는 50장 제한 때문에 못 올리겠다 그렇게 4시에 다같이 수고했다고 박수 치고 떠남 떠날 때도 버스 줄이 아주 그냥 씹ㅋㅋ 떠나는 것도 쉽지 않은 코미케였다 지친 몸과 정신은 회전초밥으로 치유함 여기서 먹었는데 회전초밥에 적초 샤리 쓰는 곳은 처음이었음 와 근데 개맛있더라 물론 하루종일 코미케 돌다가 먹은거니 버프가 이빠이 들어있었겠지만ㅋㅋ 그렇게 배불리 먹고 술이고 뭐고 게하로 돌아감 마실 기력도 체력도 없었다...
작성자 : samchi고정닉
일본 경마 최초의 스타 기수에 대해 알아보자
(말딸 공인 레전드들)모든 스포츠에는 레전드가 있고그 레전드들의 시작에는 항상 최초로 기록을 세운 인물이 있긴 마련이다야구를 예시로 든다면, 타이 콥 이전에 호너스 와그너가 있었고,축구로는 펠레 이전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있었다.물론 경마에도 이러한 위상을 갖고 있는 인물이 있는데,(좌측이 야스다 타카요시, 우측이 오가타 토키치)수많은 명기수를 배출하고, 명마들을 조교한 일본 현대 경마의 대부, 오가타 토키치와그의 밑에서 전설이 된 기수 야스다 타카요시다.(좌측의 조교사가 야스다 타카요시)오늘은 최초의 슈퍼 스타 기수인 야스다 타카요시에 대해 알아보자.탄생(초등학교 시절의 야스다, 우측은 야스다의 형)1920년 3월 18일, 도쿄 칸다구 오가와쵸의 과일 도매상인 '에인'에서 차남으로 태어난다, 에인은 당시 고급 과일인 바나나의 수입과 도매를 했기에, 집안은 부유했다고 한다.유치원때 유원지에서 본 당나귀를 타고싶어 했고, 초등학교 4학년때, 중학교 수험 준비를 위해 별장에 틀어박히게 된 형과 함께 승마에 대해 알게 된다.(이시다 승마구락부의 사진은 없음)귀경 후, 부모님의 허가로 시타야구 네기시에 있던, 이시다 승마구락부에 다니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진학 한 이후에는 주 3일의 빈도로 다니게 되었다.(1931년 제 1회 일본 더비 당시 메구로 경마장)이러한 일들로 기수에 대한 동경이 많아진 야스다는 2학년때 부친을 설득했고, 또한 승마구락부의 주인인 이시다의 소개로 메구로 경마장에 소속, 오가타 토키치의 밑에 14세에 입문하게 된다. 입문 후, 야스다는 본인보다 1년 전에 입문한 노히라 요시오, 니혼야나기 토시오, 카츠마타 타다 등과 같이 하적 생활을 하게 된다.(사진은 조교사 시절)3세마들과 4세마들의 육성을 하면서, 기승을 배웠고, 조교사에게 인정 받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생활을 해야했기에, 야스다는 8개월이 지난 11월에 도쿄로 돌아왔고, 훗날 조교사 현창자가 되는 마츠야마 키치사부로와 같이 오가타 마구사에서의 본격적인 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일본 경마계는 마구사마다 기승법이 달랐기에, 기승폼만으로도 어느 마구사의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오가타류'를 익히기 위해 이토 세이시로의 기승법을 모방하기 위해 노력했다.거목이 될 씨앗은 새싹부터 다르다1936년 11월 21일 도쿄 경마장의 추계 개최에서 기수로 데뷔, 초전은 15착으로 그해는 4전 0승으로 끝난다, 당시에는 젊은 기수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않았기에, 첫 승리는 이듬해인 1937년 10월에나 달성하게 된다.첫 승리 후, 다음달인 11월에 주요 경주 중 하나였던 5세마 특별을 우승하는데 성공한다, 이러한 기세로 3년째인 1938년부터 급성장, 5월 28일에는 아스테리 모어에 기승해서 첫 일본 더비에서 3착, 그해 창설된 오크스에서 우승하면서 첫 클래식 제패를 성공한다. 18세 8개월의 클래식 제패는 역대 최연소 기록.1939년 11월에는 테츠몬에 기승해, 당시 최고 위상 경주이자 지금의 천황상인 제실어상전 가을을 제패, 통산 10승을 달성한다, 1939년에는 타이레이로 오카상을 제패하면서, 당대 동기들과 비교했을때 독보적인 성적을 낸다, 특히 동갑이자 훗날 사쿠라 군단의 조교사가 되는 사카이 카츠타로는 이러한 야스다를 보고 부러워 했다고도 한다.1941년 부터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입대를 하게 된다, 이때까지의 성적은 통산 89승, 특별 경주 21승. 당시 상관의 명령으로 현지의 경마경주에도 출전해 승리를 올렸는데, 이때 주위 사람들은 야스다가 기수인건 알았지만, 제실어상전에서 우승한 기수인지는 몰랐다고 한다.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하자, 귀국, 일본경마회가 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지소 중 하나인 모리오카 육성장에서 말들의 조교를 했고, 1946년 경마의 재실시가 결정되자 말들과 함께 도쿄로 돌아간다.독보적인 질주1946년 10월 부터 경마가 재개되었고, 야스다는 기수로 복귀했다, 그러나 5년 이상의 공백기의 영향으로 한동한은 부진하게 된다, 이때는 상금도 엄청나게 적었고, 중앙 경마의 인기가 지방 경마에 지는 상황이였기에, 당시 오가타 마구간의 기수들은 상금을 나누면서 생활했다고 한다.1949년 가을, 훗날 신잔과 코다마의 조교사가 되는 타케다 분고가 은퇴, 이에 간사이의 오가와 사스케 마구간에게서 킷카상 우승마 뉴포드의 기승을 의뢰받아, 천황상 가을에 출전, 우승하게 되면서 전쟁 후 첫 8대 경주 우승에 성공한다.1950년부터 본격적으로 실력을 발휘, 야시마 도터, 하타카제로 연속으로 천황상 가을을 제패하면서 3년 연속 제패에 성공한다. 젊은 나이에 오가타 마구간의 주전 기수로 활약, 수많은 대경주들을 제패한다.1953년과 1954년에는 초대 연도대표마이자, 본인의 탄 말중 최강이라는 하쿠료로 킷카상과 천황상 봄을 제패했다, 당시 일본마 최초로 워싱턴 DC 인터내셔널에 초청되었지만, 수송문제로 인해 이는 실행되지 않았다.1956년에는 하쿠치카라에 기승해, 일본 더비를 우승하면서 더비 기수가 되었고, 이듬해인 1957년에는 천황상 가을과 아리마 기념을 제패, 1958년에 미국 원정을 시작하게 된다.현지의 기수 라이센스를 취득한 야스다는 5전을 치르지만 승리를 올리지는 못했다, 이후 오가타의 귀국 종용으로 하쿠치카라를 뒤로 하고 귀국한다. 이후 하쿠치카라는 미국 기수를 태운채 11번째 경기인 워싱턴 버스데이 핸디캡을 우승하면서 일본 경주마의 미국 첫 승을 올리게 된다.이후 귀국한 야스다는 하쿠 쿠라마에 기승해 킷카상을 우승했고, 오테몬으로 천황상 가을을 하쿠쇼로 일본 더비를 제패하면서 국내에서는 여전히 최고의 기수의 모습을 보여준다.실패자가 아닌 선구자가 되어 돌아오다비록 미국에서 승리를 올리지 못한 야스다였지만, 그의 미국 진출은 일본 경마계를 영원히 바꿨는데, 바로 몽키 기승을 배워 보급했기 때문이다.야스다는 미국에서 선행으로 운영하는 레이스가 승률이 높은것을 체감했고, 귀국 후, 오가타류의 폼을 바꾸어, 발걸이를 짧게 채우는 몽키 기승으로 기승을 시작한다. 또한 오가타류의 선입 작전에서 도주와 선행책으로 작전을 변경, 많은 승리를 올리기 시작한다.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였지만, 이러한 큰 변화를 성공시켜 좋은 성적을 내자, 다른 경마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듬해인 1959년, 야스다는 본인 통산 최다승인 89승으로 첫 리딩 자키를 달성하는데 성공, 게다가 1960년, 1961년 연속으로 리딩 자키가 되는데 성공한다.당시 일본에서는 극히 일부로 '몽키 기승'과 '반 몽키' 기승을 하는 기수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모습으로 말이 몰릴까, 말이 몰릴리가 없다" 라고 비난했고, 특히 "텐진노리"의 명수로 알려진 한 베테랑 기수가 술자리에서 "미국 놈들의 원숭이 흉내나 낸다" 라며 비난했었다.(전술한 '텐진노리'의 명수로 알려진 기수에 대한 기록은 없다)그러나 야스다는 이러한 비난에 "이치에 맞기 때문에 도입했을 뿐입니다, 익숙해지면 제대로 따라갈수 있습니다" 라고 반박했는데, 당시 일본 경마는 군기가 강했기에 이에 열받은 베테랑 기수가 때리자, 빡친 야스다가 싸운적도 있다.(대표적인 몽키 기승의 사용자 오카베 유키오)그러나 당시 최고의 기수인 야스다의 폼 변경으로 인한 활약이 엄청나자, 이는 후대의 기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이후 몽키 기승은 일본 경마계에 널리 보급되어 주류 기승법이 된다.야스다는 또한 미국에서 본 기수의 휴양을 위한, 자키룸 설치를 경마회에 진언해서 중앙 경마에도 조정룸이 설치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미국에서 사용되는 마구와 채찍도 일본에 소개했다, 그리고 야스다는 미국 기수들이 자기 관리에 철저한것을 보고, 본인도 이를 본받았기에, 철저한 자기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에 타케다 분고는 "야스다군의 미국 원정으로 여러 가지를 가지고 돌아왔기에, 일본 경마의 발전은 10년 빨라졌다"라고 평했다.뿌리 깊은 거목이 되다1961년 9월 17일, 통산 865승을 달성했고, 클래식 7승 기수이자, 메이지 히카리의 기수로 유명했던 에비나 타케고로의 기록을 제치며, 통산 최다 승리 기수가 된다.그리고 1963년 6월 30일 역대 최초로 1000승 기수가 된다, 이때 NHK와 인터뷰를 한 야스다는 "일본에서도 점점 기승 수가 늘어나고 있기에, 젊은 사람들이 노력해 제 기록을 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앞으로 몇 승이 아닌, 탈 수 있을만큼 타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9월 29일에는 관계자들과 팬들 600명을 모아 도쿄 경마장에서 축하 파티가 열렸고, 이후에도 수많은 활약마에 기승한다. https://youtu.be/0KKaOnWBLOc1963년 가을에는 그레이트 요루카로 킷카상을 제패하면서, 본인이 의도한건 아니였지만 메이즈이의 3관을 막았고, 1966년에는 하쿠 즈이코로 천황상 봄을 쿠리히데에 기승해서 천황상 가을과 아리마 기념을 우승하면서, 천황상 통산 1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1968년에는 마치스에 기승하여 사츠키상을 우승했고, 역사상 최초의 8대 경주 완전 제패를 달성했다, 이 기록은 30년 후, 타케 유타카가 달성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였을 만큼 전무후무한 기록이였다.1970년, 곧 50세가 되는 야스다는 노령화로 인한 기하 저량으로 은퇴를 결정, 2월 22일에 케이오배 스프링 핸디탭에 출전, 미노루에 기승해, 후배인 노히라 유지를 꺾으면서 우승하면서 통산 1295승으로 은퇴한다.3월 1일 도쿄 경마장에서 은퇴식이 열렸고, 통산 6143전 1295승, 중상 114승이라는 기록으로 기수 생활을 마친다.(좌측의 3번째 인물, 말은 토쇼 보이)이후 기수 생활을 마친 그는 스승인 오가타 토키치의 밑에서 조교사 생활을 시작한다.기록( ※JRA에서는 1987년부터 표창)최다 승리 : 3회 (1959년~1961년) 최고 승률:2회 (1960년, 1961년)최다 상금 획득:3회(1959년~1961년) 기수 대상 : 2회 (1960년, 1961년) 기수 현창 (2004년)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후 조교사가 된 기수글은 처음이라서혹시 조교사 시절도 보고 싶음? 보고 싶으면 쓰겠읍니다아 그리고 사진에 주석을 다는건 어땠는지도 평가해주면 고맙겠습니당피드백은 언제나 환영이야.
작성자 : 아무개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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