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벚꽃이 지고 나면 봄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를 새 잎이 채우고, 사람들의 시선도 어느새 다음 계절로 향한다. 그러나 조계산 자락 깊숙이 자리한 천년 고찰에서는 벚꽃이 진 뒤에야 비로소 다른 봄이 시작된다.
꽃잎이 겹겹이 층을 이루는 이 봄꽃은 일반 벚꽃보다 풍성한 화관을 가지며, 4월 중순에서 말까지 짧은 절정을 이룬다. 고색창연한 기와지붕과 담장 사이로 분홍빛 꽃송이가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풍경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인정한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3월 천연기념물 선암매의 개화로 봄문을 연 이곳은 겹벚꽃을 지나 영산홍까지 이어지며 한 달이 넘는 꽃의 계절을 품는다. 조계산 숲길과 홍예석교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늦봄을 아직 놓치지 않은 이들을 기다린다. 천년 전설이 깃든 조계산 동쪽 기슭의 고찰
선암사의 봄
선암사(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는 조계산 도립공원 동쪽 기슭, 계곡과 숲에 둘러싸인 산지 사찰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전승이 공존한다. 아도화상이 6세기경 비로암을 세웠다는 설과, 875년경 도선국사가 창건하며 '신선이 내려온 바위'에서 사찰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그것이다.
고려와 조선 시기를 거쳐 의천을 비롯한 고승들에 의해 수차례 중창된 선암사는 오랜 세월의 층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계산 반대 사면에 자리한 송광사와 함께 순천 불교문화의 두 축을 이루며,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겹벚꽃 터널과 승선교가 만드는 봄의 절경
선암사 승선교
경내를 가득 채우는 겹벚꽃은 대웅전 뒤편과 종무소 앞 일대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기와지붕과 담장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 대표적인 포토존으로 꼽힌다.
꽃잎이 겹으로 층을 이루어 풍성하게 피어나는 특성 덕분에 일반 벚꽃보다 화사한 인상을 남기는 편이다. 사찰 입구 계곡을 가로지르는 승선교는 무지개 형태의 홍예석교로, 선암사를 상징하는 경관이자 사진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주문에서 승선교를 지나 대웅전 뒤 겹벚꽃 군락까지 이어지는 산책 동선은 자연스럽게 경내 전체를 아우른다. 보물 제1311호로 지정된 대웅전, 보물 제395호인 삼층석탑 2기, 그리고 국가지정문화재 18점이 함께 자리해 역사적 밀도 또한 높다. 천연기념물 선암매와 사계절 봄꽃 이야기
선암사 봄 풍경
선암사의 봄은 선암매에서 시작된다. 천연기념물 제488호로 지정된 이 매화나무는 수령 약 600년으로 전해지며, 3월 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꽃을 피워 고찰의 봄을 연다.
선암매가 지고 나면 4월 중·하순 겹벚꽃이 절정에 이르며, 이어 영산홍과 철쭉이 피어나 3월 말부터 4월 말까지 꽃의 릴레이가 이어지는 셈이다.
조계산 계곡을 따라 난 비포장 숲길에서는 계곡물 소리와 신록이 함께 어우러지며, 봄철에는 개구리알·도룡뇽알 등 자연 생태도 관찰할 수 있다. 겹벚꽃 만개 주말에는 인기 포토존마다 줄이 생길 정도로 방문객이 몰리므로 평일 오전 방문이 여유로운 편이다. 무료 주차와 계절별 운영 시간 안내
선암사 겹벚꽃
선암사 입구 주차장은 2020년 4월 이후 순천시 정책으로 연중 무료 개방되고 있다. 제1·제2 주차장이 운영되나 봄 성수기 주말 오전 11시 이후에는 혼잡이 발생할 수 있어 이른 방문을 권한다.
입장 및 주차 가능 시간은 하절기 기준 06:00~19:30, 동절기에는 07:00~18:00 내외로 운영되나 공식 안내 기준은 변동 가능성이 있어 방문 전 현지 확인이 바람직하다.
선암사는 유네스코가 인정한 역사적 가치와 봄꽃의 감각적 아름다움이 겹쳐지는 공간이다. 고요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천연기념물 매화부터 겹벚꽃까지 이어지는 봄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이곳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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