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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는 바둑 역사-조훈현

나이더스커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12.01.12 19:22:54
조회 512 추천 4 댓글 4

1953년 3월 10일 전남 목포. 천재가 태어났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 틈에서 물끄러미 바둑판을 처다보던 한 아이. 4살쯤 되었을까? 바둑판은
어지럽게 진행되고 한참을 고심하던 한수를 놓으려던 순간 아이는 외쳤다.
"아부지 거기 놓으면 안되라우"
한번도 바둑을 둬본적 없고 오직 어른들의 바둑을 옆에서 지켜만 보던 한 소년의 외침에
어른들은 그저 신기할 따름 이었다. 바둑이 끝나고 복기를 해보니 아이가 지적한 수가 패착.
"저 아이가 수를 제대로 읽은 거 아닐까요?"
"이제 겨우 네살짜리가 뭘 알겠어"
어른들의 말에 아이는 자존심이 상한듯 말했다.
"나 바둑 둘 줄 알아라우"
한번도 바둑을 가르친 적이 없었고 어른들의 틈에서 구경만 하던 아이가 얼마나 둘줄 알까 싶어
확인을 해 봤다. 진행 될 수록 어른들의 눈이 커져만 가는데.. 놀랍게도 아이가 그럴듯하게 집을
갖추어 나가는 것이다. 제대로 된 행마는 아니었으나 그 나이에 바둑의 이치를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 어른들은 충분히 놀랐다.

이듬해 겨울. 막내 조훈현의 천재성을 확신하던 조규상(조훈현의 아버지)은 무작정 조훈현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다. 살림은 어려웠지만 조훈현의 천재성을 꽃 피우기 위해선 스승이 필요했다.
상경한 날부터 조훈현과 함께 매일 송항기원으로 출근을 했다. 그곳엔 당시의 일인자 조남철
국수가 있었다.

목포에서 온 꼬마아이. 겨우 다섯살 코흘리게 아이가 귀여웠는지 조남철은 흔쾌히 지도대국을
뒀다. 9점 바둑.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커져간다. 아이가 제법 행마의
틀을 갖췄기 때문이다. 세시간 남짓 지났을까? 아이는 고개를 숙이고 훌쩍거린다. 어린 조훈현의
패배.
"한번 더 둬보자꾸나"
조남철의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랐다. 지금껏 지도기를 두판이나 둔적이 없던 조남철 이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아이가 9살 되던해. 서울로 상경한지 4년. 세계 최연소 입단 기록을 갱신하며 조훈현은
프로기사가 되었다. 당시의 한국 바둑은 일본, 중국에 비해선 명함도 못 내밀 수준. 최연소 입단 사실
이 일본에 전해지자 양국은 사상 최초로 전화대국을 기획했다. 상대는 명가 키타니 문하에서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시다(石田). 결과는 조훈현의 패배. 당시 세계 최고의 수준인 일본과의 격차를 확인할
뿐 이었다. 그날을 계기로 조훈현은 일본 유학을 결심하게 된다.

62년 입단. 그리고 1년도 채 안돼 2단으로 승단한 조훈현은 63년 10월 한창 투정 부릴 나이에
가족의 품을 떠나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당시 일본 유학파 기사들은 관례처럼 기타니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일본 바둑계의 원로 기타니 9단도 당연히 조훈현도 자신의 문하로 들어올 줄 알고 있었다.
조훈현의 후원자들과 현지 보호자 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
그러나 인연이란 하늘이 만든다고 했던가. 조훈현은 인사차 세고에9단의 자택을 방문한다.
오청원과 하시모토, 두 사람밖에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 두 제자의 질량이 너무 커서
일본바둑계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던 세고에 선생은 연배로 보나 관록으로 보나 기타니 9단보다
격(格)이 높은 존재였다. 그러나 워낙 연로해서 도장을 운영하진 않았다. 즉, 더이상 제자를
키우지 않을거란 이야기. 그런데 조훈현을 보자마자 대뜸 바둑판을 꺼내며 대국을 청했다.

첫판은 세점. 딱 딱 놓아지던 바둑판이 진행되어 가고...
"허어. 판이 짜여지질 않는구나"
세고에 9단은 패배를 인정하고 돌들을 쓸어 담았다.
"그럼..두점으로 해볼까?"
그말에 주위가 놀란다. 세고에 9단은 일년에 지도기를 한, 두판 둘까 말까한 인색한 선생이었기 때문.
어쨌든 두번째 판도 조훈현이 이겼다. 다들 두번의 지도기만으로 만족하고 돌아갈까 하던차. 세고에 9단
은 갑자기 말했다.
“음, 내가 늙고 몸이 불편해 언제 죽을지 모르나 이 아이는 오늘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데리고 있겠네.”

1편 끝.


천재의 명가
이미 오청원이라는 바둑사의 길이남을 제자를 키워낸 세고에 9단 이었다. 단 두명의 제자를 키우고
더이상 제자는 없을거라고 했던 세고에9단. 그러나 조훈현과의 첫 만남에서 냉큼 내제자로 삼아 버렸다.
"세계 최연소 프로 기사가 오청원의 사제가 되다"
그의 존재는 너무나 빠르게 일본 바둑계의 화제가 되어 버렸다.

한국에선 이미 프로2단의 자격을 갖고 있었지만 역시 세계 최강이던 일본의 바둑계에선 조훈현은
배울게 많이 남았다. 일본 기원에서 치룬 그의 급수평가는 4급. 조훈현의 자존심에 불이 붙었다.
"처음부터 다시하자"
집안의 허드렛 일을 하고, 말도 잘 안통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조훈현의 열정은 달아 올랐다. 그런
그에게 세고에 9단의 수업방식은 실전 위주의 교육이 아닌 프로 기사의 자세, 마음가짐 등을
중점적으로 가르쳤다. 특히 대국후의 복기와 기보에 대해서 강조를 했는데 지금도 조훈현은
기보를 잊지않고 꼭 챙기고 있다.

지도기에 인색한 세고에 9단. 조훈현은 9년동안의 문하 생활동안 스승에게 직접 지도받은 대국은 10판이
채 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실전 대국을 할 수 있는 장소는 후지사와 연구실 이었다.
포석 감각이 당대 최고라고 평가 받던 후지사와는 번뜩이는 재치며 탁월한 감각이 조훈현과 무척이나
비슷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할까? 후지사와는 먼 이국에서 외로이 공부하는 조훈현에게 아낌없이
가르침을 주었다. 또한 후지사와의 연구회엔 오오다케, 임해봉, 구토 등 당시 일본의 쟁쟁한 기사들이
있어서 어린 조훈현에겐 더할 나위 없는 배움의 장소가 되었다.
"덤벼라! 쿤켄 (훈현의 일본식 발음)"
속기를 중요시 하던 후지사와는 조훈현을 볼 때면 어김없이 붙잡고 속기 바둑을 두었다. 감각과 정밀함이
필요로 한 속기바둑에선 후지사와는 당연 일본 최고로 불리었는데 그런 후지사와보다 시간을 적게쓰던
조훈현이었다. 그 후 누구보다 조훈현의 기재를 높이사던 후지사와는 공공연히 이런 말을 하고 다녔다.
"훈현의 기재는 세계최고이다. 오래지 않아 그는 초일류기사로 우뚝 서고 말 것이다.”

“ 이 아이가 바로 장래의 명인입니다.”
후지사와의 직계 제자 아베 요시테루 6단. 그도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조훈현을 이렇게 소개하곤 했다.
조훈현 보다는 한참 선배지만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였다. 조훈현의 천재성에 절망감을 느끼면서도
성격이 좋은 사람 인지라 조훈현을 아끼고 자랑하며 다녔다. 타지에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

"쿤켄, 우리 내기바둑 한번 둬볼까? 그냥 두는건 재미가 없자나"
조훈현이 15살 때 일이었다. 얼마전 명인전 2차예선에서 조훈현에게 쓰라린 패배를 당한 아베 요시테루는
조훈현에게 도발적인 선전 포고를 했다.
"스승님이 내기바둑은 두지 말라 하셨습니다."
한사코 거절하던 조훈현에게 후지사와 9단이 슬며시 말했다.
"쿤켄 걱정말고 붙어봐라. 한판에 100엔 정도는 괜찮다. 아베 말대로 승부욕을 위해선 적당한 양념도
필요한 거야"
어쩔 수 없이 바둑판 앞에 앉은 조훈현. 이왕 하는 대국에 질 생각은 없었다. 한판, 두판 점점
이겨나가던 조훈현은 내리 6연승을 거두고 600엔을 땃다.

"쿤켄. 이리오너라"
스승의 부름에 조훈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고에 9단 앞에 앉았다.
"아베 요시테루와 내기바둑을 두었다면서?"
어느새 내기바둑의 소식이 세고에 9단의 귀에도 들어갔다.
"...네"
스승의 얼굴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나가라. 너는 더이상 내 제자가 아니다."
뭐라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조훈현은 짐을 싸고 스승의 집을 나선다. 어디로 가야하나..앞길은
막막한데 갈 곳이 없다. 조훈현은 하루종일 헤매다 한국 식당의 간판을 발견하곤 무작정 들어갔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 입니다. 사정이 어려워서 찾아왔는데...무슨 일이라도 시키는 데로 할테니
숙식을 해결해 주실 수 있으신지요?"
물끄러미 바라보던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2주일. 세고에의 분노가 가라 앉는데 걸린 시간이다. 후지사와를 비롯해 많은 동료들이 세고에를
직접 찾아가 설명하고 용서를 청했다. 자신의 신념을 꺽지 않기로 유명한 세고에는 처음으로 원칙을
깨트리고 조훈현을 다시 받아 들였다.

1970년. 17세의 조훈현은 33승 5패 1빅(무승부)라는 기록으로 신인상을 받는다.
두면 이기는 시절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80프로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며 이제 봉우리를 맺으려 하던
조훈현은 거리낄게 없는 듯 하였다. 그런 그에게 날라 온 한장의 편지.
-입영 통지서-
"모든 국민이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평등 이전에 인적 자원의 효율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를 3년동안 병역에 묶어 두다니!"
조훈현의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세고에 9단은 탄식했다. 그러나 방도는 없었다.
조훈현은 바둑돌을 놓았고, 세고에는 그런 조훈현을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1972년 3월. 조훈현은 가방하나 든 채 귀국한다. 10년이 지난 세월. 타의에 의한 귀국이었다.
떠나는 뒷모습을 세고에 9단은 망연 자실한 모습으로 바라만 보아야 했다.
조훈현이 떠난지 4개월 동안 세고에 9단은 자택에 칩거하다 자결을 한다. 세상과의 연을 끊으며
그는 유언장을 남겼을 뿐이다.
그가 남긴 2장의 유언장

1. 가족들에게
- "노구(老軀)로서 더 이상 너희들에게 신세지기 싫어 먼저 떠나고저 한다."

2. 친구, 후배들에게
-"한국으로 떠난 조훈현을 꼭 일본으로 다시 데려와 대성시켜주기 바란다."


2편 끝.


천재의 귀환
그러나 금의환향은 아니었다. 명가 세고에 문하에서 일본 바둑에 입단을 성공하고, 가공할 성적으로 신인왕
까지 거머쥐었지만..이룬것은 없었다.
10년의 세월은 그에게 모든 것이 낯설도록 만들어 버렸다.
한국 바둑을 쥐어잡던 조남철 국수는 어느새 전설이 되어 무대의 뒷편으로 사라져 갔고, 유학파 선두자
김인 9단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신진 유학파 세력들은 하나 둘 빛을 발하는 시점에 천재라 불리우던
조훈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점점 커져만 갔다.

막상 귀국했지만 당장 입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입영 통지서를 받은 순간 바둑돌을 손에서 놓다시피한
조훈현이었다. 몇개월을 방황하던 조훈현은 사람들의 기대 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 채 방황의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일본에서의 기사 생활을 인정받아 5단의 기력은 유지 되었지만 모든것이 일본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어릴적 일본으로 떠난 조훈현에겐 당장의 의사소통도 힘들 지경..
천재의 눈에 세상은 모든것이 두렵게 보이던 시간이었다.

"엄마. 차비좀 줘요"
기원에 가기위해 집을 나서는 조훈현. 잠깐 기다리라는 어머니는 황급히 옆집으로 가서 돈을
꾸어왔다. 그 잠깐의 시간이 조훈현에겐 얼마나 길었는지...
'아..우리집이 무지 가난한 모양이다.'
충격이었다. 세상물정엔 어리숙 하던 그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내가 벌어야 되는구나'
계기였다. 그는 그날을 시작으로 직업인으로써 바둑을 두기 시작했다. 몇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첫
타이틀을 획득한다. 제 14기 최고위 타이틀
처음 획득한 상금 30만원. 첫 상금에 한턱을 내야할 곳은 많았지만 그는 눈 딱 감고 어머니에게
갖다드렸다.

1973년. 공군 자원 입대. 육군으로 가기에는 대기해야할 시간이 길었다. 성남의 비행장으로 자대배치를
받은 조훈현은 모든게 또다른 세상이었다. 더구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고문관으로 통하게 된다.
나쁜 일들만 있는것은 아니었다. 군대에서 조훈현은 향후 오랜 친구가 될 차민수를 만난다.
조훈현의 천재성을 알아본 차민수는 군대 생활을 격려하면서 우애를 쌓았다. 하지만 바둑에 전념하지 못한
시간들 탓일까.
1973년 조훈현의 전적은 25승 8패.
1974년. 21승 14패.

"또 둘이 붙는구나. 또"
1976년 왕위전 결승전. 대국자 조훈현. 그리고 서봉수
그때까지 두 라이벌은 명인전, 국기전에서 한번씩 승리를 주고 받았다. 당시의 조훈현은 절정의 기량으로
달려가던 때. 75년 전적이 35승 7패. 천재의 비상은 시작 되었고 그의 앞을 막는 자는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다. 어느새 그의 앞엔 서봉수 혼자 있었다. 엘리트 유학파 천재 조훈현. 그리고 순수 된장바둑의 자존심
서봉수. 그 둘의 이름은 지겹도록 듣게 되고 엎치락 뒤치락 하던 승패의 향방은 점점 조훈현으로 기울었다.
싸늘한 공기. 대국이 끝난 후엔 일언 반구 복기도 없이 둘은 자리를 뜰 정도로 치열한 라이벌 이었다.

천재에서 바둑 황제로.
1980년 7월 12일. 한국기원 특별 대국실. 모두가 숨을 죽인채 두사람의 대국을 지켜보고 있었다.
서봉수의 마지막 자존심. 조훈현의 전답미문의 영역. 명인전 5번기의 마지막 대국은 지켜보는 이를
침묵시켰다. 얽히고설키던 치열한 공방은 패를 부른다. 숨막히는 패의 공방. 한수 한수 패를 쓰던
두 대국자 사이에서 조그마한 신음 소리가 들린다.
"크흠.."
서봉수의 팻감이 먼저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끝내기성인 팻감을 쓰자 조훈현은 만패불청. 대마를
때려낸다. 대국은 조금더 이어 갔지만 이미 승부는 갈린 상황.
전관재패. 사람들은 환성을 질렀다. 카메라 플래쉬가 쉬지않고 터지는 가운데 황제로 거듭난 조훈현은
수줍은 미소로 소감을 전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3편 끝.


일인 천하.
1980년 조훈현은 모든 타이틀을 획득하고 명실 상부한 1인자가 된다. 이 당시 일본에선 또다른 한국인 기사가 일본 바둑계를 호령한다. 조치훈. 대중은 양국의 일인자들의 대국을 열망했고 결국 1980년 연말과 1981년
연초에 걸쳐 2차전 대국이 성사되었다. 일본에서 유학한 천재 조훈현에게 국민의 기대는 컸다. 이벤트성
대국이었지만 당시 세계 바둑의 최정상 일본 바둑에 한국 바둑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으니.
결과는 2-0. 완패. 일본에서도 인정받은 천재 조훈현에게 걸린 기대는 이내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역시..한국 바둑은 안되는가."
일인자의 자존심에 한줄기 금이 갔다.

1984년 봄. 조금은 투박한 얼굴의 아이가 바둑판 앞에 앉아있다. 초등학교 3학년. 전국 어린이 바둑대회
우승자. 황제 조훈현과 두점의 지도기. 조훈현 특유의 빠른 행마는 두점의 이점을 금세 허물고 승부를
지었다. 어린 소년은 분명히 강했지만 특별한 재기는 보이지 않았다. 전주의 바둑신동을 제자로 받아달라는 전영선 7단의 부탁으로 지도기를 두었지만..어린시절 그토록 지겹게 신동소리를 듣던 자신과는 너무도 달랐다. 둔해보이는 외모에 의사표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복기조차 서투른 아이. 한국과 일본 그가 무수히 보아온 천재들과는 전혀 다른 아이. 한참을 고민하던 조훈현은 조용히 말했다.
"집을 옮겨야 겠군."
어떤 점이 조훈현의 마음을 움직인 것일까? 아마 세고에 스승을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집에는 아이를 둘 만한 방이 없어... 방이 더 있는 집을 구해야 겠어"
제자에서 스승으로. 그렇게 그는 전주의 신동 이창호를 제자로 들인다.

1988년 4월 2일 동경. 황제의 칼날은 이날을 위해 얼마나 벼렸왔던가.
세계 최초 국제대회. 후지쯔배 세계프로바둑 선수권. 무대는 준비되었다. 한국에선 조훈현9단, 서봉수9단,
장두진6단이 출전 하였다.
조훈현 9단의 상대는 입단 동기 고바야시 고이치 9단.
너무나 조급했던 것일까...한국에서 지낸 날들이 일순 허무해 진다.
1회전 전원 탈락. 한국바둑의 위치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큰 기대를 품고 떠나던 그들을 크게 다뤘던 언론은
참패의 결과를 단 몇줄로 덮어버렸다.

"이건 말이 안되는 처사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회에 참가할 필요가 없습니다."
1988년 8월 20일. 중국에서 개최하는 세계 최대의 국제기전.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 선수권. 그러나 한국 바둑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한국에 단 한명의 대표만을
배정한것. 후지쯔배의 참패에 대한 결과인가. 그러나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굴욕적인 처사였다.
한국 바둑계는 주최측에 격렬한 항의를 했지만 오히려 묵살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싫으면 참가하지 말라는
배짱.
분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직 조훈현의 눈빛만 빛을 내뿜었다.

후지쯔배 참상탓일까. 적진을 향해 홀로 출전하는 조훈현은 언론에서도 다뤄지질 않았다.
첫번째 대전상대는 대만의 대표. 왕 밍완. 그는 살기어린 조훈현에게 추풍 낙옆처럼 떨어져 나갔다.
8강전. 후지쯔배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조훈현의 상대는 고바야시 고이치 9단. 철저히 실리를 추구하는
고바야시 9단에게 한수도 실수를 해선 안되었다. 그러나 너무 성급했던 탓일까. 조훈현은 커다란 악수를
두고 말았다. 고바야시는 철저히 이득을 챙기며 유리함을 이어나가고 그럴수록 조훈현은 더욱 무리한
수를 두게 되었다.
오직 조훈현만이 사투를 벌이며 전투를 이어나갔다. 조훈현의 눈가에 핏기가 어린다. 크게 지든 적게지든
어차피 지는 것이라면...
이때부터 반상은 어려워 진다. 사방 팔방으로 이어지는 처절한 수들. 난전에 난전으로 유도하며 국면을
어지럽게 끌고 갔지만 대기실의 분위기는 고바야시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결정 났군..."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조훈현의 필패.
마지막 수가 두어지고 집계산으로 들어갔다. 모두의 예상은 당연히 고바야시 9단의 승리.
그러나 계산이 끝나자 고바야시는 고개를 떨구고..
조훈현은 멋적게 웃었다.

4편 끝.

"조훈현이 세계 최강이다. 결승은 나와 조훈현의 무대가 될 것이다."
4강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후지사와 9단은 그렇게 말했다. 조훈현의 일본 유학시절 그의 실력을
직접 향상시켜준 후지사와 9단. 일본내 프로기사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독설을 내뿜던 그였지만
조훈현과의 첫 만남 이후로 계속 이어지는 조훈현 사랑은 멈출 줄 몰랐다. 후지쯔배의 1차전 탈락
이라는 불명예. 그런 조훈현을 세계 최강이라고 주장하는 프로기사는 오직 후지사와 뿐이었다.
4강에 오른 인물중 세간의 지지를 받고 있던건 당연코 중국의 영웅 네 웨이핑 9단.
모두의 예측을 거부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던 후지사와 9단의 예측은 반만 맞았다.
조훈현은 모두의 예상을 깨버리고 린 하이펑 9단을 격침한 채 결승에 진출했다. 다른 한쪽은
모두의 예상대로 네 웨이핑 9단이 후지사와 9단에게 승리를 거두며 결승으로 향했다.

중국측이 개최한 세계 대회.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세계 최초의 세계 프로 기전이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은 최초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몇달 앞서 후지쯔 배를 개최한 것이다.
기분이 상한 중국. 어쨌든 자국이 주최한 대회였다. 그들의 계획에선 최고의 시나리오는
중국과 일본의 결승. 그리고 승리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바둑 후진국. 무시했던 나라에서 결승 상대가 올라오니 김이 빠진 상태.
더이상의 이변은 없어야 한다. 승리를 향한 억지스런 중국의 열망은 주최국으로써 추태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승 5번기 승부를 전부 중국에서 진행. 그들의 계략이었다. 한국측도 더이상 물러만 설 수 없는
상황. 결승전 보이콧 까지 불사하며 항의를 했고 중국은 짐칫 물러서는척 한발 물러섰다.
중국에서 3판. 제 3국에서 2판.
어의없는 중재안 이었지만 세계 바둑 무대에선 초라한 한국이었기 때문에 더이상 어쩔 도리가 없었다.

1989년 4월 25일. 중국 항주
결승 1국.
"백이야. 절대 져선 안된다."
덤의 룰이 컸던 응씨배에서 백은 상당히 유리했다. 선승의 기회.
특유의 빠른 행마로 상대의 빈곳을 찌르는 조훈현. 상대 또한 중국이 낳은 영웅. 조훈현의 도발에
침착히 대응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네 웨이핑. 실로 절대 고수의 대결이라 할 만 했다.
그러나 승기는 이미 조훈현에게 있었다. 네 웨이핑은 지병으로 인해 이미 체력이 고갈된 상태.
차분하게 국면을 운영한 조훈현은 1국에서 3집을 남기며 승리를 거뒀다.

중요한 1승이었다. 승자는 여유가 생겼고 패자에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조훈현은 모처럼 기분좋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반대로 이를 가는 네 웨이핑9단은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패배를 곱씹으며 나아갈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4월 28일. 제 2국.
반대로 백을 진 네 웨이핑 9단은 예상보다 침착했다. 덤이 많아 유리한 백의 이점을 충분히
지켜가며 판을 짜마추자 오히려 조훈현이 조급해 졌다. 어찌보면 예상할 수 있었던 결과.
끝내 유리함을 지켜낸 네 웨이핑 9단이 스코어를 1:1 동률로 마춰놨다.

5월 2일. 중국 절강성. 제 3국.
조훈현의 백. 이미 알고 있듯 절대로 놓쳐선 안된다. 너무 뻔한 사실에 오히려 긴장한 탓일까.
백을 잡고도 판은 점점 불리해져만 간다. 조훈현의 뇌리에 일순 불안함이 감돌았다.
세계 최강이라는 일본을 격침시킬 중국의 유일한 무기. 네 웨이핑 9단. 상대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다.
어느새 마지막 착수가 끝나고 결과는 조훈현의 석집 패.
티비로 지켜보던 온 중국인들은 지진이 난듯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한국에서 승전보를 기다리던 국민들은 조용히 티비를 껏다.

1승 2패. 더구나 상대는 유리한 백. 조국의 언론은 이미 패배를 인정하듯 조훈현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중국측은 확실한 승리를 할 수 있는 모든 술수를 다 부렸다. 조훈현을 위해 함께 전진으로 떠나기로
했던 응원 군들. 다섯명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주최측의 농간으로 조훈현과 단장 윤기현9단 단 둘이서
적진으로 향했다.

9월 2일. 싱가포르.
제 4국. 조훈현의 흑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조훈현은 패했던 2국의 진형을 다시 사용한다. 그런 조훈현을 바라보던
네 웨이핑은 우습다는 듯이 2국과 똑같은 형태로 진행했다.
"저...저런..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지켜보던 윤기현 단장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지만 그런 심정을 모르는지 조훈현은 그때처럼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15수. 드디어 조훈현의 새로운 수가 나왔다. 네 웨이핑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고민없이 침착하게 응수한다. 바둑판 위는 흑, 백 돌들로 채워지고 별다른 수가 없이
끝날것 같던 때. 이 무슨 장난인가. 침착하기로 유명한 네 웨이핑이 마지막 단계에서 실수를 범한다.
놓칠 수 없는 승기. 조훈현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제 남은 것은 진행 될 수순대로 차분히
마무리를 하는 것. 결과는 조훈현의 한집 승리.
윤기현 단장은 함성을 질렀고...네 웨이핑의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9월 5일. 최종전. 대회가 시작된지 어느새 1년이 지난 시간.
4국에서 승리했지만 윤기현의 표정은 어둡다. 4국의 피로가 그만큼 컸던가. 조훈현은 몸살로
쓰러진채 이틀동안을 침대에서 누워 있어야 했다. 초췌한 얼굴로 조훈현이 대국장에 들어선다.
최종전인 만큼 새롭게 흑과 백을 정해야 했다. 네 웨이핑이 한운큼 돌을 잡자 조훈현은 짝을 외쳤다.
그러나 수는 홀.
네 웨이핑은 주저않고 백돌을 잡았다. 가뜩이나 불안한 윤기현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핏기 없는 얼굴로 조훈현은 흑돌을 집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차전. 그리고 4차전에서 사용한 진형. 그 수순을 또다시 사용할 줄이야.

네 웨이핑의 심기가 불편해 졌다. 먼저 변화를 시도한다. 네 웨이핑은 중앙을 공략.
조훈현은 집중적으로 외각을 공략했다. 커다랗게 생겨나는 네 웨이핑의 진형. 점점 불리한듯 한
조훈현은 승부수를 둔다. 네 웨이핑의 진형 한가운데 돌을 두었다. 응수가 곤란한 네 웨이핑
외각으로 탈출 하려는 조훈현. 그걸 막아야 하는 네 웨이핑. 긴 탈출의 끝에 조훈현은
생명줄을 잡는다. 대마를 살려내자 오히려 곤란해진것은 네 웨이핑.
네 웨이핑으로선 이제 공격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을 적게 쓴 네 웨이핑은 상대적으로 시간이
거의 없는 조훈현을 상대로 무리하게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조훈현이 누구던가.
어릴적 부터 후지사와의 손목에 끌려가며 다져진 속기파. 빠르게 네 웨이핑의 수를 응전하던
조훈현은 오히려 정확한 수읽기로 네 웨이핑의 대마를 잡아 버린다.
145수. 더이상 승패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네 웨이핑은 돌을 던진다.

한국의 황제. 그리고 그는 세계 최고가 되었다. 그의 마지막 대 역전극을 믿지 않던 대한민국은
그의 귀환을 성대히 환영한다. 끝날 줄 모르는 축제 분위기. 그를 열렬히 환영하던 사람들에게서
겨우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고생 했지요"
지친 그의 발길을 그의 아내가 반겨주었다.
처절한 사투끝에 찾아온 평화. 싱긋 웃음을 보인 조훈현에게 이창호가 꾸벅 인사를 한다.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표현할 줄 모르는 이창호. 스승의 역사적인 승리앞에 감동한 이창호는
단지 인사를 할 뿐이었다. 오히려 그런 이창호의 마음을 잘 아는 조훈현은 그 옛날 자신을
바라보던 세고에의 눈빛으로 이창호를 바라본다. 조남철. 그리고 김인 에게서 이어져 온
한국 바둑의 황좌를 세계 최고로 우뚝서게 만든 조훈현의 오른손. 그 손길을 뻗어 이창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나즈막하게 말한 한마디는 또렷히 이창호에게 전해졌다.

"창호야. 이젠 네가 해줘야 한다"

재미있는 바둑史. 조훈현 편 끝.




출저:http://www.instiz.net/index.htm?page=bbs%2Flist.php%3Fid%3Dpt%26no%3D36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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