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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15-

김유식 2003.04.02 14:37:35
조회 3061 추천 0 댓글 0
2000년 2월 8일. 화요일. 오후 8시 20분.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아이고! 이런 머저리 등신 같은 새끼들!"   이승영이 읽던 신문을 내던지며 뱉는 말에 김근태가 쳐다보았다. "먼 일 있어라?" "돌탱아! 너도 맨날 만화만 보지 말고 신문도 좀 봐라!"   난데없이 욕을 먹은 김근태는 툴툴거리며 신문을 집어들었다. 1면에 작게, 사회면에 크게 장식된 기사는 부산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폭력배 사이에서 총기 사건이 났다는 내용이었다. 용의자는 잡히지 않았으며 피해자는 중태였다. 이권을 노리는 조직간의 세력 다툼이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도 들어있었다. 한 쪽 면에는 최근 1-2년 사이에 출소한 폭력 조직 두목급들의 리스트가 나와있었는데 그 안에는 유정후의 이름도 보였다. "워매..징한 거 총질을 해버렸구만이라...음마 이러면 후리가리(일제단속) 뜨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요잉? 형님." "부산이라 다행이지만서도 미친놈들 총질을 하면 어쩌겠다는 건지..."   이승영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누가 총을 줬을까요잉? 형님"   김근태가 물었다.   준다는 말은 폭력계에서는 찌른다는 뜻으로 통하는 말이었다. "칼 준다." 는 식으로 많이 쓰였는데 김근태가 총에도 준다는 표현을 쓰자 어딘가 어색했다. 김근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워매..겁나부리는거...우리두 무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겄네요잉? 형님. 부산 아그들이 총 들고 설치면...으매..."                                                                                 * * *   한편 부산의 해운대파는 침통한 분위기였다. 경찰이 대대적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여론이 들끓었다. 아직 해운대파에 경찰이나 검찰이 다녀간 적은 없었지만 곧 증거가 드러나면 해운대파로서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었다.   총성이 울리자 재빨리 사태를 파악한 최명규는 곧 동생들을 수습해서 로얄비치 호텔 나이트 클럽에서 철수했다. 다 된 밥에 재를 빠트린 호시노는 오늘 오전 11시 출발의 일본국적의 비행기로 오사카에 보냈고 통역을 통해 요시이 구미에 격렬하게 항의했다.   조직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는 조직원들은 집으로 귀가 시켰고, 상처가 있는 조직원들은 서울로 보내서 치료하도록 했다. 아직 경찰에서는 해운대파가 싸움을 주도했다는 심증을 굳히지 못한 것 같았다. 이승호는 잠적했고 클럽의 관계자들은 경찰과 이야기하길 꺼려했다. 또 총을 맞은 피해자는 응급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었다. 다만 경찰 끄나풀들의 귀띔을 통해 가해자로는 해운대파가 유력하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잠수를 타게 되면 더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최명규는 조용히 부산에 눌러있기로 마음먹었다. 뒤에서 조종했지만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이중은은 별 문제 없었다.   최명규는 어떻게 해서 호시노가 총을 갖고 있었는지 궁금했다. 호시노는 입국할 때도 자신과 같이 들어왔었다. 김해 국제공항의, 칼에도 삑삑 거리는 탐지기가 그냥 통과시켜 줄 리는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변장을 하고 히라타 구미의 조직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찾아갔다. 그들은 일본인 관광객으로 위장하고 있으면서 부산과 제주도, 태백 등의 지역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알아보는 중이었다. 2000년 2월 8일. 화요일. 오후 10시 40분. 부산시 중구 광복동 동양 관광호텔 804호.   최명규가 방문을 두드리자 문이 열렸다. 방 안에는 히라타 구미에서 파견한 조직원 다섯 명이 있었다. 요시노 구미의 조직원 세 명은 밖에 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일본말을 하지 못하는 최명규는 손가락을 이용해 총 모양을 만든 다음, 쏘는 시늉을 하고 다시 손바닥을 펴서 가슴을 쳤다. 총을 달라는 뜻이었다.   한국에서의 총기 사용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폭력 조직간의 피를 흘리는 전쟁에서도 총기는 서로 쓰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없어서 못 쓰는 것이 아니다. 전국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총포상들이 있고, 인구의 9%가 정규군이거나 예비군, 경찰 소속으로, 연간 분실되는 군용 총기의 양도 상당한 데다가 매년 실시되는 불법 무기 자진 신고기간에 신고 되는 수많은 총기들을 보면 한국도 총기에 있어서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회칼을 사용한 싸움에도 온 나라가 떠들썩한 한국 땅에서 총기를 쓴다는 것은 한국의 폭력 조직으로서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즉, 공멸을 막자는 취지에서 서로가 총기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이들이 자제할 지는 미지수다. 한국의 폭력 조직이 더 광대한 조직력과 자금원을 갖춘다면 거리에서의 총기 난사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최명규도 이러한 생각에 야쿠자들이 갖고 있는 권총을 빼앗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들이 총을 갖고 있는 이상 오늘 새벽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물며 이들은 전투 요원으로 온 것이 아니라 투자 자문역으로 온 것이 아니던가.   최명규의 행동에 히라타 구미의 조직원 한 명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어를 할 줄 아는 호시노가 아침에 귀국해 버렸으므로 통역이 없으면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최명규가 다시 손가락을 접어 총을 만든 후, "건(Gun)! 건! 구다사이!" 라고 말하며 이번엔 두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은 역시 모르겠다는 시늉이었다.   답답한 최명규는 객실 전화기를 들어 프론트에 이 호텔의 나이트 클럽을 연결해 주도록 요청했고, 곧이어 연결된 나이트 클럽의 담당자에게는 지배인을 바꿔달라고 했다.   지배인 조준현은 최명규가 첫 번째로 구속되었을 때의 미결수 동기였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 8년간은 만난 적도 없었다. 단지 서로의 소식만 듣고 있던 터였다. 성격 급한 최명규는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으니 804호실에서 만나자고 말했다.   이윽고 올라온 조준현과 인사를 나누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조준현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겐쥬 못테마스카?(권총 갖고 있습니까?)" 조준현이 물었다.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데려오자 다섯 명의 조직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최명규는 이들이 틀림없이 총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직원들 중 한 명이 못 들었다는 듯 반문했다. 다시 총이 있느냐고 묻자 히라타 구미의 선임조직원인 우에하라(上原)가 대답했다. "권총이 있는지는 왜 묻습니까?"   최명규가 거짓말을 섞어 말했다. 한국에서는 폭력법이 아닌 별개의 총기 관리법이 있고, 또 권총을 갖고 있다가 걸리면 북한에서 파견된 간첩으로 몰릴 수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였다. 이를 조준현이 전했다.   다섯 명의 야쿠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를 마친 후 우에하라가  옷장에서 다섯 정의 권총을 꺼내 놓았다. 미국제 콜트와 중국제 토카레프가 섞여 나왔다. 이들이 의외로 순순히 권총을 꺼내는 것을 본 최명규는 일본에서부터 가져온 권총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최명규는 출소 전 공주 교도소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러시아 선박이 부산에 입항하기 시작하면서 권총 구하기가 쉬워졌다는 이야기였다.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100만 원을 호가하던 권총이 최근에는 25만 원만 주어도 구할 수 있다고 했다. 소문으로는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가면 초코파이 한 상자와 권총 한 정을 맞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도 떠돈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권총을 갖고 싶어 초코파이 한 상자를 가져가 건네주었더니 권총이 없다며 대신 기관총을 주는 러시아인도 있었다고 할 정도였다.   최명규의 짐작대로 히라타 구미의 조직원들은 조직과 연계된 러시아 조직으로부터 권총을 구했다고 말했다. 최명규는 대양 프로덕션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꼬붕 한 녀석을 시켜 권총을 가져가도록 일렀다. 그리고 자신은 택시로 사무실에 돌아오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형제의 의를 나누긴 했지만 차후에 국적이 다른 히라타 구미와의 트러블이 생기면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였다. 막강한 조직력과 자금원을 갖춘 국제 폭력 조직을 한국 땅에 불러들인 마당에, 한국 땅에서 총기를 사용한다면 해운대파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폭력 조직이 무너지거나 비슷한 수준으로 무장하려고 하지 않겠냐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날 처음으로 최명규는 히라타 구미와의 연계는 잘못된 행동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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