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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전쟁 -20-

김유식 2003.04.02 14:39:01
조회 2891 추천 0 댓글 0

백준영이 재목감이라는 것은 공주 교도소 시절 최명규가 먼저 알아보았다. 최명규는 공주 교도소에서 친하게 지내던 보안과장에게 백준영이 왜 이감되어 왔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안양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었던 백준영이 왜 출소를 얼마 남기지 않은 상태에서 공주로 이감되어 왔는지 궁금하게 여겼던 때문이었다.

  보안과장의 말에 따르면 안양 교도소에서 그가 다른 사동에서 복역 중인 광주파 두목 배윤업과 싸웠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통 같은 사방에서 폭력 사건이 나면 싸운 당사자들은 물론 사방에 수감되어 있는 재소자들도 다른 사방이나 사동으로 옮겨진다. 화해를 한다고 해도 악의를 품은 재소자가 어떤 짓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도소로서는 싸운 상대가 일개 조직의 보스나 골통이라 불리는 양아치라면 아예 이감시켜 버리는 것이 재소자 관리에 편하다. 조직의 보스급이라면 그 휘하의 주먹잡이들이 언제 복수를 할 지 모르고, 골통들이라면 무슨 짓을 해댈 지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백준영은 운동시간에 광주파 졸개와 시비가 붙었다가 끝내 광주파 조직원 세 명과 말리는 배윤업까지 운동장 바닥에 쓰러트렸다. 이름 없는 어린 깡패나 양아치들이 가장 빨리 이름을 날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조직을 거느리는 이름난 주먹들을 상대했다면 져도, 이겨도 이름이 높아지기 때문에 조직의 보스들은 이런 상대들을 피해버리는 것이 편했다.

  백준영이 목적했던 바는 아니었지만 이런 소문은 전국에 빠르게 퍼졌고 최명규는 백준영에게 손수 음료수를 주는 등, 호의를 베풀면서 출소하면 꼭 다시 만나자고 했었다.

  하지만 이처럼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최명규였어도 정작 그를 데려 온 것은 이광혁이었다. 이광혁은 출소한 뒤 백준영의 출소일에 맞추어 마중 나갔다. 나이가 어린 백준영은 유명한 주먹잡이가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이광혁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산적! 술은 무슨 술이야...잔말 말고 잠이나 자두는 게 좋을 거다. 장거리 비행에서는 자는 게 남는 거라더라."

  매사에 착실한 김응진이 대신 대답했다. 이승영과 김근태가 유독 친한 것처럼 김응진도 백준영과 마음이 잘 맞았다. 이광혁은 이런 점을 감안하여 명성 신용정보조사의 업무를 처리할 때에도 자주 둘 씩 내보냈지만 조직 내에 파벌이 생기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도 잘 해냈다.

  "형님! 술 안 마시면 열 세 시간이나 어떻게 갑니까요? 형님. 제가 가게에서 소주라도 사오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요? 형님."

  눈웃음치며 말하는 백준영에게, 이광혁이 '우리는 지금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해주자 조용해졌다.

  "시간이 늦었으니 빨리들 서두르지?"

  김택환의 재촉에 신목포파의 이광혁, 김응진, 백준영과, 명성유통에서 나온 직원 한 명이 부지런히 출국심사를 마쳤다. 이미 시간은 12시 30분이 지나있었고 안내 방송에서는 승객들의 런던행 대한항공 907편 탑승을 재촉하고 있는 중이었다.

  유정후의 지시로 이승영과 김근태는 여권이 나오는 대로 뒤따라오기로 했으며 이때까지 그 누구도 이들의 런던행이 괴롭고 힘든 싸움이 되리란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따! 이쁜 아가씨 고맙네!"

  좌석에 앉자마자 오렌지주스를 따라주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백준영이 한 말이었다. 김응진은 머리가 아파 왔다. 백준영이 녀석이 이 정도라면  몇 일 후 오게될 김근태 녀석은 아예 스튜어디스를 무릎에 앉히고 술을 따르라고 할 녀석이었다.

  좌석은 김택환과 이광혁이 붙어있었고, 그 옆의 좌석에는 명성의 직원과 김응진이 붙어 앉았는데, 백준영만 따로 김응진의 뒤에 앉아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백준영이 '여권 만들어 두길 잘했다.'고 떠들며 창 밖을 구경하고 있을 때, 뒤늦게 옆 좌석에 20대 초반의 여성 승객이 앉았다. 여성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소 상기된 얼굴의 앳되어 보이는 아가씨였다. 백준영의 입이 찢어지며 싱글벙글거렸다.

  907편이 이륙했다. 이제나저제나 말을 걸어볼까 기회를 노리던 백준영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옆자리 승객에게 열 세시간 동안 같은 운명이 되었으니 통성명이나 하자고 했다.

  백준영의 투박한 손이 스르르 다가오자 옆의 아가씨가 깜짝 놀랐다.

  "네? 네?"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통성명이나 하자고 내미는 손이요."

  백준영이 느물거리며 재차 손을 들자 아가씨는 단지 목례만 살짝 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손 둘 곳이 없어져 무안을 당했다고 느낀 백준영이 이마에 손을 가져가며 '어 덥네?' 라고 말하자 통로를 사이에 둔 아가씨 건너편의 한 청년이 크게 웃었다. 목소리가 큰 백준영의 행동을 보고 웃은 것이었다.

  백준영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으나 참고, 창가를 보는 척 했다. 몇 분이 지나자 눈을 흘겨 어떤 녀석이 웃었나 쳐다보았다.

  태극 마크가 달린 배낭에서 무엇인가 꺼내고 있던 청년과 눈이 마주쳤다. 명색이 조직폭력배인 백준영이 때는 이때다 하면서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군을 제대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무서운 것이 없던 김도현도 지지 않고 맞섰다.

  기가 막힌 백준영이 이번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더욱 눈을 부라렸다. 이때 옆자리의 아가씨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백준영의 무서운 눈초리와 주먹을 보고 기겁을 했다. 백준영이 급히 자세를 고치며 주먹을 내렸으나 귓가에는 아까 그 청년의 웃음소리가 또 들려왔다.

  2000년 2월 11일. 금요일. 오후 1시 40분.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해운대파의 꼬붕 이승복은 중학교 때부터 홍콩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 갱영화를 즐겨 보곤 했는데, 언젠가는 자신도 멋진 킬러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그 꿈을 실현하고자 고교 졸업 후 폭력계에 뛰어 들었다.

  그러나 멋진 킬러가 되기는커녕 매일 하는 일이라고는 형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잔심부름이거나 청소가 고작이었다. 전화 받는 일도 가끔씩 있었고 때때로 대리운전도 했다.

  그가 처음 해운대파에 들어온 날은 기억하기조차 싫었다. 최명규는 이승복을 보자마자 화장실 청소를 시켰고, 다섯 시간 후에는 직접 검사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경남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구 깡패로 이름높은 최명규의 지시에 이승복은 두 시간 동안이나 열심히 대양 프로덕션의 화장실을 청소했다. 별로 크지 않은 화장실이었기에 그 정도 청소하니까 더 할 것이 없었다. 나머지 세 시간 동안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다섯 시간 후에 찾아온 최명규는 깨끗하게 닦았냐고 물어보았고, 그렇다는 이승복의 대답에 화장실 변기를 모두 혀로 핥아보도록 시켰다. 이승복이 눈을 크게 뜨며 주저하자 바로 최명규의 발이 날아왔다. 이승복은 황급하게 변기를 안고 핥았으며 최명규가 보통 깐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승복이 지금까지 해운대파에서 했던 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폭력배다운 일은 3일전 화요일 저녁에 있었다. 최명규의 전화를 받고 광복동에 있는 동양 관광호텔로 가서 그가 건네주는 쇼핑백을 받아 가져오는 일이었다. 최명규는 중요한 물건이니 조심해서 가져가되 대양 프로덕션의 사무실이 아닌 이승복의 자취방에 가져다 두도록 했다. 절대 열어보지 말고 깊숙이 숨겨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용물이 마약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승복은 그것이 다섯 정의 권총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묘한 흥분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그 권총 안에는 탄알도 가득 차 있었다. 공터에 가서 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럴 용기는 없었다.

  이승복은 이틀 동안 자취방에 권총을 두고 다녔으나 몸에 지니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같은 또래의 양아치들에게도 권총을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다. 이틀이 지나는 동안 최명규의 얼굴은 보지도 못했고, 이 때문에 이승복은 자신에게 권총을 맡겼다는 사실을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  

  즉,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최명규가 자신에게 권총을 소지하고 있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갖고 다니라는 해석이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절대 최명규로부터 권총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우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에서 보스들은 특별한 지시가 없더라도 부하들이 알아서 행동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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