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9개 공항, 항만 등에 총 62명 해외로 나가는 문화재 확인·반출 여부 결정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20만4693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발표한 2021년 4월 기준 해외에 있는 문화재 수다. 오랜 세월 외세 침략과 일제 시대, 전쟁을 거치며 우리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빠져나갔다. 한번 해외로 나간 문화재를 되찾기란 쉽지 않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대가 강탈해간 외규장각 의궤(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는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145년이 걸렸다.
문화재보호법은 더 이상 문화재가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반출을 막고 있다. 해외로 가는 모든 미술품은 반드시 문화재 여부를 확인받아야 한다. 공항과 항만, 국제우편물류센터 등 해외로 가는 길목마다 문화재감정관실이 있는 이유다. 이곳에서 일하는 문화재감정위원(이하 감정위원)은 해외로 가는 여행객의 소지품과 수출용 화물, 국제우편물 가운데 문화재가 있는지 확인하고 반출 여부를 결정한다. 최전선에서 문화재를 지키는 감정위원은 전국에 62명밖에 없다. 김포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이숙희 감정위원에게 이 색다른 직업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김포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이숙희 감정위원. /이숙희 문화재감정위원 제공
-감정위원은 어떤 일을 하나? “문화재보호법상 문화재는 해외로 반출할 수 없다. 감정위원은 해외로 나가는 여행객이 휴대한 물품과 수출용 화물, 국제우편물 중 미술품을 대상으로 문화재인지 아닌지 평가한다. 국보나 보물이 아니더라도 만들어진 지 50년이 넘으면서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면 해외로 나갈 수 없다. 50년 이내에 만들어진 비문화재인 경우 해외 반출이 가능하다. 도굴, 도난 문화재가 반출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업무도 하고 있다. 감정위원은 해외로 가는 마지막 길목에서 모든 미술품의 문화재 여부를 확인하고 반출을 막는 지킴이 같은 일을 한다.”
-문화재감정관실은 몇 곳이나 있나? “문화재감정관실은 1968년 김포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에 처음 만들어졌다. 현재 인천공항, 김포공항, 부산항, 인천항 같은 국제공항과 국제항만 총 19곳에 있다. 이곳에서 근무하는 감정위원은 상근 28명, 비상근 34명을 합쳐 전국에 모두 62명이다.”
문화재감정관실 감정업무 절차
-문화재 감정은 어떻게 이뤄지나? “문화재감정관실은 공항에서 첫 비행기가 운항하기 2시간 전에 업무가 시작되어 마지막 비행기 출발 2시간 전까지 열려 있다. 김포공항의 경우 오전 6시30분에서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출국 당일 민원인이 문화재감정관실에 물품을 가져오면 감정을 해준다. 해당 물품이 문화재로서 가치가 없다면 국외반출확인서와 감정필증을 발급해준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이 서류를 보여주면 된다. 반대로 만들어진 지 50년이 넘거나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면 반출 불가 판정을 내린다. 이 경우 입국할 때 찾아가도록 임시 보관한다. 입국 계획이 없다면 국내에 있는 가족 또는 대리인에게 인도한다. 해외로 나가는 수출미술품의 경우 출국하기 전에 문화재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사전예약감정제도가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감정을 신청하고 사진을 등록하면 반출 여부를 미리 확인해준다.”
-감정 점수가 많은가? “김포공항은 24시간 운영 중인 인천공항 다음으로 문화재 감정 건수가 많은 곳이다. 5년간 통계로 따지면 1년에 3000~4000점, 하루 평균 10~11점 정도다. 코로나 이후 감정 건수가 급감하긴 했지만 지금도 인천공항은 여전히 출국하는 승객과 수출용 화물, 국제 우편에 대한 감정 업무가 매일 이뤄지고 있다. “
2020년 문화재청 통계를 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19개 문화재감정관실 비문화재 확인 점수는 9만9562점이다. 해외 반출이 불가한 문화재는 283점이었다. 김포공항은 1만8989점, 해외 반출 불가 판정을 내린 문화재는 14점이었다.
-문화재를 해외로 반출하려다 적발되는 일이 많나? “문화재나 미술품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으면 문화재의 개념이나 문화재 반출 규제를 잘 모른다. 공항에 문화재감정관실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집에 걸려 있는 오래된 그림, 책, 도자기를 해외에 있는 가족이나 지인에게 선물하려고 가져가다 검색대에서 걸리는 경우가 많다. 사전에 감정관실을 방문하여 비문화재라는 걸 확인하면 해외로 나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몰라서 생기는 문제다. 검색대에서 연락을 받고 감정을 하러 가는 경우도 많은데 비문화재라면 주의를 받고 출국할 수 있다. 반대로 일부러 문화재를 숨기거나 몰래 빼돌리다 걸리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는 도난, 도굴 문화재를 거래하기가 어렵다. 중국, 일본 등에서 거래하기 위해 문화재를 숨기거나 밀반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만약 검색대에서 신고하지 않은 문화재가 적발되면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문화재는 압수된다.”
-감정위원은 어떻게 선발하나? “감정위원은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이다. 비정기적으로 전문임기제(계약기간 5년)와 일반임기제 공무원(계약기간 2년)을 선발한다. 감정위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문화재청에서 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관련학과는 사학과와 미술사학과, 서지학과, 고고학과, 민속학과, 박물관학 등이다. 또 필수 조건은 아니지만 관련학과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술관, 박물관에서 근무했거나 강의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주로 지원한다. 상근보다는 인턴 개념의 비상근 채용이 많은 편이다. 비상근 감정위원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감정위원의 업무를 대신한다. 상근 선발시 비상근 경력이 있으면 유리하다.”
문화재청은 경력경쟁채용으로 감정위원을 선발한다. 시험은 서류와 면접으로 이뤄진다. 전문임기제 나급의 경우 일반 공무원 6급에 해당하며 연봉은 5000만~7500만원 수준이다. 일반임기제 7급은 일반 공무원 7급에 해당하고 연봉은 4000만~6000만선이다. 정해진 정년은 없다. 그러나 65세를 기준으로 계약기간이 끝나면 퇴직하는 게 관례다.
경찰이 압수한 해외 밀반출 문화재들. /대전경찰청 제공
-감정위원마다 전문 분야가 따로 있나? “감정위원마다 전문 분야가 있다. 나는 사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에서 불교 조각으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화재감정실 감정 물품 중에는 도자기와 그림이 가장 많다. 불교 조각은 양이 많지 않지만 꾸준히 들어오는 물품이다. 불교조각이 전문 분야라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불교 조각만 감정하지 않는다. 그림과 도자기, 서적, 공예품, 민속품, 근대 자료와 현대 미술까지 다뤄야 한다. 이때문에 감정위원은 미술품 전반에 걸쳐 전문가가 돼야 하고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전공자의 전문성이 필요할 땐 다른 공항, 항만에 있는 문화재 감정위원과 화상으로 논의한다. 문화재청은 2011년 화상 감정을 도입했다. 고화질 화상을 보며 전공 분야 감정위원이 다른 감정관실에 들어온 문화재 감정 업무를 돕기도 한다.
-감정위원으로 일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11년 인천공항에 근무할 때 국제우편으로 조선시대 고서적을 밀반출한 고미술상을 적발했다. 서울 광진우체국에서 중국에 주기적으로 보내는 우편물이 의심스럽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해외로 가는 우편물은 인천공항 국제우편물류센터로 한자리에 모인다. 문화재감정관실과 문화재청, 경찰, 세관이 공조해 고미술상이 중국으로 보낸 국제우편물을 조사했다. 무려 3년 동안 3000여점의 고서적을 주기적으로 밀반출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중국으로 밀반출될 뻔했던 고서적은 압수해 반출을 막았지만 고미술상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 입건되더라도 제대로 처벌받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문화재 도굴, 도난이 일어나고 훔친 유물을 해외로 빼돌리기 위한 시도가 끊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이선제 묘지(墓誌·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는 문화재감정관실의 활약으로 되찾은 대표적인 유물이다. 이선제(1390∼1453)는 조선 전기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다. 이선제 무덤에서 도굴된 묘지는 1998년 6월 일본으로 밀반출됐다. 문화재 밀매상은 앞서 1998년 5월에도 부산 김해공항을 통해 묘지를 일본으로 유출하려 했으나 문화재감정관실의 반출 불가 조치로 실패했다. 당시 김해공항 감정위원은 이 유물이 제작 연도와 묘지 주인공이 분명해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지만 도난 신고 기록이 없어 압류나 수사 요청을 하지 못했다. 대신 실측도를 남기고 묘지 앞쪽과 뒤쪽을 묘사한 그림을 담은 제보 조서를 문화재관리국과 각 공항, 항만 문화재감정관실에 보냈다. 뒤늦게 불법반출을 확인한 일본측 소장자가 조건없는 기증을 하면서 16년 만에 무사히 돌아왔다. 2018년 6월에는 보물 제1993호로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실측도와 제보조서가 유물을 찾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감정위원으로 일하면서 힘들 때는 언제인가. “문화재감정관실의 주요 업무는 문화재의 해외 반출을 막는 일이다. 문화재 반입은 관세청 업무다. 관세청은 국내로 반입하는 100년 이상 된 도자기, 조각, 공예품에 대해서는 관세와 부과세를 매기지 않는다. 100년 미만의 경우 관세 8%, 부가세 10%를 부과한다. 국내로 반입하는 문화재가 100년이 넘었는지 판단이 필요할 때 감정위원이 업무 협조에 나선다. 100년이 안되서 관세, 부가세를 내게 됐다고 문화재감정관실에 항의하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인데도 우리 탓을 한다. 문화재 반출 시에도 항의하는 분들이 간혹 있다. 문화재 감정이라고 하면 가격을 매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감정위원은 문화재의 가치를 판단해 해외 반출을 막는 전문가다. 문화재의 가격을 알지도 못하고 그게 얼마여도 상관 없다. 문화재와 감정위원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다고 느낄 때 안타깝고 아쉽다.”
-감정위원으로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해외로 반출된 유물들을 보며 사명감을 느낄 때가 많다. 우리 문화재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연구하고 도울 생각이다. 또한 문화재감정관실에서 수많은 위작 문화재를 봤다.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가짜들이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공 분야인 불교 조각의 진위 구별과 함께 위작의 역사, 불상을 감정하는 법을 담은 백서를 남기고 싶다.” 코로나 백신 접종으로 빗장을 푸는 나라가 많아졌다. 국제선 운항이 언제든 재개될 수 있는 만큼 감정위원은 문화재 감정을 위한 연구와 자료 분석을 멈추지 않는다. 문화재를 지키는 최전방 수비수로서 감정 업무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전공분야의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특별 훈련 기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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