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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가 한달 80만원 '미국판 자연인'으로 사는 이유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7.15 09:20:41
조회 3908 추천 12 댓글 31

미국 시애틀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시골 마을. 번듯한 집 대신 단층 조립식 주택에 기자 출신 부부와 두 딸이 산다. 이들은 야생베리를 따먹고, 통밀을 갈아 빵을 만들어 먹는다. 휴대 전화는 단 두 대. 그것도 2G폰이다. 인터넷도 없었다가 얼마 전 들였다. 지금의 삶에 특별히 부족한 것이 없이 만족한다는 이 가족의 생활비는 월평균 100만원이다.

20년 전만 해도 꿈도 꿀 수 없는 생활이었다. 아내 박혜윤(47)씨는 2001년부터 4년 동안 국내 일간지 기자로 일했다. 아침 출근길에는 늘 커피가 함께했다. 집에선 이틀에 한 병씩 와인을 비웠다. 일의 특성상 인터넷은 늘 접속이 가능해야 마음이 편했다. 남편도 같은 일을 했다. 두 사람의 월급을 합하면 꽤 괜찮은 수입이었다. 기자를 그만두고 떠난 미국 워싱턴대 유학을 하며 박사까지 취득했다.

교수까지 했다면 더 많은 돈을, 더 오래 벌 수 있었던 상황이지만 박씨는 돌연 시골로 갔다.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건너온 남편, 두 딸과 함께였다. 높은 월급, 도시에서의 윤택한 삶을 뒤로하고 도대체 왜 온갖 불편이 가득한 시골 생활을 택한 건지 궁금했다. 그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뜰에서 일하는 박혜윤씨./ 박혜윤



-도시에서의 편리하고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시골로 들어갔습니다.

“여기 들어온 것은 2015년이지만 기자 일을 그만둔 이후인 2005년쯤 남편한테 시골 가서 살자고 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막연히 스콧 니어링, 헨리 니어링 부부의 책 ‘조화로운 삶’을 읽고 도시에서 벗어난 삶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도 했고, ‘도시에서 근사하게 사는 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를 낳고 보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놀라기도 했고요. 들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했어요. 정확히 하자면 자식한테는 돈을 아낀다는 게 심적으로 잘 안 되니까 좋다는 건 다 사고 싶었던 거죠. 그러고 보니 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고, 그만큼 못 벌게 뻔하니 불안했어요. 그땐 남편이 반대를 했어요. 내심 안심이 되기도 했어요. 행동으로 옮기는 것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별개의 문제고, 인간은 누구나 변화를 싫어하니까요.(웃음)

미국에서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둔 2013년쯤 한국에 있던 남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왔어요. 박사학위 받고 그냥 놀 거라고 제가 몇 번이나 얘기를 했었는데 남편은 ‘인간이 어떻게 그러겠어? 학위 따면 생각이 바뀌겠지’ 그렇게 생각했대요. 제가 돈을 벌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거죠.

말했던 것처럼 학위를 따고도 교수 자리 지원은 안 했어요. 그렇게 수입이 딱 없어졌을 때 10년 전에 해보고 싶었던 게 생각났어요. ‘몇 년 내키는 대로 살아보다 돈 못 벌어서 못 살 것 같으면 그때 어떻게든 벌자’ 그런 생각으로 지내보기로 했어요. 시골로 간 건 집값 문제가 컸어요. 시골로 이사를 가면 갑자기 목돈이 생기죠. 미국이나 한국이나 도시, 시골 부동산값 격차는 어마어마하니까요. 2년 정도 집을 물색하다가 떠나왔어요.”


박사 학위를 받고도 교수의 길을 걷는 대신 시골에서의 삶을 택한 박혜윤씨./ 박혜윤



-워싱턴대에서 박사까지 마쳤는데 왜 애초 생각했던 교수의 길로 가지 않으셨어요. 다른 쪽으로라도 직장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요.

“정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그중 제일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건 ‘난 낮잠을 자야 해서 그렇다’는 것. 전 아무리 늦게 자도, 빨리 자도 항상 일찍 일어나요. 낮에는 미친 듯이 졸려요. 그냥 졸린 게 아니라 머리도 안 돌아가고 우울해져요. 근데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하루종일 상쾌해요.

낮잠은 교수를 해볼까 했던 가장 큰 이유였어요. 교수는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근데 대학원 다니면서 알고 보니 종신 교수직을 따낼 때까지는 적어도 7~8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래 매일 출근하는 것보다 더 센 강도의 노동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때 제 나이가 서른만 됐어도 10년 정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몰라요. 하지만 아니었죠.

무엇보다 아이들을 옆에서 관찰하고 싶기도 했고요. 아이들이 한 인간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 자체가 제게는 너무나 가슴 뛰는 일이었어요. 전 인간을 탐구하는 게 좋아요. 그것도 성장기의 인간. 그래서 아이들도 마음을 다해 관찰할 때가 많아요. 제 전공이 딱 그런 것이었어요. 박사학위를 딸 때까지는 마음껏 관찰할 수가 있었죠. 내 돈 내고 공부하는 거니까. 하지만 교수가 되는 순간 그런 시간은 정말 줄어요. 남의 돈 받는 일이 다 그렇잖아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의무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거요.”

-시골로 떠나기로 마음 먹은 이후에도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집을 알아보는 일은 물론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지 등을 고민했야 했을 테니까요. 어떤 부분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을까요?

“가축을 돌보고 농사를 짓는 법, 집을 짓고 고치는 방법 같은 강의를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듣고 실습도 해봤어요. 남편은 유기농 농장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해보기도 하고요. 재미있었지만 사실 그런 건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닥치면 다 하게 되더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팁이 있어요. 문제가 생기면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많아요. 나쁜 의도를 가진 게 아니라 그게 사실 안전한 길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시작하면 시골 생활이 도시보다 돈이 더 많이 들어요. 뭐든 돈 주고 사려고 하면 시골이 도시보다 훨씬 비싸요. 도시보다 공급이 많지 않으니까요. 그러니까 무조건 돈 안 들이고 해보는 거예요. 실패하고, 엉망이 되기도 하지만요. 그렇게 배우는 게 진짜인 것 같아요. 돈 드는 거 아니니까 실패해도 그만이고요.

진짜 준비를 많이 한 부분은 시골 땅, 부동산 공부였어요. 시세차익을 남기는 건 중요하지 않았어요. 아무 때나 내가 팔고 싶을 때 잘 팔릴 집을 사는 게 중요했어요. 특히 시골 부동산은 빨리 팔리지 않는 집들이 대부분이라 더 공부를 많이 했어요. 시골이라도 그런 물건은 나오자 마자 반나절도 안 돼 팔려요. 그렇게 몇 번 놓치면서 온 신경을 다해 물건을 기다렸어요. 그래서 시골로 오는데 2년 정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집 주변의 풍경과 블루베리, 사과 재배를 포기하게 만든 사슴들./ 박혜윤



박씨는 집에서 비누, 세제를 직접 만든다. 집도 고친다. 머리 손질도 스스로 한다. 처음 보금자리를 마련하고는 집 근처에 블루베리, 사과나무 등을 수 백 그루 심기도 했지만 새순만 귀신같이 따먹는 사슴, 토끼, 두더지 등 동물들의 등쌀에 포기했다. 대신 동물들이 잘 건드리지 않는 케일과 토마토, 호박, 깻잎, 마늘, 파 등을 심어 따먹는다. 채취에도 적극적이다. 봄에는 쐐기풀과 고사리를 따고, 여름에는 야생 블랙베리와 라벤더를 딴다.

-4인 가족의 월 평균 생활비가 100만원이라니 놀랍습니다. 물가가 저렴한 편인가요.

“이곳의 물가는 서울과 비슷해요. 저도 이렇게 돈을 조금 쓰는 게 사실인가 의아해서 3년째 지출 내역을 10센트까지 모조리 기록하고 있어요. 코로나 전에는 큰 아이가 배우고 싶다는 발레와 조정 강습에 월별 25만원 정도씩이 더 들어가기도 했고, 정전으로 호텔로 피난을 갔을 때처럼 1년에 한 두 번 외부에서 잠을 자거나 할 때 등 변수가 생기면 생활비가 150만원까지 오르기도 해요. 하지만 대부분 80만원 정도 쓰고 끝나서 평균이 100만원이에요.”


박혜윤씨 가족들은 파스타면도 직접 만들어 먹는다. 외식 보다는 집밥을 즐긴다./ 박혜윤



처음에는 박씨도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외식을 하고 커피도 사서 내려 마시고 와인도 즐겼다. 돈을 아껴 쓰거나 생활비를 줄여보려는 노력도 딱히 없었다. 그저 자연히 주변의 것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거추장스러움을 덜어내다 보니 씀씀이가 크게 줄었다. 빵은 물론 씨리얼, 국수, 파스타면, 된장, 간장, 잼 등도 집에서 직접 만든다. 자극적인 것을 덜 먹기 시작하니 입맛도 관대해져 찐 채소가 반찬의 전부인 날도 있다.

그렇더라도 100% 자급자족은 아니다. 슈퍼마켓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도 식재료를 산다. 코로나 이전에는 아이들과 몇 달에 한 번씩 패스트푸드점에 가서 햄버거를 사 먹기도 했다. 자주 먹지 않으니 이날은 가족의 행사이자 행복한 추억으로 남는다. 손님이 오는 날에도 외식을 한다.


남편이 라이프가드로 일하는 수영장, 집 마당에 놓인 피아노를 치는 박혜윤씨의 모습./ 박혜윤



-수입이 있나요. 이 정도로만 일해도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나요.

“저는 e메일 구독 서비스를 통해 비용을 지불한 구독자분들에게 제가 쓴 글을 제공하고 있어요. 남편은 기고, 번역 일을 하고 동네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로 짬짬이 일하고 있어요.

이 정도로 일해도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지라는 질문은 굉장히 어렵네요. 원하는 것과 충분한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 같아요. 굳이 예스나 노로 대답해야 한다면 당연히 노! 해산물도 더 자주 사 먹고 싶고, 집에 에어컨도 있었으면 좋겠고 며칠 전에는 두리안이랑 코코넛을 사고 싶었는데 아쉬워하며 그냥 마켓에 놔두고 왔어요.

대신 원하지 않는 것, 싫은 것을 참지 않아도 돼요. 출퇴근 교통 체증을 참지 않아도 되고 피곤한데 억지로 잠을 참을 필요도 없고, 싫은 사람을 일 때문에 매일 만나지 않아도 돼요. 먹고 사는 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쉬울 때도 있지만, 이런 부분은 밀을 갈아 파스타를 만드는 것처럼 배우고 즐기는 것들로 보충이 되는 것 같아요.”

-부부의 일은 인터넷이 꼭 필요한 일인데 원래 집에 인터넷이 없었다고.

“코로나 이후 아이들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위해 인터넷 핫스팟을 나눠줘 한참 같이 썼어요. 한 달 전 반납한 뒤부터는 핫스팟을 하나 구입해 쓰고 있어요. 원래는 도서관에 가서 인터넷을 썼는데 코로나 때문에 도서관이 문을 열지 않아 인터넷을 쓸 데가 없더라고요. 이곳은 한국만큼 인터넷 사정이 좋지는 않아서 20분짜리 유튜브 영상 하나 올리는데 자그마치 10시간이나 걸려요.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인터넷을 잘 쓰지 않죠.”


집에서 직접 통밀을 갈아 만든 빵을 판매하기도 했다./ 박혜윤



-이전에는 빵집도 짬짬이 했다고 합니다.

“코로나가 막 번질 때쯤 시작했어요. 직접 간 밀과 물, 소금, 이스트 그리고 약간의 올리브유로만 만들어요. 오븐이 작아 한 번에 네 개씩 밖에 못 구워요. 식구들끼리 먹기 위해서 만들었다가 기왕 만든 거 팔 수도 있음 좋겠다 싶어 팔기 시작했어요. 1주일에 이틀만 열어요. 손님은 많아요 두 세명이에요. 대형 오븐이나 믹서 같은 상업용 베이킹 도구를 사면 더 많은 빵을 만들어 팔 수 있겠지만 그러면 그 돈을 회수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해요. 돈 벌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라 빵이 구워지는 모습을 관찰하고 빵을 판매하는 일이 즐거움으로 느껴질 때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해요. 지금은 코로나가 심해져 접은 상태예요.”

-시골에 살아 불편한 점은요. 후회를 한 적은 없는지도 궁금합니다.

“후회를 한다는 건 다른 선택을 했을 때의 결과를 알아야 말이 되는 건데 인생은 한번 사는 거라 알 수 없잖아요. 후회할 만한 점들이 생각나도 그냥 의문으로 끝나요. 다만 불편한 건 있어요. 시골 오기 전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는데 여기선 레슨을 받을 수 없어서 아쉬워요. 그거 말고는 다들 생각할 수 있는 불편함들이에요.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그마저도 잘 못 느껴요.”


박혜윤씨의 아이들. 아이들은 너른 자연과 함께 어울리며 성장했다./ 박혜윤



-아이들 교육 방식도 인상적이에요. 인형이 가지고 싶으면 만들고, 뜨개질을 배우고 싶으면 책과 유튜브를 통해 배우게 해요. 무엇이든 구할 수 있는 도시에 사는 바쁜 부모였다면 그냥 사주거나, 학원을 보냈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시간을 길게 보는 거라 아직까지 잘 하고 있는 건지 정말 잘 모르겠어요. 일단 대학에 대한 생각에 따라 교육 방식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대학이나 학교 성적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 어디서건 여유롭게 자라게 놔둘 수 있죠.”

-최근 삶의 여러 에피소드와 철학을 담은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를 펴냈어요. 책 속 문장 중 시골행에 대해 ‘포기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한 것’이라고 쓴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가던 길을 멈추고, 다른 길로 가는 건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용기가 필요한데 이미 앞서간 이로서 마음은 있지만 망설이고 있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망설이는 것도 결국 뭔가를 하고 있는 것 맞아요. 사람마다 다르죠. 남편이나 큰 딸 때문에 잘 알아요. 저나 둘째는 망설이는 게 없어요. 성격이 단순해서. 그런데 남편과 첫째는 아이스크림 맛 하나 고르는데도 엄청 망설여요. 괴로워 보이지만 그것도 성격에 맞는 거라 속 편하게 계속 갈등하라고 해줘요. 망설이는 사람들이 실수는 덜 하는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속도는 다르니까, 망설이는 시간도 소중하게 여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박혜윤씨의 집에서 보이는 풍경./ 박혜윤




-책 앞머리에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했어요. “나는 삶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삶이라는 골수를 전부 빨아먹고 싶다.” 지금의 삶이 이 구절과 맞닿아 있나요.
“그건 다 살아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대답할 수 있다면 그건 그렇지 못하다는 뜻일 것 같아요. 지금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어딘가에 도달했다는 느낌 없이 그냥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거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람들이 다 다른 자기만의 색깔로 살아가도 괜찮은 세상의 여건이 조금씩 갖춰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세상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느려도 중요한 건 방향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글 시시비비 포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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