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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고 김남일 만났던 소녀, 성인 돼서 하는 일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10 10:58:17
조회 17262 추천 5 댓글 40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 양송희 프로
2002 월드컵 계기로 축구에 빠져 
인천UTD→토트넘→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로 꿈을 이룬 ‘성덕’

2002년 여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월드컵 4강 신화는 전북 전주에 사는 한 중학생의 운명을 바꿨다. 아이돌 대신 축구 선수를 덕질하고 K리그 경기장에 출근 도장을 찍게 만든 것도 모자라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교복을 입고 경기장을 누비던 소녀는 이제 당당히 ID 카드를 목에 걸고 K리그 경기장을 누비는 스태프가 됐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에서 일하는 양송희(32) 프로 얘기다. 인천 유나이티드 프런트로 K리그에 첫발을 들인 후 영국 토트넘홋스퍼 리테일샵의 유일한 한국인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던 양송희 프로의 과거와 현재에 모두 축구가 있다. 축구와 사랑에 빠져 축구와 함께 꿈을 꾸고 축구를 위해 일하는 성공한 덕후 양송희 프로를 만나 축구의 매력과 K리그에서 일하는 법에 대해 물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홍보팀 양송희 프로./FAphotos 이연수씨 제공


-지금 일하고 있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어떤 곳이고 프로님은 어떤 일을 하나요?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한국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를 운영, 관리하는 조직입니다. K리그에는 1부에 12개팀, 2부에 10개팀이 있는데 매 시즌 리그가 잘 운영되도록 관리하고 지원하고 있어요. 저는 홍보팀에서 미디어 응대와 보도자료 작성, K리그 취재지원이나 K리그 정책을 알리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중요한 경기가 열릴 때는 경기장으로 나가 업무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K리그의 오랜 팬이고 K리그에서 일까지 하고 있는데 K리그의 매력은 뭔가요?

“K리그는 물리적으로 가까워요. 유럽 축구 보려면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서 경기를 봐야 하고 직관도 한번 하기 쉽지 않잖아요. 하지만 K리그는 마음만 먹으면 당장 경기장에 가서 생생하게 경기를 볼 수 있어요. 가까이에 있는 만큼 해외 리그 팀보다 소속감을 갖기에도 좋고요.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어렵지만 운이 좋으면 선수들에게 싸인도 받을 수 있어요. K리그가 팬서비스가 좋거든요. 또, 현장에서 보면 선수들의 경기력도 수준 높아요. 티켓도 아주 비싼 편은 아니고요. 저는 접근성 좋고 친근한 게 K리그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K리그에서 좋아하는, 특별히 응원하는 선수가 있다면?

“2002년 한일월드컵을 보고 중학교 1학년 때 김남일 선수의 팬이 됐어요. 김남일 선수를 보기 위해 K리그 경기장을 찾아 다니다  K리그에 입덕했다고 할 수 있죠. 중학생 때 김남일 선수에게 받은 싸인은 코팅까지 해서 지금까지 잘 보관하고 있어요.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사했을 때 김남일 선수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어서 직원과 선수로 만났는데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지금은 특별히 덕질하는 선수가 있다기보단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동고동락했던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어요. 아, 인천에서 만난 인연은 아니지만 울산 현대에서 공격수로 뛰고 있는 오세훈 선수는 개인적으로 팬입니다. 올 시즌 유니폼도 샀어요!”     

-K리그를 응원하는 걸 넘어 축구 관련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어떻게  꿈을 이룰 수 있었나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북현대가 개최한 ‘최진철 골든벨 대회’라는 하프타임 이벤트에 참가한 적이 있어요. 전주월드컵경기장 그라운드 한가운데서 최진철 선수와 관련된 문제를 푸는 이벤트였는데 제가 거기서 1등을 했어요. 1등 상품으로 전북 유니폼을 받았는데, 당시엔 꽤 고가였고 생전 처음 갖게 된 유니폼이라 엄청 기뻤죠. 그때의 즐거운 경험 덕에 경기 외에 팬들을 위한 이벤트까지 관심이 생겼어요. 저도 그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K리그, 월드컵 경기를 볼 수록 축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고요.

축구 선수, 감독, 심판 말고는 축구와 관련된 어떤 직업이 있는지 산업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지만 도움이 될만한 학과에 진학했어요.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현 글로벌스포츠산업학부)에 다니는 동안엔 직접 축구도 했어요. 등번호 8번을 달고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체대 출신도 아니고 축구를 제대로 배운 적도 없어서 힘들고 어려웠지만 축구를 하면서 축구를 더 좋아하게 됐어요. 졸업할 때까지 전국 여자대학 축구대회에 꾸준히 참가했어요. 2010년부터 이 대회를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주최했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입사할 때 이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했어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일하던 시절 경기 준비 중인 양송희 프로. /FAphotos 정재훈씨 제공


-인천유나이티드에 합격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합격 발표날 연락이 안 와서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축구 관련 일만 고집할 수는 없다 싶어 비슷한 시기에 면접을 본 골프 관련 회사에 입사하려고 했어요. 입사를 하루 앞둔 날 아침에 아빠가 전날 꿈 얘기를 해주셨어요. 꿈에서 아빠와 제가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보석을 땄다고요. 그리고 그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합격 문자가 왔어요. 거짓말 같았죠. 그때 정말 기뻤어요. 막막했던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죠.”

-K리그 프로축구단에서 일해보니 어땠나요? 힘들진 않았나요?

“구단에 입성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벅차고 설레는 시간이었지만 사실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입사하자마자 발령받은 곳이 경기장관리팀이어서 잔디를 보식하는 일도 해봤고, 몸을 쓰는 일이 정말 많았어요. 그리고 남자들로 가득한 조직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어요. 당시에는 나이 많은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게 정말 어려웠어요. 또 하나는 팀 성적에 따라 제가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었어요. 팀이 이길 때 같이 좋고 팀이 질 때 같이 슬프고… 구단이 월급 받는 직장이 아니라 ‘내팀’이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일에 몰두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워라밸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도 있지만 팀의 구성원으로서 함께 승리나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어디서도 못할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일하고 싶은 K리그에서 일하게 됐는데 인천 유나이티드를 그만 두고 영국으로 떠난 이유는요?

“2013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사해 5년 1개월을 일했어요. 퇴사 전에 경영기획팀에서 일했는데 팀 업무가 저랑 맞지 않았어요. 업무 능력도 올랐고 더 에너지 있는 일을 하고 싶은데 이사회, 주주총회, 인사총무 같은 업무를 하면서 제 몸에 맞지 옷을 입은 것 같았어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조바심이 났죠. 구단에 보직 변경도 요청하고 다른 구단 면접도 보고 영국 워킹홀리데이까지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된 게 영국 워킹홀리데이밖에 없었어요. 당시엔 영어 공부도 더 하고 싶었고 해외에서 다른 구단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2016년 K리그 시상식에서 인천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요니치, 송시우 선수와 양송희 프로. /양송희 프로 제공

-영국에선 토트넘홋스퍼 리테일샵의 유일한 한국인 스태프로 일했습니다. 

“런던으로 도착한 날부터 매일 EPL 구단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리크루팅 정보를 찾았어요. 토트넘홋스퍼 리테일샵에서 스태프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죠. 당시 토트넘이 홈구장인 토트넘홋스퍼 스타디움 개장을 앞두고 리테일샵도 유럽 최대 규모로 만들어서 스태프를 대대적으로 뽑았어요. 운이 좋게도 합격했고 신기하게도 제가 유일한 한국인이었어요. 2018-2019 시즌에 손흥민 선수의 활약이 대단해서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이 정말 불티나게 팔렸어요. 한국인 손님들도 엄청나게 많아서 스태프들이 제게 한국어 통역을 부탁하기도 하고 손흥민 선수 유니폼으로 가득 찬 일명 ‘손흥민존’ 담당은 늘 제 차지였죠. 거기선 한국어를 하는 게 엄청난 스펙이었죠. 하루종일 너무 바빠서 퇴근하고 집에 와서 샤워하다 주저앉을 만큼 몸은 힘들었지만 누군가 오늘 어땠어 물어보면 ‘너무 행복했어’라고 대답하곤 했어요. 먼 나라에 와서 축구에 대한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느꼈고 또 그곳에서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니까요. 손흥민 선수에게 진짜 고마운 마음이에요. 손흥민 선수가 아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토트넘에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손흥민 선수 만난 일이요. 오프여서 리테일샵에 출근하지 않은 날이었는데 손흥민 선수를 비롯해 토트넘 선수들이 팬이벤트를 위해 방문한다고 동료가 연락을 해왔어요. 손흥민 선수를 볼 기회라고 생각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매장으로 달려갔죠. 손흥민 선수에게 싸인도 받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급하게 가느라 머리도 감지 못하고 쌩얼로 가는 바람에 손흥민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 평생 개인 소장각입니다. 구단에서 공식 영상을 찍고 있어서 대화를 길게 나누지 못해서 제가 토트넘 직원이라는 건 손흥민 선수는 아마 몰랐을 거예요. 손흥민 선수 유니폼을 가장 많이 파는 직원이었는데 말이죠.” 


토트넘홋스퍼 리테일샵에서 판매하던 손흥민 선수 유니폼과 손흥민 선수에게 받은 싸인. /양송희 프로 제공

-영국에서의 경험은 프로님께 어떤 의미, 시간이었나요?

“일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고 영어도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축구 관련 일을 하면서 EPL을 경험한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도 모르는 나라에서 혼자 지내면서 제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요.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저한테 집중할 수 있었고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어요. 그 시간이 좋았고 덕분에 인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국 축구 문화도 많이 경험했겠어요.

“영국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좋아하는 축구 팀을 응원하고 축구 경기를 즐깁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다시 자식을 데리고 축구장에 가죠.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요. 누구나 좋아하는 팀이 있고 그걸 인정해주고요. 토트넘에서 일해도 첼시팬은 첼시팬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해요. 영국 사람들이 축구를 워낙 좋아하니 축구만으로도 대화가 되더라고요. 영어 공부 겸 길 가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곤 했는데 축구로 스몰토크를 정말 많이 했어요. 숨쉬 듯 축구를 즐기는 곳이 영국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와 다시 K리그에서 일하게 됐는데 축구 말고 다른 일을 할 생각을 해본 적 없나요?

“영국에서도 축구 관련 일을 했고 그 경험과 에너지로 한국에 돌아와 다시 축구 일을 할 생각만 했습니다. 축구 중계를 볼 때마다 빨리 저곳에 가고 싶었고 제가 없이 저 산업이 돌아가는 게 당연한 건데 그때는 초조했어요. 하지만 제 뜻처럼 자리가 빨리 나질 않아서 일할 기회가 없었고 한두달 놀다보니 조급하고 걱정도 됐습니다.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고, 제 경력도 다른 분야에선 경쟁력이 없으니까요. 인내하면서 기다렸더니 다행히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 경력직 채용 공고가 났고  다시 K리그에서 일할 수 있게 됐어요.”

-얼마 전엔 좋아하는 일을 위해 달리는 청춘의 뜨거운 분투기를 담은 책 ‘저질러야 시작되니까’를 냈어요. 책은 쓴 이유와 이 책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해왔어요. 제가  이 일을 꿈꿀 때 관련 정보가 전무했거든요. 나중에 일을 하고 경력이 쌓이면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을 써야지 하고 생각해왔어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일하고 나서, 영국을 다녀와서도 아직은 내 이야기가 책을 쓸 만큼은 아니다 생각했는데 작년 연말 코로나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지금 써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예전부터 생각해온 걸 드디어 행동에 옮기게 된 거죠. 영국에 있는 동안 매일 블로그에 일기를 썼어요. 그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원고를 썼고 출판사에 투고했어요.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제가 축구를 어떻게 좋아하게 됐고 제가 하는 일을 소개하는 자기 성장기 같은 책이 됐어요. 축구를 좋아하는 분들이 더 관심을 갖겠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게 있고 그걸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위로와 응원이 되었으면 합니다.”

축구회관/ 2021 동해안더비 미디어데이/ K리그1/ 포항스틸러스 vs 울산현대축구단/ 한국프로축구연맹 양송희 프로/ 사진 정재훈

-축구와 사랑에 빠져 여기까지 달려온 프로님에게 축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축구는 ‘동기부여’예요. 축구가 좋아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게 가능할지, 정해진 게 없었어요. 좋아하니까 믿고 도전할 수 있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잘 보이고 노력하게 되잖아요. 축구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프로님처럼 축구 관련 일을 하고 싶어하는 분들을 위해 필요한 준비나 합격 팁을 알려주신다면.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보다 지금은 축구 관련 직업이 정말 많아졌어요. 연맹이나 협회, 구단 말고도 축구 관련 콘텐츠를 만들거나 혹은 전력을 분석하는 회사들도 많이 생겼어요. 관련 정보도 많아졌고요.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아졌어요. 대학생이라면 구단들이 운영하는 명예기자나 대외활동을 적극 추천합니다. 현장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할 수 있고 관계자들과 눈 맞출 기회도 생기니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영어 실력이에요. 요즘은 구단이나 연맹이나 업무적으로 영어를 쓸 일이 많습니다. 외국인 선수 영입도 많아지고 해외 리그, 구단과 소통할 때 영어가 필수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을 열심히 키우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선수 출신을 뽑는 직무 외에는 전공도 중요하지 않아요. 체대 출신이 아니어도 됩니다. 그리고 가끔 취업 준비하는 분들이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자기가 축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강조하곤 하는데 사실 여기는 다 그런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눈에 띄는 이력은 아니예요. 모두가 축구를 좋아해서 관련 일을 하려는 거거든요. 그것보다는 남들과 다른 경험, 대외활동 등 자신만의 킬링 콘텐츠로 변별력을 키웠으면 합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 목표가 궁금합니다.

“장기적인 목표를 정해놓고 사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막연하게 생각한 것들을 저지르는 스타일이죠. 일단 지금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최대한 오래 하고 싶어요. 언젠가 구단으로 돌아가는 상상도 합니다. 구단에서 일하면서 못해본 것들이 연맹에 와서 보니 많이 아쉬웠어요. 바람은 하나 있어요. K리그 인기가 많아져서 예능이나 드라마에서 자연스럽게 K리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인공들이 K리그를 보러 가는 장면을 보고 싶어요. 야구장에 가는 장면은 많잖아요. K리그가 일상적인 소재가 되고 누구가 좋아하는 팀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시시비비 키코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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