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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복판 내걸린 이 글판, 100번째 맞아 내건 글은?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09.22 10:09:19
조회 2548 추천 5 댓글 4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는 지나는 이들의 눈과 발을 사로잡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계절마다 새로운 글귀로 희망과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광화문글판’이다. 교보생명 사옥 외벽에 내걸린 광화문글판은 3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며 광화문의 상징이자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어느덧 100번째를 맞은 광화문글판은 글로벌 아티스트 방탄소년단(BTS)이 직접 작성한 문구,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전 세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광화문 글판은 교보생명 창립자인 고 신용호 명예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사옥 외벽엔 기업을 대표하는 슬로건이나 관련 광고가 붙어있기 마련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 광화문 금싸라기 땅에 세워진 교보생명 사옥 외벽엔 희망과 위로의 상징이 된 광화문 글판이 붙어있다. 교보생명은 왜 사옥 외벽에 기업 홍보물 대신 광화문글판을 내걸었을까. 광화문글판은 어떻게 3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을까.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외벽에 부착된 ‘광화문 글판’. 100번째를 맞은 광화문 글판은 방탄소년단(BTS)이 쓴 문구로 장식됐다. /jobsN

◇광화문글판, 그 전설의 시작

광화문글판은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의 제안으로 1991년 1월 첫 등장했다. 가로 20m, 세로 8m 크기 글판에 적힌 문안은 지금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우리 모두 함께 뭉쳐 경제활력 다시 찾자’로 시작해 ‘훌륭한 결과는 훌륭한 시작에서 생긴다’, ‘개미처럼 모아라 여름은 길지 않다’ 등 계몽적 성격의 직설적인 메시지가 담긴 표어, 격언이 대부분이었다.  

광화문글판이 지금 같은 감성적인 모습으로 변한 건 1998년부터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기업들의 줄도산과 대규모 실업으로 고통과 절망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자 신용호 창립자는 “기업 홍보는 생각하지 말고 시민들에게 위안으로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이듬해 봄, 고은 시인의 ‘낯선 곳’에서 따온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문구가 걸렸다. 이 문구는 IMF로 힘들어하던 시민들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역대 가장 사랑받은 광화문글판으로 꼽히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따온 문안. /교보생명

역대 광화문글판 중에선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서 가져온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가 가장 사랑받았다. 지난해 교보생명이 지난해 광화문글판 30년을 맞아 ‘삶의 한 문장, 내 마음 속 광화문글판은?’을 주제로 실시한 온라인 투표에서 나온 결과다. 이 투표에는 시민 1만5600여명이 참여했다. 이어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의 시구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가 2위를 차지했다. 

◇교보생명 창립자의 남다른 역사

광화문글판 도입을 제안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일제강점기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한 민족사업가로 유명하다. 1940년 24살의 나이에 중국 베이징에 곡물회사 ‘북일공사’를 설립한 신용호 회장은 이후 민족시인 이육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을 지원하겠다고 결심했고 그 후 거액의 독립 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사업가로 유명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 /교보생명

가족들 역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신용호 창립자의 아버지 신예범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야학을 열어 민족의식을 일깨우도록 도왔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도했다. 첫째 형인 신용국 선생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무 살 때 3.1만세운동에 뛰어든 후 호남 지방의 항일운동을 이끌다가 여러 차례 감옥에 갔고 출옥 후에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객지로 떠돌았다. 전남 영암의 대표적 농민항일운동인 ‘영암 영보 형제봉 사건’에서 일본 소작인 응징과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는 2018년 11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신용국 선생에게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해방 후 한국에 돌아온 신용호 창립자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뜨겁게 피어오른 국민들의 교육열에 주목하고 교육보험 사업을 결심했다. 수년간의 연구 끝에 생명보험의 원리와 교육을 접목한 ‘교육보험’을 창안하고 1958년 교보생명의 전신인 대한교육보험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창립과 동시에 출시한 ‘진학보험’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보험상품이었다. 국민들에게 매일 담배 한 갑 살 돈만 아끼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30년간 약 300만명의 학생들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교육의 기회를 얻게 된 인재들은 1960년 이후 우리나라 경제개발 시대의 주역으로 활약하게 된다.

교보생명은 교육보험의 선풍적인 인기로 1967년 창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오르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해나갔다. 1977년 국내 최초로 종업원퇴직적립보험을 개발해 퇴직연금시장을 선도했고 1980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암보험으로 본격적인 보장성보험 시대의 막을 열기도 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문고 홈페이지 캡처

1980년 종로1가 1번지에 교보생명 빌딩을 세운 신용호 창립자는 이듬해 6월 이 빌딩 지하에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인 교보문고를 열었다. 당시 서울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돈 안 되는 서점을 만드는 것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통팔달 대한민국 제일의 목에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책을 읽은 청소년들이 작가나 교수, 대통령이 되고 노벨상을 탄다면 그 이상 나라를 위하는 일이 일이 어디 있으며, 얼마나 보람 있는 사업입니까”라면서 뜻을 굽히지 않았다. 교보문고는 개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누구나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명소로 기능하고 있다. 

신용호 창립자는 2003년 타계한 뒤에도 화제가 됐다. 당시 유족들은 당시 비상장 주식, 부동산 등을 포함해 3000억원이 넘는 재산을 물려받았는데 약 61%에 해당하는 1830억원 규모의 상속세를 정직하게 신고하고 완납했기 때문이다. 이 액수는 1966년 국세청 개청 이후 역대 가장 많은 액수의 상속세였다. 현재는 삼성과 LG가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병역 이슈는 물론 탈세, 횡령 의혹을 받거나 검찰 수사를 받은 적도 없는 ‘착한 기업’으로도 알려져 있다. 

◇방탄소년단이 전하는 100번째 메시지

교보생명 사옥 외벽엔 어느덧 100번째 광화문글판이 걸렸다. 100번째 광화문글판에는 방탄소년단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희망의 메시지가 담겼다. 광화문글판과 방탄소년단의 특별한 만남은 ‘선한 영향력’이라는 공통분모 아래 코로나 팬데믹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선사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성사됐다.

‘[춤]은 마음 가는 대로, 허락은 필요 없어’는 방탄소년단의 노래 ‘퍼미션 투 댄스’의 가사다. 코로나 19로 인한 제약과 고단함 속에서도 허락을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을 찾자는 의미를 담았다. 

100번째 광화문글판 제작에 참여한 방탄소년단. /광화문글판 홈페이지 캡처

방탄소년단 멤버 7명은 축하영상에서 “저희는 누군가에게 허락받지 않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춤’이라고 생각했다”며 “각자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을 찾아 문안 속 밑줄에 여러분만의 자유를 표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방탄소년단이 광화문글판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8월 교보생명은 코로나 장기화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BTS의 노래 가사를 활용한 광화문 글판을 두 차례 제작했다. 첫번째 문구인 ‘다시 런 런 런 넘어져도 괜찮아, 또 런 런 런 좀 다쳐도 괜찮아’는 2015년 발매한 ‘런(RUN)’의 후렴구로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도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청춘을 응원했다. 두번째 ‘때론 지치고 아파도 괜찮아 니 곁이니까 너와 나 함께라면 웃을 수 있으니까’는 2017년 발매된 ‘A Supplementary Story: You Never Walk Alone’의 가사였다.

지난해 8월 광화문글판 특별판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런(Run)’ 가사를 실었다. /교보생명

100번째 광화문글판에는 기존 글판의 문법과 형식을 넘어선 즐거운 파격이 담겼다. 가로 90m, 세로 21m, 총면적 1890㎡에 달하는 초대형 사이즈로 제작된 이번 글판은 농구 코트(420㎡) 넓이의 4.5배에 이른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예승 작가가 참여해 방탄소년단의 메시지를 화려한 색채와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표현했다. AR(증강현실)과 미디어아트 등 디지털 기술도 접목했다. 색다른 100번째 광화문글판은 오는 11월까지 광화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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