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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가벗는 것 자부심 커” 누드모델이 말하는 보람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0.19 10:40:08
조회 9646 추천 25 댓글 29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 대표

“발가벗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죠. 하지만 인간의 몸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순수함입니다. 그 사람의 나이와 성격, 습관, 욕망이 고스란히 배어있거든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는 자부심이 큽니다.”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53) 대표는 누드모델 직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국내 첫 누드모델이자 33년차 베테랑 모델이다. 


한국누드모델협회 하영은 대표. /한국누드모델협회 제공

하 대표가 누드모델을 시작한 것은 스무살 때인 1988년이다. 지방에서 4남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난 그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찍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기보다 홀로서기를 택했다. 서울에 올라와 단칸방에 생활하며 낮에는 무역회사 경리로 일하고 밤에는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월급이 든 핸드백을 통째로 날치기 당하면서 생계가 막막해졌다. 마침 레스토랑 단골이던 한 사진작가가 누드모델을 제안했다. 

“당시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해보자는 각오가 섰죠. 그렇게 수백명의 작가들이 모인 한탄강 앞에서 데뷔했어요. 오래된 기억이지만 처음엔 굉장히 난감하고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민망함은 찰나의 감정이에요. 어느 순간 제 자신에 집중하고 몸짓을 구현하는데 에너지를 쏟으면서 나만의 예술을 찾아갔어요. 평일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만 모델 일을 하다가 1995년부터 전업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이듬해인 1996년 ‘한국누드모델협회’를 설립했어요. 협회 설립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협회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시나요? 

“1992년 ‘누드모델 하영은’이라는 명함을 처음 만들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을 그렇게 소개하면 명함을 찢어버리거나 괄시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어딘가 평범하지 않고,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으로 보는거죠. 제가 하는 작품 세계는 굉장히 순수했고 그만큼 자부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니 억울했죠. 

협회를 설립한건 이런 직업도 있으니 존중해달라는 취지였어요.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모델들을 찾아가 대중 앞에 나서는건 내가 할테니 떳떳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고 설득했어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혼자보다 여럿의 힘이 나으니까요. 현재까지도 누드모델에 대한 성희롱, 성추행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해요. 그럴때마다 협회 차원에서 고소를 진행하고 해당 수업을 폐강 요청하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죠.” 

-협회를 출범하자 안기부에서 활동을 지켜보기도 했다고요. 

“협회를 만들고 1년이 지난 시점에 안기부 직원들이 사무실에 찾아왔었어요. 정체불명의 단체라면서요. 당시엔 단체가 새로 등장하고 규모가 커지면 국가 차원에서 조사를 하곤 했어요. 제재는 없었지만 꼬박 3개월 동안 사람 만나는 것부터 통화하는 것 하나하나 지켜봤었죠.”


크로키 수업 참가자들이 그린 그림. 

크로키 수업 참가자들이 그린 그림. 

-누드모델이 활동하는 분야도 다양하다고 하던데요. 

“누드모델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어요. 미술·사진 등 순수예술뿐 아니라 의료·영상·패션·게임 등 인체와 알몸을 필요로 하는 모든 영역에서 활동해요. 우선 사람의 몸을 그리는 인체 드로잉은 모든 예술 분야에서 기본입니다. 패션 관련 학과에서도 인체 구도를 기본으로 삼죠. 사람 몸의 비율과 형태, 특징들을 그릴 수 있어야 실용적인 의상디자인 스케치가 나오거든요. 

의학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내 유명 의학서적에 실린 인체 지도는 우리 협회 소속 남자 모델의 몸을 그대로 그려넣은 것이에요. KBS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 도입부에 나오는 인서트 영상 속 몸의 주인공이 바로 저에요. 예비 의사나 간호사들이 실습 용도로 쓰는 의료용 인체모형도 저와 모델들의 몸을 본 떠 만들었죠. 또 국내 홈쇼핑 최초의 여성 란제리쇼에 등장했던 이들도 우리 협회 모델들이었어요.” 

-현재 국내에서 누드 모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요즘에는 누드모델을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하는 추세에요. 누드모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많이 사라졌고요. 과거에는 누드모델 구하는게 하늘의 별따기였지만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젊은 사람부터 중년, 은퇴한 CEO, 목사, 가정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어요. 다만 모델료는 많이 오르지 않아 경제적인 대우는 예전만 못한 상황이에요.”

-현재 협회에 가입된 모델은 몇 분 인가요? 협회에 가입하기 위한 자격 요건이 있나요? 

“현재 협회에 가입된 모델은 1000명 가까이 돼요. 이 중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델은 전국적으로 100~150명 가량 있어요. 

공무원이나 미성년자가 아니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요. 외국인의 경우 취업비자를 지닌 사람들만 활동이 가능합니다. 협회에 가입하면 모델들에게 작업 시간 외에는 절대 나체를 노출하지 말고, 작업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어요. 공과 사의 경계가 무너지면 그만큼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관리를 철저히 하다보니 모델들 사이에서 ‘시어머니’, ‘사감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었어요. 책임감있게 행동해야 누드모델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거라 생각해요.”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누드모델을 하기 위해 알맞은 몸이라는 게 있나요? 어떤 역량이 중요한가요? 

“우선 몸매는 중요하지 않아요. 협회에는 살집이 있는 모델도 있고 마른 몸,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몸, 타투가 그려진 몸 등 다양한 모델이 있어요. 사람은 제각기 다른 몸짓을 가지고 있는데 그 몸짓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가가 중요해요. 몸의 선을 아름답게 구현해낼 수 있는 능력이죠. 또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는 능력, 한 동작을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해요.”

-코로나19로 모델 활동 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일단 집합금지 때문에 일이 많이 줄었죠. 원래 누드모델이 가장 바쁜 시기가 3~4월, 8~9월이에요. 전국 대학이 개강하면서 많은 예술학과에서 기초 드로잉 수업을 진행하거든요. 이때 가장 많이 누드모델을 찾는데 문화센터나 학교, 학원 수업이 비대면으로 전환되면서 타격이 있어요. 우리뿐 아니라 학생도 힘들고, 모두가 어려울거라 생각해요. 이제 모두가 백신을 맞고 있으니 올해만 잘 버텨보자라며 서로 위로하고 있어요.”

-누드모델과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이 꼭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에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거든요. 사용이 필요한 경우 휴대폰을 들지 말고 책상에 놓은 채로 사용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또 휴대폰 알림은 무음으로 설정해야해요. 소리나 진동이 울리면 모델들의 감정 표현이 깨질 수 있거든요. 몸도 경직되고요. 모델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모델을 만지거나 사적 대화를 시도하지 말라고도 이야기 해요. 모델이 다칠 수 있어요.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또 모델의 외모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6년 전 살집이 있던 모델이 활동을 그만뒀어요. 문화센터에서 모델을 하는 동안 수강생들이 그림을 그리며 웃었던 것이 큰 상처였다고 해요. ‘육덕지다’, ‘허벅지가 크다’, ‘예쁘다’는 말 한마디와 표정 하나가 모델들에겐 상처가 되고 충격이 돼요.” 

-누드모델로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몸짓과 표현에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해요. 누군가에게 예술적 영감을 준다는 건 멋진 일이잖아요. 그만큼 책임감도 따르고.”

-반대로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첫번째는 여행이에요. 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여행 다니기가 어려웠어요. 모델들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 자리를 지켜야 하고, 협회 관리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그 다음은 결혼이에요. 공개 모델이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어려웠죠.” 

-대표님의 책에 쓰인 ‘날 것 그대로 내 몸을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바라보고 그걸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요. 우리는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는 식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누드모델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죠. 그건 감출 수 없는 원초적인 표현이에요.”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언젠가 모델을 교육하는 아카데미를 운영해 볼 계획이에요. 누드모델 아카데미에서 모델은 원하는 때마다 활동할 수 있고, 작가들은 여러가지 수업을 하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글 시시비비 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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