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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다녀도 대출도 청약도 안되는 ‘잡푸어’의 현실

CCBBLAB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1.11.19 10:21:00
조회 3942 추천 10 댓글 57

흙수저 출신 대기업 사원의 자조

임금 높아도 자산 축적 어려워

“직업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

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35)씨는 연봉이 올라 올해 소득이 연 7000만원을 넘겼다. 하지만 이씨는 요즘 한숨만 나온다고 했다. 살고 있는 집 전세가 만료돼 집을 알아보니 이미 전세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있었고, 차라리 주택을 매수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대출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이씨가 알아봤던 대출은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해 집값의 최대 70%까지 빌려주는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이었다. 금리가 비교적 낮고 만기도 길어 상환 부담이 적다. 무엇보다 시중은행보다 LTV(주택담보인정비율)이 높다. 

다만 ‘연 소득 7000만원 이하(기혼은 부부 합산 8000만원 이하)’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하기에 이씨는 해당이 되지 않았다. 이씨는 “6억 이하 아파트도 거의 남지 않아 겨우 서울 외곽에 있는 10평대 구축을 봐뒀는데 정작 연 200만원 오른 연봉 때문에 혜택을 못 받는다니 좌절감이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를 졸업했다. 사법시험에 도전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일찍이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저와 비슷한 배경을 가진 대학 동기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잡푸어(job poor)’라고. 가진 게 좋은 직업밖에 없다는 뜻이라나요. 어려운 집안에서 겨우 공부해 대학 내내 과외 알바 뛰고 취업해 돈 모았더니 고소득자라며 세금만 왕창 떼어 가고 내 집 마련과는 영 멀어지니 열심히 살아봤자 소용 없다는 회의감이 듭니다.”


정부가 청약 특별공급에서 소득 요건을 완화하는 방침을 내놨지만, 잡푸어(대기업에 근무하는 흙수저 출신 사원을 자조적으로 이르는 말)들의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KBS 뉴스 캡처

소득은 높은 편이지만 물려받을 자산은 없는 ‘흙수저 출신 대기업 사원’들의 자조가 짙어지고 있다. 남 보기에 좋은 직업을 가졌어도 청약 등 제도적 혜택에서는 정작 애매하게 높은 소득 때문에 소외돼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게 이들의 지배적 정서이다.

기혼자들도 비슷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청약 시장에서 자녀가 없거나 하나뿐인 30대 맞벌이 부부는 일반공급(가점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경쟁률이 15대 1에 달하는 신혼부부·생애최초 특별공급이 그나마 희망이지만 이마저도 소득 제한에 걸린다.

예를 들어 아이 하나를 두고 부부가 맞벌이는 하는 가정의 월 소득이 889만원을 넘으면 아예 수도권 특별공급에 지원이 안 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30~40대 정규직 맞벌이 부부에게도 신혼부부 특공 기회를 주겠다며 내년부터 특공 물량의 30%는 추첨 선발키로 했지만 절망감을 쉽게 회복하기는 어렵다. 

워킹맘 정모(32)씨는 “남편과 나 둘 다 빠듯하게 자라 우리 아이에겐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맞벌이를 계속하고 있다”며 “캠퍼스 커플로 만나 둘 다 힘들게 취업 준비해 번듯한 직장을 잡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풍족하지는 않다. 별다른 직업도 없는데 청약 당첨되고 대출 없이 양가 지원 받아 집을 산 지인을 보면 속이 쓰린 정도를 넘어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대기업 흙수저는 평생 무주택자로 살아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정부가 현금성 지원을 쏟아 낸 지난 몇 년간 자칭 잡푸어들의 불만이 축적돼왔다. 특히 지난 8월 5차 재난지원금이 소득 하위 88%에만 지급되면서 소득이 높은 1인가구들이 아우성이었다. 

“25만원 안 받아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차도 없고 원룸 전세 사는 나는 상위 12%라며 안 주고, 부모님이 마련해준 오피스텔에서 외제차 끌며 혼자 사는 금수저 친구는 소득 낮다고 주는 거라면 말이 다르죠.(대기업 7년차 A씨)”

“월급으로는 답이 없어 주식을 시작했습니다. 수익률 10%대 지키려고 회사 화장실에서 맘 졸이며 증권사 앱 접속하는데 중소기업 다니는 친구가 내일채움공제로 수익률 500% 찍는다고 하네요. 열심히 노력해 좋은 회사 입사한 게 죄인가요? (대기업 3년차 B씨)”

B씨가 말하는 내일채움공제는 중소기업 정규직이 2년을 근무하며 300만원을 저축하면 정부가 600만원, 기업이 300만원을 적립해주는 정부 사업이다. 300만원을 저축하면 1200만원으로 불어나는 마법이 일어나는 셈이다. 

잡푸어들의 분노는 단순히 집값 폭등으로 무주택자가 ‘벼락 거지’로 전락하는 박탈감과는 구별된다. 능력주의, 실력주의에 대한 믿음이 배반되는 데서 오는 좌절감에 가깝다. ‘공정’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30대에게 “내 노력으로 좋은 대학 가고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정작 혜택은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과 환멸(대기업 근무자 C씨)”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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