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상대로 사기친 ‘여성 잡스’부터
약값 5000% 올린 ‘국민 밉상’까지
‘투자자 사기 공모, 브라이언 그로스먼 투자자에 대한 3800만달러(약 454억원) 사기, 데보스 일가에 대한 490만달러(약 59억원) 사기, 투자자 댄 모슬리를 상대로 한 600만달러(약 72억원) 사기’
2022년 1월3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방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Holmes)의 죄목들입니다. 홈즈에게 적용된 11건의 기소 중 4건이 유죄로 인정됐습니다. 환자 사기 공모 1건, 부정확한 검사 결과를 받은 환자와 연관된 2건 등은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1개 혐의는 기각, 나머지 4개 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미국 지방법원 나머지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와 형량을 최종 선고할 예정입니다.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엘리자베스 홈즈는 미국 바이오벤처 테라노스(Theranos) 창업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입니다. 그는 만 19살 때 테라노스를 설립해 실리콘벨리는 물론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창업 아이템이 정말 혁신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홈즈는 손가락 끝에서 채취한 피 한 방울로 250개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했죠.


당시 엘리자베스 홈즈는 이 기술 개발에 몰두하겠다며 다니던 스탠포드 대학을 자퇴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언론 인터뷰에는 항상 검정색 목폴라를 입고 등장했습니다. 애플 전 CEO 스티즈 잡스를 연상시키는 복장에 홈즈는 ‘여자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도 생겼습니다. 또 그때만해도 여성 창업자가 드물어 언론은 물론 잡지 표지에도 자주 등장했죠.
커져가는 엘리자베스 홈즈 영향력에 그에게 투자하겠다는 사람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테라노스는 당시 거액의 투자를 받았습니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 월마트를 운영하는 월튼 패밀리 등 거물 투자자를 유치했죠. 또 외교관 출신 헨리 키신저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등을 기업 이사로 두는 등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테라노스 기업 가치는 9억4500만달러(약 1조1270억원)에 달했죠. 엘리자베스 홈즈 순자산도 45억달러(약 5조4000억원)에 달해 2015년 ‘포브스 선정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혁신적인 기술 개발로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지만 ‘홈즈의 신화’는 2015년 바로 무너졌습니다. 내부고발자가 “혈액 질병 진단 기술은 사기에 가깝다”면서 폭로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내부고발자가 폭로한 내용을 근거로 테라노스를 파헤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테라노스가 개발한 의료기기로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은 고작 16개뿐이었습니다. 확인할 수 있다고 확언한 나머지 200여개 질병은 기존의 대규모 의학 장비로 확인해 속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홈즈는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우리는 언젠가는 그 많은 질병을 검사할 기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면서 전 세계 투자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분노까지 키웠습니다.

내부고발로 결국 테라노스가 진행한 연구는 2016년 모두 무효 처분됐습니다. 2018년 미 검찰은 홈즈와 그의 전 남자친구이자 테라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 라메시 서니 발와니(Ramesh Sunny Balwani)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홈즈의 임신 및 출산 등으로 3년동안 미뤄진 재판은 2021년 9월 다시 열렸습니다. 34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청석 티켓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법정 앞에 새벽 2시부터 줄을 서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죠.
재판에서 홈즈 측은 당시 남자친구이자 COO였던 서니에게 심리적, 성적 학대를 당해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또 홈즈의 변호인단은 "사업에 실패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 홈즈는 테라노스의 복잡한 기술적 단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선의로 사업을 추진했을 뿐이다. 고의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죠.
검찰은 29명의 증인에게 다량의 문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해 홈즈가 고의로 혈액 검사 기술 효과를 과장하고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테라노스의 전 연구소 소장은 “기술적 결함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 제기됐지만 회사가 무시했다”라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미 법원은 홈즈의 성장 과정이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관행을 악용한 범죄라고 규정했습니다. 산호세 지방법원 에드워드 J. 다빌라 판사는 소위 ‘실리콘밸리 문화’를 홈즈 재판의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인정하기로 했죠. 뉴욕타임즈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의 관행은 지나치게 순진하고 낙관적”이라며 “홈즈와 테라노스는 결과적으로 실리콘밸리가 낳은 산물”이라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최근 엘리제베스 홈즈처럼 유죄를 선고받은 창업가는 또 있습니다. 바로 마틴 슈크렐리(Martin Shkreli)입니다. 2022년 1월14일 뉴욕 맨해튼 연방지방법원은 마틴 슈크렐리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약값 폭리로 거둔 모든 수익금 6400만달러(약 760억3000만원)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슈크렐리가 다시 제약산업에 종사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마틴 슈크렐리는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으로, 2015년 튜링제약 (현 비예라제약)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는 희귀 기생충병 치료제이자 암과 에이즈에도 효과가 있는 ‘다라프림(Daraprim)’의 독점적 권리를 사들였습니다. 기존 다라프림은 한 알에 13.5달러(약 1만8000원)였는데, 슈크렐리는 이를 750달러(약 90만원)로 5000% 이상 올렸습니다.
터무니없는 약값 인상에 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업가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과거 미 의회 청문회에 소환됐을 때도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비웃는 듯한 태도를 보여 ‘국민 밉상’에 올랐죠. 그러나 그의 뻔뻔한 태도는 곧 수그러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 연방거래위원회(FTC)와 7개 주가 마크 슈크렐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슈크렐리가 약값을 올린 뒤 훨씬 저렴한 복제약(제네릭) 출시를 막기 위해 다른 제약사들과 불법 합의를 한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사실에도 불구하고 재판 과정에서 그는 “가격 인상은 자본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뻔뻔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결국 마크 슈크렐리는 폭리로 취한 수익을 모두 토해내고 다시는 제약 업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글 시시비비 하늘
시시비비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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