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생 노덕윤 이발사 인터뷰 시아버지와 남편 거들며 시작한 70년 이발 인생 깡패들이 아침마다 들어와 머리 감고 가기도 이발에 즐거움과 보람 느껴…건강할 때까지 계속 할 것
“이래 봬도 내가 외국인 머리도 커트해주는 사람이라고. 힐튼호텔에 투숙하는 외국 손님들이 어찌 알고 찾아왔는지, 나한테서 머리를 깎더라고.”
촌스러운 비누 냄새. 하얀 가운을 입은 나이 지긋한 이발사, 거품 면도. 세월을 간직한 이용(理容) 도구들…이발소란 말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다.
마치 목욕탕이 남탕과 여탕으로 구분되는 것처럼, 한때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이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 이발소는 동네 상가마다 하나쯤은 들어서 있을 정도로 늘어난 미용실에 밀려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낯설기까지 한 이발소. 그런데 그것도 여성 이발사가 주인인 곳이 있다. 놀라긴 이르다. 나이, 아니 연세가 90이 훌쩍 넘은 할머니 현역 이발사의 현란한 가위질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어서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이발소. 실내는 마치 옛날 영화의 한 장면이 멈춰진 것 같다. 머리를 자르는 의자 3개. 그리고 벽 위쪽엔 빼곡하게 걸린 표창장들. 손으로 써진 1982년도 모범업소 표창장도 눈에 띈다. 할머니 이발사가 있다더니 웬걸, 중년의 남성이 손님을 맞는다. “곧 올 거예유.”
알고 보니 그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이발소 직원인 양 손님의 머리털도 ‘빗자루’로 털어줬다.
기다렸던 이곳 여성 주인장이 이내 들어섰다. 검은 머리에 연보라 마스크, 진한 아이라인을 한 90대 할머니 이발사 노덕윤(90)씨의 첫 모습에 놀랐다. 90대 할머니라더니. 20~30년은 젊어 보이는 외모에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1932년생 노덕윤 이발사. 우리 나이로 91세지만, 5년 늦게 호적에 올라간 것을 고려하면 96세, 시쳇말로 내일모레 100세인 할머니다. 스무살 때 시작해 70년 이상 이발사로 지낸 할머니 이발사의 이야기를 잡스앤이 들어봤다.
-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1932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올해(2022년) 91세인데, 그것도 호적 나이고, 실제는 96세지. 옛날엔 자식을 낳았다고 바로 호적에 올리지 않았어. 나도 한 5년 늦게 호적에 올라가는 바람에 5년 젊게 살아.”
- 이발 일은 어떻게 시작하셨어요?
“원래는 시아버지가 하시던 일이었는데, 옆에서 거들어 주다가 배웠어. 18살에 결혼해서 6∙25전쟁이 나면서 전라도로 피난을 갔어. 당시 남편이 경찰이었는데, 힘이 든다고 사표를 내고 아버지를 따라서 미용 일을 시작했지. 남편이 같이하다 보니 나도 곁에서 거들어 주다가 이 일을 배운 거고. 남편은 1929년생이었는데, 65세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어. 사별하기 전까지는 남편과 같이 일했고, 그 후엔 혼자서 쭉 이 일을 하고 있네. 그렇게 보낸 게 70년 세월이지.
지금 이 자리에서 이발소를 한 건 1978년부터니 40년은 훨씬 더 됐구먼. 돈벌이가 시원찮았을 땐 다른 곳에서 세를 얻어서 이발소를 했는데, 열심히 살다 보니 지금 이 건물도 그때(1978년) 사게 됐지. 옆에 있는 같은 층 세탁소와 월세방 4개도 임대를 줬는데, 적은 돈이지만 임대료도 받고 있다고.”
- 여자 손님은 없죠?
“이발소라고 남자 머리만 자른다고 보면 안 돼. 여자 머리도 깎고 파마도 해. 예전엔 여자들도 많이 왔다고. 요즘엔 한 달에 한 명 정도 여자 손님이 올 정도로 많이 줄었지만….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세대가 젊어지다 보니 이발소보다는 미장원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
- 일은 어느 정도나 하시고 이발비는 얼마나 받으세요?
“1만5000원. 그것도 단골들한테는 1만원만 받아. 머리 다 감겨주고, 면도랑 뒷목 면도까지 해줘. 이런 건 미용실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서비스지. 50년 전엔 3000원 정도 받았던 거 같네.
일은 정오에 왔다가 오후 6시 30분 정도면 마치고 집에 가지. 한참 일할 땐 새벽 5시에 문을 열어 오후 9시에 퇴근하는 건 늘상이고, 밤 11시 넘어서 집에 가는 일도 있었어. 그거에 비하면 지금은 그냥 놀다가 가는 거지. 돌아보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했던 것 같아. 일만 하니 친구도 없었고. 60대까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만 했는데, 그거에 비하면 70대부터는 놀면서 한 거지.”
- 손님은 많이 오나요?
“많이 오면 부자 됐지. 하루에 너댓명 오는 것 같아. 없는 날엔 한 명도 안 오고. 적자지 뭐. 한 달에 50만원도 못 버는 달이 많아. 요즘은 그냥 점심값 정도밖에 못 벌어. 옛날엔 종업원이 5명이나 둘 정도로 바빴지. 의자도 6개나 됐고. 이젠 손님이 줄어 의자도 3개만 남기고 다 처분했고. 오던 손님들도 미장원으로 빠지니까 종업원들도 알아서 나가더라고.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더 줄었지. 한 달에 한 번 자르던 사람이 두 달에 한 번 깎고, 두 달에 한 번 파마하던 손님이 서너 달에 한 번 하니 매상이 줄 수밖에.”
-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시나요?
“아무래도 이발소다 보니 나이 많은 남자 손님들이 많을 수밖에. 젊은 사람들은 다 미장원에 가잖아. 젊어야 40대지. 주로 60~70대분들이지.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오기도 하고, 외국 사람들도 가끔 와. 힐튼호텔이 이발소 바로 앞이잖아. 힐튼 호텔에서 숙박하고 머리는 여기 와서 깎는 손님도 꽤 되는 것 같아. 호텔은 머리 자르는데 20만~30만원은 하잖아. 아무튼 요즘 외국 손님한테는 3만원 정도 받지. 외국인들은 팁도 1만원씩 주고 가.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한 달에 몇 명 안 와.”
- 힘든 손님은 없나요?
“아휴, 말해 뭐해. 많지. 1960년 전에는 깡패들이 아침에 와서 이발소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기도 했어. 못 오게 하면 거울이나 시설물을 때려 부수는데, 내가 힘이 있나. 어쩔 수 없이 놔뒀지. 그러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고 깡패들을 잡아가면서 영업을 편안하게 했던 기억이 나네. 옛날엔 여기가 양아치들이 사는 동네라고 해서 ‘양동이’라 불렸어. 남대문경찰서 뒤에 많이 살던 매춘부들도 그땐 여기 꽤 많이 왔지.”
- 첫 번째 손님 기억나세요?
“당연히 기억이 안 나지. 언제적 일인데. 그래도 영화 배우들은 5~6명 왔는데 기억에 남네. 우리 아들 입으라고 옷도 많이 주고 갔어. 근데 그 사람들 이제는 살았나 죽었나 모르겠네. 내가 지금 90대인데 내가 한 30대 때 그 사람들 머리를 해줬으니까. 영화배우 백일섭도 여기서 파마했어. 한 20년 전 일이지만.”
- 현업에서 일하기엔 연세가 많으신데,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힘든 거 없어. 지금도 거뜬하다고. 건강해. 테니스도 30대부터 시작해 50년 넘게 하고 있지. 전국대회에서 동메달도 두 번이나 땄어. 용산구청장배 1등 상도 있지. 지금은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만 해. 탁구도 10년은 쳤어. 학창 시절 땐 학교 대표 체육선수였는데, 전국대회 높이뛰기와 멀리뛰기 선수로도 나갔다고."
- 이발소는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
“언제까지 한다는 건 없어. 내가 건강할 때까지 해야지. 왔다 갔다 일하면서 시간을 보내니까 정신 건강에도 좋은걸. 이발소에 나와 손님들과 대화하면 즐겁잖아. 돈은 많이 못 벌어도 인생의 즐거움과 보람은 여기에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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