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빈, 김혜수, 김희애, 주지훈. 이들 네 명의 공통점은 뭘까요? 배우라는 점 외 이들에겐 공통분모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국내 명품 플랫폼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명품 플랫폼은 아침부터 매장에 달려가야 하는 ‘오픈런’을 하지 않아도 클릭 한 번으로 명품을 살 수 있는 곳입니다.
국내 명품 플랫폼 시장은 코로나19로 급성장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하늘길이 모두 막혀 해외 명품 매장은 물론 면세점도 갈 수 없게 됐죠. 그러자 명품 플랫폼이 급부상한 것입니다. 명품 플랫폼 시장을 대표하는 곳은 소위 ‘머·트·발’입니다. 머스트잇(Must it), 트렌비(Trend be), 발란(Balaan)을 의미합니다. 다른 후발주자도 있지만 이들 ‘빅3’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이죠.
이 빅3는 코로나19를 등에 업고 순식간에 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소비자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고자 광고 모델로 톱스타를 섭외했습니다. 머스트잇은 배우 주지훈을, 발란은 김혜수를, 트렌비는 김희애와 김우빈을 섭외했죠. 효과도 좋았습니다.
주지훈을 모델로 TV광고와 배너 광고를 진행한 직후 머스트잇은 2021년 8월 20일부터 9월 22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앱 다운로드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83% 증가했고 신규 고객 수도 66%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발란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란은 2021년 10월 배우 김혜수를 모델로 내세운 이후 그달 거래액이 461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이는 2020년 같은 기간보다 여섯 배 증가한 규모라고 합니다.
이렇게 명품 플랫폼은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걸 너무 급하게 소화하려고 했던 탓일까요. 결국 탈이 났습니다.
발란 광고모델 김혜수. /발란 유튜브 캡처
◇‘이커머스 딜레마’에 빠진 빅3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 명품 플랫폼 3사 2021년 매출은 증가세지만 영업 손실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를 ‘이커머스 딜레마’라고 합니다.
이들 3사의 거래액은 역대 최대입니다. 머스트잇의 2021년 거래액은 3527억원을 기록했습니다. 트렌비는 3200억원, 발란은 3150억원을 기록하면서 3사 모두 거래액이 3000억원대를 넘어섰죠. 매출도 늘었습니다. 매출액은 발란이 552억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이는 2020년 243억원에서 2배 이상 늘어난 수치입니다.
발란에 이어 트렌비가 218억원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트렌비는 해외 매출을 제외한 수치라고 합니다. 트렌비는 해외에서 자회사 6개를 운영하고 있는데요, 트렌비 측은 “일부 수수료만 한국지사에 잡히는 시스템”이라며 “2주 뒤 공시될 매출은 연결기준으로 963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머스트잇의 매출액은 200억원이었습니다. 매출이 전년보다 66% 늘었지만 발란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매출액은 3사 모두 전년보다 늘었지만 영업 이익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3사 모두 영업 손실을 기록했습니다. 영업 손실액은 트렌비 330억, 발란 185억원, 머스트잇은 100억원이었습니다. 이중 적자 폭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트렌비였습니다. 머스트잇은 2011년 창립 후 꾸준히 흑자를 내다가 처음으로 적자를 본 것입니다.
머스트잇 광고 모델 주지훈. /머스트잇 유튜브 캡처
◇광고선전비에 ‘몰빵’…결과는?
전문가들은 빅3의 수익성 악화는 브랜드 홍보와 시장 선점을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3사 모두 톱 배우를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큰 비용을 지출한 것입니다. 또 3사 간 경쟁이 계속되면서 지출하는 광고선전비는 그대로인데 광고 모델 효과는 갈수록 미미해지기 때문에 손실이 커진 것입니다.
2021년 발란이 쓴 광고선전비는 190억9589만원, 판매촉진비는 3억9795만원이었습니다. 이는 2020년보다 각각 450.6%, 311.9% 늘어난 규모입니다. 트렌비가 지출한 2021년 광고선전비는 298억8262만원이었습니다. 전년보다 228.3% 늘어난 수치입니다. 같은 기간 판매촉진비는 전년보다 141.4% 증가한 24억7905만원이었습니다.
2021년 머스트잇이 사용한 광고선전비는 134억1727만원입니다. 전년보다 582.1%나 늘었습니다. 반면 지난해 판매촉진비는 6133만원으로 전년 대비 65.4% 줄었죠.
그럼에도 3사 중 재무구조가 가장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곳은 발란입니다. 발란의 적자는 185억원이었는데요, 현금성 자산 360억원을 보유하면서 3사 중 가장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가지고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머스트잇은 영업활동 현금흐름에서 90억원 적자가 발생했습니다. 다만 100억원가량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재무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입니다.
머스트잇 측은 “2021년 부채비율(333%)이 높은 이유는 사옥 매입으로 장기차입금 240억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 제외하면 부채비율은 약 42% 정도다. 사옥은 오프라인 쇼룸 오픈, 직원 근무환경 개선, 자산 가치 확대를 위한 투자”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트렌비는 현금성 자산이 66억원에 불과하고 2021년 영업활동으로 생긴 현금흐름은 -300억원이었습니다.
트렌비 홈페이지. /트렌비 캡처
◇환불·반품 불가에 가품 논란도
이런 상황에서 서비스 품질에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2021년 4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소비자상담센터와 서울시전자상거래센터에 신고된 ‘명품 플랫폼’들의 청약 철회 제한 관련 상담은 총 813건에 달했습니다. 주요 피해 및 분쟁유형으로는 계약취소·반품·환급이 전체 42.8%를 차지했죠. 제품 불량·하자(30.7%), 계약불이행(12.2%)이 뒤를 이었습니다.
명품 플랫폼은 대부분 ‘통신판매중개(오픈마켓)’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들 기업은 전자상거래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픈마켓의 경우 전자상거래법상 해당업체가 통신판매 당사자가 아님을 플랫폼 초기화면에 표기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플랫폼 초기화면에 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입점 판매자의 신원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표시하지 않거나 일부만을 표시한 경우도 있었죠.
단순 변심에 의한 청약 철회는 7일 안에 가능합니다. 그러나 입점 업체별로 적용 기준이 달랐습니다. 한 업체는 이용약관에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반품할 수 있다고 표시했지만 문의 게시판 등에서는 ‘수영복, 액세서리와 같은 특정 품목은 반품이 불가하다’고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가품 논란도 끊이지 않습니다. 최근 무신사와 크림 간 벌어진 ‘가품 논란’으로 소비자 불신이 확대됐죠. 이 논란은 2022년 1월 한 소비자가 무신사에서 구매한 명품 티셔츠를 크림에 되팔면서 시작됐습니다. 긴 공방 끝에 결국 무신사가 판매한 티셔츠가 최종 가품이란 결론이 났습니다.
전자상거래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 명품 플랫폼 시장이 급성장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 구조는 더 나빠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서비스를 개선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엔데믹 시대에 명품 플랫폼 시장 성장성 자체에 의구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엔데믹 시대에 하늘길이 다시 열리고 있다. 명품 소비자들이 다시 해외 오프라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데, 바뀌는 시장 판도를 따라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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