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단행한 제재는 단순한 보복 조치를 넘어선 지정학적 신호로 해석되어야 한다.
[CEONEWS=박수남 기자] 최근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단행한 제재는 단순한 보복 조치를 넘어선 지정학적 신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는 한화오션이 미국의 해양 전략에서 차지하게 된 핵심적 역할을 중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제재는 역설적으로 한화오션의 미국 진출 전략이 거둔 성공의 가장 강력한 증거다. 한화오션은 미국 조선업 기반 시설에 대한 계산된 투자와 미 해군 유지보수 생태계로의 성공적인 통합을 통해, 단순한 상선 건조사를 넘어 태평양 중심의 새로운 산업 동맹에서 없어서는 안 될 쐐기돌(Keystone)로 변모했다. 이로 인해 한화오션의 전략적 가치는 워싱턴과 베이징 양측 모두에게 기하급수적으로 증대되었다. 중국의 제재를 피해가 아닌,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화오션의 전략적 가치가 공인받는 인정의 행위로 재해석하고, 그 배경과 의미, 그리고 향후 궤적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베이징의 '응징'
중국 상무부는 한화오션의 미국 내 5개 자회사에 대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제재 대상은 한화쉬핑(Hanwha Shipping LLC), 한화 필리조선소(Hanwha Philly Shipyard Inc.), 한화오션USA인터내셔널(Hanwha Ocean USA International LLC), 한화쉬핑홀딩스(Hanwha Shipping Holdings LLC), HS USA홀딩스(HS USA Holdings LLC)로 명시되었다. 이 조치에 따라 중국 내 모든 조직과 개인은 해당 5개 기업과의 거래 및 협력 활동이 전면 금지된다.
표면적으로 중국은 이번 제재가 미국 무역법 301조에 근거한 자국 해운·물류·조선업 조사에 대한 반격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 상무부는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이 미국 정부의 관련 조사 활동에 협조하고 지지함으로써 중국의 주권과 안보, 발전 이익에 위해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미-중 무역 갈등이 해운·조선업 분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보복 조치의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이 제재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표면적 명분 너머의 전략적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중국의 조치는 한국에 위치한 모기업 한화오션을 직접 겨냥하지 않고, 오직 미국 내 자회사들만을 정밀하게 타격했다. 만약 중국의 목표가 한화오션에 대한 최대한의 경제적 타격이었다면, 한국 본사를 제재하여 글로벌 LNG 운반선 건조 사업과 같은 핵심 사업의 공급망을 교란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밀 타격은 중국이 위협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한화오션의 상업적 역량 전반이 아니라, 한화오션이 미국의 국방 산업 기반에 통합되는 특정한 경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즉, 중국의 메시지는 한화오션이 아닌 미국을 향하고 있다.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의 핵심적 부상에 맞서기 위해 동맹국의 역량을 빌려 결정적 취약점을 보완하려는 시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으며, 이 특정한 행위를 우리의 해양 패권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한다"는 지정학적 선언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제재는 의도치 않게 한화오션의 전략적 중요성을 공인하는 결과를 낳았다. 강대국은 무의미한 행위자에게 외교적, 경제적 자본을 소모하며 보복하지 않는다.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을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제재를 가한 것은, 이들의 활동이 중국의 국가적 이익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대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로써 한화오션이 미-중 무역 분쟁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단순한 프레임은 한화오션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전략에 너무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나머지, 중국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는 고차원적인 서사로 전환된다. 이는 미 국방부와 의회 내에서 한화오션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한화오션의 부상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국 조선업의 구조적 쇠퇴와 중국 해양력의 폭발적 팽창이라는 거대한 지정학적 단층선이 존재한다. 이 극심한 불균형이 바로 한화오션에게 전략적 기회의 공간을 열어주었다.
미국의 쇠퇴
한때 세계 조선업의 패권을 쥐었던 미국은 이제 그 그림자만 남았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0.2% , 시장 점유율로는 1% 미만을 차지하는 미미한 존재로 전락했다. 최근 10년간 한국 조선소가 2,405척의 상선을 생산하는 동안, 미국 조선소의 생산량은 고작 37척에 그쳤다. 이러한 산업 생태계의 붕괴는 생산성의 급격한 저하와 비용 폭증으로 이어졌다. 일례로, 이지스 구축함 한 척을 건조하는 데 한국에서는 약 6억 달러가 소요되지만, 미국에서는 그보다 2.5배 이상 비싼 16억 달러가 든다.
이러한 쇠퇴는 1980년대 정부 보조금 폐지와 과도한 보호주의 정책이 맞물리면서 가속화되었으며 , 이제는 심각한 국가 안보의 취약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미 해군은 심각한 함정 유지보수 적체 현상을 겪고 있으며, 필요한 속도로 함대를 증강할 능력을 상실했다. 이는 단순히 상업적 경쟁력의 상실을 넘어, 미국의 해양 패권을 유지하는 능력 자체에 근본적인 균열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중국의 전례 없는 해양력 확장
미국이 쇠퇴하는 동안, 중국은 역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해양력을 키웠다. 중국의 조선업 생산 능력은 미국의 약 230배에 달하며 , 전 세계 조선 시장의 69.2%를 장악하고 있다. 약 20개의 대형 조선소와 50개의 드라이독을 보유한 중국은 상선과 군함을 말 그대로 찍어내고 있다.
이러한 산업적 우위는 곧바로 군사력으로 전환된다. 중국의 군민융합(Military-Civil Fusion) 전략은 상업적 조선업의 역량을 군함 건조에 직접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 현재 중국 해군 함대의 약 70%가 2010년 이후 진수된 신형 함정인 반면, 미 해군에서 이 비율은 25%에 불과하다. 이는 양국 해군 간의 세대 차이가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지표다.
이 데이터들이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상업적 격차가 아닌, 회복 불가능에 가까운 전략적 단절이다. 미국은 단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수십 년에 걸쳐 아시아에서 형성된 숙련된 노동력, 고도로 발달한 공급망, 생산 효율성 등 조선업 생태계 전체가 붕괴했기 때문이다. 이 생태계를 처음부터 다시 구축하는 데는 수십 년의 시간과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며, 중국의 팽창 속도를 고려할 때 미국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따라서 유일하게 현실적인 단기 해법은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부터 필요한 기술, 생산 노하우, 그리고 자본을 직접 수혈받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화오션이 채워야 할 전략적 공백이 발생한다.
최근 중국이 한화오션의 미국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단행한 제재는 단순한 보복 조치를 넘어선 지정학적 신호로 해석되어야 한다.
한화의 미국 진출
미국의 전략적 필요를 정확히 간파한 한화오션은 치밀하게 계산된 3단계 전략을 통해 미국 시장에 진입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 미국 안보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었다.
1단계: 교두보 확보 - 필리 조선소 인수
2024년 12월, 한화오션(지분 40%)과 한화시스템(지분 60%)은 약 1억 달러를 공동 투자하여 필리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는 한국 기업이 미국 조선소를 인수한 최초의 사례로, 그 자체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 인수는 단순한 상업적 M&A가 아니었다. 존스법(Jones Act)과 같은 강력한 보호무역 장벽으로 둘러싸인 미국 시장 내부에 전략적 교두보를 확보하는 군사적 작전과도 같았다. 특히 필리 조선소는 미 동부 연안의 주요 해군 기지 3곳과 인접한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한화는 인수 직후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 관리 능력을 즉각적으로 증명했다. 인수 당시 현지에서는 1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해저 암석 설치선(SRIV) 진수 작업을 불과 6개월 만에, 예상보다 5개월이나 앞당겨 성공시켰다. 이는 수십 년간 축적된 한화오션의 기술력과 생산 노하우가 침체된 미국 조선소에 즉각적으로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단계: 전력 증강 - 대규모 투자와 'MASGA' 비전
교두보를 확보한 한화는 곧바로 대규모 자본 투입을 통한 전력 증강에 나섰다. 초기 7,000만 달러의 추가 투자를 시작으로, 인수금액의 50배에 달하는 최대 50억 달러(약 7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자금은 낡은 시설을 현대화하고, 새로운 도크와 블록 생산 기지를 신설하여 현재 연간 1~2척에 불과한 건조 능력을 최대 20척까지 끌어올리는 데 사용될 예정이다.
이러한 투자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의 핵심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인수금액 대비 50배에 달하는 투자 계획은 통상적인 상업 논리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는 단기적인 투자 수익률(ROI)을 극대화하려는 일반적인 기업 인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한화가 필리 조선소 인수를 통해 얻고자 한 진짜 자산은 낡은 설비가 아니라, 미국 국방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자격 그 자체였다. 50억 달러라는 막대한 투자는 그 자격을 공고히 하고, 미국 정부의 정책 목표에 전적으로 동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전략적 서약인 셈이다. 이로써 한화의 기업 전략은 미국의 국가 안보 이익과 완벽하게 연동되었고, 이는 한화오션을 단순한 공급업체가 아닌 전략적 플레이어로 격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3단계: 신뢰 구축 - 미 해군 MRO 사업에서의 실력 입증
마지막 단계는 실전에서의 능력 증명을 통한 신뢰 구축이었다. 한화오션은 미 해군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Wally Schirra)함과 급유함 유콘(USNS YUKON)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연이어 수주하고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는 한국 조선소가 미 해군 함정의 창정비를 수행한 최초의 사례로, K-방산의 새로운 역사를 쓴 쾌거였다.
이 MRO 사업들은 한화오션에게 더 크고 민감한 사업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오디션 역할을 했다. 패트릭 무어 미 해군 해상수송사령부 한국 파견대장은 월리 쉬라함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한미 양국 간 긴밀한 협력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높이 평가하며 향후 협력 강화에 대한 기대를 표명했다. 극도로 보수적이고 위험 회피적인 미 국방부 입장에서, 외국 소유 기업에게 신규 함정 건조를 맡기는 것은 엄청난 정치적, 안보적 부담이 따르는 결정이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군수지원함의 MRO 사업을 통해 한화오션의 기술력, 보안 절차, 사업 관리 능력을 검증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연간 약 20조 원 규모의 미 해군 MRO 시장에서 성공적인 실적을 쌓음으로써 , 한화오션은 필리 조선소에서의 신규 함정 건조라는 최종 목표를 향한 정치적, 제도적 장벽을 체계적으로 허물어 나가고 있다. 이는 급진적인 정책 변화가 아닌, 논리적인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인내심 있고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이다.
새로운 해양-산업 동맹의 구축
한화오션의 전략은 미국이 직면한 난제를 해결할 독창적인 하이브리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는 미국에게 정치적으로 매력적인 미국 내 일자리 창출과 조선업 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실현 가능하게 만드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기술력과 생산 효율성을 수입할 수 있게 해준다. 즉, 한화오션은 미국 조선업의 경쟁자가 아니라, 그 부활을 위한 필수적인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화오션의 역할은 단순한 국방 계약자를 넘어선다. 자체 자본을 투자하고 수십 년간 축적된 생산 노하우를 이전함으로써 , 한화오션은 새롭게 재편되는 미국 조선업 생태계의 쐐기돌 종(Keystone Species)이 되고 있다. 쐐기돌 종이 사라지면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듯, 이제 한화오션의 성공은 미국 해양 전략의 성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파트너십은 한미 동맹의 차원을 한 단계 격상시킨다. 한국은 더 이상 동북아에서 안보를 제공받는 수혜국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의 국방 산업 기반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핵심 공여국으로 위상이 변화한다. 이는 단순한 안보 동맹을 넘어선 깊은 수준의 산업 및 기술 통합을 의미한다. 한화오션의 입장에서는 기업의 상업적 성공이 곧 지정학적 영향력으로 전환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그 어떤 상업 계약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강력한 안정성과 전략적 가치를 기업에 부여한다.
리스크, 기회, 그리고 새로운 글로벌 질서
한화오션의 전략적 행보는 거대한 기회의 문을 열었지만, 동시에 상당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미래의 성공은 이러한 기회를 극대화하고 리스크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눈앞의 기회들
신규 함정 건조: 궁극적인 목표는 현대화된 필리 조선소에서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해안경비대 경비함, 나아가 존스법을 충족하는 상선(LNG 운반선 등) 건조 계약을 수주하는 것이다. 이는 한화오션이 미국 시장에 완전히 뿌리내렸음을 의미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MRO 사업 영역 확장: 국내에서의 성공적인 MRO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내 다른 항구나 인도-태평양 지역의 동맹국 항만으로 사업을 확장하여 전진 배치된 미 해군 자산을 정비하는 글로벌 MRO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기술 이전 및 공동 R&D: 양국 간 신뢰가 깊어지면, 스마트·자율운항 선박, 친환경 선박 기술 등 차세대 조선 기술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산 협력을 넘어선 기술 동맹으로의 발전을 의미한다.
리스크
중국의 추가 보복: 중국은 현재의 제재를 넘어 한화오션의 글로벌 공급망이나 아시아 지역에서의 상업적 이익을 겨냥한 추가적인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미국의 정치적 변동성: 미국 내 정치 지형의 변화나 기존 방산업체들의 강력한 로비는 한화오션의 역할을 제한하려는 보호주의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복잡한 미국 노동법과 규제를 준수하는 것 또한 지속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
실행 리스크: 필리 조선소를 되살리려는 계획은 매우 야심 차다. 프로젝트의 중대한 지연, 예산 초과, 또는 품질 문제는 한화오션이 미 국방부와 어렵게 쌓아 올린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화오션의 전략적 행보는 국제 무대에서 스스로의 위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낀 새우가 아니다. 미국 조선업 재건이라는 아치의 중심에 스스로를 쐐기돌로 박아 넣음으로써, 한화오션은 21세기 해양 세력 균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독자적인 힘을 가진 플레이어로 거듭났다. 응징을 의도했던 중국의 제재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크기를 전 세계에 가장 확실하게 증명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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