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4년 11월 14일, 삼성전자 주가는 4만9900원까지 추락하며 4년5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말에도 5만3200원에 머물러 연간 31.8%의 하락률을 기록했고, PBR(주가순자산비율)은 1배를 밑돌았다. 기업가치가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시장의 냉정한 평가였다. "HBM 전쟁에서 완패했다", "삼성의 시대는 저물었다"는 비관론이 증권가를 지배했고, 국민주라는 명성이 무색한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2026년 1월 8일, 삼성전자가 발표한 2025년 4분기 잠정실적은 모든 의심을 일축했다. 매출 93조원, 영업이익 20조원. 전년 동기 대비 매출 22.7%, 영업이익 208.2% 증가다. 분기 영업이익 20조원 돌파는 한국 기업 사상 최초이자, 2018년 3분기(17조5700억원) 이후 29분기 만에 경신한 역대 최대 기록이다. 증권가 컨센서스(18조5000억원)를 8% 이상 상회한 '어닝 서프라이즈'다.
이번 실적의 일등 공신은 반도체(DS) 부문이다. 증권가에서는 DS부문이 16조~1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히 시장의 의구심이 가장 컸던 HBM(고대역폭메모리) 분야에서의 반전이 결정적이었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지연이라는 수모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2024년 2월 HBM3E 12단 첫 샘플을 엔비디아에 전달한 뒤 수차례 고배를 마셨지만, D램의 핵심 요소인 10나노급 4세대(1a) 공정 회로를 전면 재설계하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 결과 2025년 9월 마침내 HBM3E 12단 품질 승인을 획득했다. 19개월 만의 엔비디아 공급망 복귀였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세 번째 공급사로 합류한 것이다.
경쟁사가 먼저 길을 열었지만, 폭증하는 AI 수요를 두 업체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압도적 생산능력(CAPA)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여기에 AI 데이터센터 확장에 따른 고용량 DDR5와 고성능 SSD 수요 급증으로 범용 메모리 가격도 동반 상승했다. 감산으로 재고가 소진된 시점에 수요가 폭발하자, 가격 결정권이 다시 공급자에게 넘어온 것이다.
이번 실적은 단순한 숫자의 반등이 아니다. 구조적 변화의 신호탄으로 읽어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난 2년간 기술 리더십 부재라는 뼈아픈 비판을 받았다. 파운드리는 TSMC에 밀리고, 메모리는 SK하이닉스에 쫓겼다. 하지만 이번 실적은 삼성전자가 위기 상황에서 얼마나 빠르게 회복탄력성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증명했다.
메모리가 다시 '현금 창출원(Cash Cow)' 역할을 확실히 수행하게 됨에 따라, 삼성전자는 2나노 파운드리, HBM4, 로봇 등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를 지속할 동력을 확보했다. 경쟁사가 쉽게 따라올 수 없는 '자본의 해자(Economic Moat)'를 다시 구축한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HBM4에 경쟁사보다 두 단계 앞선 10나노급 6세대(1c) D램을 적용하는 전략을 택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결합한 맞춤형 서비스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다.
2026년은 삼성전자가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받는 원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실적의 질(Quality)이 달라지고 있다. 메모리 사이클에 의존하던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파운드리 수율 안정화와 시스템LSI 성장이 가시화되고 있다. 둘째, HBM4 시장에서의 반격이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HBM3E 품질 승인은 HBM4 테스트 조기 통과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셋째, 역대 최대 실적은 배당 여력 확대를 의미하며, 밸류업 프로그램에 발맞춘 주주 환원 정책 강화는 외국인 투자자 귀환의 촉매제가 될 것이다.
물론 리스크는 상존한다. TSMC와의 파운드리 격차는 여전히 크고,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지정학적 불확실성은 상수다. 그러나 2024년 11월 PBR 1배 미만이라는 역사적 저점을 떠올려보라. 악재는 이미 주가에 상당 부분 반영됐고, 호재는 이제 막 반영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에게 지난 2년은 뼈를 깎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4분기 20조원 실적은 그 어둠이 걷히고 있음을 알리는 서광(曙光)이다. 주가는 이미 그 변화를 읽었다. 1년 전 5만원대에 머물던 삼성전자 주가는 오늘 14만원대를 기록하며 160%의 상승률을 보였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이 10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글로벌 투자은행 맥쿼리는 목표주가 24만원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단순한 반도체 기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경제의 심장이자 글로벌 IT 산업의 풍향계다. 그 거인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물론 단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압력과 추격 매수 세력 간의 공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실적에 기반한 상승 여력이 30~40%에 달한다는 분석이 우세한 만큼, 투자자들은 이제 과거의 '위기설'이 아닌 미래의 '성장성'에 주목해야 할 때다. '20만전자'라는 새로운 고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 와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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