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2026년 1월 22일 오전 9시 1분,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5,000'이라는 숫자가 새겨졌다. 1980년 코스피 지수 산출 이래 46년 만의 일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오랜 '변방'의 역사를 끝내고 선진 시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자조 섞인 단어에 익숙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4000선을 돌파한 뒤 단 3개월 만에 1000포인트를 더해 5000 고지를 밟았다. 이제 'K-프리미엄'을 말할 수 있게 됐다.
이 쾌거의 배경에는 반도체와 AI라는 산업적 호재가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재명 정부가 밀어붙인 'K-밸류업' 정책의 성공을 빼놓을 수 없다. 정부는 출범 직후 '코스피 5000'을 국정 과제로 천명하고 자본시장 체질 개선에 나섰다.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화답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와 배당 소득 분리 과세 등 과감한 세제 혜택도 기업들이 주주 환원에 나서게 만든 기폭제였다.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년 새 0.84배에서 1.35배로 뛴 것이 정책 효과를 증명한다. 그러나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이르다. 코스피 5000이라는 화려한 성채 밑에 '1470원대 고환율'이라는 불안한 지반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상 주가 상승은 외국인 자금 유입을 뜻하며, 이는 원화 강세로 이어지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고주가-고환율'이라는 기이한 동거를 목격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수출 대기업들이 고환율 효과로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며 주가를 끌어올린 탓이다. 현재의 5000포인트에는 펀더멘털 개선과 환율 효과가 겹친 '착시'가 일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1470원대 환율은 수출 기업에겐 축복이지만 내수 경제에는 재앙에 가깝다. 수입 물가 상승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이는 가계의 실질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진다.
5000 돌파 순간 개인 투자자들이 1조 원에 가까운 주식을 매도한 현상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개미들은 상승장을 즐기기보다 고물가와 불안한 미래에 대비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이다. 증시의 온기가 실물 경제로 퍼지지 못하고 자산 시장에서만 맴도는 '돈맥경화' 징후다. 이재명 정부의 남은 과제는 명확하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안착시키고 그 과실을 내수 진작으로 연결하는 연착륙 전략이다.
첫째, 환율의 하향 안정화가 시급하다. 1470원대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환차손 우려로 자금을 뺄 명분을 제공한다. 환율을 1300원대 후반에서 1400원 초반으로 낮추는 미세 조정이 필요하다. 단순한 외환 당국 개입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 K-밸류업 정책을 전 산업으로 확대해 외국인의 장기 직접 투자를 유도하고,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구조 개혁도 병행돼야 한다.
둘째, 증시 성장이 내수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 시장을 '단타의 장'이 아닌 '노후 자산 증식의 장'으로 인식하게 해야 한다. 장기 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늘리고, 퇴직연금의 디폴트옵션을 고도화해 증시 자금이 가계의 부로 축적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개미들이 차익 실현 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수익을 소비와 재투자로 연결할 때 비로소 진정한 부의 효과가 발생한다.
셋째, 산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다. 반도체 '투톱'에 의존하는 증시는 반도체 겨울이 오면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다. 바이오, 방산, 원전, K-콘텐츠 산업을 새로운 기둥으로 육성해 특정 업종 부침에도 흔들리지 않는 펀더멘털을 구축해야 한다.
코스피 5000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숫자의 화려함에 취해 구조적 모순을 외면하면 다시 2000~3000 박스권이라는 늪으로 추락할 수 있다. 정부는 밸류업의 성공에 안주하지 말고 환율 리스크 관리와 내수 낙수효과라는 더 고난도의 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트럼프 리스크가 해소되고 AI 혁명이 가속화되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기업은 혁신하고, 정부는 정교하게 조율하며, 투자자는 신뢰할 수 있는 시장. 코스피 5000이 반짝 이벤트가 아닌 한국 경제의 새로운 표준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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