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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한국 CEO들의 스포츠 후원 역사

ceonews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6.02.13 15: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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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NEWS=김병조 기자] 한국의 스노보드 선수 최가온이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자 최가온 선수를 전폭적으로 지원해온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이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재계 CEO가 스포츠 선수나 선수단을 지원한 경우가 많은데, CEO들의 스포츠 후원 역사와 대표적인 사례들을 모아서 소개한다.


 ■ 연대기별 후원의 역사

 한국 재계는 올림픽·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를 계기로 특정 종목을 장기간 후원하거나, 유망 선수를 직접 지원해온 전통이 있다. 이는 단순한 마케팅을 넘어 △비인기 종목 육성 △국가대표 인프라 구축 △스포츠 외교 등과 연결돼 왔다. 한국 CEO들의 스포츠 후원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960~70년대: 산업화와 함께 태동한 ‘기업 스포츠’

한국에서 기업의 스포츠 후원은 자발적 마케팅이 아니라 국가 전략의 연장선에서 시작됐다.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대기업이 급성장하던 시기, 정부는 국제대회 성적을 국격 제고의 수단으로 삼았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실업팀을 운영하며 엘리트 체육을 떠받쳤다.

상징적 인물은 이병철이다. 삼성은 1970년대 레슬링·탁구·육상 등 다양한 종목의 실업팀을 운영하며 선수 고용과 훈련 환경을 제공했다. 당시 구조는 단순했다. 국가는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은 자금과 조직을 댔다. 선수는 기업 소속 직원 신분으로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이 시기 스포츠 후원은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는 국가주의적 동원 체제이고, 둘째는 실업팀 중심의 선수 육성.이며, 셋째는 기업 홍보보다는 국가 기여 성격이 강했다.

 ▲ 1980년대: 서울올림픽과 ‘총수의 전면화’

1988년 서울올림픽은 전환점이었다. 스포츠는 더 이상 체제 선전 수단에 머물지 않았다. 글로벌 미디어와 광고 산업이 결합하면서 스포츠는 브랜드 경쟁의 무대가 됐다.

이 시기부터 대기업 총수가 종목 협회장을 맡는 ‘회장사 체제’가 본격화된다. 대표 사례가 대한양궁협회다. 현대차그룹은 1980년대 후반부터 협회를 장기 후원하며 장비 개발과 과학적인 훈련 체계를 도입했다. 이 모델은 정몽구 시기를 거쳐 정의선 체제까지 이어지고 있다.

양궁은 이후 올림픽에서 압도적 성적을 유지했다. 이 사례는 단순 재정 지원을 넘어 기업의 품질 관리·데이터 분석·연구개발 문화가 스포츠에 이식된 사례로 평가된다.

같은 시기 박용성은 대한체육회장과 IOC 위원을 지내며 기업 총수가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 진출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기업인은 더 이상 후원자가 아니라 스포츠 행정의 핵심 플레이어가 됐다. 

▲ 1990년대: 글로벌화와 스포츠 외교

1990년대는 한국 기업이 해외 시장으로 확장하던 시기다. 스포츠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의 매개가 됐다.

삼성은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사 활동을 맡으며 동계 종목을 지원했고, 피겨 스타 김연아의 등장은 기업 브랜드와 스포츠 스타의 결합 효과를 극대화했다. 국제대회에서의 성과는 곧 글로벌 광고 자산이 됐다.

항공 네트워크를 가진 한진그룹의 조양호은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아 국제대회 유치와 스포츠 외교를 지원했다. 기업의 글로벌 인프라가 스포츠 행정과 결합한 사례다.

이 시기 특징은 ‘스포츠=브랜드 확장 플랫폼’이라는 인식의 정착이다.

 ▲ 2000년대: 비인기 종목의 생존과 기업의 역할

2000년대 들어 스포츠 후원은 또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비인기 종목의 생존이 기업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김승연은 대한사격연맹을 지원하며 국제대회 유치와 선수단 안정화를 도왔다. 최태원은 대한핸드볼협회를 맡아 실업팀을 운영하며 종목 기반을 유지했다.

이 구조는 효율적이지만 취약하다. 기업의 경영상 위기나 총수 리스크가 발생하면 협회 운영도 흔들린다. 실제로 일부 종목은 후원 공백기 동안 국제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기도 했다. 

▲ 2010년대 이후: 데이터, 과학, 그리고 지속성

최근 10여 년간 기업 후원은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과학화·전문화 단계로 진화했다. 스포츠 과학, 빅데이터 분석, 심리훈련 프로그램이 체계화됐다.

양궁은 여전히 가장 상징적 사례다. 공정한 내부 선발 시스템, 기술 장비 혁신, 장기적 인재 육성 구조는 ‘지속성’의 힘을 보여준다. 기업이 바뀌지 않고, 지원 철학이 유지될 때 성과도 누적된다.

동시에 일부 기업은 ESG 경영과 연계해 장애인 스포츠, 유소년 육성까지 지원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스포츠 후원이 사회적 가치 전략과 연결되는 흐름이다.

 ◇ 성공사례와 한국형 스포츠 지원의 특징

 ▲ 가장 성공적인 모델은 무엇인가?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을 장기 지속성, 국제 성과 안정성, 조직 혁신 여부 등 세 가지로 설정해보자. 이 기준에서 대한양궁협회 모델은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힌다. 단기 성적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안정적 우위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핵심은 ‘돈’이 아니라 ‘경영 방식’이었다. 데이터 기반 선발, 장비 기술 투자, 경쟁과 공정성 강조 등의 경영 방식은 제조업 중심 기업 문화와 닮아 있다.

또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의 경우는 특정 기업에 국한된 지원은 아니지만 다양한 기업이 광고 모델로 활용해 재정적 지원을 한 대표적인 사례다.

김연아 선수는 단일 기업이 아닌 다양한 대기업 스폰서와 장기 파트너십을 통해 선수 경력을 확장했다. KB금융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가 광고모델로 발탁했고, 대한항공은 항공과 훈련을 지원했다. 특히 KB금융과의 관계는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된 전략적 지원으로 평가받으며, 단순 광고 수익을 넘어 선수의 국제 경쟁력 기반을 견인했다.

피겨 스케이트의 훈련장은 개인 스포츠의 세계다. 그러나 국제무대에 오르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과 후원이 필요하다. 김연아의 성장 과정에는 기업 스폰서십과 빙상연맹의 지원이 결합돼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스타 선수의 등장은 기업 브랜드에 상징 자산을 제공했고, 기업의 지원은 선수의 세계 정상 도전을 가능하게 했다. 이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키웠다.

▲ 한국형 모델의 구조적 특징

한국 스포츠 후원의 특징은 ‘집중형 책임 구조’다. 한 기업이 한 종목을 사실상 전담한다. 이는 빠른 의사결정과 장기 전략 수립에 유리하다.

반면 미국은 시장형 모델이다. United States Olympic & Paralympic Committee 아래 다수 기업이 분산 후원한다. 일본은 기업 실업팀 분산 구조, 중국은 국가 주도 체제다.

한국은 민간 기업 중심이지만, 국가 전략과 밀접히 연결된 ‘하이브리드 모델’에 가깝다.

 ▲ 기업과 스포츠, 권력과 상징

CEO의 스포츠 후원은 단순한 선의의 기부가 아니다. 그 안에는 복합적 동기가 작동한다. 글로벌 브랜드 가치 상승, 정부 및 국제기구와의 관계 강화, 기업 이미지 관리, 사회적 책임 이행 등 스포츠는 기업 권력이 가장 긍정적으로 표출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메달은 정치적 논쟁을 최소화하면서도 국가적 자부심을 자극한다.

 ▲ 그늘: 의존과 취약성

그러나 구조적 한계도 명확하다. 특정 총수 의존도, 협회 거버넌스 취약성, 공공 재정 기반 부족 등 기업이 떠나면 종목이 흔들리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

총수 리스크가 발생하면 협회 운영에 차질이 생기고, 사법 리스크와 스포츠 지원의 정치적 해석이 뒤따르게 되며, 기업 의존형 구조에 따른 자생력 문제도 발생하기도 한다.

 ■ 메달 뒤에 선 사람들 — 인물로 읽는 한국 스포츠 60년

▲ 창업주의 결단 — 이병철

1970년대 초, 서울 장충체육관. 레슬링과 탁구, 육상 실업팀이 훈련하던 현장에는 기업 로고가 붙어 있었다. 당시 선수들은 국가대표이면서 동시에 ‘회사원’이었다. 급여 명세서가 곧 훈련 보장이었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왜 스포츠에 투자했을까. 단순 홍보라기보다 “국가와 기업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산업화 세대의 인식이 더 강했다. 정부는 국제대회 성적을 국격의 지표로 삼았고, 기업은 이를 떠받쳤다.

이 시기의 후원은 오늘날과 달리 전략적 브랜드 마케팅이라기보다, 체제적 동원과 사회적 책무에 가까웠다. 한국 스포츠에서 ‘기업이 선수의 월급을 준다’는 모델은 이때 정착됐다.

 ▲ 현장을 바꾼 경영자 — 정몽구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대한양궁협회 회의실에는 제조업 경영에서 쓰이던 언어가 등장했다. 품질 관리, 데이터, 표준화.

현대차그룹은 대한양궁협회를 맡아 장비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화살의 미세한 편차, 활의 탄성, 선수의 심박 변화까지 분석 대상이 됐다. ‘잘 쏘는 선수’가 아니라 ‘오차를 줄이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이 체계는 이후 정의선 체제로 이어졌다. 양궁은 올림픽마다 메달을 쌓았고, “기업 경영이 스포츠를 바꿨다”는 평가가 나왔다.

양궁 훈련장은 어느새 연구소와 닮아 있었다.

 ▲ 국제 무대로 나간 기업인 — 박용성

두산그룹 회장이던 박용성은 대한체육회장을 거쳐 IOC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스포츠 행정을 국내 울타리에서 국제 외교의 영역으로 확장시켰다.

IOC 총회장에서 기업 총수는 단순 후원자가 아니라 협상자였다. 국제대회 유치, 종목 규정 개정, 외교적 네트워크 구축이 동시에 이뤄졌다. 스포츠는 더 이상 경기장 안의 일이 아니었다.

이 시기부터 CEO의 스포츠 후원은 ‘외교 자산’이라는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 비인기 종목을 지키다 — 김승연

사격장은 조용하다. 그러나 국제대회 한 번을 치르기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화는 대한사격연맹을 장기간 지원하며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훈련 인프라를 유지했다.

비인기 종목의 현실은 냉혹하다. 관중도, 중계권도, 스폰서도 제한적이다. 기업이 빠지면 훈련장 유지부터 흔들린다. 김승연 회장의 지원은 ‘스타 마케팅’보다는 ‘종목 유지’에 가까웠다.

사격 선수들은 종종 말한다. “기업이 있어 버틸 수 있다”고.

 ▲ 사라질 뻔한 팀 — 최태원

2000년대 초, 실업 핸드볼팀이 줄줄이 해체되던 시기였다. 대한핸드볼협회는 존립 위기를 겪었다. SK는 협회를 맡고 실업팀을 운영했다.

핸드볼은 대중적 인기는 낮지만 올림픽 효자 종목이었다. 기업의 선택은 계산된 투자라기보다 ‘공백을 메우는 결정’에 가까웠다. 이후 국제대회 성적이 유지되면서, 기업 후원은 종목 생태계의 안전판으로 기능했다.

 ▲ 네트워크를 연결하다 — 조양호

항공 네트워크를 가진 한진그룹의 조양호 회장은 대한탁구협회를 맡아 국제대회를 유치하고 해외 교류를 확대했다. 항공 노선은 선수 이동을 돕는 물리적 자산이었고, 동시에 외교적 자산이었다.

탁구장은 기업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결됐다. 스포츠 외교가 곧 기업 외교였다.

 ▲ 메달 뒤의 계산과 철학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통점이 보인다. 단기 홍보보다 장기 구조에 투자한 경우 성과가 지속됐다. 기업의 핵심 역량(제조, 네트워크, 데이터)이 스포츠에 이식될 때 경쟁력이 강화됐다. 총수 개인의 의지가 강할수록 협회 운영은 안정됐다.

그러나 동시에 취약성도 드러난다. 특정 인물 의존 구조, 총수 리스크, 기업 경영 위기 시 후원 축소 가능성. 한국형 모델은 효율적이지만, 개인의 결단에 크게 기대는 구조다. 

■ 결론과 시사점

▲ 메달 뒤의 또 다른 역사

1960년대 실업팀에서 출발한 기업 스포츠 후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거치며 글로벌 브랜드 전략과 결합했고, 21세기에는 데이터·과학 기반 조직 혁신 모델로 진화했다.

한국 스포츠의 메달은 선수 개인의 노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 뒤에는 기업 권력, 국가 전략, 글로벌 네트워크가 교차해왔다.

CEO들의 스포츠 후원사는 곧 한국 산업화의 또 다른 연대기다. 경제 성장의 궤적과 메달의 궤적은 놀랍도록 자주 겹쳐진다.

서울의 한 사격장, 충북의 양궁 훈련센터, 강원도의 빙상 링크. 선수들은 오늘도 훈련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조용히 자금을 대고, 협회를 운영하고, 국제 무대에서 협상하는 인물들이 있다.

메달 시상대에는 선수 한 명만 서 있지만, 그 뒤에는 수십 년에 걸친 기업인의 선택과 계산이 겹쳐 있다. CEO들의 스포츠 후원사는 단순 미담이 아니다. 그것은 산업화, 글로벌화, 그리고 한국형 자본주의가 스포츠라는 무대에서 남긴 또 하나의 기록이다.

 ▲ 한국형 스포츠 지원, 지속 가능할까?

오늘도 훈련장 어딘가에는 기업 로고가 붙어 있다. 스포츠는 여전히 민간 자본에 크게 의존한다.

미국의 United States Olympic & Paralympic Committee가 다수 기업의 분산 후원 구조를 갖고, 중국이 국가 주도 체제를 유지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특정 기업이 종목을 책임지는 집중형 모델에 가깝다. 이 구조는 빠른 성과를 내지만, 장기적 지속 가능성은 별도의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질문은 남는다. 이 구조는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가. 혹은 더 공공적이고 분산된 모델로 전환해야 하는가. 메달은 순간이지만, 그 뒤의 구조는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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