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이재훈 대표기자]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은 간단치 않지만,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슈퍼사이클을 향해 나아간다면 머지않아 가슴 벅찬 미래를 맞이할 것입니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이 이른바 '캐즘(Chasm)', 즉 일시적 수요 정체라는 깊은 계곡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삼성SDI의 행보가 산업계와 증권가의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실적 부진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서도 웅크리는 대신 과감한 자산 매각과 선제적 투자, 차세대 기술 개발이라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 바로 2024년 11월 취임해 2년 차를 맞이한 최주선 대표이사 사장이다. 서울대 전자공학 학사, 카이스트 전자공학 석·박사 출신의 기술통 경영자로,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RAM개발실장, 미주총괄, 삼성디스플레이 대표이사를 역임한 삼성그룹 핵심 경영인이다. CEONEWS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최주선 사장을 이달의 '탑씨이오(TOP CEO)'로 선정하고, 그가 설계하는 삼성SDI의 미래 성장 전략을 심층 탐구했다.
■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다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사장이 취임 직후 마주한 삼성SDI의 재무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 성장에 힘입어 2022년 영업이익 1조 8,080억 원, 2023년 순이익 2조 660억 원으로 절정을 구가하던 실적은 이내 가파른 내리막으로 접어들었다.
지난해에는 전방 수요 둔화 여파로 영업손실 1조 7,204억 원, 순손실 6,822억 원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하는 뼈아픈 시기를 겪었다. 2016년 이후 9년 만의 연간 적자였다. 낮아진 이익 창출력은 재무 지표 전반의 악화로 이어졌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순매도와 함께 주가 역시 하락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최 사장은 단기적 주가 부양이나 미봉책에 연연하지 않았다. 다가올 '배터리 슈퍼사이클'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 뼈를 깎는 체질 개선과 확실한 실탄 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확고한 판단이 있었다.
■ '11조 원의 승부수'
최주선 삼성 SDI 대표이사
최주선 삼성 SDI 대표이사
최 사장은 취임 직후 주주들의 강한 반발을 감수하면서도 1조 6,549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부채비율을 79.3%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올해 초, 최 사장은 한층 더 대담한 승부수를 던졌다. 삼성SDI는 2026년 2월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보유 중인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15.2% 매각 추진을 이사회에 보고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장부가는 74조 원 수준으로, 삼성SDI 보유 지분만 장부 기준 1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증권가는 지분 전량 매각 시 최대 11조 원 내외의 현금 유입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부채비율은 50%대로, 유동비율은 약 2배 수준으로 대폭 개선될 것으로 전망한다.
매년 안정적인 배당과 지분법 이익을 가져다주던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과감히 처분함으로써 미래 성장 투자 재원을 한꺼번에 확보하는 전략이다. 지난해 유상증자와 달리 이번 지분 매각이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다. 확보된 실탄은 올해와 내년 예정된 5조 원 이상의 설비 투자(CAPEX)에 안정적으로 투입되는 한편, 합작법인 지분 인수 등 공격적 외형 확장의 발판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 ESS와 전고체로의 전략적 피벗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사장의 전략적 무게중심은 명확하다. 전기차 캐즘 장기화에 대비해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으로 시장의 파이를 넓히고, 미래 시장을 지배할 전고체 배터리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거는 이중 전략이다.
ESS 사업의 전면적 확대
최 사장이 실적 반등의 핵심으로 삼는 분야는 미국 ESS 시장이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에 따른 수요 폭증과 함께, 미국의 중국산 ESS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로 반사이익도 기대된다. 삼성SDI는 이미 미국 에너지 인프라 업체와 2조 원 규모의 ESS용 LFP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지난해 7월 산업통상자원부 주관 ESS 중앙계약시장 경쟁입찰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경쟁사들을 제치고 물량의 80%를 확보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스텔란티스와의 미국 합작 공장 생산라인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어, 전기차 수요 정체를 상쇄할 가장 확실한 캐시카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꿈의 배터리' 전고체와 로보틱스 시대 준비
삼성SDI는 2027년 하반기를 전고체 배터리 '솔리드스택(Solid Stack)' 양산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경쟁사들이 2030년 전후를 목표로 삼는 것과 비교해 약 3년가량 앞선 일정이다. 이 기술은 단순히 전기차에 국한하지 않고 휴머노이드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등 차세대 모빌리티의 핵심 동력원으로 설계됐다. 삼성SDI는 전고체 국내 생산라인 시설 투자에만 4,500억 원을 책정하며 기술 선점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불황에도 멈추지 않는 R&D 뚝심
최 사장의 '기술이 희망'이라는 철학은 숫자로 증명된다. 지난해 매출이 20% 넘게 축소되고 조 단위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R&D 비용은 오히려 1조 4,000억 원으로 확대됐다. 매출 대비 R&D 비율은 2023년 5.0%에서 2024년 7.8%, 지난해에는 10.6%로 올라서며 사상 처음 두 자릿수를 돌파했다. 위기일수록 본원적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경영 철학의 산물이다.
■ '3S 전략'과 비관적 낙관주의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 사장은 올해 신년 메시지에서 선택과 집중(Select), 고객·시장 대응 속도(Speed), 생존을 위한 투혼(Survival)으로 구성된 '3S'를 핵심 경영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비관적 낙관주의(Pessimistic Optimism)'라는 개념을 통해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 철저히 준비하면서도 낙관적 결과를 기대하는 리더십의 본질을 압축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선언은 삼성SDI 전 임직원에게 위기 극복의 방향타로 작동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유럽을 직접 누비며 BMW,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핵심 경영진과의 배터리 공급 협상을 이끄는 것도 삼성SDI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미 방산 배터리 동맹의 중심에 선 삼성SDI가 2030년 약 5조 원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글로벌 방산 배터리 시장에서 원통형 배터리 공급을 주도하며 새로운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 현재의 적자'가 아닌 '미래의 흑자' 기대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최주선 삼성SDI 대표이사
삼성SDI가 걷고 있는 길은 평탄하지 않다. 올해도 수천억 원대의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단기 실적 개선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그러나 시장의 시선은 이미 '현재의 적자'가 아닌 '미래의 흑자'를 향해 있다.
최주선 사장이 취임 이후 보여준 결단의 궤적, 즉 주주 반발을 감수한 유상증자, 11조 원에 달하는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 불황 속 R&D 비율 두 자릿수 돌파, ESS와 전고체 배터리로의 민첩한 사업 전환은 전통 제조업의 위기 극복 방정식을 새롭게 쓰고 있다.
배터리 업황의 마지막 고비로 평가받는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 바로 그것이 다가올 슈퍼사이클에서의 폭발적 도약을 위한 응축 과정임을 최주선 사장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기술이라는 가장 확실한 횃불을 들고 캐즘의 터널을 묵묵히 전진하는 그가 그려낼 삼성SDI의 '가슴 벅찬 미래'를, 글로벌 2차전지 산업이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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