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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라를 여행하는 위붕이를 위한 안내서 - 3일차(2)

헤르메또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5.06.21 2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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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음은 웨어하우스 내부에서도 좀 더 장소가 넓은 곳에서 진행되었다. 웨어하우스의 상태를 보았을 때 처음 들렀는 곳보다 나중에 지어진 곳 같은데, 그만큼 넓고 또 한기가 돌았다. 자리에는 시음용 글라스와 운전자를 위해 준비된 앰플병이 상자 안에 들어 있었으며, 특이하게도 브룩라디 술병을 물병으로 재활용하고 있었다. 참 이러한 곳에서도 환경을 생각하여 알뜰살뜰하게 사용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옛날 어머니들께서 델몬트 주스병을 보리차 담는 용기로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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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라디에서 제공한 몰트는 다음과 같다.
1) BRUICHLADDICH BERE BARLEY 2009 (BOURBON CASK, 61.8%)
2) PORT CHARLOTTE 2003 (BOURBON + SAUTERNES CASK, 54.9%)
3) OCTOMORE 7.3 2010 (BOURBON + WINE CASK, 63%)

전날 부나하벤에서 당한 것이 있어 추가적으로 받을 수가 있는지 미리 물어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캐스크 내 있는 원액들이 거의 고갈되어 제공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다. 기왕 증류소에서 공짜로 바이알 용기를 받았으니, 좋은 날을 받아 한국에서 시음을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고로, 후술 한 내용은 모두 시향 한 것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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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에 닿자마자 버번 캐스크의 특성은 달콤한 꿀내가 매우 직관적으로 느껴졌다. 그 밖에도 짚풀이나 잔잔한 시트러스 등 버번캐스크가 가질 수 있는 특성들을 고루 갖춘 위스키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버번 캐스크 위스키와 다른 결이 하나 있는데, 바로 독특한 유제품향이 난다는 것이다. 약간의 밀크캬라멜이나 밀크티에서 느껴질 법한 향들도 솔솔 풍겨져 왔는데, 나는 그것이 이 원액의 원료가 되는 '베어 발리'에 있지 않은가 강력하게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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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에 대한 애정과 집념은 브룩라디가 가장 진보적인 증류소라고 불리우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이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보리는 2줄 보리와 6줄 보리가 있는데, 2줄 보리의 경우 맥주 양조용으로 사용하고 6줄 보리는 보리밥 등 식용으로 적합한 품종이다. 60년대 산업화 시기 국민들의 굶주림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6줄 보리를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국내 보리 품종의 주류는 6줄 보리이다.

그러면 베어 발리는 무엇인가? 이는 신석기시대부터 스코틀랜드에서 재배되었던 보리 품종으로, 북부 지방에서 오랫동안 재배되어 왔으니 수율이 좋은 신품종의 등장은 20세기 재배율이 급감했다고 한다. 이러던 와중 증류소도 오래되었고, 저장고도 오래된 브룩라디는 혁신을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재료다. 브룩라디는 지역 농부들과 연계해 아일라에서 생산한 보리로 위스키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품종을 복원하거나, 유기능 보리, 바이오다이내믹 보리 등의 제품을 생산하는 등의 지대한 변화와 다양성을 꾀하였다.

나는 위 두 개의 보리 품종을 보면서 케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스타크래프트 Ⅱ- 군단의 심장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케리건이 저그 종족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원시 저그들의 고향인 제루스를 방문하여 그들의 정수를 흡수하고, 케리건은 원시 저그의 힘을 얻어 칼날 여왕으로 다시 부활하게 된다. 그로 인해 케리건은 마침내 오랜 숙적이었던 맹스크의 자신의 손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과거와의 조화를 통해 미지로의 도약을 자아내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케리건이 그렇게 저그 종족을 진화시켰으며, 브룩라디는 가장 진보적인 증류소라는 타이틀을 따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한국은 어떨까? 내가 중학교를 다닐 무렵 응답하라 시리즈가 등장하였고, 그때부터 뉴트로라는 것이 막 유행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2000년대에 유행한 것들이 재등장하고 있다. CD플레이어, 무한도전, 싸이월드 등등... 그다음은 무엇인가? 신태일? 노스페이스? 아니면 20세기를 모방한 2010년대를 다시 모방한 그 무언가?

언젠가부터 우리는 쳇바퀴를 돌고 있다. 그러다 동력이 멈춰지면 그저 흐름에 따라 유영하는 것일 뿐이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그저 시대를 돌뿐인... 대한민국의 문화적 동력도 점차 정체되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짱구 극장판에서 나오는 20세기 박물관은 어쩌면 우리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상형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걱정과 우려가 얼마나 달콤한 아편인지 실로 소름 끼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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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잔은 피트처리를 한 맥아를 사용한 라인업인 포트 샬롯. 페놀 수치가 대략 40ppm이며, 다양한 캐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제품은 2001년부터 생산하였는데, 그래서인지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원액은 증류소에서 게스트들에게 내어줄 수 있는 가장 고숙성 포트 샬롯 중 하나라고 한다. 향을 맡아보면 달달하고 진한 복숭아를 불에 한 번 구웠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밖에도 건초, 초콜렛 등의 향도 느껴지는데 특이하게 뜨거운 폭염 속 아스팔트 도로를 걷다 보면 그 열기에서 전해지는 향이 기저에 깔려있다. 결코 좋은 향으로 분류될 수 없는 노트이지만, 묘하게도 자꾸 끌리는 향이다. 계속해서 딴 위스키에 정신 팔리지 말고 나한테 집중하라고 유혹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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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음은 옥토모어 7.3이다. 혹자는 저거 이미 출시된 지가 언젠데 무슨 이상한 소리 하냐고 하겠지만 모르는 소리. 이것은 자그마치 9년 동안 캐스크에서 더 푸욱 익어 기가 막힌 맛을 자아낸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붉은 베리류와 빨간색 묽은 감기약의 느낌이 농밀하게 느껴지면서 후미의 진한 꿀의 느낌이 자아내는데, 피트감이 코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솔직히 마지막 잔의 경우 두 가지 캐스크가 곱하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 더하기의 느낌이 없지 않아 아쉬웠지만, 분명 맛에서는 피트가 그 어두운 발톱을 감추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여 남은 술들을 바이알 용기에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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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어하우스 투어를 마치고 다시 비지터센터로 돌아와 추가적인 시음을 기다리는 동안, 느긋이 증류소의 기념품 센터를 둘러보았다. 솔직히 브룩라디의 색감은 이뻤지만, 그것을 이용한 굿즈들은 매우 형편없기 그지없었다. 마치 푸른색과 하얀색이라는, 솔직히 말해 가장 근원적이고 심플한 팀컬러 조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악의 유니폼과 굿즈를 뽑아내는 삼성 라이온즈와도 같다. 대한민국 제일의 광고대행사가 모기업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달라질 생각이 없으니, 그 구단 디자인팀은 전부 돌을 데려가다 앉혀놓아도 전혀 문제가 없을 지경이다. 돌은 적어도 돈을 축내질 않으니 말이다. 덧붙여, 옥토모어 BBQ 소스가 있어서 하나 사 먹어 봤는데, 자신이 돈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짤짤이를 털어야 하는 경우에만 사드시길 추천한다. 필자는 이 소스에서 미약한 스모키함 이외에는 전혀 피트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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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으로 아일라에서도 교통편이 거시기한 증류소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다고 브룩라디에서 3종을 추가적으로 시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돌아오는 차편이 하나밖에 없어 후다닥 시음한 점 양해 부탁드린다.


1) BRUICHLADDICH BERE BARLEY 2013 (BOURBON + PAUILLAC WINE CASK, 50.0%)


앞서 맛본 베어 발리와 동일하게 크리미 한 우유, 오트밀의 느낌이 들었다. 덧붙여 뭔가 커피스러운 느낌도 드는데, 이것이 뽀이약 와인 캐스크에서 발현된 특성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유의 캐릭터와 커피의 캐릭터가 합쳐져 라떼, 혹은 당직 설 때 마시는 커피맛의 느껴져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전반적으로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들지만, 피니쉬에서 밀가루 풋내가 강하게 치고 들어와 썩 유쾌하진 않았다. 두 번째로 베어 발리를 맛보고 이것이 그 특징이라는 확신이 들었는데, 이것을 미루어 보아 나는 베어 발리와는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했다.


2) PORT CHARLOTTE 2010 SYC:04(SYRAH CASK, 64.5%)


세컨드필 쉬라 와인 캐스크에서 15년간 숙성된 포트 샬롯이다. 가죽과 검은 베리류의 향이 응집되어 있는데, 이것이 농축되다 못해 하나의 점으로 이루어져 마치 장향과도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거기에 피트에서 발현되는 해조류의 캐릭터가 같이 합쳐져 일식집에서 맛볼 수 있는 진하고 걸쭉한 느낌의 간장, 기꼬만 간장과도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녀석은 분명 기름이 잘 오른 등푸른 생선회, 가령 고등어나 꽁치 과메기와 찰떡궁합일 것이다. 이번 겨울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포항에 가야겠다. 추위에 에는 바람 속에서 아랫목이 뜨근한 횟집. 거기서 설경을 내다보며 먹는 과메기와 포트샬롯. 이렇게 한 명을 또 피트성애자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3) OCTOMORE 14.4 (BOURBON, 59.2%)


당시에는 국내에서 미출시된, 그러니깐 양조장에서 갓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상이었다. 이 친구는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난 콜롬비아 캐스크에서 5년 간 숙성시켰다. 향을 맡아보면 우선 직관적으로 생 땅콩 캐릭터가 느껴진다. 또한 묘한 스파이스와 삼나무도 뒷받혀 주는데, 나는 왠지 모르게 예전에 맛봤었던 달유인 SR이 연상되었다. 그 밖에도 휘발성산과 애기 구토향도 끝에 조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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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설명한 어글리 배티 증류기를 이용해 만든 진. 보타니스트 진은 9가지의 전통적인 진 재료로 뼈대를 구축하고, 아일라에서 자생하는 22가지의 토종 식물을 이용해 그 특성을 발현시키는데, 특유의 산뜻한 시트러스함 때문에 니트로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훌륭한 진이다. 내가 자주 찾아뵙는 바의 바텐더 역시 보타니스트 진을 기주로 사용하고 있다. 위에 있는 제품들의 경우 위스키 숙성에 사용한 오크통에 각각 3개월과 6개월 숙성해 만든 진이라고 하는데, (방문 당시) 아직 출시가 되지 않은 제품이므로 흔치 않은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맛에는 의외로 6개월보다 3개월이 더 맛있다. 모름지기 진이라는 것은 종잇장만큼이라도 면도날같이 날카로운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6개월 숙성은 음... 마치 아이번과 만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왠지 모르게 5일장에서 등장하는 담금주와 비슷한 캐릭터가 있어 외려 당혹스러웠다. 명탐정 코난에서 등장하는 진이 브라운 박사 얼굴이라고 생각해 봐라, 어울리겠는가? 하기야 그것도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긴 할 것 같다. 기왕 이리된 거 어떤 캐릭터인지 느껴볼 수 있도록 장기 숙성 보타니스트 진도 출시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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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다 보니 숙소를 저녁에 도착하게 되어버렸다. 이리 보니 서양고전 추리영화에서 등장하는 저택과 동일하게 느껴지게 되었다. 며칠 지내다 보니 퍽도 익숙해지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건만, 다시 뭔가 모르게 기시감이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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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7시쯤이 되어 음식점을 찾았으나, 여느 섬이 그러하듯 대부분 문을 닫았다. 그마저도 열려있는 곳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불러 마지막으로 이곳 타지마할의 문을 열었다. 분명히 영업 중이라는 푯말을 보았는데 가게 내부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뭐지? 이 불쾌한 골짜기 같은 느낌의 인테리어는? 가게 앞에 애니메트로닉스를 전시하고 프레디의 피자가게라고 간판명을 걸어도 전혀 위화감이 들지 않을 비주얼이었다.


비정상회담에서 나오는 인도인 패널 럭키를 닮은 종업원이 해맑은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었다. 왠지 그날따라 화끈한 것을 먹고 싶어 오리 갈릭 치킨 맛살라과 난을 주문한 내게 그는 나의 이름을 물어봤는데 한순간 고민에 빠졌다. 이름으로 말할까? 성으로 말할까?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내 세례명인 '마티아'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답해주었다. 그러자 돌아오는 답, pardon? 군대에 있느라 혀까지 퇴화되었나 생각하고 일부러 혀를 굴려서 다시 말해주었지만 모르는 눈치는 매한가지다. 하, 이러면 완전 나가린데... 혹시나 하고 풀네임인 '마티아스'라는 이름으로 답변하였다. 그러자 oh, mattias!라고 하며 계산서에 이름은 적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마티아스의 현지명인 마트베이(матвей)도 쓰이고, 모탸(мотя)도 잘만 쓰이는데, 이 양반은 왜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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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한 지 40분 만에 받은 갈릭 칠리 맛살라와 난. 오래간만에 먹는 인도 요리라서 기대했지만, 솔직히 외관 때문에 김이 샜다. 모양만 봐서는 곤죽이 되어 치아가 부실한 노인들이 먹는 식사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이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침이 꼴깍 삼켜질 정도로 기가 막힌 요리였다! 풍부한 스파이스와 얼얼한 마늘의 느낌이 환상을 이루며 계속해서 난을 손에 꼭 잡게 만들게 한다. 솔직히 난은 어느 정도 빈약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래도 괜찮다. 먹은 지 1년 반이 지난 음식 사진을 보면서 식욕이 느껴진다면, 그건 분명 객관적으로 맛있는 음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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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고 나와보니 숙소 미니바에 놓여 있는 작은 바틀이 눈에 띄었다. 7가지의 아일라 위스키는 블렌딩해 만든(며느리도 몰라요!) 보모어 B&B표 특제 위스키라는 것이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그 자리에서 돈을 지불하고 방으로 돌아와 식후주로 한 잔 시음하였다.


오, 이거 상당히 마음에 든다. 계면활성제와 쉐리, 그것도 올드 뉘앙스가 약간 있는 것으로 보아 우선 확실히 보모어를 썼다고 확신이 들었다. 중간으로 갈수록 피톤치드, 솜사탕과 함께 메디셔널 한 느낌이 뒷받침해주고, 피니쉬에서 담뱃재와 꿀향, 유제품의 느낌이 살짝 느껴졌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지인과 함께 맛을 봤는데 보모어 외에도 쿨일라, 라프로익, 부나하벤, 아드벡을 쓰지 않을까 추측하였다. 그렇다면 나머지 2개는 무엇일까? 혹시 포트 앨런 같이 내 돈 주고 맛보기 힘든 원액들도 섞여있진 않을까? 물론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달짝지근하고(LIGHT SWEET) 아늑하게 피트감이 느껴지는(SNUGLY PEATY) 이 위스키는 자기 집을 방문해 준 손님들을 위해 준비해 주었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처럼 이 술 속에서는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이대로는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방문을 박차고 해안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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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락이월드 <아드벡> 편을 보면 조승원 기자가 아드벡 19년 숙성 트라이반 배치 4와 아드벡 증류소 레스토랑 셰프가 직접 만든 김치를 페어링 하여 먹은 장면이 나온다. 아드벡의 강렬한 피트와 김치의 매운맛이 폭풍처럼 입안에서 휘몰아쳐, 마치 태풍과 태풍이 만나 충돌하는 느낌이라고 하였다.


싸지방에서 주락이월드를 보면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도 저기 가서 아드벡에 김치를 안주 삼아 먹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웬걸, 막상 아드벡 레스토랑을 가보니 김치는 따로 있지 않은 것이다! 혹시나 하고 있는지 물어봤지만, 증류소에 많은 한국인들이 와서 물어봤지만 지금은 김치가 없다는 말만 전달받았다. 뭐, 만일을 대비해 호국훈련 때 받은 볶음김치를 들고 왔으니 아쉬운 대로 마지막 날에 여정을 마무리하며 먹어야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하지만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이 순간, 이 장소에서, 이 술과 함께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확신감이 들었다. 여자친구와 만날 때도 유사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 이 순간 이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내 순간에 누구와 함께 하는 순간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찰나의 순간 내려졌었다. 이것은 랑데부다. 어떠한 객체가 서로 만나 순간적인 시너지를 폭발시키는 것. 내가 그토록 아껴왔던 볶음김치를 생각지도 못한 위스키에게 내어주는 것, 처음 식사자리에서 만나 교분을 맺게 되는 것. 이 모든 것은 우연을 빙자한 필연일 것이다.


그래서 술잔과 위스키, 그리고 볶음김치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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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숙소 앞 해안가에서 나온 나는 볶음김치가 들어있는 캔을 딴 다음, 유리병 속에 들어있는 위스키를 잔에다 따랐다. 바깥에 바닷바람이 매우 매서웠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신속하게도 정확히 처리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차려진 나만의 술상. 이끼 덮인 돌을 반상 삼아 술과 안주를 내어왔다. 이제는 맛보는 일만 남았다.


오오, 이것도 환상적인 궁합이다. 전투식량에서 3년 정도 묵은 것 같은 질감과 쿰쿰한 맛을 지니고 있는 볶음김치가 위스키의 부드럽고 약간의 톡 쏘는 듯한(피트 때문에) 느낌과 잘 어우러졌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내가 먹었을 때의 기억은 위스키와 김치가 아니라, 백세주와 김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부드럽게 입안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필자는 김치 한 점과 위스키 한 모금을 비워내며 그 여운을 계속해서 즐겨갔다.


조승원 기자는 아드벡과 김치의 궁합에 대해 태풍과 태풍이 만나 충돌하는 느낌이라는 평을 내렸다. 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갔지만, 그와 동일한 감상을 즐기지는 못하였다. 나는 노인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상이 선한 푸근한 백발의 두 노인이 만나 함께 장기도 두고 밥도 먹고, 동네 마실도 나가는 그런 느낌. 비록 강렬한 느낌의 아드벡이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보모어 B&B의 위스키로 바뀌고, 얼얼한 느낌의 쉐프표 김치에서 미원맛 강하게 나는 양반 볶음김치로 바뀌어도 문제는 없다. 설령 내게 그 자리에서 조 기자가 먹은 것과 동일한 제품들이 제공된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결코 즐길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겐 그의 맛이 있고, 나에겐 나의 맛이 있기 때문이다. 본디 행복한 순례자는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그 감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행복한 법이다.






출처: 위스키 갤러리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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