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느 날처럼 닌갤을 염탐하던 음침한 닌붕이... 지나가다가 대회 개최 사실을 보고야 만다.

(!!!!!!)

이거... 그냥 지나치기엔 GBA SP가 너무 탐이 나는데?
우승이고 뭐고, 난 저 준우승상이 너무 갖고싶다.
그치만... 이 글 쓴 새끼는 이미 스위치 2 출시당시에 아무도 뭔가를 준다고 한적이 없음에도 갖고있는 컬렉션을 올려서 실베까지 간적이 있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game_nintendo&no=2921959
바로 요것.
그치만... 여기서 이미 컬렉션을 탈탈 털었는데. 이걸 그냥 재탕하기엔 양심이 너무 찔리고 해서, 그동안 추가된 컬렉션도 보충할 겸 글의 주체를 단순 인증이 아니라 "닌텐도의 역사"에 초점을 둬서 다시 써보려고 한다. 그동안 닌텐도 뮤지엄도 갔다왔고 해서 쓸거리는 많으니까.
그럼, 닌텐도의 역사를 닌붕이의 컬렉션과 함께 수박 겉핥기로나마 배워보도록 하자.
비디오 게임 비즈니스 이전, 화투는 역시 임천당 화투. (1889~1977)

1. 닌텐도 "클래식 플레르 드 리스, 600엔 시리즈/올 플라스틱" 트럼프 카드 (쇼와 40년대/1965~1974년 제조 제품)
2. 닌텐도 "대통령 흑색" 화투 개봉품 (쇼와 30년대/1955~1964년 제조 제품)
3. 닌텐도 "텐구 세트" 화투 미개봉품 (1976~1988년 제조 제품)
닌텐도 (任天堂)은 1889년 "가정용 레저 기기의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다. 당연하지만, 그 시절에는 우리가 흔히 "게임"이라 부르는 "비디오게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고, 그 시절의 닌텐도는 화투나 트럼프 카드등을 팔아먹으며 회사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 시절의 닌텐도는 일본 최대 규모의 카드 제조업체였고, 일본 최초로 트럼프 카드를 제작해 판매했으며, 일본 내에서 플라스틱 제질의 트럼프카드를 처음 제작하고 종이 사이에 석회가루가 들어간 화투를 개발하는 등, 쇼와시대의 일본 내에서도 이미 어느정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회사였다.
물론, 현재의 닌텐도에 비하면 말도 안되게 작은 회사였지만. 비디오 게임 시장 진입 이전에 제작한 장난감류는 내가 소장하고 있는것이 없다.

쇼와 40년대까지 판매했던 화투에 랜덤으로 들어가있던 구입 감사 찌라시. "예나 지금이나 일본 최고의 대통령 화투"라는 광고문구. 이 제품이 제조된 쇼와 30년대에도 이미 역사적으로 뛰어난 화투였다고 자랑하는 일면을 볼 수있다.
후면에는 아래의 문장이 기입되어 있다. "오랜 세월의 성원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교토시 히가시야마구 후쿠이나카미타카마츠초 닌텐도 사장 야마우치 히로시" (하나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음.)

이 시절의 닌텐도는 트럼프카드나 화투의 플레이 설명서를 동봉해주는 등,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흔적이 있다. 이 신념이 배가 되어, 지금의 닌텐도가 만들어지게 된다.
이제 대세는 비디오 게임, 컬러 TV 게임과 게임 앤 워치 (1977~1983)

1. 컬러 TV 게임 6 (1977)
2. 컬러 TV 게임 15 (1977)
3. MW-56 마리오 브라더스 (1983)
4. DK-52 동키콩 (1982)
5. MC-25 미키 마우스 (1981)
6. PR-21 파라슈트 (1981)
시간이 흘러 1970년대 중후반.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이라는 시장의 태동에서부터 관심이 많았고, 당시 장난감이나 즉석밥, 택시, 러브호텔등 다방면의 사업에 눈길을 돌리던 닌텐도는 샤프사와의 제휴를 통해 비디오 게임 시장에 진입한다.
당시 제작했던 거치용 게임기 "컬러 TV 게임"은 미국 아타리사의 "퐁"의 클론 게임. 각 기계에 6개나 15개 종류의 다양한 퐁 게임을 컬러로, 당시의 시중가보다 저렴한 금액에 판매해 일본 시장을 석권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80년, LCD 기반의 전자계산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임 앤 워치"라는 휴대용 게임기 라인업을 발매해 메가히트를 쳐 전세계 곳곳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극초기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부터 두각을 발휘하게 된다.

"게임 앤 워치"는 도합 65개의 게임기를 4340만대 판매하는 대성공을 이루게 된다. LR33 동전 건전지 2개라는 저렴한 운용성과 훌륭한 휴대성, 재미있는 게임플레이등으로 큰 인기를 끈 이 제품은 일본 내에서 사회적 현상이 될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게임플레이는 대략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정말 별것 아니지만, 당시에는 혁신 그 자체였다.

컬러 TV 게임 6는 6종의 게임이 안에 내장되어 있었고, 붙박이식 노브를 통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9800엔.
제조 초창기에는 윗 사진처럼 베이지색이었지만, 후기에는 조금 더 노란색으로 바뀐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제품은 1977년 제조한 초도 생산물량.)

컬러 TV 게임 15는 조금 더 고급형으로, 컨트롤러가 분리식이었으며 오른쪽의 스위치로 총 15가지 게임중 하나를 선택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출시 당시 가격은 15000엔.
마찬가지로 초기형은 위와 같은 오렌지색, 후기형은 레드에 가까운 색깔로 리비전 변경이 이루어진다.
패미컴, 세상을 평정하다 (1983~1989)

1. 샤프 "트윈 패미컴" (1986)
2. 닌텐도 "패미컴" (1983)
3. 닌텐도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 (1986)
4. 허드슨 "패미컴 추가 컨트롤러" (1983)
1983년, 닌텐도는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를 출시한다. 이름하여 "패밀리 컴퓨터". 당대에 상상도 못했을 막강한 성능으로 무장한 제품이 저렴한 가격에, 아케이드에서나 보던 게임을 빼다박아 이식한듯한 놀라움에 일본은 이 게임기의 출시와 함께 충격에 빠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미시장에서도 아타리 2600이 불러온 "아타리 쇼크"를 평정하며 세계 게임계를 홀로 지배하기에 이른다.
"슈퍼 마리오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메트로이드"등 전설적인 게임들과 닌텐도의 기반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했고, "록맨", "악마성 드라큘라"등의 서드파티 게임도 뒤를 이었다. 8비트 게이밍의 시대는 사실상 현대 게임계의 시초가 된다.
우리가 아는 모든 게임은 여기서 출발했다. 이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5. 패밀리 베이직 (1984)
당대의 실로 막강했던 성능 덕에, "패밀리 베이직"이라는 이름의 실제 컴퓨터로서 사용 가능한 주변기기도 발매되기도 했다. 당시 사회 초년생이던 "사쿠라이 마사히로"는 이 제품으로 게임보이용 "별의 커비"라는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다.
패미컴 베이직이 연결되어 있는 기기는 샤프에서 제작한 "트윈 패미컴". 아래에서 설명할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과 패미컴이 하나로 통합된 콘솔이었다.

후일, "패미컴 디스크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플로피 디스크를 이용해 저렴한 게임 공급, 용량 및 사운드 확장을 가능케 하기도 하는 등, 현대 비디오 게임계의 기초는 전부 여기서 다져졌다.
그렇게 닌텐도는, 세계 게이밍의 왕좌를 차지한다.
2D 게이밍의 최전성기, 슈퍼 패미컴과 게임보이 (1989~1996)

1. 슈퍼 패미컴 (1990)
2. 슈퍼 게임보이 2 (1998)
3. 현대전자 "현대 슈퍼컴보이 컨트롤러" (1992)
4. 게임보이 (1989)
5. 게임보이 포켓 (1996)
6. 게임보이 라이트 (1998)
분명, 닌텐도는 게임계를 평정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988년 혜성같이 등장한 세가사의 메가드라이브 (1988)은 16비트, 블라스트 프로세싱같은 마케팅을 앞세워 "진짜 차세대"의 경쟁력을 보여주며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했다.
그때 닌텐도가 내민 카드가 바로 슈퍼 패미컴. 16비트 그래픽의 절정, 압도적인 그래픽, 화려하다 못해 우아한 사운드. 슈퍼 패미컴은 메가드라이브를 성능에서 압도했고, 서드파티의 공세는 메가드라이브가 먹어가던 파이를 닌텐도가 다시 가져오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전설적인 명작들이 탄생한다. "슈퍼 마리오 월드", "슈퍼 메트로이드", "젤다의 전설 신들의 트라이포스", "록맨 X", "파이널 판타지 6"등등... 이 시절은 게임 개발자들이 2D의 한계를 시험했고, 2D 게이밍이 완성되었다. 물론, 당시의 닌텐도는 서드파티를 홀대했고 그것이 차세대에 부메랑처럼 다가오기에 오랜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다.

"게임 앤 워치"를 뒤로 하고 새롭게 발매한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도 세상을 충격에 빠트렸다. 카트리지 교환식이었던 게임보이는 화려한 라이브러리와 저렴한 개발비용, 본체 가격으로 게임 제작사와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과도하게 전력을 잡아먹는데다 비싸고, 라이브러리마저 떨어지던 세가의 "게임기어"를 압도하며 시장을 정복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을 만족시키던 게임보이는 휴대용 게임의 대명사가 되었고, 1996년 게임보이의 황혼기에 발매한 "포켓몬스터"는 세상을 뒤흔들기도 한다.
첫 패배, 하지만 전설적인 게임들. 닌텐도 64와 게임보이 컬러 (1996~2001)

1. 닌텐도 64 (1996)
2. 닌텐도 64GB(게임보이) 트랜스퍼 팩 (1998)
3. 닌텐도 64 진동팩 (1997)
4. 게임보이 컬러 (1998)
아, 여기서 한가지 말하고 넘어가지 못한 게임기가 있다. "게임보이"의 후계기 겸 점점 개발이 지연되던 차세대기 "울트라 64"의 간극을 메워줘야 했을 버추얼 보이 (1995). 하지만 해당 게임기가 남긴 소규모의 임팩트나 내가 해당 게임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1995년은 닌텐도에게 끔찍한 해였다. 기대받던 유망주 버추얼보이가 작살났고, 오늘의 뒤통수질이 내일의 적이되어 1994년 연말 혜성같이 나타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세상을 손에 넣었고, 서드파티는 이탈했으며 게임기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그나마, 게임보이의 후계기 겸 확장 기기였던 게임보이 컬러만큼은, 저열한 스펙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강세를 보였다는 점이 다행이었다. 당시에 대폭발했던 포켓몬스터의 덕도 물론 보았지만, 여전히 휴대용 게임기 시장의 대안은 없었고 대안이라고 나온 것들도 줄줄이 게임보이 컬러에게 참수당했다. 게임보이 컬러와 포켓몬은 이 시절 닌텐도의 생명줄이었고, 앞으로도 이 생명줄의 덕택을 볼 일도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등장한 삼발이 컨트롤러를 가진 닌텐도 64는... 닌텐도가 처음으로 게임계 평정에 실패하게 된 게임기였다. 64MB에 불과한 한심한 게임 용량, CD-Rom의 부재, 도대체 어떻게 써야할지 모를 저 컨트롤러. 닌텐도 64는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가지 강점만은 확실했다.
1. 우리는 게임은 적지만 좋은 게임이 많다.
2. 성능은 우리가 최고다.
3. 멀티플레이어 게임만큼은 닌텐도 64가 최고.
"골든아이 007", "슈퍼 마리오 64",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마리오 파티", "스타폭스 64", "퍼펙트 다크", "컨커 최악의 날, "반조-카주이"... 닌텐도 64는 분명 게임은 적었지만, 대단한 게임들이 계속 발매되었다. 더 나아가, 3D 게이밍 시장을 리드했고, 지금의 3D 게이밍의 기초를 전부 여기에서 가꾸어나갔다.
실패지만, 실패하지 않았다. 닌텐도는 소프트웨어로 승부했고, 지금까지도 닌텐도 64는 컬트적인 팬덤을 가진 게임기가 되었다.

5. HORI "닌텐도 64 미니 패드" (1996)
아, 추가로 당시 일본의 "HORI"라는 업체에서는 미니 패드라는 이름의 닌텐도 64 대안용 컨트롤럴을 제작했는데, 닌텐도의 임원진이 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보고 이 컨트롤러의 제작자들을 모셔다가 차세대 게임기 컨트롤러 제작에 협력시켰다는 카더라도 있다.
아무튼 이 시절의 닌텐도는 변화가 필요했고, 최선을 다해서 변화구를 던져본다.
"Cool"한 차세대기! 그런데, 어쩌다 보니 또 패배. 게임큐브와 게임보이 어드밴스 (2001~2005)

1. 닌텐도 게임큐브 (2001)
2. 게임보이 플레이어 (2003)
4. 게임보이 어드밴스 (2001)
5. 게임보이 어드밴스 SP (2003)
6. 게임보이 미크로 (2005)
닌텐도의 첫 패배는 수모적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상대방, 특히 소니만큼은 짓밟아야한다. 결국, 그 시절의 닌텐도가 택한 마케팅은 "쿨하고 다크하게"였다.
PS2보다 훨씬 강력한 하드웨어. 이제는 우리도 디스크를 쓴다! 미니 디스크. 이번만큼은 절대로 패배하지 않겠다던 닌텐도였지만... 게임큐브는 또다시 패배를 경험한다.
물론, 이 시절의 닌텐도는 새로운 접근을 많이 시도했고, 지금까지의 닌텐도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시장에 접근한다. "슈퍼 마리오 선샤인", "메트로이드 프라임", "젤다의 전설 바람의 지휘봉", "바이오하자드 4",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DX"... 어둡고, 게임플레이를 코어하게 다듬으면서 당시의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려 했지만, 상대는 하필이면 플레이스테이션 2였다.
DVD 재생 가능, 압도적이고 끝없는 라이브러리, 저렴한 가격, 공격적인 마케팅. PS2 앞에서 닌텐도의 게임큐브는 힘을 못썼고, 옆동네 세가의 드림캐스트의 몰락만큼은 피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에까지 밀리며 바람 질 날 없는 시기를 이어나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휴대용 시장만큼이 닌텐도의 생명줄을 유지시켜줬다. 게임보이 어드밴스는 또다시 막강한 성능과 라이브러리로 다른 어중이떠중이들을 박살내며 순식간에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재패했고, 짧은 생동안 엄청난 판매고를 기록하며 닌텐도의 자금줄이 되어주었다.
"슈퍼 패미컴을 어디서든!"이라는 개발 방향성을 충족하듯 수많은 명작들이 GBA로 출시되었고, GBA 하나만큼은 닌텐도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7. 닌텐도 웨이브버드 (2002)
이 시절의 닌텐도는 신기술에도 끊임없이 도전했고, 라디오 주파수 방식을 통해 통신하는 무선 컨트롤러 "웨이브버드"나 게임보이 어드밴스 무선 어댑터를 발매하는 등, 당대에 점점 대두되던 무선 기술에도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그 무선 기술은 차세대기에서 엄청난 도움이 되어 시장을 재석권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모두를 위한 게임, 다시 한번 정상으로. Wii와 닌텐도 DS (2004~2011)

1. Wii (2006)
2. Wii 휠 + Wii 리모컨 모션 플러스 (2008, 2010)
3. Wii 리모컨 모션 플러스 + 눈차크 (2010, 2006)
4. Wii 클래식 컨트롤러 (2006)
5. Wii 클래식 컨트롤러 Pro (2009)
6. 닌텐도 DS (2004)
7. 닌텐도 DS Lite (2006)
8. 닌텐도 DSi (2008)
9. 닌텐도 DSi XL (2009)
이 시점의 닌텐도는 변화가 필요했다. 코어 기반의 마케팅전략은 게임큐브에서 막혔다. 그렇다면 승부처는? 그래, 캐주얼한 대상, 모두를 게이머로 만들자. 시장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그 기조를 중심으로 만들어낸, 닌텐도의 사활을 걸었던 Wii가 2006년 발매되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결정은 결국 초대박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2004년 출시했던 닌텐도 DS. 소니가 휴대용 게임기 시장에도 "PSP"로 도전장을 내민다고 선언하자 급하게 출시한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후계기. DS Lite 발매 이후부터 점점 탄력을 얻기 시작한 NDS는 Wii와 함께 닌텐도를 쌍끌이하며 매섭게 다가오던 PSP의 추격을 앞질러 또다시 시장을 제패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모두를 위한 게임은 진정 성공이었을까, 스펙상으로는 그저 게임큐브의 부분적 업그레이드에 그쳤던 Wii는 1억대가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대성공했고, NDS는 전대미문의 1억 5000만대 판매를 석권한다. 신생시장이었던 한국에도 결국 지사를 냈고, 닌텐도는 탄탄대로를 밟았다.

당대의 닌텐도는 휴대용, 거치용 양면에서 훌륭한 타이틀들을 지속적으로 발매했다. "슈퍼 마리오 갤럭시", "포켓몬스터" (4~5세대), "메트로이드 프라임 3 커럽션", "마리오 카트 Wii/DS", "동키콩 컨트리 리턴즈", "별의 커비 Wii", "응원단 시리즈", "타운으로 놀러와요/놀러오세요 동물의 숲"등등....
그렇지만 2010년경부터, 닌텐도의 재무재표가 말썽이기 시작했다. 소프트웨어도, 하드웨어도 팔리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게임을 내도, 하드웨어가 이렇게 많이 팔렸는데. 7세대 닌텐도는 뒷심이 부족했다. 아니, 아얘 없었다. "유행"기반의 마케팅이라 그랬을까? 닌텐도는 "유행이 끝난 상품"이었던 것일까?
닌텐도는 고심했다. 거기에, 7세대는 사실 서양권 게임과 AAA 게임의 전성기였다. Wii에는 어쌔신 크리드도, 매스 이펙트도, 배트맨 아캄도, 제대로 된 콜 오브 듀티도, 배틀필드도, 폴아웃이나 엘더스크롤도 없었다. 사람들은 Wii만큼이나 360와 PS3에도 열광했다. 우리는 뒷일을 생각하지 않은걸까? 그렇다면, 양쪽을 동시에 취하는 수밖에. 360과 PS3의 성능을 가진, 모두를 위한 게임기. 그리고 이 결정은 닌텐도 사상 최악의 결정이 되어버리고 만다.
우리 어떻게 하죠? Wii U와 닌텐도 3DS (2011~2017)

1. Wii U (2012)
2. Wii U Pro 컨트롤러 (2012)
3. 닌텐도 3DS (2011)
4. 닌텐도 3DS XL (2012)
5. 닌텐도 2DS (2013)
6. New 닌텐도 3DS (2014)
7. New 닌텐도 3DS XL (2014)
8. New 닌텐도 2DS XL (2017)
2011년 E3에서 첫 공개한 Wii U는 뜨뜻미지근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Wii의 새 컨트롤러인가보다" 했다. 그래서 결국 2012년 E3에서 Wii U를 또 공개해야했다. 그런데,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런칭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좀 몰렸다. 그런데, 인터넷과 이숍은 엉망이었고 모두를 겨냥해 발매했던 "닌텐도 랜드"도, "뉴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U"도 뜨뜻미지근했다.
소니는 그새를 못참고 PS Vita라는 3DS의 대항마를 내놨다. 결국, 지지부진한 Vita의 라이브러리와 낮은 게임 용량, 독자규격 메모리카드등의 악재를 틈타 뼈를 깎는 가격 인하정책과 슈퍼 킬러 타이틀 "포켓몬스터 X/Y" 덕택에 부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 전망은 암담했다. 좋은 타이틀을 내려고 부던히 노력했다. 서드파티를 끌어오기 위해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도, "배트맨: 아캄 시티"도, "콜 오브 듀티: 고스트"도 내봤다. 아, 퍼스트파티쪽에서도 "마리오 카트 8"이라던지, "베요네타 2"라던지,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4"라던지, "동키콩 컨트리 트로피컬 프리즈", "스플래툰",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 X"등 온갖 명작들을 쏟아내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거치기 쪽에서 모든 시선은 PS4를 향했고, 닌텐도의 거치기는 놀라우리치만큼 적은 관심도를 보였다. 결국 열정적인 팬 소수만 남아있고, 3DS만이 간신히 호흡기를 달고 연명할 수 있었다. 또다시 실패다. 그런데, 이번엔 보통의 실패가 아니다. 그냥 사람들이 닌텐도에 관심이 없다. 이런적은 처음이었다.

결국 이 시절의 닌텐도는 3DS를 징하게도 우려먹었다. 무려 6개의 3DS가 나왔다. 포켓몬, 마리오, 피크민, 메트로이드, 젤다... 먹여줄수 있는건 모조리 먹여줬다. 생전 휴대용으로 나온적 없던 대난투도 내줬다. 젤다무쌍을 무리해서라도 출시했다. 3DS는 닌텐도의 생명줄이었다. 이거라도 살리지 않으면 큰일난다.
그렇게, 닌텐도는 누구보다 빠르게 차세대기 경쟁에 돌입하기 위해 전념한다. 거치용과 휴대용, 두개의 부서로 나뉘어 게임을 개발하는건 이제 힘들다. 더 이상 게임이 쉽게 만들어지는 시대가 아니다. 소니도 PS Vita를 버리고 PS4를 성공시켰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하는걸 해야지. 모두를 만족시키는 게임기, 언제 어디서든, 그러면서도 동시에 강력하고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게임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패러다임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다시 한번 승리, 새로운 시대의 개막, 닌텐도 스위치 (2017~2025)

1. 닌텐도 스위치 (2017)
2. 닌텐도 스위치 OLED 모델 (2021)
3. 닌텐도 스위치 Lite (2019)
4. 몬스터볼 플러스 (2018)
5. 닌텐도 스위치 Pro 컨트롤러 (2017)
공기가 달랐다.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 Wii U용으로 개발하던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도 런칭 타이틀로 준비했다. 이번에는 실패할 수 없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뒤가 없다. 사람들은 "하이브리드"라는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여기서 길게 쓰지 않아도, 여기에 있는 모두가 이를 잘 알고 있다. 닌텐도 스위치는 닌텐도 역사상, 아니, 게임 역사상 가장 성공한 게임기중 하나다. 휴대와 거치의 경계를 부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고, 업계가 드디어 닌텐도에 다시 반응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사전 준비와 폭격기처럼 쏟아붓는 훌륭한 라이브러리, 저렴한 가격, 광풍처럼 몰아닥친 유행까지. 닌텐도는 신고점을 기록했고, 걱정없는 달콤한 승리를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았다.

휴대용 기기로도 훌륭했고, 거치용 기기로도 훌륭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닌텐도의 일념은 경국 성공했다. 점점 느려지는 게임계의 개발속도도, 스위치에게는 큰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간의 개발력으로 작은 게임과 큰 게임을 지속적으로 교차공급해주면서, 닌텐도에게는 첫 선을 보이는 서드파티 작품들이 끊임없이 쏟아져들어왔고, 라이브러리는 마를 일이 없었다.
닌텐도 스위치 시대의 후반기, 볼맨소리는 딱 하나였다. "성능 좀 어떻게 해봐라". 분명 스위치는 출시 당시에는 그리 나쁜 성능이 아니었지만, 차세대기를 8년이나 끌었다. 그동안 저전력 SoC는 무시무시한 성장을 해왔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건 하나. 닌텐도 스위치의 단점들을 고쳐나가고, 성능을 개선해가자. 요즘같은 시기에, 완전한 새로움은 자칫 피를 부를 수 있다. 닌텐도는 아직 전세대의 패배를 잊지 않았다. 안전하게 나아가자. 그게 최선이다.
그리고... 지금, 닌텐도 스위치 2 (2025~)

1. 닌텐도 스위치 2 (2025)
2. 닌텐도 스위치 2 Pro 컨트롤러 (2025)
그렇게 지금의 시대에 도착한다. 악재가 많았다. 스위치 2는 스위치 1에 비해 상당히 라이브러리가 채워지는 속도가 느리고, 영업이익률을 높이기 위한 게임의 가격인상과 DLC팔이, 거기에 바다건너의 정치적 악재에서 비롯된 가격상승 돌풍까지. 런칭 타이틀 "마리오 카트 월드"는 뜨뜻미지근한 평을 받았고, "동키콩 바난자"는 나무랄 대 없는 명작이지만 어째 반응이 영 시원찮다. 경제는 불안정하고 가격은 높게 출시되었다. 닌텐도 스위치 2는 전작의 대성공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현재까지의 분위기는 그나마 그럭저럭 좋지만, 뒷심이 나빠질지, 아니면 악재를 이겨내고 또 한번의 대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잘 되든 실패하든, 이 14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회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것이다. 역사가 증명하니까. 정말 끝장났구나, 싶은 순간에도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그동안 이 회사에 닥친 일들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는 실패 축에도 끼지 못한다. 다방면으로 보험도 걸어두었다. 뮤지엄을 런칭하고 영화를 만들고 테마파크를 만들면서 IP 시장의 확대에 전념한다. 돈이 있을 때, 게임 이외에도 충격을 대비하기 위한 갖가지 방어막을 구축해둔다. 아마도 닌텐도는 이겨낼 것이다. 그동안 살아남은 만큼, 더더욱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교토의 화투 제작 회사는 이렇게, 세계 게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 요렇게 인증글을 마칩니다. 상당히 길었던 내용이지만,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이번 글에 쓰인 모든 사진은 직접 찍었습니다. 전부 제 소장품입니다. "어렸을때 추억이 담긴 게임을 올리면 가산점이 있다"고 하셨는데, 어찌저찌하다보니 그런 이야기는 하지 못했네요. 컬렉션을 보면서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아, 추가로 추억의 게임기는 "닌텐도 DS Lite", 인생 게임은 "제노블레이드 크로니클스"입니다.

그렇다면, 1955년 제조된 닌텐도 화투와 2025년 제조된 스위치2 프로 컨트롤러, 70년짜리 사진을 끝으로 준우승상인 GBA SP를 받기를 기도하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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