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훈련도감 소속 군인의 복장)
훈련도감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권유로 류성룡이 추진해서 만든 조선의 상비군(직업군인)임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며 징집병의 전투력은 도저히 못써먹을 수준이란걸 절실히 깨닫고 조선은 상비군중심의 5군영체제로 전환함
현재 한국군도 최근 국방개혁으로 직업군인비율이 약 40퍼나 됨
(30~40세 잘 안서는 개구리 틀딱들 군대시절 땐 20퍼대)
5군영 = 훈련도감, 어영청, 총융청, 수어청, 금위영
그 중 훈련도감의 병력이 반이었고, 가장 정예였다함
규모는 5천~7천명 (이 중 5분의 1이 기병)
몰락양반, 평민은 물론이고 승려, 공노비, 천민도 많았고 공을 세우면 양반이 되거나, 우수군인으로 선정되면 노비천민이어도 평민으로 면천됨
월급으로 기병은 쌀 10말, 보병은 9말을 받았고 조선 소득 상위 20~30퍼였지만 가족들이 살기 턱없이 부족해서 장사나 농사를 병행함
조선실록 내내 저 훈련도감유지비용 대느랴 조정이 재정적자라는 얘기가 해마다 나오는데, 호조예산의 3분의 1이 훈련도감비용이라 폐지하자고 호조관리들이 징징대고 훈련도감장이 피의 쉴드를 치는 내용으로 가득함...
오죽하면 훈련도감 군인들 1년에 절반을 무급휴가주며 예산을 아낌 ㅋㅋㅋ
그래서 장사를 하는데, 훈련도감에 조정피난용 선박 10척을 굴렸는데 이걸 200척으로 늘려서 청과의 교역 및 운수산업하기도 하고
배추나 고추 담배 등 특수작물 둔전사업하며 돈 벌기도 하고 전문 대장간사업도 벌임
(둔전만 300여개)
한양 인구가 20만인데, 한양인구 7~10분의 1이 훈련도감 군인이거나, 그 가족들이었고 조선 상업발달의 큰 원인이었다함
나름 전투력도 강력했는데, 영조 때 이인좌의 난 당시 반란군이 최대 7만이었는데 5군영 직업군인들이 바로 진압함
(훈련도감 기병 400이 반란군 헤집으며 도륙냄)
인조 남한산성전투 때도 포위된 성에서 몇백명이 몇번이나 나가 만주족 수급 몇십통씩 챙겨돌아옴
조선 때 마상총기병 즉, 드라군을 운용했다는 기록이 있고 정조 때 전방의 기병 3천 다 마상총기병 해버리자고 논의한 기록이 있지만 실체가 애매했음
지금 실존한 조선 마상총도 몇자루 없고 대부분 고종 때꺼니..
그러다가 어느 미국인이 자기 집안이 3대째 그 총 소장하고 있다고 해버리니,
정부가 바로 돈주고 환수함 보존상태도 완벽...
연도 알아보니 대략 숙종~정조 즈음
조선의 마상총기병 복원도
풍안경이라는 전투고글을 썼다함
바람과 연기, 먼지를 막아 사격시 필수였다는 ㅇㅅㅇ
이게 그 조선의 풍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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