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루마니아의 대통령이자 사실상 신처럼 군림했던 독재자로
겉으론 인민의 영웅이라 불렸지만 정작 그는 국민을 굶기고
감시하고 침묵하게 만들었음
1965년부터 무려 24년 동안 권력을 놓지 않았고
모든 언론을 통제, 사람들의 대화를 도청하며
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모조리 숙청해버림
그 결과 경제는 파탄났고, 국민은 식량 배급으로 겨우 연명함
마오쩌둥
중국 초대 주석으로 중국 현대사의 아버지라 불렸지만
그의 이름은 수천만의 희생과 함께 기억되는 인물로
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뒤
위대한 도약을 선언하며 대약진운동을 시작하게 됨
철을 더 생산하겠다고 농민들을 제철소로 몰아넣은 결과
식량개혁 실패로 3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게 된다
이후에는 문화대혁명으로 사회 전체를 뒤흔들게 되는데
지식인은 숙청, 고서적 불태우기, 자식이 부모를 홍위병에게
고발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
그는 자신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그 누구도 자신에게 대적할 수
없도록 폭압적인 조치를 함
폴 포트
캄보디아의 총리인 그는 완전한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자국민을 직접 학살한 독재자로 1975년 정권을 잡은 그는
모두가 같은 옷, 같은 밥을 입고 먹는 사회를 만들겠다며
도시를 폐쇄하고 모든 국민을 강제로 시골에 이주시켰음
학교는 문을 닫았고 화폐는 폐지됐고 의사,교사,공무원 등은
부르주아로 낙인 찍혀 처형당했다
안경을 썼거나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천명의 사람이
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음
킬링필드라 불리는 학살터엔 200만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묻힘
이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진 수준이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의 군사독재자인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수천만명의
반대파를 체포했고 국립경기장은 임시수용소와 처형장으로
바뀌게 됨 강제실종, 고문, 언론탄압은 일상이 되었고
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3천명이 넘는다
그는 반대하는 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았고 그 명분 아래 폭력을
정당화했음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칠레 경제를 성장시켰지만
그 혜택은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되었음
철저한 감시사회, 겉으로는 안정돼 보였지만 속은 점점 썩어갔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의 독재자인 그는 혁명을 성공시킨 영웅으로 불렸지만
누군가에겐 나라 전체를 감옥으로 만든 독재자였음
1959년 쿠바 정권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반대파를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음
정당은 단 하나, 언론은 국영만 존재했고, 반대 의견은
국가전복 선동으로 처벌받았음
학생은 입 조심을 해야했고 이웃 간의 고발이 장려되던
사회가 되었음
가택 감시는 일상으로 이루어졌고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제 노역이 자행되었다
수많은 암살시도를 피하며 50년 가까이 권력을 내려 놓지 않았음
프란시스코 프랑코
스페인을 36년간 지배한 독재자인 그는 1939년
스페인내전에서 승리한 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파시스트 군부독재를 세우게 됨
정적은 체포되거나 추방되었고 반대파 가족까지 감시대상이
되었음 비밀경찰에 의해 수만 명이 실종됐고
정치범의 경우 재판도 없이 수감되었다
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학교에서는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배움
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
실상은 철저한 통제와 공포의 지배였다
그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스페인 역사 속에 깊이 남아있음
사담 후세인
이라크의 철권 통치자인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
정보기관과 군을 장악해 공포정치로 나라를 통제하였음
정적은 숙청당했고 의심만으로 가족 전체가 사라지게 됨
그는 쿠드루족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수천명을 한꺼번에
몰살시키기도 했음
안팔라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역사상 최악의
인종탄압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라크 전역에 감시망이 퍼졌고 시민들은 집안에서도
속삭이며 말해야 했음 그럼에도 자신을 국민의 아버지라고
부르며 권력의 중심에 섬
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해 국제사회의 분노를 샀고
걸프전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하였지만 2003년 대량 살상 무기를
이유로 미국이 침공에 나서게 된다
이라크는 분노한 미국에 의해 순식간에 나라가 무너졌고
수도가 함락되기 전 자취를 감췄음
이후 수개월 간 은신하며 버텼지만 한 병사에 의해 발각되면서
그의 도피극은 끝이 나게 됨
이후 재판에 넘겨졌고, 자국민 학살 등의 혐의로 사형됐음
김정일
북한의 2대 세습 독재자인 그는 겉으로는 인민의 아버지를
자처했지만 정작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만든 인물이였다
1990년대 북한은 소련 붕괴 등의 이유로 극심한 식량난에
빠지게 되었고 최대 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었음
그 와중에도 그는 프랑스 와인, 스위스 치즈, 외제차로
사치스러운 삶을 즐겼다
국가 전체를 감시체계로 묶고 말 한마디로 사람의 운명을 바꿨음
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제노동, 공개 처형이 자행됐고
심지어 어린아이도 부모의 죄로 함께 끌려갔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사회는 그의 선전 영상만을 진실로
받아들여야만 했음

베니토 무솔리니
파시즘의 창시자이자 일명 “두체”라고 불렸던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그리고 한때 히틀러의 우상이자
충직한 조력자였던 그는 로마 진군을 통해 국왕에게 총리직을
임명받았고 국민에게 위대한 로마 제국을
되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남긴 건 피와 폭력 뿐으로
무솔리니는 언론을 틀어막고 반대파를 국가의 적으로 몰았다
그의 명령 한마디면 사람들은 잡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됨
한편 역사상 모든 독재자 중에서 대규모 우상화를 최초로
자행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으며, 우상화의 질적 수준도
엄청났음 193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이탈리아인들은
진심으로 두체를 신이 내려준 최고의 지도자라고 여겼을 정도
결국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는 2차 세계 대전에 추축국으로
참전했지만 연이은 졸전으로 인해 국민들은 점점 싸늘한 시선을
보내게 되었고 1943년 연이은 전쟁 패배와 경제 붕괴 속에서
국민의 분노는 그야말로 폭발하게 됨 그의 측근들조차 더 이상
그를 감싸지 않았고 자신을 임명했던 국왕에게 직접 해임당했다
무솔리니는 체포되어 구금됐지만, 그에게 아직 애정이 남아있던
히틀러가 보낸 독일군 공수부대에 의해 구출 된다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에 독일의 괴뢰국인 살로 공화국을
세우게 됨
하지만 그곳엔 충성도, 영광도, 무솔리니 본인의 의욕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패전 직전 1945년 4월 스위스로 도주하던 중
이탈리아 파르티잔들에게 사로 잡혀 다음 날 광장에서 총살을
당하고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조롱 당하였다

도조 히데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육군, 내각총리대신이자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은 곧 침략과 학살,
전쟁 범죄의 또 다른 말이였음
도조는 아시아 전체를 일본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야망을 품고
그가 총리로 있던 시절 일본군은 중국과 동남아 전역을
무차별 공격했다 1937년 난징 대학살에서는 30만 명 이상의
중국 민간인들이 광기에 빠진 일본군들에게 무참히 도살되었음
포로들은 생체 실험 대상으로 쓰이거나 해부를 당하였음
그는 이런 군의 만행을 알면서도 눈감았고 오히려 독려했다던
기록도 남아있다
이후 1941년에는 미국을 선제공격 한다는 정신나간 발상의
진주만 공습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개전시켰고
황군은 신의 군대라며 일본군의 절대적 정당성을 강조했지만
패전이 다가오자 그의 위치도 흔들리기 시작함
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도조 히데키를 A급 전범으로
사형선고를 내렸고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음

이오시프 스탈린
러시아 혁명의 후계자에서 20세기 최악의 공포정치로 이어진
이름, 소련의 초대 서기장인 그는 국부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의 권력을 장악했고, 인민의 나라를 만들겠다며
국민을 감시와 숙청 대상으로 만들었음
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밀어붙혔지만
그 대가는 기근과 과로, 굴라그(수용소)였고
우크라이나 대기근, 일명 홀로도모르에서는 최대 400만 명이
굶어죽었다
반대파는 물론,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체포됐고 시베리아로 보내졌음
고문과 강제 노역이 반복되는 군락 수용소엔
수백만 명이 갇혀있었다 군 장교, 예술가, 학자, 심지어
동료 정치인까지 그의 명령 몇 마디로 사라졌음
엄청난 편집증으로 인해 자신이 키운 충신조차 언제든
적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의사도 믿지 않았고
자신을 치료하던 의료진마저 반역 혐의로 체포하였는데
1953년, 침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업보라도 존재하는지
며칠 간 방치되었고, 침대 위에서 말도 못한채 서서히 죽어갔음
장례식에서 수십만 명이 몰렸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건 슬픔이
아닌 그가 만든 체제의 공포였다
권력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마지막은 누구도 감히 손대지 못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인물이다

아돌프 히틀러
“20세기 최악의 이름” 수천만 명의 죽음을 초래한 악마보다도
더 악랄한 나치 독일의 총통(퓌러)인 그는
제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혼란스러웠던 독일에서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외치며 사람을 홀리는 수준의 엄청난
선동적 연설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잡게 됐음
1933년 총리에 오른 뒤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장악하며
나치 독재체제를 완성했다 그는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
소수민족을 탄압했고 그 결과,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
홀로코스트(인종청소)로 이어지게 됨
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조직적으로 마치 공장에서
일을 처리하듯 학살됐고 정치범, 지체장애인, 성소수자 등도
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게 됐다
그 밖에도 국방군, SS(무장친위대) 등에게 점령지에서
민간인, 군인을 가리지 않고 전부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려
가장 유명한 동부전선에서 약 3천만 여명의 슬라브 인종이
열등 인종으로 분류 된 채로 어두운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침략전쟁으로
전세계 사망자 수는 7000만 명에 달한다
말 그대로 20세기 초 전세계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1945년에 이르러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으며
영미연합군은 서쪽에서, 소련군은 동쪽에서 베를린을 포위했고
히틀러는 정신병에 걸린 채 지하 벙커에 숨어버림
그곳에서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마지막까지 이길 수 있다는
환상에 붙잡히게 된다 믿었던 측근들이 그를 배신하게 되고
군대는 패배하고 있었지만 끝내 항복을 거부하는 역대급
자존심을 부려버린 뒤 4월 30일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치르고 바로 다음날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함께 생을 마감한다
당연하지만 장례도, 기념비도, 묘지도 없는 결말,
그가 만든건 무너진 독일과 사라진 수백만의 생명, 그리고
분노한 소련군의 보복행위에 당한 무고한 민간인들의 신음소리
뿐이였음
히틀러의 최후는 그가 저지른 일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했지만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전 인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적 경고이자 교훈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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