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The who - Eminence front
I
I. 인도양의 불침 항모
프랑스가 코모로라는 인도양의 작은 파편들에 집착한 이유는 결코 낭만적인 것이 아니었다. 지도를 펼치면 코모로는 아프리카 동해안과 마다가스카르 사이, '모잠비크 해협'의 북쪽 입구를 틀어쥐고 있다.
이곳은 중동의 석유를 실은 유조선들이 희망봉을 돌아 유럽으로 향하는 거대 동맥과 같은 항로였다.
(수에즈 위기, 1956)
당시 수에즈 운하는 상습적인 분쟁과 전쟁으로 막히기 일쑤였다. 프랑스에게 모잠비크 해협의 통제권은 곧 국가의 혈관을 지키는 생명선이었다.
코모로는 그 혈관을 감시하는 요새이자, 인도양 전체에 프랑스의 투사력을 유지시켜 주는 '지상의 항공모함'이었다. 만약 이 섬들이 적대적인 세력이나 소련의 영향력 아래 들어간다면, 프랑스는 남인도양의 제해권을 통째로 잃게 될 판이었다.
(프랑스의 해외 핵실험 감시소 위치)
또한 코모로는 프랑스의 전략적 핵 억지력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남극 근처의 프랑스령 섬들과 연결되는 통신 중계지이자, 인도양에 전개될 프랑스 해군의 비공식 병참 기지이자, 마다가스카르에 간섭하기위한 전진기지였다. 엘리제궁의 '아프리카 셀'에 코모로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프랑스의 위엄을 유지하기 위한 체스판의 '룩'이었다.
II. 마요트의 비극 : 분할하여 지배하라
1975년 코모로가 독립을 투표에 부쳤을 때, 프랑스는 '민주주의'라는 가면 뒤에서 가장 교활한 수를 썼다. 네 개의 섬 중 하나인 '마요트'에서만 압도적인 독립 반대 여론이 나오도록 공작을 펼쳤다. 결과는 기이했다. 세 개의 섬은 독립을 택했고, 마요트만은 프랑스령으로 남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유엔의 비난을 무시하고 코모로라는 한 몸을 찢어 발겼다. 이는 필연적으로 코모로 본토의 원한과 불안정을 야기했다. 코모로 정부는 마요트의 반환을 요구하며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프랑스는 이 정당한 요구를 억누를 강력한 '관리자'가 필요했다. 공식적인 외교로는 해결할 수 없는, 총구와 공포로 압력을 조절할 '그림자 압력솥'의 요리사. 로버트 데나드가 코모로에 투입된 실질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III. 1차 쿠데타 : 핀(pin), 1975
(아메드 압달라)
1975년 7월, 초대 대통령 아메드 압달라는 독립을 선언하며 마요트의 반환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프랑스에게 '다루기 힘든 아이'였다. 독립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8월 3일, 데나드는 수십 명의 용병을 이끌고 모로니의 해변에 상륙했다.
(알리 소일리)
총성은 짧았고 반항은 무력했다. 압달라는 쫓겨났고, 프랑스가 점찍은 알리 소일리가 권좌에 올랐다. 이것이 제1차 코모로 쿠데타였다. 프랑스는 이 혼란을 틈타 마요트에 대한 점령을 기정사실화하고 행정력을 고착시켰다. 데나드는 국가의 이름으로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완수했고, 코모로는 독립의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영토를 빼앗기는 형벌을 받았다.
IV. 2차 쿠데타 : 앙파상(en passant), 1978
그러나 알리 소일리는 프랑스의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는 집권 후 마오쩌둥 식의 급진 혁명을 시도하며 프랑스 고문단을 추방하고 '무와시'라 불리는 청소년 민병대를 조직해 전근대적 사회를 파괴했다. 엘리제궁에 그는 이제 '통제 불능의 미친개'였다. 프랑스는 다시 데나드를 호출했다.
1978년 5월, 데나드는 낡은 화물선 '안틸레아호'에 50명의 정예 용병을 싣고 인도양의 거친 파도를 넘었다. 그는 자신이 3년 전 쫓아냈던 아메드 압달라와 손을 잡고 대통령궁을 기습했다. 소일리는 사살되었고 압달라는 복귀했다.
이 제2차 코모로 쿠데타 이후, 데나드는 코모로의 실질적인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무함마드 무스타파 마주주'라는 이름으로 개종하고 대통령 경호실장이 되어 500명의 용병대를 거느렸다. 사실상의 '백인 술탄'이었다. 프랑스는 그를 통해 코모로의 내정과 군사를 완벽히 장악했다. 코모로는 프랑스의 비공식적인 병참 기지이자, 인종차별 정책으로 고립된 남아공과 프랑스를 잇는 은밀한 통로가 되었다.
V. 3차 쿠데타 : 주크추방(악수강요/zugzwang), 1989
(프랑스령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회의에 참여한 미테랑)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데나드는 코모로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1980년대 말, 시대의 바람이 바뀌었다. 냉전은 종식되어 가고 있었고, 프랑스 미테랑 정부는 더 이상 '용병이 지배하는 섬'이라는 외교적 오명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압달라 대통령 또한 이제는 데나드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용병대의 해산을 명령했다.
1989년 11월 26일 밤, 대통령궁 집무실에서 격렬한 다툼 끝에 총성이 울렸다. 압달라는 숨졌고, 데나드는 다시 한번 계엄을 선포하며 정권을 장악했다. 제3차 코모로 쿠데타였다. 그러나 이번에 엘리제궁에서 보낸 응답은 자금이 아닌 특수부대와 군함이었다. 프랑스는 더 이상 그를 보호할 필요가 없었다.
(체포된 밥 데나드)
프랑스 해군 특수부대가 모로니를 포위하자 데나드는 처절하게 깨달았다.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는 필요할 땐 손을 내밀어 이용하지만, 부품의 수명이 다하면 가장 먼저 그 부품을 고철로 던져버린다는 사실을. 그는 남아공으로 탈출했고, 그가 10년간 지배했던 '용병 왕국'은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는 국가의 충실한 개였으나, 결국 주인에 의해 유기된 노병에 불과했다.
그러나 프랑스가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었다. 궁지에 몰린 개는 끝내 주인을 문다는 사실이다.
솔져 오브 포츈 : 팍스 프랑세즈(Pax Française) - 4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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