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준하면...
다들 뭐 당연히 명의, 뛰어난 의사 생각을 하겠지만
사실 허준은 명의 뛰어난 의사도 맞지만...
의료 행정가로써의 면모도 뛰어난, 아니 굉장한 사람이었음
명의의 이미지 때문에 이런 행정가로써의 면모가 부각되지 못했다고 보는게 맞을꺼임

1596년, 임진왜란이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선조는 허준을 불러 명령을 내림
이 명령의 내용을 보면 선조가 얼마나 치밀하게 의료 행정을 고민했는지,
그리고 허준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가 명확해짐

"요즘 중국의 의학책들을 보면 잡다하기만 하고 우리 실정에 안 맞는 게 너무 많은거 같음
게다가 우리 백성들이 병이 들어도 약이 없어서 죽는 게 아니라, 약을 몰라서 죽는 경우가 허다함
우리 산천에 널려 있는 약초(향약)를 가지고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알기 쉽고 체계적인 새로운 의학 표준을 만들어보셈"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장관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불러놓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의약품 시장 구조를 개혁하고,
국산 천연물 신약을 기반으로 한 의료 자립 시스템을 구축해보셈
같은 국책 사업을 던진 거임
이것이 바로 동의보감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음

동의보감의 진가는 압도적인 UI과 표준화에 있음
허준은 방대한 의학 지식을 내경(내과), 외형(외과), 잡병(유행병), 탕액(약물), 침구(침술) 등
5개 목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한뒤
각 질병마다 증상엔 처방 파트로갈수 있도록 써놨고 처방에선 탕액편으로 넘어가
자세하게 정보를 확인할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음
마치 오늘날의 위키피디아나 나무위키처럼 하이퍼링크가 걸린 듯한 구조라고 생각하면 됨
아니면 마갤 정리 공지라던가

가장 혁신적인 부분은 국산 약재의 재발견과 한글 병기임
당시 의사들은 비싼 중국산 수입 약재를 선호했는데
허준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을 처방의 중심에 두었음
그리고 그 약재 이름 밑에는 반드시 한글로 된 이름을 달았뒀고..

환자: 허준쌤!~ 이거 대두황권이라고 쓰여있는 약재가 있는데 뭡니까?
비싸 보이는데..저 가난해서 이런거 못씁니다요...

잉?? 그거 별거 아니고 콩나물 어린싹 말하는거임;;;
쉽게 구할수 있는거임

아이고 그렇군요...~~~ 제가 언문은 좀 읽을줄 아는데
한문 이런건 전혀 몰라서...감사합니다~~~

흐음...한번 고민해봐야 할 문제군..까막눈 백성에게 한문으로 된 약재문을 준다고 의미가 있을까??
백성들 사이에서 많이 보급되어있는 한글로 된 약재를 써주는게 맞지 않나?

이것은 오늘날의 국가 의료 정보 시스템을 구축한 것과 같음
배가 아프다 -> 어느 부위인가? -> 증상은 어떤가? -> 이 약초(한글이름: 승검초)를 써라(뒷산에 널려 있음)
이런 알고리즘 접근은 당시 난립하던 돌팔이 의원들의 병신 처방을 막고,
국가 전체의 의료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키려는 의료 표준화 정책의 일환이었음
허준은 의사가 아니라 의료 시스템 설계자이자 행정가로 봐도 되는 부분임

또한 허준은 전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맞는 긴급 대응 매뉴얼을 배포했는데
이것이 바로 언해 시리즈임
언해두창집요(그 두창 아님 천연두임) (1601): 천연두 대응 긴급 매뉴얼
언해태산집요(1601): 출산 및 산후 조리 매뉴얼
언해구급방(1601): 응급처치 매뉴얼 (대충 심폐소생술 가이드)
신찬벽온방(1613): 티푸스,성홍열 등 급성 전염병 대응 매뉴얼
이 책들의 공통점은
첫째, 무조건 한글로 썼고
둘째, 얇고 가볍고
셋째, 쉬운 보급과 경제성을 고려해서 비싼 약재를 뺐다는 거임
허준은 나름대로 보편적 의료 복지를 실현하려 노력했던 행정가였음

1612년~1613년, 함경도에서 시작된 괴질이 전국을 강타해 수천 명이 죽을때
전파 경로 차단을 위한 구체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위생 수칙을 제시했음
(물론 한글로 씀)
환자를 대할 때는 등지고 앉아라,
환자의 옷을 삶아 빨아라,
환자가 있는 방에 들어갈 때는 숨을 참거나 틈을 조심해라,
귀신 쫓는 부적보다는 환기를 자주 시켜라.
허준은 전염병이 물리적 접촉과 비위생적인 환경에 의해 전파된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고,
이를 행정 명령을 통해 통제하려 했음

허준의 매우 중요한 숨겨진 업적은 약재 도량형의 통일이었음
당시에는 저울마다 눈금이 다르고, 되의 크기가 지역마다 제각각이었는데,
A 한의원에서 지은 감기약과 B 한의원에서 지은 감기약의 농도가 달랐다는 얘기임
허준은 동의보감을 통해 약재의 무게와 부피를 재는 표준 단위를 명확히 규정했음
물 한 사발 같은 애매한 표현 대신 물 5홉, 약재 3푼 하는 식으로 정량화한거임
또한 옛날 방식의 저울과 당시 통용되던 저울의 차이를 계산하여 환산표까지 만들었음
이는 의료 사고를 막고, 약효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였음
그리고 이는 조선 사회 전반의 계량 표준화에도 기여했음

지금 우리 시대에서 진짜로 원하는 리더십도 이런거 아닐까?
욕을 좀 먹더라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한 솔루션을 내놓고,
묵묵히 시스템을 고쳐나가는 이런 행정가형 리더십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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