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한밤중이면 좋겠는데, 라는 밴드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도 그 대답은 공식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사·작곡·보컬 ACAね가 이끄는, 버리기 곤란한 전자제품 처리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견(?)인 밴드.
멤버는 정해진 형태가 없고, 특이한 악기 편성을 자주 한다.
오늘 밤도 주걱(しゃもじ)으로 플로어를 들끓게 만든다.
그런 밴드가 버리기 곤란한, 유행에 따른 전자제품을 발매했습니다.
1980년대의 유행을 따른.
즛토마요의 붐박스 SCR-B9(Z)입니다.

최근에 음악을 뭘로 듣냐라고 물어본다면 흔히 몇 가지 대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스포티파이라던가, 유튜브 뮤직라던가. 좀 더 들어가면 애플 뮤직이 있을거고, 멜론이나 벅스도 있고.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 Hi-Fi 플랫폼을 듣고 계실 수도 있죠.
스트리밍으로 듣는다. 라고 말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당연히 된 세상에. 이 기계는 1/4는 CD로 음악을 듣기 위해 장소를 비워뒀고. 1/4는 테이프로 듣기 위해 장소를 비워뒀고. 상판부는 FM/AM에게 양보했습니다 물론 원한다면 블루투스와 USB, MicroSD로 들어도 될 수 있도록 설비를 갖춰두고 있는 기계이지만. 오히려 그 면이 이 기계를 더욱 신비롭게 합니다. 그렇다고 CD와 테이프가 자리를 양보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어찌보면 굉장히 처절하지 않나요. 이 기기의 정채성이라고 해야할 CD와 테이프, FM과 AM으로 들을 가능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 기계는 구조적인 개혁을 포기하고 나쁘게 말하면 덕지덕지 붙인 것으로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로인해 아둔하다고, 실용적이지 않다고 비난받을 수 있지만. 그로인해 얻은 것이 있습니다.
아름다움입니다.



정말 예쁩니다. 사진으로 표현이 제대로 되지 않을만큼이나 이쁩니다. 특히 이 기기의 매력은 구동시에 있는데. 진짜 예쁩니다. 가끔씩 멍하니 CD 돌아가는 거라던가, VU 마크 올라가는 거라던가. 색감이라던가. ZUTOMAYO SOUNDS라는 것만 보면 감탄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을만큼. 진짜 이쁩니다.
예쁜 게 전부냐고 물어본다면... 네. 전부입니다.
그런데 예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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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품은 6.8kg, 무겁습니다. USB/microSD로 재생하면 flac은 커녕 mp3 128kbps만 지원이 됩니다. 파일명 안 지키면 인식도 안됩니다. 블루투스는 SBC라는 음질이 썩 그런 포맷만 지원합니다. 애초에 해외에서 사용할거라는 상상을 즛토마요와 콜라보 하기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이 제품은 프리볼트가 아닙니다.
요즘에는 거의 손에 잡히는 모든 제품이 프리볼트라서 역으로 프리볼트의 의미를 모르실 분이 많을 것이고. 저도 이걸 사기 전까지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프리볼트가 아니라는 의미는 이 제품을 돼지코에 물려서 한국 전기에 먹이면. 운이 좋으면 간담만 서늘할거고. 조금 더 나쁘면 영원히 다시 켜지지 않을 것이고. 아주 나쁘면 집에서 명교 마지막 폭파 장면을 재현해볼 수 있습니다.

멀리서 바라봐야 아름다운 것이 있는걸지도
이 제품은 220V를 먹을 수 없고, 110V만 먹을 수 있거든요.
애초에 이 제품 설명서 마지막 페이지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있습니다.

This unit can not be used in foreign countries as designed for Japen Only
일본에서만 쓸 수 있도록 설계됐으니 해외에서 쓰지 말아주세요. 라는 말인데. 그 말을 어기려면 그 역으로 설계된 제품을 써야합니다.

이 제품은 일본 경제산업성의 예외승인을 받은 제품으로, 일본 국내에서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걸 이렇게 설치하고.

100V에 꽂으면.

전원이 켜집니다.

전기를 안 먹여도 되고. 외부 전원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는데요. 그게 리튬 이온 배터리는 아닙니다. 그것보다 좀 더 예전에 자주 쓰던 D형 건전지에요.

현재 네이버 스토어에서 24개에 11600원에 팔고 있고, 이 제품은 건전지 8개를 먹고. 건전지로 구동시 대략 30시간을 구동하니. 10시간당 1288원이 드니, 1시간당 128원쯤 들겠네요.
그리고 이 모든 걸 정가 기준 46200엔에. 배송비 5만원에. 관세 5만원에. 변압기 4850엔을 내고. 이 제품을 활용하려면 CD나 카세트로 들어야하니 그게 없다면 또 사야하고. 변압기를 사고 싶지 않거나 외부에서 쓰고 싶으면 이 제품 외에 평생 쓸 일이 없을 것 같은 D형 건전지 8개를 사야합니다. 대충 60만원쯤 하겠네요.
60만원짜리 블루투스 스피커... 까지 보지 않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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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가격을(20만원) 하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보면 무게는 1/6에 리튬이온배터리, USB-C 충전을 지원하며 프리볼트는 너무 당연하니 언급할 이유도 없고 40W 출력에(이 제품 출력의 2배!) 빛도 번쩍번쩍나고 음향 전문 업체가 제조했으며 방수방진도 되는 기기가 있습니다. 혹시 고장나더라도 수리 맡기면 될겁니다. 해외에 살고 있는 한 수리가 구매보다 훨씬 더 힘든 기기를 산 사람은 꿈 꿀 수 없는 것이죠.
Bass / Trouble을 귀로 들으면서 레버를 돌리지 않더라도 AI가 알아서 해준다고 합니다. 이 기기를 처음 샀을 때 음이 플렛하다 못해 2D 같아서 놀랐는데 레버를 돌리니 귀가 먹먹할 정도로 아래로 파고 들어서 놀랐는데요. 이런 걸 알아서 잡아줍니다. 게다가 뭣하면 보조배터리로도 쓸 수 있고. USB-C로 연결하면 무손실 오디오까지 지원한다고 합니다. 이 스피커는 최대출력시 10퍼센트 정도 소리를 조져버리겠다고 적혀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CD나 카세트로 안 들으면 음질이 더 끔찍해집니다. CD로 음악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뒷면이 맨질맨질하고 반짝여서. 지문이 묻으면 정말 더러워지거든요. 그래서 엄청 잘 들어야 합니다. 꽂을 때도 정말 잘 꽂아야하고. 좀 덜 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꽂아야하고요. 카세트 테이프는 아직 안 넣어봤는데, 그건 CD보다 더 난잡하겠죠. 애초에 음악을 고르는 것부터 힘듭니다. 원하는 노래를 찾으려면 CD의 트랙리스트를 읽어보고. CD를 재생한 다음. 원하는 넘버를 찾아야 하니까요. 그런 일을, 스트리밍은 버튼 한번에 재생할 수 있는 이런 시대에 합니다.
이런 시대여서.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6년. 과거에 리스너들이 꿈꾸던 거의 모든 것들이 이뤄졌습니다.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게 됐고. 내가 평생 안 들어봤을 음악들도 알고리즘을 통해 들어볼 기회를 주며. 즛박스처럼 육중한 기계도, CD만한 기계도, 카세트 테이프만한 기계를 가지지 않더라도. CD를 소유하지 않고 카세트 테이프를 가지지 않더라도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놀랍게도. 이제는 그런 게 신선한 게 아니라 지겨울정도로 당연한 형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도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CD를 만듭니다. 스트리밍으로 인해 각 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엘범을 만듭니다. 음악을 어디서나, 어떻게서든, 원하는 방식으로 들을 수 있는데도 라이브를 합니다.
무엇을 위한 걸까요?
기능을 더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면 할 수록 좋습니다. 사람의 인지를 적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그 단 하나, 전원을 내려버릴 버튼만 있는 UX가 최고겠죠. 나머지는 전부, 플레이리스트라던가 그런 것들은 AI가 내 기분에 맞춰서 해주면 편할거고. 요즘 시대에는 그게 허황된 꿈은 아닐겁니다.
경험적인 면에서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테니까요. 그게 이성적인 세계에서는 별 쓸모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 즛박스를 이성적인 눈으로 보면 그냥 예쁘고 무겁고 쓰기 불편한 60만원짜리 고철덩어리니까요. 음악을 들으려면 지금까지 소장했던 엘범의 비닐을 벗기고. CD를 넣고. 트랙을 골라야하는 그런 불필요한 행동을 해야합니다.
사람은 그런 불필요한 행동으로 경험을 하게 되는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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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기를 쓰면서 발견한 것들이 몇 개 있는데요. 사실 이렇게 말하는 주제에, 지금까지 CD를. 특히 라이브 CD를 제외하고는 CD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즛토마요의 붐박스에서 처음 재생되는 건, 즛토마요의 첫 미니엘범이어야 해.' 라고 생각하며 별 생각 없이 '올바른 거짓으로부터의 기상'을 뜯었었는데.


정말 예뻤어요.
그리고 이 엘범을 넣고 재생을 하면.
이렇게 동작합니다.
VU미터가 왔다갔다하고. 거의 모든 곳에서, 아카네가 사용자에게 부디 자신이 바라본. 느꼈던 그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새밀하게 만들어져있고. 가장 위쪽, 아카네가 썼을 문장이 길게 적혀져 있습니다.

We met in Melody, then vanished but I still hum that note of you Truth in Lies
To awaken such a memory in the scenery, and beneath my ribs(Creamy rib cage - Deep Music) I knew I needed something with shape.
A message to my future self, dull and digital: you're still listening to music, aren't you?
It may be inefficient, but I pray this becomes a playback device for memories eternal Midnight Forever, made by the one charge of pretending.
우리는 멜로디 속에서 만났고, 이내 사라졌지만 나는 아직도 너라는 그 음을 흥얼거려 거짓속의 진실.
그런 기억을 풍경 속에서, 그리고 내 갈비뼈 아래(크리미한 갈비뼈 - Deep Music)에서 일깨우기 위해 나는 형태를 가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무미건조하고 디지털한 메시지: 아직 음악 듣고 있지, 안 그래?
비효율적이지만, 영원한 기억 영원심야를 재생하는 장치가 되기를 바래, 겉의 나 자신이 만든 것이지만.
(made by the one charge of pretending이라는 번역이 '~한 체로 가득한 내가 만든 것, 사칭혐의로 기소된 나(...), 꾸며내는 역할을 맡은 나, 연기하는 나' 등등 와닿지 않아서. 가장 의미가 비슷하다고 느끼고 3집의 마지막 곡인 겉의 나자신으로 따왔습니다)
미래가 되면 아마도 다른 형태로 음악을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언젠간 스포티파이나 유튜브 뮤직마저도 미래에서 보면 '도대체 어떻게 저런 것으로 음악을 들었을까' 싶었을 표정으로 바라볼지도 모를 일이죠. 음악을 검색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될 일이 될지도. 엘범이라는 형식이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간 더 효율적인 방법이 나올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다르게 보면. 음악은 효율적인 세계에서는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미 전 세계에 지어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개입하지 않고 기계만이 가득한 공장에서는 괜히 고막만 깎아먹는 음악을 들을 필요도. 전등을 켤 필요도. 아름다운 것에 돈을 쓰거나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습니다. 인류는 양피지에 잉크를 묻혀서 글씨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들어난다고 믿는 시대부터. 어떤 인간이 타이핑을 해도 똑같은 데이터로 남는 시대까지 음악을 듣고. 세상을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 묻어버리고 온갖 끔찍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아름다운 것을 본능적으로 갈구합니다.
즛토마요 박스는. 그렇게 묻어버려 세상으로부터 폐기된 행동과 감정과 가전제품을 끄집어내서. '어때. 미래. 꽤 멋지지 않아?' 라며 소개하는데.



꽤 나쁘지 않습니다.
그게 계속 한밤중이면 좋겠는데. 라는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였다고 생각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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